29.과학의 이해 (책소개)/4.자연과학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동방박사님 2022. 9. 1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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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40억 년 동안 뻔뻔하고 염치없었던 진화사
그 비밀을 파헤치는 가장 지적이고 경이로운 여정


동물의 단단한 몸, 물고기의 지느러미, 새의 깃털과 날개, 인간의 손발과 커다란 뇌는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 진화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전에 없던 혁신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자연과 생명은 탁월한 발명가라기보다 수십억 년에 걸쳐 베끼고 훔치고 변형해 온 뻔뻔한 모방꾼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내 안의 물고기》의 저자 닐 슈빈은 이번 신작에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표절과 도용으로 가득한 진화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발 달린 물고기와 깃털 달린 공룡 화석, 바이러스 덕분에 생물이 더 똑똑해진 이유, 이기적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핑 유전자, 크리스퍼-카스(유전자 가위) 기술의 탄생 배경 등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40억 년의 진화사와 200년의 진화 연구사, 그리고 최근 2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게놈 생물학의 최신 성과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진화의 경이로움과 생명의 다양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1장 기능의 변화: 옛것을 이용해 새것을 만들다
폐로 숨 쉬는 물고기 | 날지 못하는 공룡이 깃털을 가진 이유

2장 발생하는 발생학: 발명의 씨앗은 어떻게 자라는가
발생학의 태동 | 도롱뇽이 알려 주는 발생 타이밍 | 멍게는 우리의 조상 | 빅 아이디어의 시대 | 모두를 지배하는 하나의 세포

3장 게놈 안의 지휘자: 이토록 역동적인 진화 레시피
분자생물학 혁명 | 유전자 없는 게놈이라니 | 박테리아가 답을 주다 | 헤밍웨이의 여섯 발가락 고양이 | 기능을 켜고 끄는 유전자 스위치

4장 아름다운 괴물: 변이는 어떻게 진화의 연료가 되는가
유전 실험의 영웅 초파리 | 꿰어진 유전자 구슬 | 돌연변이 페이스트 | 생물판 잘라 붙이기 | 우리 안의 괴물 유전자 | 유전자의 재사용과 재배치

5장 흉내쟁이: 표절과 도용은 유전적 발명의 어머니
유전자 중복의 시대 | 정크 DNA의 발견 | 새 유전자보다 베낀 유전자가 많다 | 사람의 뇌가 커진 이유 | 인간 유전자는 중복투성이 | 이리저리 점프하는 옥수수 유전자

6장 우리 안의 전쟁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착각
점핑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퍼뜨리다 | 숙주와 바이러스의 치열한 내전 | 바이러스 감염 덕분에 똑똑해지다

7장 조작된 주사위: 진화는 불확실한 도박이 아니다
퇴화함으로써 진화하는 생물 | 도롱뇽이 혀를 총알처럼 발사하는 비결 | 유전 레시피에 내재된 제약 | 진화는 현실 가능한 세계 중 최선 |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니다

8장 인수 합병: 조립식 진화가 세상을 바꾼다
세포의 조립으로 단백질 공장이 탄생하다 | 또 한 번의 조립으로 몸이 생기다 | 부분들이 이루는 조화로운 전체 | 부분들의 조합으로 진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 자연의 발명을 도용한 크리스퍼-카스

에필로그 | 감사의 말 | 더 읽을거리 | 주 | 도판 출처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닐 슈빈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컬럼비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공부했고 현재 시카고대학교 생명과학과 석좌교수이자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1년에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2004년 북극에서 목, 팔꿈치, 손목을 가진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Tiktaalik)’을 발굴했다. 이 화석은 진화 연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이 발견은 《...
 
역 : 김명주
 
성균관대학교 생물학과,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주로 과학과 인문 분야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생명 최초의 30억 년: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2007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를 비롯해 『사피엔스 그래픽 히스토리 Vol. 1: 인류의 탄생』『신 없음의 과학』『호모데우스』『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디지털 유인원』『우리 몸 연대기』『위험한 호기심』『다윈 평전』...
 

책 속으로

진화사라는 길고도 기묘한 경이의 여행
생명사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 동물의 생활 방식과 몸 조직이 완전히 달라진다. 물고기에서 육상 생물로의 진화, 새의 탄생, 그리고 몸 자체의 시작은 생명사에 일어난 혁명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혁명들을 조사하는 과학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깃털이 동물의 비행을 돕기 위해 생겼다거나 폐와 다리가 동물들이 육지에서 걷는 것을 돕기 위해 생겼다고 생각한다면?여러분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지만?완전히 틀렸다.
--- pp.17~18

날지 못하는 공룡이 깃털을 가진 이유
1997년에 뉴욕의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고척추동물학회가 열렸다. 학회 참석자들 사이에는 보통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런 국제적인 모임은 보통 때는 매우 지루해서, 강연이나 포스터 발표 사이사이에 칵테일파티와 사교 행사가 열리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 학회 회원들은 연구하는 생물에 따라 소집단으로 갈라지기 일쑤였다. 포유류 연구자들은 포유류 발표장으로, 어류 고생물학자들은 어류 발표장으로 가는 식이다. 참석자들은 시작할 때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눈 뒤에는 각자 흩어져 분야별 강연을 들으러 간다.
그런데 1997년은 달랐다. 모든 복도와 강당, 그리고 모든 소집단이 떠들썩했다.
“그거 봤어요?” “정말이에요?”
--- p.48

발생학의 태동
이후 폰 베어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각기 다른 종의 배아를 담은 병들 중 몇 개에 라벨을 붙이는 걸 깜박한 것이다. 어느 종을 어느 병에 넣었는지 알 수 없으니, 이제 자세히 관찰하며 구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배아에 대해 회상하면서 폰 베어는 이렇게 썼다. “이것은 도마뱀일까, 작은 새일까, 아니면 아주 어린 포유류일까. 이 동물들은 머리와 몸통 모양이 흡사하다. 어떤 배아에서도 아직 사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발생 초기 단계에 사지가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보고 그 배아가 무엇이 될지 알 수는 없다. 도마뱀과 포유류의 사지, 새의 날개와 발, 사람의 손발은 모두 똑같은 기본 형태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폰 베어는 라벨을 깜박한 덕분에, 동물이 발생 과정에서 나타내는 질서를 알게 되었다. 성체의 몸을 보면 눈치챌 수 없지만 동물들은 발생 초기 단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성체 또는 갓 태어난 개체에서 외형에 차이가 있는 경우라도 발생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비슷하다.
--- pp.66~67

멍게는 우리의 조상
가스탱은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의 진화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은 발생 타이밍 변화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성인 또는 물고기의 성체는 멍게와 전혀 비슷하지 않으며 그런 비교 자체를 모욕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멍게 유생은 척추동물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모든 척추동물의 조상은 멍게와 비슷한 동물이 발생을 일찍 멈추고 유생 단계의 특징을 동결한 채 그대로 성숙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 결과로 멍게와 비슷한 동물의 유생을 닮은 성체가 탄생했다. 그리고 신경삭, 막대 모양의 결합 조직, 아가미구멍을 갖춘 이 자유 유영 동물은 모든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어머니가 되었다.
--- pp.82~83

모두를 지배하는 하나의 세포
플랫의 시대에는 과학 교수직에 여성을 위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하물며 오랜 정설을 뒤집는 생각을 표명한 사람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학 연구자가 될 수 없었던 플랫은 캘리포니아의 해안 도시 퍼시픽 그로브로 가서 작은 연구소를 차렸다. 그리고 발견을 계속 이어 가던 가운데, 당시 창설된 스탠퍼드대학교의 총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에게 편지를 썼다. 연구직에 대한 미련과 자신이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는 자부심을 담아 그녀는 편지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일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차선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p.93

분자생물학 혁명
내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도착한 것은 고생물학 박사 학위를 막 딴 1987년이었다. 마침 윌슨과 그의 팀은 발견의 정점에 있었다. 당시 내 세계의 중심은 암석과 화석이었지, 단백질이나 DNA가 아니었다. 윌슨의 강의는 이미 캠퍼스 전역에서 청강생들이 몰려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해부학자와 분자생물학자 사이에는 전선이 형성되어 깊은 골이 나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고생물학자 동료들과 함께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인데, 윌슨이 슬라이드를 한 장 넘길 때마다 동료들은 점점 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은 윌슨이 세 개의 변수를 사용한 간단한 방정식을 제시했을 때였다. 윌슨은 그 방정식을 사용하면 다양한 종에서 진화가 일어나는 속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동료가 그 슬라이드를 보더니 팔꿈치로 나를 툭 치며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그러니까 고생물학의 대부분이 저 방정식에 들어맞는다는 거야?”
--- p.112

헤밍웨이의 여섯 발가락 고양이
옛날에 뱃사람들은 발가락이 여섯 개인 고양이가 배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이른바 벙어리장갑 고양이라 불리는 이 고양이들은 넓적한 발 덕분에 해상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쥐잡이의 명수로 여겨졌다. 스탠리 덱스터라는 이름의 선장은 한배에서 태어난 여섯 발가락 고양이들 중 한 마리를 당시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섬에 살고 있던 자신의 친구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주었다. 이 새끼 고양이 ‘스노우 화이트(백설 공주)’는 여섯 발가락 고양이 혈통을 탄생시켰고, 그 후손들은 지금도 헤밍웨이의 생가에서 번성하고 있다. 이 고양이들은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일 뿐 아니라, 게놈의 작동에 관한 새로운 발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124

돌연변이 페이스트
동료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러빈과 맥기니스는 연구동 뒷마당으로 달려 나가 벌레, 곤충, 파리 등 기어 다니는 생물을 닥치는 대로 잡았다. 그리고 각 생물의 DNA를 추출한 후 그 생물들도 비슷한 서열의 유전자군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예상대로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후속 연구에서 개구리, 생쥐, 나아가 사람의 DNA에도 비슷한 서열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렁이, 파리, 물고기, 쥐에 대한 후속 연구에서 동물의 몸에 관한 보편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파리의 몸을 만드는 유전자군과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 지렁이부터 사람까지 거의 모든 동물에게서 발견된 것이다.
--- p.166

새 유전자보다 베낀 유전자가 많다
게놈은 음악과 닮았다. 같은 소절을 여러 방식으로 반복함으로써 무수히 다양한 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다. DNA의 일부분부터 유전자와 단백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원본의 변형된 사본이니 말이다. 게놈에서 중복을 보기 시작하면 마치 새로운 안경을 쓴 것처럼 세계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일단 게놈에서 중복을 발견하면 그때부터는 게놈이 중복투성이로 보인다. 새로운 유전 물질인 줄 알았던 것이 옛것의 복사본처럼 보인다. 진화는 창조자라기보다는 모방자에 가깝다. 수십억 년에 걸쳐 옛 DNA와 단백질, 심지어는 기관의 설계도까지 베끼고 변형해 왔으니 말이다.
--- p.199

진화는 현실 가능한 세계 중 최선
배아 발생을 건축 과정에 비유해 보자. 여러분이 만일 건축가라면, 여러분이 선택하는 건축 공법과 자재에 따라 최종적으로 짓는 집의 종류가 달라질 것이다. 특정 종류의 집이 다른 종류의 집보다 지어지기 쉽다. 동사한 도롱뇽의 발에서 보았듯이, 같은 원리가 동물에도 적용된다. 동물의 발생 방식은 특정 발명이나 변화가 다른 것에 비해 생기기 쉽게 만든다. (중략)
에른스트 마이어가 나와 차를 나누는 동안 진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볼테르의 말을 변주해 이렇게 말했다. 진화의 결과는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계들 중 최선’이라고. 유전, 발생, 진화사가 가능한 변화의 종류를 결정한다.
--- pp.274~275
 

출판사 리뷰

과연 자연은 최고의 발명가인가,
베끼고 훔치고 속이는 모방꾼인가


1980년대 중반,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닐 슈빈에게 화석 연구는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데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실제로 2004년 북극에서 목, 팔꿈치, 손목을 가진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을 발굴해 일약 세계적인 고생물학자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이 화석은 진화 연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석 중 하나로 평가받았고, ‘틱타알릭’ 발굴 과정과 연구 성과를 담은 《내 안의 물고기》는 국립과학아카데미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화석만큼 강력한 새로운 도구와 맞닥뜨린 것도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당시 동물의 몸을 만드는 DNA가 발견되고 파리의 머리, 날개, 더듬이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밝혀지는 등 게놈 연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동안 화석 사냥꾼이 도맡아 온 ‘자연은 어떻게 발명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유전자 연구가 보다 명확한 답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그는 과학자도 진화하지 않으면 결국 멸종되어 화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16쪽) 그래서 화석과 유전자라는 양손의 도구를 활용해 진화사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 표절과 도용으로 가득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팔다리, 날개와 깃털, 지느러미, 커다란 뇌와 뛰어난 인지 능력 등 생명의 진화를 이끈 혁신과 발명이 사실은 수십억 년 동안 베끼고 훔치고 변형한 결과라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과학 스토리텔러인 저자가 들려주는 진화 연구사와 게놈 생물학의 최신 성과를 따라가다 보면, 40억 년 동안 뻔뻔하고 염치없었던 자연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과 도용으로 만들어진 우리 몸

다른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대표적인 형질은 바로 큰 뇌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뇌가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 팀이 인간과 히말라야원숭이의 뇌 조직을 비교한 결과 인간에게만 있는 ‘NOTCH2NL’ 유전자를 발견했는데 이 유전자는 뇌 조직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유전자는 ‘NOTCH’ 유전자의 사본임이 밝혀졌다. 즉, ‘NOTCH’ 유전자가 끊임없이 복사되고 중복되는 과정에서 변이가 일어나 하나둘 새로운 기능을 얻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NOTCH2NL’ 유전자인 것이다. 결국 인간의 뇌가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전자가 새로 만들어지기보다 원본 ‘NOTCH’ 유전자를 베끼고 베끼고 또 베낀 덕분이다.(203쪽)

사실 동물의 몸과 유전자에는 이런 사본이 가득하다. 갈비뼈, 척추뼈, 팔다리뼈 등 인간을 비롯해 많은 동물의 골격은 전반적인 설계가 비슷하다.(187쪽) 이는 여러 동물의 각기 다른 사지 골격이 태고의 골격 배열을 베끼고 변주해 각각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각, 후각, 호흡, 단백질 생성 등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들도 모두 복제된 것들이다.(200쪽)

나아가 인간의 전체 게놈 중 3분의 2 이상이 이렇게 복제된 사본이다. 이 정도면 뼈든 기관이든 유전자든 베끼고 복사할 수 있다면 굳이 새로 만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저자는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할 것”이라고 말한다.(199쪽)

시행착오는 어떻게 진화의 연료가 되는가

돌연변이는 유전자가 복사되고 중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실수이자 시행착오다. 그런데 진화라는 엔진에는 변이라는 연료가 필요하다. 연료가 많을수록 엔진은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다. 자연은 이러한 시행착오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새로운 발명의 밑천으로 삼는다.

1940년대 활동했던 독일의 과학자 리처드 골트슈미트는 “최초의 새는 파충류의 알에서 부화했다”고 말할 정도로,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변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생명사에서 이 ‘한 번의 변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백 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은 변이가 일어날 확률도 비교적 낮은데 하물며 게놈 수백 군데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222쪽)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1900년대 초,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의 위상은 매우 열악했다. 미국의 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은 대학교에서 유전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에게 허용된 원예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유전학 연구의 이상적인 재료 중 하나인 옥수수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옥수수알의 서로 다른 색깔들을 조사하다가 게놈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점핑 유전자를 발견하게 되었다.(208쪽) 그런데 이 유전자는 아주 이기적이다. 오직 자기 사본을 만드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유용한 돌연변이를 게놈 곳곳으로 뛰어다니며 실어 나른다. 점핑 유전자의 이기적인 성질 때문에 게놈 수백 군데에서 변이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231쪽)

숙주와 바이러스의 전쟁 때문에 똑똑해지다

우리의 DNA는 우리 조상에게 물려받거나 그저 복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때로 바이러스가 침입했다가 우리 게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이때 게놈과 바이러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전쟁은 기억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유타대학교의 과학자 제이슨 셰퍼드는 우리 뇌에서 기억과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아크 유전자의 단백질을 분석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크 단백질이 에이즈와 같은 바이러스 단백질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37쪽) 바이러스는 숙주를 감염시켜 자신의 사본을 무한히 만들어 증식해 나간다. 그런데 어쩌다가 감염 능력을 잃고 우리 게놈의 일부가 되어 기억 향상이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약 3억 7500만 년 전, 모든 육지 생물의 공통 조상이 고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이 바이러스는 숙주의 게놈 안에서 아크 단백질의 한 버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게놈은 이 바이러스를 가만 두고 보지 않았고 곧 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게놈에게 패한 바이러스는 무력화된 후 그렇게 게놈의 일부가 된 것이다.(241쪽) 사실 이 외에도 우리 게놈에는 과거에 감염되었던 바이러스들의 흔적이 무수히 많은데, 우리 게놈의 약 8퍼센트가 불활성화된 바이러스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기능을 유지하며 숙주의 활동을 돕고 있다.(243쪽)

세포들의 인수 합병과 조립식 진화

함부로 침입한 바이러스를 자신의 일부로 삼은 게놈처럼 세포도 병합하고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1960년대, 과학자 린 마굴리스는 동식물 세포와 세포소기관을 연구하고 있었다. 세포소기관은 세포의 핵 주위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동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식물 세포의 엽록체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세포에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마굴리스가 핵과 세포소기관의 게놈을 비교한 결과 둘은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전적으로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세포와 세포소기관이 어떻게 한 몸이 되었을까?

마굴리스는 후속 연구를 통해 과감한 가설을 제기했다. 아주 오래전, 원래 자유 생활을 하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다른 세포에 병합되어 결국 그 세포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합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디어는 얼토당토않다며 학계의 비웃음을 샀고, 15개의 학술지로부터 발표를 거절당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980년대에 들어 더 빠른 DNA 염기 서열 분석 기법이 개발되자 세포소기관의 유전적 역사가 더 상세하게 밝혀졌다. 그 결과 마굴리스의 가설이 사실로 증명되었다.(280쪽) 이처럼 서로 다른 개체들이 합쳐지고 조립되어 더 크고 복잡한 개체를 이루는 방법은 진화의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몸의 발명이라는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되었다.

옛것을 활용해 새것을 만들다

1960년대, 예일대학교의 과학자 존 오스트롬은 이족 보행 공룡과 조류의 여러 형질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속이 비어 가볍지만 튼튼한 뼈, 날개 돋친 팔, 경첩 같은 관절, 강한 근육, 빠른 성장 속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공룡은 충분히 새의 조상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주장은 공룡에게 깃털이 없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당시에는 하늘을 날기 위해 깃털이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7년 중국에서 깃털로 뒤덮인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 화석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았던 덕분에 깃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날지 못하는 공룡에게서 깃털의 존재가 확인되자 그 용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과학자들은 그 깃털이 이성에게 과시하기 위한 장식용이나 체온 보호를 위한 단열재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어쨌든 그 깃털은 하늘을 날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었고, 오스트롬은 30여 년 만에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정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50쪽)

깃털은 동물이 하늘을 날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본격적으로 비행이 시작되면서 그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폐와 팔다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먼 조상이었던 원시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사지로 변할 뼈를 가지고 있었고, 이미 폐를 가지고 있어서 공기 호흡을 병행했다.(37쪽) 이처럼 자연의 수많은 발명이 용도 변경(기능의 변화)과 재활용을 통해 완성되었다.
 

추천평

나는 방황하던 대학생 시절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에 이끌려 생물학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 길의 끝에서 저녁노을 같은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진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로 손색이 없다.
- 최재천(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진화의 여정 속에서 생명의 역동성을 보기 위해, 이제는 아름다운 화석이 아닌 DNA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야 한다. 이 책에는 DNA 시대를 맞기까지 생명의 역사를 읽고자 했던 연구자들의 진화사가 녹아 있다.
- 우은진(세종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 저자)

닐 슈빈은 대단한 생물들, 그리고 그 생물들을 연구하는 더욱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라는 진화의 핵심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 션 B. 캐럴(진화생물학자, 메릴랜드대학교 교수, 《우연이 만든 세계》 저자)

모험과 반전과 미스터리가 가득한,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과학서!
- 로버트 M. 헤이즌(지질학자, 《지구 이야기》 저자)

닐 슈빈은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DNA와 화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의 명확한 설명과 통찰력에 찰스 다윈도 분명 박수를 보낼 것이다.
- 도널드 조핸슨(고인류학자, 《루시, 최초의 인류》 저자)

그는 이 야심 차고 유익한 책에서 자신의 연구, 과학사의 영웅담, 고생물학과 유전학의 최신 발견을 버무려 진화의 최대 미스터리 중 일부를 설명한다.
- 스티브 브루사테(고생물학자, 에든버러대학교 부교수,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 저자)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자마자 매료되었고 결코 내려놓을 수 없었다.
- 롭 던(생태학자,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교수,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저자)

이 책은 진화의 신비를 밝힌 세계적 과학자들의 초상을 그리고 있으며 독자들에게는 자연에 대한 큰 그림을 소개한다.
-[네이처]

진화의 역사를 친절하고 사려 깊고 매우 흥미진진하게 다룬 책.
-[사이언스]

닐 슈빈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최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월스트리스저널]

이 책은 마치 놀이 기구 같다. 재밌고 감동적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일화로 가득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BBC 와일드라이프 매거진]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탁월한 에듀테인먼트 과학책.
-[퍼블리셔스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