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국제평화 연구 (책소개)/5.미국정치

미국의 정치문명 (2019)

동방박사님 2022. 10. 11. 07:56
728x90

책소개

미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국을 만들어온 정치적 이념과 담론을 읽는다

이 책은 2003년에 초판이 출간된 ??미국의 정치 문명??을 다듬고 보강한 개정판이다. 그 초판을 읽으면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미국 정치에 관해 우리 사회에 소개된 책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유형과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정치 제도를 피상적으로 소개하거나, 미국의 치부와 잘못을 비판?폭로하는 데 치우쳐 정작 미국이라는 사회, 미국의 정치 질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과 철학과 지향에 의해 구성된 것인지 성찰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풍토에서 미국의 정치를 서구와도 다른 독자적인 ‘정치 문명’(저자는 이 말을 세계관, 정치 담론, 정치적 실천을 통합한 개념으로 사용한다)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어떤 요소와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하고 분석한 『미국의 정치 문명』은 단연 돋보이는 책이었다.

미국 정치의 미래가 우리들 독자에게 마냥 한가로운 구경거리일 수 없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미국이 “한국의 현대사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미국을 대하는 타당한 태도를 모색하는 일은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뿐 아니라 미국의 영향을 삶의 현실에서 늘 실감하며 살아야 하는 한반도의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면제되지 않는 지적 의무일 것이다. ??미국의 정치 문명??은 여기에 귀중한 도움을 주는 길잡이다.

목차

머리말 ? 개정판을 내며
초판(2003년) ‘책머리에’ 11

제1장 미국의 자화상과 초상

1-1. 미국 읽기
1-2. 객관의 미국은 존재하는가?
1-3. 미국 연구의 역사 29

제2장 이론의 바탕

2-1. ‘합의 패러다임’
2-2. 보수적 아메리카니즘

제3장 고대, 근대, 종교 ─ 미국 정치 문명의 뿌리

3-1. ‘갈등의 나라’에서 ‘합의의 나라’까지
3-2. 자유주의
3-3. 공화주의(I)
3-4. 공화주의(II)
3-5. 칼뱅주의

제4장 ‘자유’와 ‘공화’의 융합 ─ 미국 정치 문명의 형성

4-1. 융합의 조건
1) 자유주의 2) 공화주의
4-2. 융합
1) 구도 2) 절충 3) 융합의 틀

제5장 미국 정치 문명의 보수성

5-1. 형성기 미국의 보수성
1) 독립혁명의 보수성
2) 연방헌법의 보수성
5-2. 우월적 자의식과 회귀 본능
5-3. 반평등의 평등관
1) 자연 분화론(Natural Differentiation) 2) 자유방임 198

제6장 회귀의 정치 ─ 미국에서 개혁은 무엇인가?

제7장 ‘뉴딜 아메리카’와 ‘오리지널 아메리카’ ─ 현대 미국 정치의 이해

7-1. 뉴딜, 현대 미국의 시작
7-2.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7-3. ‘진보’의 역설 235
7-4. 뉴딜과 탈뉴딜의 충돌 ─ 21세기의 미국 정치

제8장 미국 외교의 철학과 관습

8-1. 메시아니즘과 도덕주의
8-2. 독자주의(Unilateralism)
8-3. 고립과 개입 284

제9장 미국 외교의 숙명

9-1. 농업 제국(Agrarian Empire)의 비전
9-2. 숙명으로서의 팽창
9-3. 보수적 개입
9-4. 21세기의 미국 외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저 : 권용립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 C. Berkeley)의 Institute of Governmental Studies에서 미국 정당사를 연구했으며 경성대 정치외교학과 교수(1985~2018)를 지냈다. 저서로 『미국의 정치 문명』(2003), 『미국 대외정책사』(1997), 『우리 안의 이분법』(2004, 공저)이 있고,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2...
 

책 속으로

21세기 미국의 가장 큰 사건은 오바마의 당선도 아니고 금융 위기도 아니고 이라크전쟁도 아닙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입니다. 그의 행보는 20세기에 시작된 현대 미국의 이미지에 가려 있던 미국의 근원적 보수성을 거칠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p.7

이 책은 미국의 자화상에 기초해서 미국의 초상을 그리려는 시도다. 가슴으로 느끼던 미국을 머리로 읽으려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친미와 반미 같은 역사적 감상과 선입견에 휘둘려 선전과 선동 사이에서 방황해온 우리 미국관의 중심을 잡으려는 것이다.--- p.29

미국의 정치 문명 즉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은 미국 외교의 정신적 틀이 되었다. 특히 칼뱅주의와 공화주의에 공통된 선민 의식과 엘리트주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모순이 만들어낸 팽창 성향은 미국을 제국의 길로 이끌었다. 영토 제국을 완성한 19세기의 미국과 이념 제국의 길을 닦은 20세기 초의 미국을 거쳐 군사 제국과 경제 제국을 완성한 현대 미국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치 문명은 미국 외교를 제국의 길로 인도했다.--- p.42

칼뱅주의는 어쩌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보다 더 직접적으로 미국의 정치 문명을 지탱해온 정신적 구조물일지 모른다. 미국은 헌법상 국가와 종교가 엄격히 분리되었고 신앙의 자유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법적·제도적인 힘은 없다. 그러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엘리트주의나 권선징악의 신념, 또 맡은 바 소명을 완수해서 세계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의식은 정치 엘리트와 일반 대중을 구별하지 않고 전수되었다. 칼뱅주의는 정치와 외교의 정신적 기준이 된 시민 종교(civil religion)로 작동해왔기 때문에 역대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나 연설은 신에 대한 언급을 빠트리지 않는다. 예컨대 링컨이 자유와 평등을 기독교적 죽음이나 부활과 접맥시킨 것이라든지, 남북전쟁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 것은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신념의 혼재를 보여준다.--- p.117~118

미국의 정치 문명이 ‘자유주의 코트 연방파’ 대 ‘공화주의 컨추리반연방파’의 절충과 융합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말은 미국이 근대와 고대의 절충과 융합을 통해 탄생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절충과 융합을 관장한 윤리적 틀은 공화주의다. 다시 말하면, 타락을 덕성으로 제어하는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만 공화정이 존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해서 ‘자유’와 ‘공화’가 융합한 것이다.--- p.139

미국 연방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병 사상도 공화주의의 강력한 흔적이다. 미국은 시민의 무기 소유와 휴대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민간인이 소지한 총기는 미국 인구보다 더 많은 3억 9천만 정에 달하고, 열 가구 중에 네 가구는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 서부 영화에 등장하는 황야의 무법자나 석양의 결투부터 오늘날 빈번한 대형 총기 사고에 이르기까지 총기와 관련된 미국의 역사는 미국 헌법의 부산물이다. 시민의 무기 소지를 보장한 것은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2조(2nd Amendment)인데, 이 조항은 연방 수립 직후인 1791년에 통과된 수정 조항 제1조부터 제10조(미국판 권리장전, Bill of Rights) 가운데 하나다. 자유를 지키려면 시민이 무기를 직접 소지해야 한다는 것은 공화주의의 핵심 규범이기 때문이다.--- p.161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은 확실한 적그리스도를 발견했다. 소련과 공산주의다. 1940년대 후반에는 1950년대까지 미국을 휩쓴 두 번째 반공 히스테리(The Second Red Scare)도 시작되었다. 두 번째 반공 히스테리의 절정은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이다. 미국 정부 안에, 특히 국무부에 공산주의자와 소련의 스파이가 침투해 있다는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R. McCarthy)의 충격 발언으로 시작된 매카시즘은 정략도 아니고 정치 공작도 아니었다. 혁명의 나라이며 핵 보유국인 소련과의 적대적 대치 상황에서 비롯된 위기 의식과 경계심이 극단적 히스테리로 터져나온 것이다.--- p.183

미국의 역사도 결국 미국 정치 문명의 역사다. 적어도 뉴딜 이전까지는 그랬다. 건국 시대부터 뉴딜에 이르기까지 150년간 미국은 자신의 정치 문명에 충실한 ‘오리지널 아메리카’였기 때문이다. 이 전통을 깬 것이 뉴딜이다. 뉴딜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본래의 미국으로 알고 있는 리버럴 아메리카를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1930년대의 뉴딜 정책은 오리지널 아메리카와 현대의 리버럴 아메리카를 갈라놓는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p.223

뉴딜 리버럴리즘은 강력한 연방 정부가 지휘하는 상업 제국을 꿈꾼 알렉산더 해밀턴의 사상과 평등한 자영 농민이 주축이 된 농업 제국을 꿈꾼 토머스 제퍼슨의 사상을 합쳐놓은 것이다. 제퍼슨의 평등주의를 해밀턴의 국가주의로 실천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뉴딜 리버럴리즘의 두 기둥인 국가주의와 평등주의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에 공통된 반국가주의와 반권력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자유주의의 개인 책임주의와 공화주의나 칼뱅주의에 내포된 반평등주의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서 뉴딜은 미국 정치 문명에 내장된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의 긴장이 낳은 ‘개혁’의 하나이지만, 통상적인 개혁을 넘어 미국 정치 문명의 사상적 기반을 뒤흔든 대전환이었다.--- p.224

21세기의 미국 정치는 뉴딜의 유산을 폐기하려는 우파와 뉴딜을 복구하려는 리버럴의 대결이 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이나 트럼프의 예상 밖 승리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양대 정당의 바깥에 있던 트럼프와 샌더스라는 두 인물이 불러일으킨 정치적 돌풍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트럼프가 반뉴딜과 탈뉴딜을 상징한다면 샌더스는 빌 클린턴 이후 민주당이 자발적으로 포기해온 뉴딜 리버럴리즘의 부활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p.242

미국과 얼마만큼 비슷한지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나라를 평가하는 미국 외교의 습성은 미국이 세계의 모범이라는 자의식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가장 말 많고 수다스러운 민주주의를 누리면서도 자신의 보편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본능의 발로다. 이 도취는 미국은 특별한 나라라는 믿음과 미국이 세계의 모델이라는 자의식에서 멈추지 않는다. 제3세계의 민족주의처럼 미국적 경험의 바깥에 있는 ‘비미국적인 것들’에서 악과 비정상을 찾아내는 독선도 이 도취의 결과다. 독립혁명과 연방 헌법의 정신은 누구나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모든 나라는 비정상이다.--- p.269

미국 외교의 외양은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그렇지만 심판자 미국을 위협할 경쟁국의 탄생과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점에서는 모든 정권이 비슷하다. 트럼프 행정부도 뉴딜 리버럴리즘의 유산인 다자 협력의 외교 방식을 거부할 뿐 미국 외교의 바탕 철학인 독자주의는 더 거칠고 노골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선와 악에 대한 도덕적 기준은 약화되었지만 21세기 미국의 새로운 주적으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력은 강화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문제에 관해서는 초지일관 독자주의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모든 정권은 유사하다.--- p.314

미국은 공화국(American Republic)이다. 그러나 레이몽 아롱의 책 제목처럼 제국형 공화국(Imperial Republic)이다. 현대 미국의 모순은 여기서 시작된다. 거대한 제국은 공화정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공화주의의 불문율인데, 미국은 시작부터 제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19세기에는 영토의 제국을 완성했고 20세기에는 경제 제국, 군사 제국, 이념 제국의 길을 차례로 걸어왔다. 그 결과 강력한 국가 권력에 반대하는 공화국의 정신과 강력한 국가 권력을 요구하는 제국의 정신이 기형적으로 공존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정체성인 자유도 분열했다. 공화국은 시민의 자유를, 제국은 국가의 자유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자유의 전쟁으로 이룩한 공화국이 제국의 위세를 구가하면서 전쟁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로 변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 p.316

미국은 한국 현대사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외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 마냥 애착하거나 미국을 감정적으로 배격하는 양극단의 정서가 공존하게 되었다. 미워하면서도 기대하고, 기대하면서도 비난하는 이중성도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이 「고별사」에서 역설했듯이 냉엄한 현실 외교의 상대한테는 애착도 반감도 갖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 대한 애와 증을 거두어들일 궁극의 책임은 미국이 아닌 우리한테 있다. 미국의 정신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과 내일의 미국을 읽어내는 것, 이것이 인습적 친미와 감정적 반미를 넘어서는 길이며, 외교의 상대를 애증의 대상으로 착각하게 만든 굴곡진 한미 관계의 최면에서 깨어나는 길이다.
--- p.320
 

출판사 리뷰

미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국을 만들어온 정치적 이념과 담론을 읽는다

이 책은 2003년에 초판이 출간된 『미국의 정치 문명』을 다듬고 보강한 개정판이다. 그 초판을 읽으면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미국 정치에 관해 우리 사회에 소개된 책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유형과 한계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정치 제도를 피상적으로 소개하거나, 미국의 치부와 잘못을 비판?폭로하는 데 치우쳐 정작 미국이라는 사회, 미국의 정치 질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과 철학과 지향에 의해 구성된 것인지 성찰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풍토에서 미국의 정치를 서구와도 다른 독자적인 ‘정치 문명’(저자는 이 말을 세계관, 정치 담론, 정치적 실천을 통합한 개념으로 사용한다)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어떤 요소와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하고 분석한 『미국의 정치 문명』은 단연 돋보이는 책이었다.

이번 개정판은 초판의 문장을 읽기 편하도록 많이 손질하고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여 새로운 내용을 상당 부분 추가(흔히 ‘일방주의’로 오역되어온 독자주의[Unilateralism]를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를 통해 분석한 대목, 선제공격을 정당화한 ‘부시 독트린’에 대한 설명 등이 대표적이다)했지만, 초판에서 사용한 기본적인 접근법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즉 미국의 정치 문명은 고대 로마에서 발원한 공화주의, 근대에 형성된 자유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칼뱅주의(퓨리터니즘)가 한데 융합한 결과라는 것이 이번 개정판에서도 굳건히 이어지고 있는 저자의 이론적 입장이다. 말하자면 저 세 가지 이념이 결합해서 유럽과 다른 색깔의 독특한 보수성을 띤 미국적 역사관과 세계관을 형성했고 이것이 미국의 정치와 외교를 지배해왔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치 문명에 저자는 ‘보수적 아메리카니즘’(Conservative Americanism)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은 자유주의뿐만 아니라 공화주의, 칼뱅주의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며, 미국의 보수는 물론 개혁과 진보도 보수적 정치 문명의 틀에 갇힌 보수적 개혁과 미시적 진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보수적 아메리카니즘을 형성하는 세 이념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저자는 지금까지 축적된 미국 학계의 연구 성과를 폭넓고 치밀하게 검토하면서 이 물음에 답한다. 먼저 공화주의는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을 지배했고 마키아벨리에 의해 부활한 정치 철학으로, 정치의 본질이 덕성(virtue)과 타락의 대결이라고 보는 이념이다. 시민 개개인이 토지와 무기를 소유한 독립 공민으로서 공공 정치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정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이 공화주의가 17세기 영국 저항사상가들의 중개를 거쳐 식민지 시대 미국에 도입되어 정치 문명의 바탕을 이룬 것이다. 권력의 타락을 막기 위해 군주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이 균형 있게 분립한 혼합 정체가 바람직하다고 여긴 공화주의의 철학은 대통령(군주), 상원(귀족원), 하원(인민 대표단)으로 삼분된 미국의 정치 체제에 그대로 녹아 있기도 하다.

미국 정치 문명의 또 다른 이념적 원천인 자유주의는 시민 각자가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데 국가가 불필요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사상이다. 아울러 자유주의는 사익 추구를 인간 행위의 자연스러운 동기로 이해한다. 이 점에서 공민적 덕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와 충돌하는 면도 있지만, 건국 시기 미국에 도입된 자유주의는 사익의 무절제한 추구를 용인하고 권장하기보다 사익의 절제와 덕성을 강조한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의 도덕주의적 자유주의였기 때문에 공화주의와 절충·융합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본다.

위 두 이념과 달리 정치 사상이 아니면서도 미국의 정치 문명을 더 직접적으로 지탱해온 정신적 구조물이 미국의 ‘시민 종교’인 칼뱅주의(Calvinism), 또는 퓨리터니즘(Puritanism)이다. 프랑스 출신 장 칼뱅(Jean Calvin)에 의해 만들어진 칼뱅주의는 영혼 세계에도 서열과 계급이 있으며, 개인의 구원 여부는 노력과 상관없이 신의 섭리로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교리를 가진 종교 사상이다. 칼뱅주의는 또한 역사가 신이 예정한 바에 따라 전개될 것이며, 언젠가는 신의 뜻에 따른 완전한 시대가 지상에 도래할 것이라는 천년왕국론도 바탕에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을 탈출해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신이 하사해준 신천지에 새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소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신의 뜻을 지상에서 구현한다’는 이러한 소명 의식이 미국 정치와 미국 외교의 저변을 흘러온 선민 의식의 원천이 되었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미국을 세계의 모범이자 구원자로 여기는 메시아니즘, 미국은 다른 국가나 민족과 구별되는 존재라는 미국 예외론, 미국적인 가치를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는 팽창과 확장의 본능 등은 저 소명감과 선민 의식, 미국 우월주의에 따르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과 다른 존재를 서슴없이 ‘악’으로 규정하는, 미국 정치와 외교에 특유한 선악 이분법도 칼뱅주의의 세계관에 연결되어 있다. 칼뱅주의는 자연이 위계적인 질서를 지녔다는 관점, 엘리트주의, 덕성과 검약의 윤리를 공화주의와 공유한다. 다른 한편, 인간이란 원죄를 타고난 존재라고 보는 칼뱅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체념하는 자유주의와 비관적 인간관을 나눠 갖고 있다. 그럼으로써 칼뱅주의는 공화주의, 자유주의와 더불어 미국의 정치 문명을 떠받치는 세 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 문명의 세 주요 성분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덕성과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숭상하는 자유주의 사이에는 영원히 메우기 어려운 간극과 갈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바로 이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이 미국이 주기적으로 겪어온 정치적 변동의 원인이라고 본다. 곧 자유주의적 지향에 따른 사적 이익 추구가 공적 이익을 극단적으로 침해하면 이에 대한 반발과 개혁 운동이 반드시 일어난 것이 미국 정치의 특성이며, 1830년대의 잭슨(Jackson) 민주주의, 1900년대의 혁신주의, 1960년대의 급진적 평등주의 등이 그 예가 된다.

이와 더불어 미국 정치 문명의 근본적 보수성을 공유하면서도 건국 이념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이해 관계에 기반한 정치 세력들의 대립이 정치적 변동을 가져오기도 한다. 21세기 들어서는 미국 수호, 위대한 미국을 기치로 내건 토착주의·인종주의·반평등주의에 기반한 우파 세력이 한편에 서고, 미국 정치 문명에 고유한 반(反)평등주의 지향에 일대 타격을 가하며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등장하여 수십 년간 미국을 이끌어온 뉴딜(New Deal) 이념을 계승하려는 리버럴(liberal) 세력이 반대편에 서서 다투는 정치적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구도를 ‘오리지널 아메리카’ 대 ‘뉴딜 아메리카’의 대립으로 표현하면서, 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를 양자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저자에 따르면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은 반인종주의, 평등주의, 형식적 도덕률에 반기를 든 트럼프에게서 “‘위선의 뉴딜’을 끝장내고 ‘오리지널 아메리카’를 복구할 전사의 모습을 보았고, 샌더스를 지지한 사람들은 뉴딜 정신에서 후퇴해온 민주당 주류의 대표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응징하고 훼손된 뉴딜을 복구할 투사의 모습을 샌더스에게서 찾아낸 것이다.”

저자는 이 양자의 대립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쉽게 귀결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미국이 뉴딜 시대의 경제적 호황기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뉴딜의 복구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오리지널 아메리카’의 부활을 꿈꾸는 우파 세력도 미국 정치의 보수화를 주도해온 유럽계 백인의 인구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21세기 들어 급격히 심화된 부의 편중과 경제적 양극화가 샌더스의 뉴딜식 사회주의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현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뉴딜 아메리카’의 도전과 ‘오리지널 아메리카’의 응전이 21세기 미국 정치를 이념적 양극화로 몰고 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러한 미국 정치의 미래가 우리들 독자에게 마냥 한가로운 구경거리일 수 없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미국이 “한국의 현대사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미국을 대하는 타당한 태도를 모색하는 일은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뿐 아니라 미국의 영향을 삶의 현실에서 늘 실감하며 살아야 하는 한반도의 평범한 시민들에게도 면제되지 않는 지적 의무일 것이다. ??미국의 정치 문명??은 여기에 귀중한 도움을 주는 길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