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이데올로기 연구 (독서)/6.민족주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전쟁

동방박사님 2022. 10. 2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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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가해자
이에 맞서 희생자의 기억을 ‘세습’하는 피해자
가해자에게 빼앗긴 희생자 지위를 재탈환하려는 21세기 기억 전쟁

고통의 경쟁을 넘어 기억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탐색하다!

우리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6년째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식민 지배의 희생자로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아시아의 전쟁과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참배하는 것을 볼 때마다 크게 분노한다. 하지만 참배 같이 노골적인 행위보다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통해 ‘피해자’ 일본이 부각될 때다. 히로시마가 반핵평화운동의 상징이 될 때, 전쟁의 책임이 흐려지고 가해자의 희생자성만을 강화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우리가 일본의 후안무치함을 비판할 자격을 갖춘 ‘정당한’ 희생자라고 믿을 때 나타난다. 저마다 자기 민족이 정당한 희생자라고 강변하는 시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기억 전쟁의 위험하고도 유력한 이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 미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기억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을 통해 21세기 기억 전쟁의 복잡한 풍경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 앞에서도 자신들의 고통만을 강변하는 독일과 폴란드의 우익,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영원히 세습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주의적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파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하게 지구적 기억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목차

들어가며 ― 기억의 지구사를 향하여

Ⅰ. 기억
민족주의의 지구사
지구적 기억구성체의 형성
내면적 지구화와 기억의 헤게모니
역사 서사와 기억 문화
길 찾기

Ⅱ. 계보
도덕적 원죄와 희생의 그늘
당당함과 부끄러움 사이
예드바브네 학살과 카인의 후예
원거리 민족주의

Ⅲ. 승화
죽음의 민주화와 사자의 기억
숭고한 희생자와 순교의 국민화
시민종교와 전사자 숭배
탈영병 기념비와 대항 기억

Ⅳ. 지구화
탈냉전과 기억의 지구화
일본군 ‘위안부’와 반인륜적 범죄
검은 대서양과 홀로코스트
68혁명과 기억의 연대

Ⅴ. 국민화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의 기억 전쟁
동아시아의 기억과 홀로코스트의 국민화

Ⅵ. 탈역사화
패전의 우울과 희생자의식
공습의 기억과 원리적 평화주의
실향민?전쟁포로와 가해의 망각
희생의 기억과 역사의 면죄부

Ⅶ. 과잉역사화
집합적 무죄와 예드바브네
B·C급 전범과 조선 화교 포그롬
세습적 희생자의식과 이스라엘

Ⅷ. 병치
나가사키의 성자와 아우슈비츠의 성인
‘우라카미 홀로코스트’와 사랑의 기적
반서구주의와 반유대주의
풀뿌리 기억과 순교의 문화

Ⅸ. 용서
용서의 폭력성과 가톨릭 기억 정치
폴란드 주교단 편지와 화해의 메타 윤리
독일 주교단의 답서와 수직적 화해
가톨릭 형제애와 동아시아 평화

Ⅹ. 부정
부정론, 제노사이드의 마지막 단계
부정론의 스펙트럼과 담론적 지형
국경을 넘는 부정론
증언의 진정성과 문서의 사실성

ⅩⅠ. 연대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임지현 (林志弦)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르크스·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창립 소장이다. 바르샤바 대학, 하버드-옌칭연구소,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베를린 고등학술원, 파리 2대학, 빌레펠트 대학, 히토츠바시 대학 등에서 초청·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글로벌 히스토리 국제네트워크(NOGWHIS...
 

책 속으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후속 세대들이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 세습된 희생자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이다. 기억 서사로서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가해자 민족을 선험적으로 전제한다. 가해자가 없는 희생자를 생각하기 어렵듯이, 가해자 민족 없는 희생자 민족은 상상하기 어렵다. 가해자 민족과 희생자 민족이 함께 구성하는 ‘부정적 공생(negative symbiosis)’의 인식론적 프레임은 20세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지구사를 구성하는 연쇄 고리다.
--- 「Ⅰ. 기억」 중에서

『요코 이야기』는 거짓말이라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전형적인 히키아게샤의 플롯이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가와시마 왓킨스 개인의 고유한 경험이 아니라 히키아게샤가 일반적으로 겪은 집단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계 미국인들의 비판은 역사적 탈맥락화의 차원을 넘어서 『요코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한국 민족은 희생자이고 일본 민족은 가해자이므로 ‘한국인-가해자’ 대 ‘일본인-피해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가와시마 왓킨스의 저작은 거짓말이라는 논리였다. 이들의 논리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개인의 행위 및 그 결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그가 어떤 민족 범주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나누는 민족주의적 사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들에게는 일본인의 ‘집합적 유죄’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일본인 희생자’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Ⅱ. 계보」 중에서

매일매일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렵다. 비겁한 일상 대신 영웅적 죽음을 강변했던 이들은 생존의 어려움과 직면할 용기를 갖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영웅적 비겁함과 일상의 용기가 대비되는 대목이다. 영웅주의적 민족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민족 담론으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웅처럼 장렬하게 산화한 자들이 아니라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이나 비루하게 살아남은 자들을 고귀하고 초월적인 추상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푸는가에 따라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천차만별의 모습을 띤다.
--- 「Ⅲ. 승화」 중에서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일본군 ‘위안부’ 논쟁은 한·일 간의 민족적 대립이 아니라 일본의 수정주의적 역사 부정론 대 국제 인권 규범의 대립으로 재구성된다. 미국 내의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기억활동가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활동가의 연대는 이 점에서 상징적이다. 글렌데일의 시의회 의원인 아라 나자리안(Ara Najarian)은 소녀상 건립을 지지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에게 치유의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또 다른 시의원인 자레 시나얀(Zareh Sinanyan)역시 일본 정부의 강력한 로비나 보수적 일본계 미국인 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지지했다. (…) 뉴욕에서 홀로코스트와 만난 일본군 ‘위안부’의 기억이 미 대륙을 횡단해 로스앤젤레스로 와서는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의 기억과 만나 지구적 기억의 연대를 결성한 것이다.
--- 「Ⅳ. 지구화」 중에서

전후 일본의 기억 문화에서 때로 히로시마-아우슈비츠의 연상은 히로시마의 고통이 아우슈비츠의 고통보다 더 큰 것으로 비약되기도 한다. 히로시마의 평화운동가이자 리버럴에 가까운 시인 구리하라 사다코(栗原貞子)의 시편들은 그런 생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세상에서 가장 큰 두 개의 홀로코스트라고 묘사한 구리하라는 히로시마가 아우슈비츠보다 더 끔찍하다고 썼다. 아우슈비츠는 끝났지만, 생존자들이 피폭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히로시마는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구리하라에게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히로시마 피폭자들의 고통이 아우슈비츠 희생자들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 “누가, 어느 민족이, 어느 인종이, 어느 희생자가 더 고통을 받았느냐”는 식의 질문은 희생자의식의 경쟁을 촉발하는 것으로, 지구적 기억구성체 안에서 기억의 재영토화가 고개를 들 때마다 나타나는 전형적인 담론 전략의 하나였다.
--- 「Ⅴ. 국민화」 중에서

희생자를 서열화하는 것도 기억의 폭력이지만, 모든 희생의 기억을 역사적 맥락에서 떼어놓고 추상적 고통으로 획일화하는 것도 폭력이다. 피해자의 고통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고통의 서열화와 획일화를 경계해야 하는 기억의 장은 불편하고 모순된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고향에서 쫓겨난 동프로이센의 실향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희생이 폴란드인의 희생과 동등하다는 주장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희생과 폴란드의 희생은 비대칭적이었다. 희생자 개개인의 관점에서는 모두 끔찍한 경험이지만, 폴란드, 독일 등의 국가나 민족 집단으로 분류해보면 희생의 비대칭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Ⅵ. 탈역사화」 중에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전제하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는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 등을 근원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를 낳은 세계사의 규칙을 비판하고 바꾸기보다, 규칙은 그대로 둔 채 패자의 자리에서 승자의 자리로, 희생자의 자리에서 가해자의 자리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욕망을 낳기 쉽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가 된 역사에 대한 회한과 비판에서 출발하지만, 자리를 바꾸어 승자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면 식민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규칙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이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21세기 문화적 기억의 서사적 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Ⅶ. 과잉역사화」 중에서

프리모 레비가 고통스럽게 증언했듯이,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은 ‘인간적 연대감의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자책’과 맞닿아 있다. 절체절명의 수용소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웃의 절절한 요청을 외면하고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죄의식 같은 것이 나가이 다카시나 원폭 생존자에게서 발견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살아남은 자들이 원폭에 타죽은 수십만 희생자를 그저 본보기로 내세우면서 평화운동을 유지하기 위한 동력으로 유용해온 것은 아닌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민(피폭 생존자)이 평화를 요구하면서 기도해왔지만, 그 기도를 위해 대체 무슨 희생을 바쳤던 것일까?”라고 자문하는 나가이 다카시한테도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이 발견된다. 그것은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가 미국 인종주의의 산물이며 아우슈비츠와 더불어 절대 악을 상징한다는 히로시마의 정치적 희생자의식과는 다르다.
--- 「Ⅷ. 병치」 중에서

가해자가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피해자인 폴란드가 먼저 용서를 주도한 사목 서신의 전복적 상상력은 역사 화해에 미온적인 전후 독일의 사과를 끌어내려는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였다. 가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폴란드 주교단의 메시지를 받은 독일 주교단은 좌불안석의 심정으로 어떤 식으로든 용서를 빌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국적으로 보면, 폴란드-서독 간에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편지는 대성공이었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1970년 폴란드-서독의 국교 정상화, 1989년 서독 수상 헬무트 콜과 폴란드 수상 타데우쉬 마조비에츠키(Tadeusz Mazowiecki)의 평화 메시지 교환,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의 국제적 재인정과 독일 통일, 폴란드의 유럽연합 가입 등 숨 가쁘게 탈냉전의 역사를 거치면서, 이 사목 서신의 역사적 의미는 점점 중요해졌다. 편지는 가톨릭의 문화에서 개인의 영역에 머물던 용서의 의미를 국제정치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 「Ⅸ. 용서」 중에서

부정론의 원흉은 실증주의적 부정론이다. 이 유형의 부정론은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실증주의적 인식론으로 무장하고 있어 ‘과학’에 빙의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적 부정론의 가장 큰 역설은 역사적 증거를 인멸한 자들이 엄격한 실증주의자를 자처한다는 데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증거, 증거, 증거!’를 외치는 것은 ‘증거’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사실 실증주의적 부정론자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실증주의는 희생자의 기억이 부정확하고 정치적으로 왜곡되거나 조작되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 「Ⅹ. 부정」 중에서

서로 경합하는 기억의 연대는 특정한 기억 아래 다른 기억을 위계적으로 줄 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기억의 연대는 지구적 기억구성체에서 서로 다른 기억이 만나고 얽히면서 생성되는 불협화음을 비판적 긴장 관계로 유지하는 데서 출발한다. 희생의 기억을 탈영토화하여 ‘제로섬게임’적 경쟁체제에서 벗어날 때,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기억의 재영토화에서 벗어날 때, 그래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시킬 때, 기억의 연대를 막고 있는 장벽이 터지면서 지구적 기억구성체는 삐걱거리면서도 다양한 기억이 합류하여 흐르는 연대의 실험장이 될 것이다.
--- 「ⅩⅠ. 연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자신을 희생자로 포장하는 가해자
이에 맞서 희생자의 기억을 ‘세습’하는 피해자
가해자에게 빼앗긴 희생자 지위를 재탈환하려는 21세기 기억 전쟁

고통의 경쟁을 넘어 기억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탐색하다!

우리가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6년째다. 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간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식민 지배의 희생자로 굳게 믿어왔다. 그래서 아시아의 전쟁과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가 참배하는 것을 볼 때마다 크게 분노한다. 하지만 참배 같이 노골적인 행위보다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히로시마 원폭의 기억을 통해 ‘피해자’ 일본이 부각될 때다. 히로시마가 반핵평화운동의 상징이 될 때, 전쟁의 책임이 흐려지고 가해자의 희생자성만을 강화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우리가 일본의 후안무치함을 비판할 자격을 갖춘 ‘정당한’ 희생자라고 믿을 때 나타난다. 저마다 자기 민족이 정당한 희생자라고 강변하는 시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기억 전쟁의 위험하고도 유력한 이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 미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기억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는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을 통해 21세기 기억 전쟁의 복잡한 풍경을 선명하게 포착한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 앞에서도 자신들의 고통만을 강변하는 독일과 폴란드의 우익,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영원히 세습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주의적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자,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의 명예를 더럽히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파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얼마나 강력하게 지구적 기억 공간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홀로코스트, 식민주의 제노사이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희생과 고통의 기억을 줄 세움으로써 누가 더 ‘우월한’ 희생자인지를 다투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자신의 과거를 정확하게 반성하지 못하게 만들고 민족 사이의 갈등만을 부추긴다. 고통과 희생을 혐오와 적대가 아니라 이해와 연대를 위한 마중물로 삼는 기억 연구가 절실한 이유다. 임지현 교수가 국경을 넘나들며 다년간 진행한 기억 연구를 결산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기억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한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탐색하는 데 필수적인 길잡이다.

서양과 동양의 불평등한 학문적 분업 체제를 깬
임지현 교수의 역작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일상적 파시즘’, ‘대중독재’, ‘국사의 해체’ 등 민족주의 정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개념을 잇달아 제시하며 세계 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은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그는 지구적 기억 공간을 떠돌면서 인문사회과학의 설득력은 연구자 자신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삶의 경험에 뿌리박은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 경험을 추상화할 수 있는 이론적 힘에 있음을 깨달았다. ‘서양’이 이론을 제시하고 ‘동양’은 경험자료를 제공하는 불평등한 학문적 분업 체제가 아닌, 지구적 근대의 주변부인 동유럽과 동아시아의 경험에 천착한 독자 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발간은 큰 의미가 있다. ‘대중독재’로 해외 학계의 민족주의 연구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21세기 민족주의를 적확하게 포착하며 기억 연구의 새 장을 열었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영어판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1. 누가 ‘숭고한 희생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희생의 기억

오랫동안 폴란드와 독일 등을 넘나들며 연구해온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장으로 먼저 폴란드의 기억 전쟁을 살펴본다. 1987년 한 문학평론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끌려가는 유대인을 방관했던 폴란드인의 행동을 반성하는 에세이를 발표하자, 에세이에 공감하는 목소리와 나치 독일에 끈질기게 항거했던 폴란드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항변이 팽팽하게 맞부딪혔다. 폴란드의 공식 기억에서 배제되고 억압되었던 풀뿌리 기억이 표면으로 올라왔을 때 나타난 격렬한 반응은 그만큼 희생자라는 자리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를 드러냈다. 폴란드인의 죄의식을 건드린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폴란드인 역사학자가 ‘예드바브네 학살’을 다룬 책 『이웃들』을 발표하면서 폴란드 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1941년 7월 폴란드 동부 변경의 작은 마을에서 1600여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이 사건은 학살의 주체가 다름 아닌 폴란드인 이웃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나치의 희생자이자 유대인을 구출한 정의로운 저항자라는 폴란드인의 이미지는 산산조각날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의 ‘세습적 희생자의식’에서 발생한 균열은 희생자의 지위를 세습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에게도 나타났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요코 이야기』가 좌우를 막론하고 국내 언론의 맹비난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제의 침략을 통해 조선과 만주에 살던 일본인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대규모로 피란을 떠나야 했다. 어린 시절 피란 행렬에 끼어 온갖 고생을 한 저자는 당시 조선인의 험악한 분위기는 물론 수시로 나타나는 폭력을 증언했다. 저자의 기억에서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피해의 경험만 부각한 것은 문제이지만, 국내 언론도 재미교포 사회도 오로지 ‘희생자 한국인’만을 강변하면서 개인의 피해 경험을 지우려 한 한계가 드러났다.

이처럼 폴란드와 한국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희생자라는 위치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21세기 민족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전사자를 ‘숭고한 희생자’로 숭상하는 국민국가는 민족주의라는 시민종교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왔다. 여기에 고통 받은 희생자들의 기억이 덧붙어 도덕적 권위의 근거가 ‘영웅’에서 ‘희생자’로 바뀜으로써,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민족주의의 모습은 훨씬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2. 희생의 기억은 어떻게 국경을 넘나드는가
― 기억의 지구화와 홀로코스트의 국민화로 보는 기억 전쟁

탈냉전을 맞아 기억도 국경을 넘나들며 지구화 시대에 들어선다. 특히 2000년은 지구적 기억 문화의 ‘0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한 해다. 2000년 1월에 열린 ‘홀로코스트에 대한 스톡홀름 국제포럼’은 홀로코스트의 교육과 기억 보존을 의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한 여성 국제전범재판소’가 도쿄에서 열렸다. ‘위안부’ 문제에 제국주의와 성적 폭력이 동시에 얽혀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 국제전범재판은 일본군 ‘위안부’가 결코 한국만의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기억활동가들이 ‘위안부’ 희생자들과 연대하고,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생존자와 ‘위안부’ 희생자의 증언을 함께 전시한 기획이 성사되는 것은 고통과 희생의 기억이 국경을 넘나들며 갈등과 연대의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기억의 연대가 언제나 매끄럽게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다. 1963년 일본의 반핵평화활동가들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찾아가 ‘히로시마-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 평화행진’을 진행했다. 장장 3만 3000km에 이르는 긴 여정 끝에 행진 참가자들은 “아우슈비츠는 다시 없게!”와 “히로시마는 다시 없게!”를 동시에 외쳤다. 원폭으로 고통받는 히로시마의 기억과 인간에게 벌어져서는 안 될 참혹한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포개지는 순간이었다. 평화행진은 냉전의 논리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중 가장 난감한 순간은 평화를 갈망하는 ‘순수한’ 의도로 행진을 기획한 평화활동가들이 싱가포르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맞닥뜨렸을 때였다. 희생자로 나선 이들이 자기 나라의 가해자성을 마주할 때, 기억의 지구화는 기억의 국민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1950년대 일본에서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증언한 빅토어 프란클의 책이 출판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은 홀로코스트의 국민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과 원폭에 희생된 일본인 사이의 유비가 일본 독자들을 끌어모으는 동력이었음은 물론이다. 홀로코스트의 국민화는 일본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홀로코스트에 빗대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문제는 홀로코스트의 국민화가 희생의 기억을 탈역사화할 때 빚어진다. 희생의 경험을 곧바로 홀로코스트에 비유하고 어느 쪽이 더 큰 희생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억의 경쟁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3. 가해의 기억은 어떻게 손쉽게 망각되는가
― 기억의 탈역사화와 과잉역사화라는 동전의 양면

우리는 독일이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과 학살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패전 직후의 독일은 그렇게 성찰적이지 않았다. 반성을 강조하는 점령 당국의 교육은 독일인에게 열패감만을 안겼고, 상당수의 독일인이 유대인 등의 절멸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인식을 완고하게 지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독일의 탈나치화는 신화였다. 자신을 희생자로 인식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희생자 신화가 집권당과 우익뿐만 아니라 평화헌법의 지지자와 평화활동가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던 것은 물론이다.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가해의 경험이 소각된 채 희생의 기억만 강조되는 현상은 피란민과 전쟁포로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게걸음으로』에서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비극을 묘사했다. 1945년 1월, 1만 여 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동프로이센에서 출발한 배는 소련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독일이 통일되면서 우익들은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침몰을 거리낌없이 내세우며 독일의 희생자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라스가 종래의 우익과 다른 점은 희생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강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나치에 복무했으며 동프로이센 피란민의 상당수가 나치 지지자였음을 드러낸 것은 가해와 희생의 기억을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하게 직시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의 기억을 탈색하려는 무의식적 욕망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강해지고 있다. 예드바브네 학살의 가해자들이 자신들은 무고한 피해자이고 모든 잘못은 ‘유대인 빨갱이’가 저질렀다고 주장하거나, 한국 사회가 일제의 동남아 침략의 선봉에 서다 B·C급 전범으로 처형된 조선인 군무원들을 ‘일제에 어쩔 수 없이 복무한 불쌍한 조선 청년들’로 규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희생자 민족은 모두 무고하다는 ‘집합적 무죄’ 의식은 학살의 기억마저 가려버린다. 1931년 7월 만주에서 벌어진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의 갈등이 언론의 오보로 조선인이 각지에서 중국인을 학살하기에 이른 ‘완바오산(만보산) 사건’은 사실상 ‘화교 포그롬’이라 불릴 참극이지만, 해방 이후 한국인은 완바오산 사건을 슬그머니 덮어두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무기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식민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희생자 지위를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위험한 것은 바로 성찰을 포기한 채 도덕적 정당화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4. 고통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의 연대로 바꿀 것인가
― 복잡다단한 기억을 직시함으로써 구축하는 지구적 기억의 윤리

기억의 지구화와 더불어 두드러지는 현상은 기억의 병치다. 나란히 선 기억은 서로를 참조하면서 희생의 고통을 부각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희생자와 더욱 쉽게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1945년 8월 원폭 투하 당시 나가사키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던 나가이 다카시는 죽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는 성모 마리아가 마실 물을 주는 환상을 보았고, 나가사키에 체류했던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에게 기도를 드리라는 음성을 들었다. 잠시 ‘아우슈비츠의 성인’ 콜베 신부를 만나기도 했던 나가이는 이후 나가사키 원폭의 기억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을 적극적으로 연결했다. 나가이는 공교롭게도 우라카미 천주당에서 미사가 있던 그때 그곳에서 원폭이 터졌다는 데서 우라카미가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이라는 발상에 이르렀다. 나가사키가 세계평화를 위해 제물로 바쳐졌다는 서사는 종교적으로 강렬한 만큼 정치적으로 크게 문제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전쟁 책임을 종교적으로 승화된 기억으로 덧칠하는 기억 정치의 맞은편에는 종교적으로 승화된 용서의 윤리가 있다. 1966년 폴란드 가톨릭 주교단이 서독 주교단에게 보낸 사목 서신은 희생자인 폴란드인이 가해자인 독일인을 용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폴란드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서독 주교단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폴란드 주교단이 기대했던 만큼 국경을 넘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희생자가 먼저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전복적인 내용은 탈냉전 시대 동유럽 각지에서 낭독되면서 사람들이 서로를 보복 학살하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이끌기도 했다. 폴란드 주교단의 사목 서신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과 학살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희생자 민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일본 주교단의 결의로 이어졌다. 여전히 국가의 사과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폴란드 주교단과 일본 주교단이 보여준 화해의 제스처는 동아시아의 초국가적 화해와 용서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준다.

지구적 기억 공간에서 용서와 화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또 있다. 바로 부정론이다. 특히 실증주의적 부정론은 ‘물적 증거’를 강조함으로써 생존자의 증언을 무력화하고 희생의 기억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에 묶어두려 한다. 희생자의 개인적인 기억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자양분인 동시에,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억압되고 배제되는 것이다. 이때 기억 활동가에게 필요한 작업은 얄팍한 ‘팩트’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생존자의 ‘깊은 기억’을 끌어내고 이를 세심하게 서사화하는 것이다.

다년간 국경을 넘나들며 기억 연구를 진행해온 임지현 교수는 진정한 기억의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희생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내세우고 서로 다른 희생의 기억을 줄 세워 국가와 민족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데 그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국가 간의 장벽을 더욱 높여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적대만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21세기 민족주의를 포착하는 가장 적확한 개념인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정확하게 통찰함으로써 지구적 기억의 윤리를 모색한다. 기억의 성찰성과 잠재력을 탐색하는 이 책은 혐오와 적대가 더욱더 심해지는 이 시대를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