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2.영국역사문화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 (2020 다니엘 디포)

동방박사님 2022. 10. 3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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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재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위력을 보면, 이 책의 내용 중 상상 속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페스트 희생자를 수백 구씩 한 구덩이에 무더기로 묻는 것도 350년도 더 지난 지금 미국에서 그대로 벌어지고 있으니, 지금의 현실이 오히려 더 픽션 같다.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는 영국 소설가 다니엘 디포의 ‘A Journal of the Plague Year’을 옮긴 것이다. 대재앙 당시 디포의 나이는 다섯 살에 불과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H. F.’라는 이니셜을 근거로, 이 책 속의 일인칭 화자(話者)의 직업과 같은 마구(馬具)상으로 화이트채플에 살았던 디포의 삼촌 헨리 포(Henry Foe)의 일기를 바탕으로 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디포의 의도는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기록해 후대의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경우에 거울로 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전염병에 대비한 실용적인 핸드북인 셈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최고의 예방책은 무조건 전염병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다. 당시 런던 시 당국이 전염병에 대처한 방식은 지금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기술적인 세부사항만 달라졌을 뿐, 놀랍게도 그때도 격리, 역학 조사, 무증상 감염, 잠복기, 사회적 거리두기, 면역 등의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목차

1. 첫 발병
2. 수상한 통계
3. 피난
4. 황량한 거리
5. 시대 분위기
6. 첫 고비
7. 주택 봉쇄
8. 강제 격리의 한계
9. 감염 경로
10. 구호 활동
11. 템스 강
12. 위험천만한 환상
13. 세 남자 이야기
14. 가난한 사람들
15. 무증상 감염
16. 절정
17. 메멘토 모리
18. 당국의 조치
19. 투명성 결여
20. 교역
21. 인간의 경솔
 

저자 소개

저 : 대니얼 디포 (Daniel Defoe)
 
영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대니얼 디포. 1660년 영국 런던 근교의 세인트 질에서 양초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세에 비국교도 학교에 입학하여 신학, 역사, 외국어, 지리, 과학, 도덕 철학 등 다양한 교양을 쌓았다.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접고 23세에 메리야스 도매상을 시작으로 정육업, 담배, 목재, 포도주 등의 운송 및 수출입 교역업에 투자했다. 31세에 파산해 감옥에 잠시 투옥되었고, 이...

역 : 정명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 근무했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부채, 그 첫 5000년』(데이비드 그레이버),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상식의 역사』(소피아 로젠펠드), 『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노베르토 앤젤레티)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주택 봉쇄는 믿을 만한 조치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병에 걸린 사람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들어 집 밖으로 달아나도록 만들었고, 집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강제로 가두지 않았을 때보다 더 멀리 병을 퍼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전염병이 닥친 집의 경우에 건강한 사람을 병든 사람과 분리시키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특별히 아픈 사람과 함께 지내겠다고 밝히는 사람은 제외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부분적 격리를 위한 주택들이 제공될 수 있다면, 그들은 격리되어 있다는 기분을 덜 느낄 것이고, 병에 걸린 위험도 낮출 것이다.”

“많은 가족들은 전염병의 접근을 예상하고 가족이 필요한 것을 충분히 비축한 상태에서 스스로 봉쇄 정책을 택했다. 그 조치가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그들은 얼굴조차 밖으로 내비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았다. 그들은 전염이 끝난 뒤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런던처럼 거대한 도시가 단 한 곳의 격리 병원을 두고 있는 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기껏 200명 내지 300명을 수용하는 격리 병원을 한 곳만 둘 것이 아니라, 1,000명씩 수용할 수 있는 격리 병원을 여러 곳을 뒀어야 했다.”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기부금을 많이 내놓지 않았다면, 대중이 평화를 지키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구호금으로 기근을 면할 수 있었다. 또 부자들이 자기들만의 양식을 비축해두지 않은 것도 폭동이 일어나기 힘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시장과 치안 판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일은 주로 전염병에 감염되어 봉쇄된 집을 지키는 일이었다.”

“아이를 가졌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전염병이 도는 지역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감염될 경우에 그들의 불행이 다른 사람들의 불행보다 월등히 더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과 행정 장관들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자신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곳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정의를 구현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기금을 분배하기 위해 언제나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염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겉보기에 전염되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다. 누가 누구를 전염시키는지, 누가 누구에게 전염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무증상 환자와 대화한 사람들을 모두 격리시키지 않는 한, 무증상 환자만을 격리시키는 것은 전염병을 차단시키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 전염병이 어디까지 전파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서 차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이유는 그 누구도 무증상 환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감염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페스트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환자가 자신이 걸어 다니는 죽음의 사자(使者)가 되었던 1주일 또는 2주일 동안의 행적을 거꾸로 더듬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 사람이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존재들에게 호흡으로 죽음을 토해내면서 그들을 망가뜨렸으니 말이다. 그것도 달콤한 입맞춤이나 포옹을 통해서 그랬으니….”

“미래의 사람들은 전염병이 닥칠 경우에 사람들을 보다 작은 단위로 분리시키고 일찍이 서로 멀찍이 떼어놓음으로써 집단에 너무나 위험한 전염병이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공격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40일은 자연이 전염병과 같은 적과 싸우는 기간으로는, 그러니까 자연이 적을 정복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거나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버티는 시간으로는 너무 길다. 나 자신의 관찰을 근거로, 나는 페스트에 걸린 사람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 기간이 15일 내지 16일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염병 자체가 충분한 정화(淨化)이고 전염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은 자신의 육체에서 나쁜 것을 씻어낼 약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에 유명한 내과 의사들의 의견이었다.”

“페스트 전염이 끝나고 9개월 뒤에 런던에 대화재가 발생했다. 일부 수다쟁이 철학자들은 이때 전염의 씨앗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주장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불이 나지 않은 곳에서 그 씨앗이 터져 나오지 않고 전과 똑같은 상태로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페스트, 1665년 런던을 휩쓸다』는 영국 소설가 다니엘 디포의 ‘A Journal of the Plague Year’을 옮긴 것이다. 1722년에 처음 발표될 당시에 ‘1665년 전염병 대유행 때 런던에서 벌어진, 가장 두드러진 사적 및 공적 사건들에 관한 관찰 또는 기록’(Being Observations or Memorials, Of the most Remarkable Occurrences, As well Publick as Private, Which Happened in London During the last Great Visitation In 1665)이라는 긴 부제가 달려 있었던 이 책의 지은이는 ‘런던에서 모든 것을 겪은 한 시민’으로 되어 있었다. 책 맨 마지막에는 ‘H. F.’라는 이니셜이 있었다. ‘최초 공개’라는 문구도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당연히 표지의 내용 그대로 1665년에 페스트가 런던을 휩쓸 당시에 현장을 지켜본 사람이 남긴 기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가 영국 지지학(地誌學)의 아버지라 불리는 리처드 고프(Richard Gough)가 1780년에 『영국 지지학』(British Topography)에서 “‘A Journal…’은 런던의 화이트채플에 살던 마구(馬具) 상인이 적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진짜 저자는 다니엘 디포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이 작품은 소설로 여겨지면서 동시에 장르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지지학자 에드워드 웨들레이크 브레일리(Edward Wedlake Brayley: 1773-1854)는 1835년에 이 책에 대해 “결코 픽션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디포의 설명과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책들, 즉 너새니얼 하지스(Nathaniel Hodges)의 ‘로이몰로기아’(Loimologia)와 새뮤얼 핍스(Samuel Pepys)의 일기, 토머스 빈센트(Thomas Vincent)의 ‘도시에 페스트와 화재로 들렸던 신의 무서운 목소리’(God’s Terrible Voice in the City by Plague and Fire) 등을 비교한 결과 그런 결론을 내렸다. 또 학자 왓슨 니콜슨(Watson Nicholson)도 1919년에 “디포의 ‘A Journal…’에 나오는 런던 전염병 대유행과 관련한 내용 중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없다.”고 밝히면서 ‘진정한 역사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혹여 창작이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사소하고 비본질적이며, 픽션보다는 역사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다.

현재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위력을 보면, 이 책의 내용 중 상상 속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페스트 희생자를 수백 구씩 한 구덩이에 무더기로 묻는 것도 350년도 더 지난 지금 미국에서 그대로 벌어지고 있으니, 지금의 현실이 오히려 더 픽션 같다.

대재앙 당시 디포의 나이는 다섯 살에 불과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H. F.’라는 이니셜을 근거로, 이 책 속의 일인칭 화자(話者)의 직업과 같은 마구(馬具)상으로 화이트채플에 살았던 디포의 삼촌 헨리 포(Henry Foe)의 일기를 바탕으로 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디포의 의도는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기록해 후대의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경우에 거울로 삼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전염병에 대비한 실용적인 핸드북인 셈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최고의 예방책은 무조건 전염병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다.

당시 런던 시 당국이 전염병에 대처한 방식은 지금과 다를 바가 별로 없다. 기술적인 세부사항만 달라졌을 뿐, 놀랍게도 그때도 격리, 역학 조사, 무증상 감염, 잠복기, 사회적 거리두기, 면역 등의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