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한국역사의 이해 (책소개)/7.한국민족주의

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동방박사님 2022. 10. 3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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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민족주의는 사다리다
『한국의 정체성』을 통해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작가의 신작으로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책이다.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에 하나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민족 혹은 민족주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설명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더군다나 저자가 보기에 민족주의는, 근대에 진입하면서 만들어진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그렇다고 민족이 가진 순기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유달리 많은 고난을 겪은 우리로서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그 결과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묻고 있는 것은 좀더 근본적인 것이다. 민족의 실체는 무엇인가? 민족은 꼭 통일되어야 하는가? 민족이 개인의 행복에 우선할 수 있을까? 왜 민족은 이데올로기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그것이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민족을 해체해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어느 편이 더 옳은 해법인 것일까? 민족 개념의 해체와 민족에 대한 진정성, 과연 어느 것이 옳은지 저자는 묻고 있다.

TV 토론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저자가 만들어낸 사학자·철학자·일본인을 등장시켜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들을 토론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더불어 각 이야기의 끝에 '강의'를 따로 두어 토론에서 논의되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사다리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목차

머리말 -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을까
1장 상상의 민족, 현실의 민족주의
토론)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 /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
근대국민국가의 출현과 민족 / 민족과 국가의 관계
강의)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지만 민족주의는 살아 있는 힘이다
2장 우리말이 없어지면 민족정신이 없어지는가
토론)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잉인가
역사 해석에서 민족주의 과잉 문제 / '우리' 역사와 '한국사'의 차이 /
월드컵과 민족주의
강의) 우리말이 없어지면 민족정신이 없어지는가
3장 민족주의는 사다리이다
토론)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느닷없이 발생한 민족 고유의 정서 /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의 미 /
한국학과 자기 인식의 문제 / 식민지와 근대화 :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
강의) 민족주의는 사다리이다
4장 일본은 외국이다
토론)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의식하는가 / 한국에게 타자는 어느 나라인가 /
국가 통합의 도구로서 반일주의 / 역사 속의 한일 관계
강의) 일본은 외국이다
5장 시민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
토론) 한국 민족주의의 장래를 전망한다
세계시민주의에 대하여 / 세계화와 민족주의 / 민족주의 이후
강의) 세계체제 속의 시민국가
참고 문헌 // 도움 받은 책들 // 색인 // 감사의 글

저자 소개

저 : 탁석산 (卓石山)
 
매일 공부하는 철학자.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1년 자연과학을 배운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한국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도발적으로 되물으며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꾸준히 책을 쓰고 강연하면서 가끔 방송에 얼굴을 보이곤 한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정체성』,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철학 읽어 주는 남자』, ...
 

출판사 리뷰

우리시대의 철학자 탁석산, 한국 근대를 탐구하는 그의 관심이 민족주의와 마주했다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등 일반의 상식을 전복하며 동시대의 문제를 특유의 비판적 관점으로 설명해 온 철학자 탁석산의 관심이 한국 근대의 키워드인 '민족주의'에 다다랐다.
어느새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민족주의. 탁석산은 민족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지금의 분위기를 의심한다. 민족의 실체는 무엇인가? 민족은 꼭 통일되어야 하는가? 민족이 개인의 행복에 우선할 수 있을까? 왜 민족은 이데올로기가 되었을까? 이런 의문이 들 즈음 학계 일각에서는 허구적인 개념인 '민족'을 해체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구한말 이후 지금까지 어려운 시기를 견디게 해준 '민족'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민족 개념의 해체와 진정성. 저자는 우리 의식과 삶의 깊은 곳에 각인된 민족주의의 딜레마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민족주의라는 유령 -- 왜 지금 민족주의인가?

민족주의는 반공주의의 망령이 물러간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일반 대중들과 매스미디어의 의식 저변에는 민족주의가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최근 한중간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고구려사 문제는 1400년 전의 역사가 어떻게 민족주의와 결합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본 고위 각료의 '과거사 망언'과 이에 격분하는 한국인들의 시위, 역사 교과서 문제, '친일파 문제'를 둘러싼 한국내의 갈등 등 한국 사회의 굵직한 이슈들 속에 민족주의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통일'과 관련해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남과 북은 (실제로는 자기 체제의 이해에 맹목적이지만) '민족의 통일'이 두 정치 집단의 지상과제임을 숨기지 않는다.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은 민족의 번영과 평화를 방해하는 '민족정신이 결여'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민족은 하나'라는 구호는 다양한 민족주의 구호 속에서 제일 영향력이 큰 구호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할 수 없는 진리다.
한국 사회의 도처에서 민족주의 구호들과 부딪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하고 지극한 명제인 '민족'과 '민족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학계 일각에서만 논의가 되고 있을 뿐 대중적 차원의 고민과 논의는 부재하다. 우리 시대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민족주의, 그러나 민족주의는 유령처럼 그 실체와 목적이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우리 시대 한국인의 마음속에 깃들여 있다. 민족주의는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우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인 민족주의에 대해 많은 것으로 모르고 있다.

"민족주의는 사다리이다"

저자는 논쟁적인 이 책에서 민족주의를 사다리라고 비유한다. 이 사다리는 '근대를 밑바닥으로 하고 국가 건설을 맨 위의 착점'으로 하며 세계체제 속의 시민국가를 향해 놓여져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사다리는 다섯 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칸은 한국의 민족주의 형성의 단계 내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다리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것처럼 민족주의 역시 근대를 시작해 국가건설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이 사다리는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많은 이들이 힘겹게 만들어 온 진정성이 있다. 저자는 민족주의의 이런 진정성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며 그 역사적 역할과 의미에 충분히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저자는 민족주의는 높은 곳, 즉 세계체제 속의 시민국가에 오르기 위한 도구이며 따라서 그것은 만고불변의 가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다리 위의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그 도구 자체에 매몰되고 있지 않은지 저자는 묻고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는 크게 다섯 칸으로 되어 있으며 한칸 한칸 만들 때마다 많은 피와 땀이 필요했다."(p108)

"사다리의 마지막 한 칸……그것은 국민에서 시민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p189)

"우리는 민족주의라는 사다리의 마지막 한 칸을 더 올라가야 한다. …… 한 칸을 더 오르면 우리는 사다리를 차버리고 더 넓은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p195-196)

토크쇼 형식의 토론과 강의 - 난해한 동시대의 주제에 입체적으로 다가서기

이 책은 TV 토론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가상의 인물인 사학자, 철학자, 일본인을 등장시켜 '한국 민족주의'의 여러 문제를 입체감 있게 생생히 전달한다. 마치 어려운 동양 사상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했던 『공자 노자 석가』(모로하시 데츠지, 동아시아)처럼 저자는 토론이라는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다가간다.
민족과 민족주의의 개념에서 한국 민족주의의 생성과 현재, 미래까지 종횡무진하며 펼쳐지는 참석자들의 토론은 민족주의와 관련한 다양한 쟁점과 논의들, 그리고 다양한 교양과 사실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줘 독자로 하여금 난해하고 낯설었던 민족주의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더불어 이런 토론식 글이 가지고 있는 약점인 '저자의 주장이 드러나지 않는 점'과 명쾌한 '정리'를 위해 각 토론의 말미에 강의의 형식으로 저자의 주장을 직접 정리하고 있다.
이 토론에 등장하는 철학자, 사학자, 일본인 문화평론가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들은 현실의 인물처럼 토론 과정에서 상대방과 대립하기도 하고, 민족주의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과정들을 통해 민족주의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전문가들의 논의 방식 등 을 가능한 현실감있게 재현하고자 했다.

한국 민족주의라는 비포장 도로를 능숙한 운전자처럼 탐색하며 한국 민족주의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이 책은 동시대의 주제를 대중들에게 전하는 새로운 방식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철학자의 훈련된 '논리적 사고'를 통해 철학이 어떻게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한결같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도발, 그러나 '우상'을 깨는 사실들

모든 민족주의가 그러하듯이 한국 민족주의 역시 우리 것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한국의 근대에 '식민지'라는 외상을 남겨놓은 일본이라는 타자(他者)에 대한 반감과 폄하는 한국 민족주의의 중요한 속성으로 발전해왔다.
한국 사회에서 한일관계에 관한 대중의 통념을 깨는 발언을 하는 것은 대중적인 저술가로서 상당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이 책 4장 '일본은 외국이다'에서 한국의 근대에 끼친 일본의 영향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근거 없는 폄하는 '일본에 대한 좌절감과 시기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불편한 주장을 거침없이 한다.
물론 저자는 일본이 식민지 통치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가혹한 통치를 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일본이 하지도 않은 일, 그리고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자신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리적 장애가 있지만 일본을 단순한 외국으로 보아야 할 때'가 왔다는 저자의 의견은 새로운 한일관계를 모색하는 지금 경청해야 할 지적이다.
해방 후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동원이데올로기로 대중에게 왜곡되어 전파된 한국 민족주의의 굴절된 모습을 기억한다면 저자의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증오와 대립의 민족주의가 아닌 가까운 이웃에게 가슴을 여는 한국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끼친 긍정적인 면은 그 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는 저자의 의견은 한국 민족주의가 가진 종족의 우상을 깨는 의도된 도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