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인물사 연구 (책소개)/2.한국인물평전

추사 김정희 평전 - 예술과 학문을 넘나든 천재

동방박사님 2022. 12. 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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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예술과 학문을 넘나든 천재 “추사 김정희”
가슴 저린 삶과 눈부신 작품 세계, 그와 연관된 담론을 총망라한 평전


추사 김정희는 굴곡진 삶을 넘어 자유자재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추사체’로 대표되는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인물로, 이제는 신화가 되었다. 추사에 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시와 연구가 진행되고, 충청남도 예산군 추사기념관·제주도 대정면 제주추사관·경기도 과천시 추사박물관 등이 세워져 추사 김정희 신화가 얼마나 큰 영향력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지 실증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 평전』은 미술사학자 최열이 신비의 숲으로 뒤덮인 추사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탐정 소설 같은 흥미진진한 전개는 독자가 마치 추사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듯 몰입하게 한다. 지은이는 김정희의 언행과 작품은 물론이고 그와 마주친 이들, 그를 탐구한 이들의 기록을 정밀하게 추적하여 삶과 작품의 실체를 밝혀 나간다.

이 책은 추사 탄생과 사망 관련 신화부터, 출생지의 진실, 추사 사문과 사제 관계의 실상, 북경행 및 옹방강과의 만남에 연관된 논의, 박제가·옹방강·완원·자하 등 문하 및 스승 관련 논의, 추사체의 탄생과 개화 및 시기별 작품 설명, 금석학 연구와 실사구시론, 난초화법과 문자향 서권기 등 예술론, 「세한도」와 「불이선란도」에 얽힌 이야기, 초의·심희순·이상적 등과의 교유, 기유예림 및 신해예송에 관한 사연, 백파와 관련한 논쟁, 김정희 초상 목록과 출전, 사후 인식사와 제자 증가의 실체, 추사 김정희 문집 편찬사 등 추사 김정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선명한 도판과 도표, 세심한 자료 및 충실한 해설로 온전히 담아낸 책이다. 지은이 최열은 추사의 언행을 생생히 전하는 동시에 추사에 관한 담론을 총망라하여 추사 김정희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목차

머리말 학예 혼융의 경계 6

1장 탄생
1786(1세)
설화

서장 탄생의 비밀 22

1 탄생
재상 가문 25
나 태어난 곳, 한양 낙동 29
통의동 백송 31
고향의 추억 37

2 신화
24개월 잉태설 40
예산 출생설 44
팔봉산 정기설 45
예산은 어떤 땅인가 49
영달하는 가문 51

2장 성장
1786~1810(1~25세)
사문의 전설

1 명문세가
유복한 성장기 57
정쟁의 중심으로 60

2 한양의 사문
사문 이야기 63
박제가, 김정희 사후 스승이 되다 64
박제가 전설 66
자하 문하에 출입하다 69
젊은 날의 아호, ‘현란’과 ‘추사’ 71

3 북경에서의 한 달
북경으로 떠나다 75
옹방강을 만나다 80
옹방강 문하의 풍경 83
옹방강을 사모하다 87
옹방강을 말하다 89
옹방강 은사설의 출현 92
옹방강 스승설의 정착 95
아호 그리고 옹방강과 완원 97

3장 수련
1810~1819(25~34세)
학예의 원천

1 자하 문하
자하로부터 『영탑본』을 하사받다 103
인맥의 원천 104
자하 문하 출입자 106
자하 문하에서 108
선생 신위, 시생 김정희 110
선생을 전배로 변조하다 115
자하 신위에 대한 존경, 두 가지 123

2 아회와 여행
자하 문하 출신과의 아회 127
아회의 즐거움 131
경상도 기행 133
현장 답사와 고증의 성취 134
금강산 여행 136
아내 예안 이씨에게 보내는 편지 140

3 원천과 인연
학예의 원천, 옹방강 146
서법의 원천, 완원 149
서예와 서법이란 낱말 151
옹방강을 둘러싼 후일담 151
옹방강과의 거리 153
옹방강과 완원은 누구인가 154
불가와의 인연, 초의 156

4 학자의 길
학예주의의 꽃, 금석 고증학 162
진흥왕의 두 비석 고찰 163
김정희의 학문 170
순수 방법론으로서 실사구시설 172
실용 경세학으로서 실사구시설 174

5 예술가의 길
화가의 길, 묵란과 산수 178
「선면산수도: 황한소경」 182
서법가의 길, 신위와 옹방강 서풍 185
명사의 길, 송석원 188

4장 출세
1819~1830(34~ 45세)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1 출세와 여행
출세의 태도 199
충청북도, 단양 여행 200
단양팔경 시편 202
규장각 대교 사직상소 206
오대산·적상산·정족산 여행 208

2 출세와 악연
충청남도 암행어사 여행길 212
악연의 암행어사 215
당상관 진입 217
악연과 선연의 인연법 220
운외몽중, 그 기이한 시화 223
김유근과의 인연 225

3 평안도 여행
서법의 길, 묘향산 230
풍류의 길, 평양의 죽향 236

5장 전환
1830~1839(45~ 54세)
삶의 그늘, 예술의 빛

1 암운
최초의 암흑 245
월성위궁을 나오다 249
용산 시절 252
격쟁, 가문의 운명을 건 승부수 254

2 금호 시절
흑석동 금호로 이사하다 258
금호라는 땅 이름 259
먹구름이 걷히다 262
장동의 월성위궁으로 복귀하다 263
상소, 가문의 명예를 위하여 265

3 서법가·장황사와의 대화
조광진과의 대화 269
조광진과 서법을 논하다 270
유명훈과의 대화 276

4 서법의 길
추사체의 여명, 골기로부터 282
서법의 길, 개성으로부터 284
북파의 길, 북비로부터 290
묵법변 294
이광사 비판 295
김정희의 공격법 300

5 추사 문하를 열다
아버지의 죽음 302
초의 선사와의 대화 304
추사 문하 첫 제자, 허련 308
추사 문하 첫 번째 사람, 홍현보 312
문하와 사제, 김석준의 스승 315

6장 고난
1840~1849(55~ 64세)
아득한 섬나라 제주

1 제주 가는 길
죽음의 그림자 321
우의정 조인영의 구명 운동 324
월성위궁,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별 326
살아서 가는 길 327
유배길 전설, 이삼만과 이광사 332

2 아내와의 이별
화북진에서 대정까지 336
제주 시절, 끝없는 나그네 340
양자를 들이다 346
천천히 멀어지는 이별 347
아내 예안 이씨를 보내고 352

3 세상과의 소통
허련과 초의의 제주행 355
초의에게 받고 김정희가 보낸 물건들 360
오창렬과 오규일로부터 363
백파와의 논쟁에 임하는 태도 365
백파와 추사 사이에 오고 간 문헌 371
추사 문하 둘째 제자, 강위 373
이상적의 중국행 375
서구세계와의 만남 376
외방 세계에 대한 생각 378

4 허련, 스승을 그리다
허련, 두 번째 제주행 383
허련의 활약 385
허련의 세 번째 제주행 387
허련이 그린 네 가지 초상 390

7장 전설
1840~1849(55~ 64세)
신화의 땅 제주와 「세한도」

1 추사체
추사체의 사계절 401
모순의 지배, 그 변화의 시작 402
추사체의 형성 405

2 산수화
도문상수론 418
산수화론 419
산수화의 세계 421
「영영백운도」 422
「고사소요도」 424
「소림모옥도」 428
「소림모정도」 428

3 「세한도」
1843년, 「세한도」의 출현 430
슬픈 사내 ‘비부’의 「세한도」 발문 436
이상적의 답신 440
「세한도」, 북경으로 가다 445
「세한도」의 유전 447
「세한도」 두루마리 구성 449
「세한도」 신화 450
신화 그리고 ‘완당바람’의 허상 456

4 『난맹첩』
난초화의 비결 458
1846년, 『난맹첩』 전설 460
『난맹첩』 이야기 486
편파 구도가 품은 조형의 비밀 487

5 전각
전각가 오규일 489
『완당인보』 편찬자 박혜백 491
당대의 전각가들 493
김정희 인장의 넓이와 깊이 494

6 제주의 귀양살이
허련이 아뢰고 헌종이 듣다 505
대정현 사람들 506
제주 사람들 509
김만덕과 「은광연세」 511
제주를 노래하다 513

7 해배
헌종 그리고 신관호와 허련 516
석방 명령 518
제자 허련의 헌종 알현 519
다시 육지로 522

8장 희망
1849~1851(64~66세)
한강의 희망과 절망

1 한강 시절
1,000년 만의 귀향 529
마포의 사계 531
추사체의 봄, 꽃망울을 터뜨리다 534
헌종 승하와 신헌 유배 539
초의 선사로부터 차와 평안을 구하다 542
불가 이야기 545

2 기유예림의 초대
기유예림 547
『예림갑을록』 560
중인 예원의 기획 특강 561
조희룡과의 인연 563

3 희망 그리고 절망
희망, 조인영과 권돈인 565
절망, 조인영의 죽음 566
이하응, 새로운 희망 567
심희순, 악연과 선연 사이 571

4 호남 여행
1850년 봄, 호남으로 575
전라 감사 남병철, 10년 만의 해후 576
왕의 글씨를 배관하다 577
전주를 떠나기 하루 전 579
남겨 둔 편지 580
전주 시절 581
「모질도」 그리고 화엄사 시편 582
1851년 단오절, 남병철의 합죽선 589

5 필패의 승부수
헌종 집단 592
신해예송 596
패배 599
탄핵 601
순원왕후의 처분과 기록 604
한강을 떠나던 날의 풍경 606

9장 향수
1851~1852(66~ 67세)
북청의 문자향 서권기

1 북청 시절
북청 가는 길 611
윤정현의 함경 감사 부임 615
동반 제자 강위 618
유치전과의 대화 619
북청 시편 622

2 문자향 서권기
난초화법 626
격조론, 예술론의 거점 629
성령을 규율하는 재정성령론 630
문자향 서권기론 633
문자향 서권기의 연원 635
시화선 일률론 638

3 필묵법
필법 641
묵법 644
경계해야 할 것 648

4 추사체의 개화
꽃피는 추사체의 여름 650
「잔서완석루」 650
「사서루」 653
「검가」 653
침계 윤정현과의 만남 656
「도덕신선」과 「침계」 656
「진흥북수고경」 660

5 그리운 고향
향수 665
해배길 666

10장 갈망
1852~1853(67~ 68세)
과천 시절의 대화

1 과천 시절
과천, 궁핍한 시절의 꿈 673
권돈인과의 대화, 울분과 호소 676
이하응과의 대화, 난초 이야기 680
윤정현과의 대화, 감회와 소망 685

2 심희순과의 대화
심희순과의 대화 1: 물건 688
심희순과의 대화 2: 비평 690
심희순과의 대화 3: 서도 693
심희순과의 대화 4: 불만 697
심희순과의 대화 5: 고통 698

3 중인과의 대화
이상적과의 대화 702
오경석과의 대화 704
김석준과의 대화 1: 친교 708
김석준과의 대화 2: 서법 711
황상과의 대화: 비평 713

4 서법, 음양생필
서법을 논하다 719
서법의 생필묘결 725
음양획법 727
기괴와 고졸의 경계 728

5 난초화론
인품론 733
난초화론 734
난초화법 737

11장 이별
1854~1856(69~71세)
그리도 추운 겨울

1 이별이 없는 그곳
꽹과리 치는 격쟁인 김정희 743
떠나 버린 화살 745

2 추사체의 가을
추사체, 천자만홍의 가을날 752
「계산무진」 752
「사야」 756
「백벽」 758
「산숭해심 유천희해」 760
「죽로지실」 762

3 추사체 이후의 추사체
경계 없는 세상 766
「화법유장」 766
「호고유시」 768
「오악규릉」 771
「무쌍채필」 773
「대팽두부」 775

4 〈판전〉과 〈시경〉의 전설
추사체의 겨울 779
「판전」 779
「명선」 785
「시경」 787

5 「불이선란도」의 탄생
유마 거사와의 만남 792
유마힐의 불이선 793
하늘나라 아내와의 만남 796
「불이선란도」의 모양 797
손세기·손창근 가족에게 존경을 801

6 「불이선란도」, 최초의 화제 읽기
화제 번역 804
화제 해석 806
제작 시기와 ‘달준’ 이야기 808

7 「불이선란도」, 다르게 읽기와 번역
화제 읽기의 전범 810
다른 읽기 810
다른 번역 817
아내를 위하여 819
「불이선란도」를 말하다 822

8 이별이 있는 그곳
생애에서 가장 추운 겨울 828
봉은사에서 831
추억의 인연들 834
곤궁한 길에 한이 서린 사람 837
4일 단맥설, 그 신비의 숲 839
종장 멈춰 버린 영원, 나 죽고 그대 살아 841

12장 영원
1856~2021(사후)
외전

1 추모의 물결
『철종실록』에 오르다 847
묘소, 예산인 까닭 849
강위, 나의 스승이여 850
조희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사 851
이상적, 슬프고도 더욱 슬픈 만사 854
초의 스님, 심금을 울리는 제문 855
권돈인의 추모, 이한철의 영정 857
제자 허련의 추모 사업 861

2 추사 문하의 기원
스승·제자·문인의 의미 870
추사 문하·추사파의 그늘 871
김정희의 눈길 872
조희룡의 태도 873
신석우의 생각 874
김석준의 의식 876
1881년, 강위의 ‘완옹 문하’ 출현 878

3 완당 문집 편찬사
가족과 제자의 불참 886
편찬자 남병길 887
문집 참여자들 889

4 사후에 늘어난 제자들
후지츠카 치카시의 주장 893
후지츠카 치카시 논문의 목적 894
이동주의 견해 896
1972년의 추사 문하 898
제자로 전입시킨 열여덟 명 900
추사서파설 905
추사파, 기량 미달자 집단 909
제자가 필요한 까닭 911
20세기 현창 사업 914

5 추사 김정희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윤용구, 찬탄의 기쁨 920
문일평, 혁명과 비조 922
윤희순, 모화와 사대 923
이동주, 완당바람 924
최완수, 북학과 예원의 종장 925
안휘준, 남종화풍의 영향력 926
최열, 복고주의 927
유홍준, 하나의 결실 930
오직 홀로 아름다운 그 이름 931
월인천강 933
추사체 유행, 지역 미술계 형성 934

6 신화의 탄생
어떤 꼬마의 추억 936
당신이기를 938

후기 감사의 마음 940

·미주 945
·추사 김정희 주요 연보 1786~1856 1037
·추사 김정희 관련 주요 문헌 1 053
·도판 목록 1075

주요 도표 목록
북경에서 한양까지 소요 기일(77쪽)/1810년 2월 1일과 2일의 공식 일정(78쪽)/자하 문하 출입자(106, 107쪽)/김정희 전별시 수록 문헌(116쪽)/김정희가 아내 예안 이씨에게 보낸 편지 연대기(144, 145쪽)/1840년 김정희 국문 과정(324쪽)/한양에서 제주 대정까지 일정(332쪽)/초의와 두 제자 허련·강위의 제주 방문 일정(360쪽)/김정희와 초의 사이에 왕래한 물건 목록(361쪽)/백파와 추사 사이에 오고 간 문헌(371, 372쪽)/김정희 초상 목록과 출전 일람표(391쪽)/제주 대정에서 한양 용산까지 일정표(525쪽)/심희순이 김정희에게 보낸 물건 목록(689, 690쪽)/1862~2020년 김정희 문집 목록(891, 892쪽)/최완수 지목 김정희 제자의 증가 추세(902쪽)/제자와 문하의 증가 추세(903, 904쪽)
 

저자 소개

저 : 최열
 
1956년생. 미술사학자이다. “그의 이름을 빼고 한국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 그의 책들은 한 권 빠짐없이 한국미술사의 자양분이다.” 한국근대미술사에 누구도 제대로 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때 최열은 직접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연구의 터를 만들었다. 그는 개척자인 동시에 실행자였다. 그는 또한 당연히 매우 치열한 학자다. 그가 펴낸 책들은 출간 이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한국미술사를 공부하...
 

책 속으로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 천재 김정희는 참된 학예주의자였다. 추사 김정희는 학문을 예술처럼, 예술을 학문처럼 다루었다. 학문과 예술을 혼융하여 ‘학예주의’의 절정에 도달했고, 이 어려운 경지에 이르러 신묘한 예술 세계를 실현했다. 그가 남긴 모든 문자와 형상이, 글씨와 그림이, 그 감각과 사유가 모두 학예의 결정체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 나는, 김정희가 남긴 문자와 형상을 마주하고서 어떻게 이런 문자가 있을까 놀라워했고 이렇게 특별한 형상이 또 있을까 하며 감탄했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고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경탄은 그의 문자와 형상 안에 숨겨진 ‘학예 혼융學藝 混融의 경계’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을.
--- 「머리말」 중에서

가학家學으로 기초를 닦은 김정희는 일찍이 자하 신위가 문을 열어 둔 자하 문하紫霞 門下에 출입하고 있었다.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지만, 스물한 살 때인 1806년 이전 언제부터가 아닌가 한다. 바로 그해 숙부 성암 김노겸性菴 金魯謙의 부채에 묵란을 그리고 제화시를 지어 극찬을 얻었고, 두 해 뒤인 1808년에 ‘현란’玄蘭이란 아호를 썼으며, 다음 해엔 ‘추사’秋史란 아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묵란을 그리고 시편을 지으며 멋진 아호를 쓰는 젊은 김정희의 모습은 그가 평생 예술의 길로 나아갈 인물임을 예견하게 한다.
--- 「2장 성장」 중에서

1830년 8월 마흔 살을 갓 넘기고부터 밀려든 집안의 불행은 오랫동안 김정희를 괴롭혔다. 이 어둠은 너무도 큰 고통의 시작이었으나, 오히려 김정희를 예술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다. 정계에서 상승일로를 걸었다면 관료로서 해야 할 업무가 첩첩산중이었을 것이고, 또한 여가에 틈틈이 매진했을 금석 고증만으로도 벅차서 서법이나 회화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에 불과하지만 운명은 이처럼 신기한 것이어서 신비한 힘이 그를 중앙 정계로부터 내쫓아 버렸고, 하늘은 김정희에게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 「5장 전환」 중에서

‘추사체’란 낱말은 김정희 예술이 독자성을 갖추었음을 확인하는 표현이다. 김정희가 자가풍自家風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50세에 접어든 1835년 무렵이다. (…) 50대에 드러나기 시작한 자가풍은 55세 때인 1840년부터 1850년까지 제주 유배 시절을 거치면서 도약을 거듭했다. 매 순간 자신마저 훌쩍 뛰어넘어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서체인 ‘추사체’를 이뤄 낸 것이다. 김정희는 이 특별한 서체를 회화에도 적용했다. 그 결과 서법에 못지않은 성취를 거두었다. 추사체란 그러므로 서화 일률의 경지에 도달한 오직 하나의 양식이자 정신이었다. 제주 시절에서 과천 시절까지 추사체의 전개 과정은 크게 네 단계 또는 사계절로 나눌 수 있다.
--- 「7장 전설」 중에서

김정희는 「세한도」 발문 끝부분에 자신을 슬픈 사내인 “비부”라고 칭했는데, 추위에 떨고 있는 자신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이상적의 그 변함없음을 더욱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 「세한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완전히 비워 둔 배경이다. 무대가 텅 비어 있어 아득한 느낌을 더욱 키워 간다. 그와 함께 가장 뛰어난 것은 화면 구도다. 화폭 오른쪽 상단의 가로글씨 ‘세한도’와 세로글씨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 붉은 인장 ‘정희’正喜와 그 아래 가로로 뻗어 나온 가지에 매달린 솔잎 한 움큼, 부러질 듯 허약한 가지와 뜻밖에 굵은 노송老松에 이르기까지, 제목부터 이어지는 연결은 절묘한 착상이다. 또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마른 먹인 ‘건묵’乾墨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아예 타버린 재만 남긴 ‘초묵’焦墨으로 성글게, 아주 거칠게 그리는 갈필법渴筆法을 구사했다. 울퉁불퉁한 땅바닥은 비가 내려 질척대는 마당이다. 또 땅속에 묻혀 들어간 듯한 일자一字집은 지붕이 서로 어긋난 데다가 둥근 창문의 좌우가 뒤바뀌어 끝내 헤어 나오지 못할 마법의 구조물이다. 수렁 속에 빠진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잣나무라고도 하는 측백나무 세 그루는 그 잎이 으깨진 듯한 파필점破筆點이고 소나무는 늙어서 기울어질 듯한 데다가 잎사귀가 거의 없다. 그나마 옆으로 삐져나온 가지에 성글게 달린 잎도 송엽점松葉點이 아니라 앙두점仰頭點이다. 간절해 보이는 것이 더욱 서글프다. 더욱이 특별한 것은 바탕을 이루는 종이가 매끄러운 화선지가 아니라 무척 까칠한 종이여서 그 메마른 갈필의 효과를 더더욱 드높였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바로 곁에 연결해 둔 발문은 매끄러운 장지壯紙를 선택함으로써 그림의 거친 분위기를 한결 돋보이도록 대비의 미학을 구현했다.
--- 「7장 전설」 중에서

『난맹첩』에 실린 열다섯 폭의 묵란도는 조선 시대 사군자 역사상 가장 눈부신 성취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세운 난초화론 및 난초화법의 대부분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되풀이하자면, 먼저 잎은 가지런한 것을 피해야 한다는 엽기제장葉忌齊長, 세 번 굴려야 신묘해진다는 삼전이묘三轉而妙, 꽃과 잎이 어지러이 흩어져야 한다는 화엽분피花葉紛披는 물론, 난잎이 왼쪽을 향하도록 그리는 향좌필법向左筆法 우선론, 난잎을 교차시키면서 봉황의 눈이나 코끼리의 눈을 닮은 형태가 생기는데 잎을 그릴 적에 그 모습을 구별하여 배치하는 봉상안법鳳象眼法을 완벽히 구현해 냈다.
--- 「7장 전설」 중에서

김정희는 전주에서 전라 감사 남병철과 헤어진 다음 화엄사로 가는 길에 남원의 여각에 여장을 풀었다. 피곤한 몸이었으나 곧장 잠이 오지 않았다. 따스한 봄날이었으므로 문을 활짝 열고 뜰에 핀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가 아픈 것인지 배가 너무 불룩해 보인다. 마치 자신의 신세처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마른 붓에 마른 먹을 찍어 그 녀석을 그렸다. 참으로 볼품없는 것이 영락없이 예순다섯 살 먹은 노인이다. 예순 살 늙은이란 뜻의 ‘모질도’라고 써넣고 보니 잘 어울렸다. 그렇다. ‘자화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 「8장 희망」 중에서

1854년 새해가 밝았다. 69세다. 해배가 된 지 벌써 1년 5개월, 햇수로는 3년이나 흘렀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봄이 오는 문턱에 선 김정희는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 왕의 행차 때 길거리에서 꽹과리를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擊錚이었다. 김정희에게 격쟁은 처음이 아니다. 아버지 김노경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을 23년 전인 1832년 2월 26일과 9월 10일 그리고 1833년 8월 30일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벌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번 격쟁은 69세에 펼친 2차 격쟁이었는데, 1854년 2월 26일에 시작해 1856년 2월 2일까지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벌였다. (…) 피를 토해 내듯 퍼부어도 시원하지 않았다. 격쟁을 시작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그 어떤 변화의 조짐도 없었다.
--- 「11장 이별」 중에서

1856년 10월 9일 별세 하루 전에 중인 예원의 영수 우봉 조희룡이 다녀갔다. 그리고 얼마 뒤 소식을 접한 우봉 조희룡은 떠나 버린 김정희를 홀암惚闇 선생이라고 부르면서 이날의 모습을 다음처럼 묘사했다. “홀암惚闇 선생께서 세상 떠난 일은 차마 말로 하겠습니까.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과천의 댁으로 찾아뵈었는데 정신은 또렷하고 손수 시표時表를 정하고 계셨습니다.” (…) “의사가 맥이 끊어진 지 벌써 사흘 되었다고 했지만 편면에 글씨를 쓰셨는데 글자의 획은 예전과 같았습니다. 맥이 끊어졌는데도 글씨를 썼다는 이야기는 옛날에도 들어 보진 못했습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24개월을 머물렀다가 태어난 사람은 떠날 때 맥을 끊어져도 나흘을 더 숨 쉴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혈맥의 경전 『맥경』脈經을 수련한 끝에 도달한 경지였을까. ‘나흘 단맥설’斷脈說은 맥이 끊기는 증상답게 155년 동안 사라졌다가 세기가 두 번 바뀐 2010년 또 이렇게 되살아나 추사 김정희의 생애를 신비의 숲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 「11장 이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예술과 학문을 넘나든 천재 “추사 김정희”
가슴 저린 삶과 눈부신 작품 세계, 그와 연관된 담론을 총망라한 평전

추사 김정희는 굴곡진 삶을 넘어 자유자재한 예술의 경지에 올라 ‘추사체’로 대표되는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인물로, 이제는 신화가 되었다. 추사에 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시와 연구가 진행되고, 충청남도 예산군 추사기념관·제주도 대정면 제주추사관·경기도 과천시 추사박물관 등이 세워져 추사 김정희 신화가 얼마나 큰 영향력과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지 실증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 평전』은 미술사학자 최열이 신비의 숲으로 뒤덮인 추사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최열은 앞서 20세기의 천재 이중섭의 삶과 작품을 다룬 『이중섭 평전』을 집필한 바 있다. 대향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치밀하게 살피고 생의 진실을 오롯이 복원하여, 2014년 출간 당시 전문가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 호응을 얻었다. 이번에는 19세기 천재 김정희를 찾아서 긴 여행을 떠난다. 탐정 소설 같은 흥미진진한 전개는 독자가 마치 추사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듯 몰입하게 한다. 지은이는 김정희의 언행과 작품은 물론이고 그와 마주친 이들, 그를 탐구한 이들의 기록을 정밀하게 추적하여 삶과 작품의 실체를 밝혀 나간다.
이 책은 추사 탄생과 사망 관련 신화부터, 출생지의 진실, 추사 사문과 사제 관계의 실상, 북경행 및 옹방강과의 만남에 연관된 논의, 박제가·옹방강·완원·자하 등 문하 및 스승 관련 논의, 추사체의 탄생과 개화 및 시기별 작품 설명, 금석학 연구와 실사구시론, 난초화법과 문자향 서권기 등 예술론, 「세한도」와 「불이선란도」에 얽힌 이야기, 초의·심희순·이상적 등과의 교유, 기유예림 및 신해예송에 관한 사연, 백파와 관련한 논쟁, 김정희 초상 목록과 출전, 사후 인식사와 제자 증가의 실체, 추사 김정희 문집 편찬사 등 추사 김정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선명한 도판과 도표, 세심한 자료 및 충실한 해설로 온전히 담아낸 책이다. 지은이 최열은 추사의 언행을 생생히 전하는 동시에 추사에 관한 담론을 총망라하여 추사 김정희의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1,096쪽의 방대한 텍스트는 서술의 맥락과 출전을 꼼꼼히 밝혀 깊이 있고 신뢰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250여 컷의 풍부한 도판은 추사의 예술 세계를 온전히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고, 「세한도」, 「불이선란도」, 「불광」, 「판전」 등 추사 김정희 주요 작품을 보여 주는 세 장의 특별 면은 지은이가 엄선한 작품을 더 큰 스케일로 접할 수 있게 하여 다채롭다. 참된 학예주의자로서 예술과 학문을 혼융하여 새로운 경지로 나아간 추사 김정희의 가슴 저린 삶과 눈부신 작품 세계, 그리고 추사를 연구한 이들의 기록까지, 이 모두를 충실히 담아낸 최열의 『추사 김정희 평전』은 추사 김정희를 만나고 싶다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책이다.

탄생 설화부터 유배와 격쟁, 교유 관계와 학술 논쟁, 나아가 사후 담론과 인식까지
분명한 근거와 세밀한 출전으로 추사 김정희의 전모를 밝히다

추사 김정희는 출생부터 신화를 품고 태어났다. 어머니 기계 유씨가 추사를 24개월 동안 잉태했다는 소문이 세간을 물들였다. 이와 짝을 이루듯 사망에 얽힌 신화도 따라다니는데, 우봉 조희룡은 추사가 맥이 끊어진 후에도 사흘 동안 글씨를 썼다고 소치 허련에게 보낸 편지에 기록해 두었다. 이렇듯 추사 김정희의 삶은 전설과 신화를 품은 채 신비의 숲으로 뒤덮여 있다. 사후 200년이 가까운 지금도 활발히 논의될 만큼 중요한 인물이지만, 추사의 작품과 생애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최열은 『추사 김정희 평전』에서 추사 김정희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차근차근 짚어 내고 밝히며 추사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간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출생지 논쟁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후지츠카 치카시는 1936년 박사 논문 「이조의 청조문화의 이입과 김완당」에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예산’이라 했고, 일부 연구자는 이 견해를 따라 추사의 고향을 예산이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최열은 흠영의 일기를 토대로, 김정희가 외가인 한양 남부 낙동에서 태어났음을 밝혀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1장) 또한 지은이는 박제가 스승설과 옹방강 스승설의 연원을 밝히고, 자하 문하의 교유와 가학을 바탕으로 김정희가 학문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을 보여 준다.(2장) 특히 자하 신위와 관련해 「연경에 들어가는 자하 선생에게 바칩니다」送 紫霞先生 入燕 원본이 실린 여러 출전을 비교·분석하여 ‘자하 선생’이 ‘자하 전배’로 변조된 과정 및 자하와 김정희의 문하 관계를 꼼꼼하게 밝힌다. 또 옹방강과의 만남은 김정희의 북경행 일정부터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거듭되었는데, 지은이는 실록과 편지 등 사료를 근거로 합리적인 추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박제가, 옹방강, 완원 등이 추사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학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인 시선에서 조망한다. 또한 김정희는 훈고학으로서 실사구시설을 탐닉했고, 학문 방법론은 고증학이었다. 지은이는 실용 경세학으로서 실사구시설을 주장한 홍석주, 김매순의 견해를 함께 제시하여 추사의 실사구시설이 지닌 성격과 계보를 헤아릴 수 있도록 했다.(3장) 그리고 원교 이광사 비판과 백파 삼종선 논쟁 등 김정희의 주요 논쟁을 다루어 추사의 공격법과 논쟁 태도 및 방법론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백파와 추사 사이에 오고 간 문헌은 표로 정리되어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한편 김정희 초상 목록과 출전 일람도 표로 제시되어 있다.(5장, 6장) 교유 관계도 상세하게 보여 주는데, 초의나 심희순의 경우 왕래한 물건의 목록까지 자세히 제시되어 김정희의 관심사와 교유 내용을 엿볼 수 있고, 『예림갑을록』과 관련해서는 기유예림 및 조희룡과 추사 사이의 교류도 확인할 수 있다.(8장, 10장) 추사 생애의 흐름도 단추를 꿰듯 면밀히 파악해 가는데, 제주 유배의 단초가 된 1840년 국문 과정과 유배길 일정, 초의·허련·강위의 제주 방문 시점이 표로 제시되어 있다. 아울러 김정희 편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호남 여행 시기를 밝혀 연보에서 1850년 공백을 채우기도 한다. 또한 1832년 2월부터 1833년 8월까지 젊은 날의 격쟁을 1차, 1854년 2월부터 1856년 2월까지 노년기의 격쟁을 2차라 칭하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한 격쟁의 맥락과 심정도 살필 수 있도록 했다.(5장, 6장)
추사 사후의 담론과 인식사도 중요하게 다루는데, 후지츠카 치카시와 최완수가 지목한 김정희 제자의 증가 추세를 표로 제시하여 그 실상을 밝힌다. 지은이는 추사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정확한 근거 없이 다수가 제자로 편입되었고 그들은 추사와 비교되어 능력 미달자 집단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편 문집 편찬사를 다루며 가족과 제자의 불참과 관련한 의문을 제시하고 김정희 문집 목록 또한 표로 정리했다. 이어서 윤용구, 문일평, 윤희순, 이동주, 최완수, 안휘준, 최열, 유홍준으로 이어지는 인식사의 흐름 속에서 추사 김정희를 보는 시선의 차이를 정리한다. 지은이는 추사 김정희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조선 시대 지식인의 전형이었으며, 학술에서 금석 고증학자로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전인미답의 추사체와 난초화의 혁신을 실현한 천재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19세기 전반기 미술사에서 커다란 봉우리를 이루었고, 추사체 유행과 지역 미술계 형성을 촉발했다고 평가한다.(12장) 이처럼 최열은 문헌과 기록을 일일이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치밀하게 추적하여 추사 김정희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진전된 연구를 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으며, 누구나 수긍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평전을 완성했다.

선명한 도판과 충실한 해설로 만나는 추사의 예술 세계
연구자와 일반 독자가 추사의 사계절을 함께 음미하는 책

이 책이 더 특별한 이유는 추사의 작품 세계를 체계화하고 상세히 해설하여, 추사 예술이 어떻게 발전해 갔으며 그가 이룬 학예의 경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예술론, 미학, 난초화론, 산수화론으로 이어지는 추사 예술론을 검토하고, 추사체를 봄·여름·가을·겨울로 체계화해 변천사를 또렷하게 밝히고 성장과 개화, 만개를 거쳐 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다. 또 예술에 담긴 의미와 정신은 추사 생애를 이해하지 않고는 다가가기 어렵기에 지은이는 생애의 흔적과 예술의 기록을 함께 좇아가며 살핀다.
최열은 특히 제주 시절이 없었다면 김정희라는 이름이 수많은 거장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그저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따라서 제주 시절을 6장과 7장, 두 장에 걸쳐 빈틈없이 다루는데, 독자는 제주 유배 시절의 고뇌와 예술적 성숙 과정을 목도하면서 추사 작품을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추사는 제주 시절에 「세한도」는 물론이고 추사체의 봄을 구가하는 글씨 「의문당」, 「은광연세」, 「무량수각」, 「일로향실」, 「시경루」를 썼고, 그림 「영영백운도」, 「고사소요도」, 「소림모옥도」를 그렸으며, 추사체의 여름날을 알리는 「단연죽로시옥」과 「불광」을 썼다. 또 2차 격쟁을 벌인 무렵에는 추사체의 만개를 증명하는 작품이자 천자만홍의 가을날을 수놓는 듯한 글씨인 「계산무진」, 「사야」, 「백벽」, 「산숭해심」, 「유천희해」, 「죽로지실」을 썼고 뒤이어 삼라만상을 넘나드는 무상의 글씨인 「화법유장」, 「호고유시」, 「오악규릉」, 「무쌍채필」, 「대팽두부」를 썼다. 그리고 생의 끝자락에는 추사체의 겨울날을 드러내는 그림 「불이선란도」를 그려 아내에게 바쳤고, 세련과 질박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판전」을 쓴다. 「판전」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사는 향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한다.(7장, 9장, 11장)
지은이는 「세한도」와 「불이선란도」에 얽힌 담론을 총정리했는데, 「세한도」 제작 시기와 북경 왕복 이후 유전 및 신화화 과정을 명료하게 드러냈고 ‘완당바람’의 허상과 실상을 밝혔다.(7장) 「불이선란도」는 오랫동안 정본의 지위를 지켜 온 임창순의 해석에서 벗어나 이설을 제시하고 다르게 읽기를 시도한다. 「불이선란도」 화제는 원본과 영인본, 해석본 등 세부 도판을 보여 주고 비교하며 다른 관점을 제안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11장) 아울러 「모질도」에 얽힌 사연과 제작 연도를 밝혀 작품을 새롭게 볼 기회를 제공하며, 『난맹첩』의 전작 도판을 싣고 해설하여 추사 양식의 구조와 본질 및 기능을 밝히고 ‘모순의 지배’와 ‘편파 구도’라는 키워드로 추사 작품 조형의 비밀을 밝혔다. 또 추사의 주요 인장을 보여 주어 김정희 전각의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이 외에도 한글 편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필묘결 음양획법”으로 압축되는 서법론, 「선면산수도: 황한소경」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산수화론, 인품론과 연계한 난초화론 및 필묵법, 문자향 서권기 등 예술관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3장, 8장, 9장, 10장)
이 책은 생애사의 맥락과 작품 상세 해설, 세부 도판을 곁들여 미술 전문가나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그를 둘러싼 담론을 폭넓게 이해하고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제주 유배와 북청 유배, 초의 선사와의 신분을 넘어선 우정, 아내와의 절절한 편지, 선연과 악연, 두 시기에 걸친 격쟁, 사후 추모와 인식사 등 추사 삶에 얽힌 이야기가 작품 및 서법, 담론에 관한 자세한 해설과 어우러져 읽는 재미를 더하고 추사 해석의 지평을 확장한다.

미술사학자 최열의 평생에 걸친 탐구와 소명을 담아낸 『추사 김정희 평전』
‘사사무은’과 ‘술이부작’의 정신으로 개척한 추사 연구의 새로운 영토

『추사 김정희 평전』은 최열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광주 계림동 헌책방 거리에서 우연히, 운명처럼 마주친 잡지 《아세아》에서 이동주의 글을 만난 뒤 평생의 탐구와 10여 년에 걸친 집필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지은이에게 감탄을 자아낸 「세한도」와 『난맹첩』 그리고 ‘추사체’라 불리는 글씨를 이룩하기 시작한 때가 제주 유배 시절이었음을 깨우친 최열은 추사가 유배를 떠나던 해 나이가 쉰다섯 살임에 착안하여, 그 역시 쉰다섯 살이 되던 해에 『추사 김정희 평전』 집필에 착수했다. 사람들이 물었다. 최완수의 『김추사연구초』 이래 허영환의 『영원한 묵향』이 있고, 유홍준의 『완당평전』이 있는데 왜 『추사 김정희 평전』을 쓰고 있냐고. 그때마다 지은이는 답변했다. “내 평생 너무 많이 쌓여서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한 것들’과 쏟아 내고 싶은 ‘질문들’을 글로 토해 낼 뿐이라고.” 스승을 섬기는데 의문을 숨길 수 없다는 ‘사사무은’의 정신과 성인의 말을 전할 뿐 나의 학설을 지어내지 않는다는 ‘술이부작’의 태도로 긴 숙성 과정을 거쳐 써낸 글인 만큼 거의 모든 사실을 가장 충실하게 제시하고, 출전을 명징하게 밝혀 정리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최열은 이전 연구를 극복하거나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성과를 충실히 따르면서 연구사의 새 지평을 열고자 했다. 이러한 태도로 집필에 임해 기존에 정리되지 않은 추사 김정희 삶과 작품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고, 지은이가 목적한 바대로 완전히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 냈다. 최열은 높낮이가 다른 땅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추사 김정희 인식사의 이정표를 썼다.
중후하지만 수려한 필력으로 추사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추사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을 기록한 『추사 김정희 평전』은 1,000쪽이 넘는 묵직한 책이지만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을 새긴 아름다운 표지 장정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최열의 전작인 『이중섭 평전』과 나란히 두면 장서가를 충족시킬 만큼 묵직하면서도 아름다운 걸작이다. 최열은 추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축복이라고 말한다. 서법가들은 물론이고 많은 미술인에게 추사 김정희는 존경의 대상이고, 애호가들에게는 가슴 설레게 하는 매혹의 선율이며, 또한 미술을 모르는 이들에게조차 그 이름은 눈과 귀를 사로잡고 마음을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월이 흐를수록 다함없는 경지에 도달하여 극한의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그래서 지은이는 오늘날 추사 김정희란 이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추사 김정희 평전』은 추사 김정희가 사망하고 꼭 100년 뒤에 태어난 학자 최열이 미술사학자로서 추사의 실체를 담아내겠다는 소명을 지닌 채 고된 연구와 기나긴 작업 과정을 견디며 고집스러운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