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역사이야기 (독서)/1.인천이야기

달동네 - 끈질긴 삶터

동방박사님 2023. 1. 14. 19:27
728x90

책소개

이 책은 달동네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서가 아니다. 인천 달동네 주변으로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주워모아 오래된 골목 산책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책이다. 지금 달동네를 추억한다는 것은 고생한 시간들을 반추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속도에 지친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부수고 없애야 한다고만 여겨지던 낡고 허름한 동네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 게으른 산책자의 느린 걸음으로

1부 그때 우리는
달동네의 탄생
인천 달동네 소사(小史)
이광환 일기와 모던 보이의 나날
서민들 최고의 오락거리, 영화
똥고개, 황금고개가 되다
바람 분다, 지붕 잡아라
달동네와 여공의 눈물
화수동의 옛 공장 기숙사들
소설 속 달동네, 중국인 거리와 괭이부리마을
영화 속 달동네, 건달의 신포동 소녀들의 만석동

2부 살아 있는 과거를 만나다
북성포구와 만석부두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화수동 쌍우물길
송림동 달동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인천의 첫 번째 쇼핑몰, 중앙시장
수도국산 주변의 시장들
우각로에서 배다리까지

3부 달동네 사람들
남기영 할아버지
김순자 할머니
오정신 사장
박정양 사장
박철원 회장
유동훈 선생
박혜민 학생

에필로그 :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는 가능한가?
 

저자 소개

저자 : 김은형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수도국산 아랫동네에서 태어났다. 인천 이 동네 저 동네를 이사 다니며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97년 한겨레 신문사에 입사해 문화부, 경제부, 한겨레 21부, 주말판팀 등에서 일해왔다.
기획 : 인천문화재단
문화의 길 총서 기획을 담당했다. 문화의 길 총서는 역사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그려 가는 새로운 문화지도이다. 지역에서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조명하는 기획을 통해 지역문화의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점검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생활사의 근거지로서 지역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한다.
 
 

책 속으로

엄밀하게 말하면 달동네는 도시 빈민층의 주거 밀집 지역이지만, ‘달동네’라는 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빈민촌이나 그 동네의 보편적인 주거 형태를 일컫는 판자촌과 어감이 사뭇 다르다. 분명 도시 빈민의 거처임에도 ‘빈민’이라는 냉정한 단어보다는 ‘서민’이라는 좀 더 포괄적이고 느슨한 말이 어울려 보인다. ‘달동네’라는 말에는, 계급적ㆍ동시대적 의미보다는, 달이 가까운 산동네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던 지난 시절에 대한 함의가 더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p.20

집단적 기억이 되어 버린 달동네의 생활문화는 도시 문화 가운데 주요한 영역이 되었고, 도시민속학에서도 다루어야 할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달동네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삶의 흔적도 아니며, 하루 빨리 개발의 메스를 가해야 하는 도시화의 상처도 아니다. 시각을 달리하면 달동네는 타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도시 정착의 흔적’이자 도시가 만들어 낸 ‘기층민의 생활문화 터전’으로 바라볼 수 있다.(유승훈, 〈도시민속학에서 바라본 달동네의 특징과 의의〉, ≪민속학 연구≫ 제25호)--- p.25

건축적으로 보면 달동네는 불량 주택들이 모여 있는 불량 주거 밀집 지역이다. 〈인천 지역 전통 주거 건축물의 평면 및 배치 유형에 관한 연구〉(손장원ㆍ차동원, ≪인천학 연구≫ 4호, 2007년)에서는 우리나라 불량 주거지 형성의 역사가 일제강점기의 농민 수탈 정책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 이후 급격하게 추진된 경제개발 정책으로 더욱 심화되었다고 분석한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피난민들과 폭격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에 의해 형성된 이른바 ‘판자촌’이 도시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송림동 송현동 송월동 용현동 십정동 등지에 집중적으로 불량 주거지가 만들어졌다.--- p.69

영화와 소설 등 인천을 담은 주요 예술 작품들에서 인천은 가난한 사람들, 밀려난 이들의 거처다. 물론 인천에도 일제강점기부터 부촌으로 알려진 율목동을 비롯해 서울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없는 게 없었다는 신포시장 등 영화를 누렸던 곳들도 있고, 중앙시장 등에서 자수성가로 부를 일군 사람도 많을 터이다. 그럼에도 인천의 지역성은 가난한 노동자, 떠돌이, 변방 등의 아웃사이더적인 단어로 요약된다. 강화도조약, 제물포조약 등 외세가 들어올 때 관문이 되었던 곳이 인천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인천은 그 역동성과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주변부로 자리매김을 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부둣가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인천 사람이 되어 버린 사람들로 인해 형성된 뜨내기 정서가 뿌리를 내렸다. 이런 정서는 피난민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서울에 입성하는 데 실패한, 일이 잘 풀리면 인천을 벗어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의 임시 거처’라는 그림자를 인천에 드리웠다.--- pp.99-100

최근 몇 년 새 부쩍 인기를 누리게 된 도시 여행 방식은 오래된 골목 산책이다. 낡은 것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올라가는 빌딩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들, 넘치도록 번잡하고 화려해지는 도심의 불빛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반작용으로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이는 어떤 세계,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 어떤 공간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창신동은 대형 전시의 주제가 될 정도로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되었고, 통영의 산동네 동피랑과 부산의 감천동 문화마을은 지역 대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인천의 북성포구도 그런 곳 중 하나다.--- pp.119-120

수도국산은 지금의 수도국산박물관을 기점으로 송현동과 송림동으로 나뉜다. 2000년대 들면서 단순히 행정상의 구역뿐 아니라 외관도 뚜렷하게 갈라졌다. 송현동 쪽 윗동네 대부분은 판잣집이 헐리고 대단위 아파트인 솔빛마을이 들어섰다. 그러면서 꼬불꼬불한 골목과 낮고 허름한 집들이 만들어 내던 공간적 리듬이 산산조각 났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는 시각적으로 당혹스럽다. 높은 곳에 짓는 더 높은 건물은 위압적이고 이질적이다. 주변과의 조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처럼 보인다. … 개발은 곧 고층 아파트라는 도식이 생긴 지 불과 반세기도 안 되었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유전자로 사람들의 생각 속에 뿌리박힌 것 같다.--- pp.151-152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만 된 채 십여 년 동안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빈집들이 늘어나고 빠른 속도로 사람 사는 동네의 온기가 빠져나갈 때, 김 씨 유 씨 부부 같은 지역 예술인들이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빈집들을 직접 수리해 입주하고 마찬가지로 주변 다른 빈집들을 도서관, 공방, 게스트하우스 같은 시설로 바꾸면서 동네 사람들과 외지인들의 관심까지 모으기 시작했다. 동네 외관이 환해지고 벽화를 배경으로 브이 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이 늘어나면서 우범지대, 무서운 동네라는 별명도 사라졌다.--- pp.198-199

“사람들이 오며 가며 들어와서 사진 찍고 가. 애들한테 보여 준다고.(웃음) 유정복 시장 같은 송림학교 나온 양반들이 지나가다가 들어와서 학교 다닐 때부터 하던 분이라고 인사하고, 그냥 갈 수 없으니까 조그만 솥 하나씩 사 가고 그러지. 하도 장사가 안 될 때 딱 한 번 때려치울 생각을 한 적 있어. 독쟁이시장에서 그릇이나 상을 팔려고 가게까지 마련했었어요. 그런데 동네 친구들이 어딜 가냐고 못 가게 말려서 주저앉았어, 정에 못 이겨서. 이제는 어디 갈 생각도 못 하고, 그냥 이 자리에서 이 장사 하다가 끝나겠지. 애들도 다 다른 일 하고 장사가 잘되는 게 아니니 물려받으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고, 몸이 아프거나 영 못 하겠으면 그때 접어야지.”--- pp.234-235

“아파트라는 곳은 너무 삭막해. 옛날 그 동네 살던 사람들은 가난해도 인정이 좋았어요. 근데 아파트 사람들은 내 삶만 생각하지, 타인을 배려하는 게 전혀 없어. 아무런 인정머리가 없는 거지. 젊은 사람들이 애 안고 가면 내가 먼저 애기한테 인사라도 해야지, 절대로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어. 또, 요새는 애들도 귀엽다고 함부로 쓰다듬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옛날에 먹고살기 힘들었다, 험했다 해도 참, 세상이 점점 못돼지는 거야.”--- p.245

“동구에는 송도나 청라에 없는 게 딱 하나 있어요. 고향. 짐승도 회귀본능이 있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라난 곳, 자기 뿌리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거든. 그게 원도심 문화인 거고. 내 생각에 동구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우선 집수리도 하고 구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게끔 해야 해요. 한꺼번에 갈아엎을 생각 접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보존하고 복원하고, 거기에 담긴 스토리들을 형상화하고, 이런 작업들을 이제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는 걸 사람들이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한다구.”--- pp.252-253

“공부방 초기에 오기 시작해서 벌써 마흔 가까이 된 친구도 있어요. 멀리서 일을 하거나 사정이 있어서 찾아오지는 못하지만 제일 힘들 때, 제일 좋을 때 공부방이 생각난다고 해요. 뿌듯하다기보다는 이 공간이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인 거죠. 힘들 때 돌아오고 싶은 집 같은 곳일 수도 있고. 기찻길옆작은학교에 대해서 듣고 방문 온 분들 중에 ‘이렇게 열심히 하시니까 훌륭하게 된 분들도 많겠어요?’ 이런 질문들 하시는데, 훌륭해진다거나 성공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교사가 되든 공장 노동자가 되든, 이 아이들 덕에 우리 가치관을 지킬 수 있었던 거고 걔네들한테도 그런 게 남아 있을 테니, 그게 우리가 공부방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p.265

윤 씨가 반복해 강조하는 이야기는 인천 원도심 활동가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 살리기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벽화가 대유행이다. 그러나 도심의 때깔 바꾸기만으로는 지속이 절대 불가능하다. 예술 작품이 몇 개 들어섰다고 그 공간에 사는 주민들에게 일찍이 없던 애정이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밑바탕이자 기본은 소통과 공감이다. 추진하는 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충만한 측은지심과 재생, 즉 다시 일어서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하는 낮은 마음이다. 사실, 마을 만들기의 모든 사업은 복지의 개념에서 출발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맞다.”
--- p.294
 

출판사 리뷰

다양한 관점에서 인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길〉총서 열한 번째 책. 인천 출신 신문기자 김은형이 ‘달동네’를 창으로 삼아 인천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달동네, 오래된 장소의 새로운 이야기

건축적으로 보면 달동네는 불량 주택 밀집 지역이다. 우리나라 불량 주거지 형성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의 농민 수탈 정책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 이후 급격하게 추진된 경제개발 정책으로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잃거나 고향을 떠난 사람들, 가난해서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여유가 없던 사람들은 도심 외곽의 산비탈에 비바람이나 겨우 가릴 게딱지만 한 오두막을 이어 붙였다.

빈민촌, 판자촌은 그런 주거지를 가리키는 이름들이고, 달동네도 그렇다. 하지만 ‘달동네’라는 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빈민촌’이나 그곳의 보편적 주거 형태를 일컫는 ‘판자촌’과 어감이 사뭇 다르다. ‘달동네’라는 말에는, 계급적ㆍ동시대적 의미보다는, 달이 가까운 산동네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던 지난 시절에 대한 함의가 더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지난 시절이란 무엇이었나?

인천의 달동네, 그 미로 같은 오래된 골목들을 걷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저자는 ‘공동’의 생활 체험과 ‘가난이 낳은 개방성’에 주목한다. 생활 기반 시설이 태부족인 곳에서 살던 그들은 공동 수도와 공동 화장실 앞에 줄을 서야 했고, 공중목욕탕을 함께 이용해야 했다. 좁은 공간 탓에 살림살이는 밖으로 나왔고, 이웃들은 옆집 사정을 서로 훤히 알고 지냈다. 이러한 주거 환경이 달동네 특유의 생활문화를 낳았으니, 공동체성이 그것이다.

개발 연대에 달동네는 잊혀야 할 과거로 치부되었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삶의 흔적, 하루 빨리 개발의 메스를 가해야 할 도시화의 상처로 여겨진 것이다. 수많은 달동네가 철거되고 아파트가 그 자리를 채웠다. 개발의 광풍이 한풀 꺾인 요즈음, 달동네는 또 다른 변화의 물결에 직면하고 있다. 오래된 골목 걷기가 도시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되고, 통영의 동피랑마을과 부산의 감천동 문화마을처럼 몇몇 달동네는 지역 대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벌이는 ‘마을 만들기’ 사업과도 맞물린, 달동네의 이러한 변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자의 시선은 다소 회의적이다. 최근의 변화가 달동네 주민의 입장에서, 그들을 주체로 세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지향하는 바도 불분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달동네 특유의 공동체성을 오늘에 맞게 되살리는 것, ‘지속 가능한 마을 만들기’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마을 활동가의 말을 빌려, 그 방법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을 만들기의 모든 사업은 복지의 개념에서 출발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문화의 길’ 총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겨레출판이 손잡고 펴내는 새로운 역사/문화 총서. 인천은 ‘근대의 관문’이라는 도시 형성의 역사적 기원으로 인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안게 되었고, 이후의 성장 과정에서 다른 지역/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특한 지역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문화의 길’은 오늘의 지역, 지역성, 지역문화를 이룬 그러한 역사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그려 가는 새로운 문화지도이다. 역사와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함은 지역사와 한국사의 맞물림, 특수성과 보편성의 연결 지점들을 탐색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조명하는 기획을 통해 지역문화의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점검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생활사의 근거지로서 지역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인천’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한국 근현대의 초상화가 바로 ‘문화의 길’ 총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