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역사이야기 (독서)/1.인천이야기

세월을 이기는 힘 - 오래된 가게

동방박사님 2023. 1. 1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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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양한 관점에서 인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길] 총서 아홉 번째 책. 지역 사정에 밝은 경인일보 기자 정진오가 ‘오래된 가게’라는 창을 통해 인천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목차

프롤로그
이야기가 쌓여 역사가 된 곳들을 찾아서

· 흑백으로 남은 세월의 나이테, 교동사진관
· 최고령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 인일철공소
· 한국 화교 백 년의 꿈, 복래춘
· 섬 막걸리의 진수, 북도양조장
· 대를 잇는 새우잡이, 한대경 선장
· 백 년 항구의 기억, 인천선구(船具)
· 짠물 인천의 몇 안 남은 소금밭, 시도염전
· 평화로운 가위질 소리, 뒷골목 이발소 신광이발관
· 건어물 사십오 년, 영신상회
· 인천의 향기 그윽한 우봉다방
· 인천 양복계의 간판, 이수일양복점
· 생선 냄새 스민 소래포구 일억원얼음집
· 대한민국 사이클의 산 역사, 이홍복 할아버지의 자전거포
· 한국 해양의 물결 넘실대는 곳, 디에이치조선
·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맏형, 집현전

에필로그
도서관이었고 박물관이었고 문화재였다
 

저자 소개

저자 : 정진오
경인일보 기자. 1968년 음력 7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생가가 바라보이는 시골 중학교에 다녔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10리 길, 높다란 고갯마루에 서 있던 월남 공덕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충남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인천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0년 경인일보에 입사해 여태 일하고 있다. 입사하자마자 먼저 있던 기자들이 쓴 기획 시리즈를 책으로 묶는 작업에 ...
 
책 속으로
· pp.6~7: 오래된 가게 이야기로 인천이라는 도시를 말하고자 하였다. 그 가게들로 인천의 도시 특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간 가게들에서는 바다, 전쟁, 실향, 미군, 일제, 화교, 공장 등의 특징이 도드라졌다. 그것들은 섞일 듯 섞이지 않았다.
그랬다. 인천에서 한 가지만 하면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서는 저마다 다른 냄새가 났다. 그들은 그렇게 다른 색깔로 인천을 그려 왔다.([프롤로그]에서)

· pp.28~29: 김두호 할아버지가 타는 차며 오토바이며 다 오래된 것들이다. 사륜구동 차량은 1990년에 현금 1,100만 원을 주고 산 것이다. 24년째 탄다. 오토바이는 아직도 ‘경기도’ 번호판이 붙었다. 강화도가 경기도에서 인천으로 편입된 지가 2015년이면 20년이다.
문을 연 지 50년이 넘은 교동사진관에서는 아직도 카메라 셔터가 터진다. 주로 증명사진이다. 즉석에서 사진을 빼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에는 그런 필름을 구하기도 어렵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서울 가서 즉석 필름 100명분을 사 왔다. 이제 한 40명분 남은 것 같다.([흑백으로 남은 세월의 나이테, 교동사진관]에서)

· pp.35~36: 농사를 짓건 공장을 돌리건 갯벌에서 조개를 캐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연장이다. 그 연장을 만드는 곳이 대장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장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대장장이는 늙어 가고 일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자꾸 문은 닫는데, 다시 열 사람이 없다. 대장간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다. 기본이 사라지고 있다.([최고령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 인일철공소])

· p.58: 중국인들에게는 과자와 빵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설 명절에 쓰는 과자가 다르고, 추석 때 쓰는 게 다르다. 또 정월 보름, 단오, 칠석, 결혼, 어른 생신 때마다 제각각의 과자가 있다. 한국 화교 사회에서는 복래춘이 가장 유명한 집으로 꼽힌다. 중국 전통 방식을 지켜 가며 온갖 과자며 빵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 화교 백 년의 꿈, 복래춘]에서)

· p.78: 강화도의 오래된 기와집을 옮기어 지었다는 시도의 술도가에 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10분이면 신도선착장에 닿는다. 그리고 신도는 시도와 연륙교로 이어져 있다. 그 북도양조장에 가면 아주 오래된 옹기에서 아직도 그렇게 술이 숨 쉬고 있음을 맛볼 수 있다. 북도양조장은 그 자체로 문화재급이다.([섬 막걸리의 진수, 북도양조장]에서)

· p.80: 젓갈용으로 잡는 젓새우 중에서도 봄에 잡는 것을 오젓, 여름에 잡는 것을 육젓, 가을에 잡는 것으 추젓이라고 한다. 크기로는 육젓이 추젓보다 낫지만, 한대경 선장은 추젓이 작으면서도 싸고 제이 맛있다고 강조했다. 부인 김점임 씨는 육젓과 추젓의 차이를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육젓이 눈으로 먹는 새우젓이라면, 추젓은 맛으로 먹는 겁니다.” 겉보기에 크고 좋아 보이는 육젓이 추젓에 비해 가격이 서너 배나 비싸지만 맛에서는 추젓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장에서 나오는 멋들어진 표현이 아닐 수 없다.([대를 잇는 새우잡이, 한대경 선장]에서)

· p.101: 인천선구의 미쓰비시 금고는 어떤 경로로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일까. 상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서 제작한 것을 인천까지 싣고 온 것인지, 아니면 부평 어느 공장에서 만든 것을 인천선구의 전 일본인 주인이 사들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일본에서 여기까지 싣고 온 것이든 부평에서 만든 것이든, 어느 쪽이든 기분이 언짢기는 매한가지다. 미쓰비시의 군수물자는 직접적인 침략 도구였고, 인천에서 수산업자들에게 팔려 나간 어구와 선구들은 우리 바다의 수산자원을 수탈하는 도구였다. 그 돈을 쓸어 담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간직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 금고가 아닌가. 금고 하나가 미쓰비시의 인천 내력과, 또한 일제의 수산자원 수탈까지를 떠올릴 수 있게 했다.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있는 인천선구는 그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귀중한 존재임에 틀림없다.([백 년 항구의 기억, 인천선구]에서)

· pp.124~125: 천일염(天日鹽)은 한자 뜻 그대로 날씨에 전적으로 의존해 생산한다. 염부들은 해가 뜨거울 때 결정지에 나가 일해야 한다. 허리를 숙이고 쉴 새 없이 고무래질을 해야 하는 염부들은 두 개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싸워야 한다. 머리 위에 내리쬐는 햇볕을 등에 져야 하고, 증발지에 갇힌 바닷물이 토해 내는 햇볕을 얼굴로 받아야 한다. 그 이중의 뜨거움을 견디며 소금을 일구는 염부들의 땀방울은 다른 땀보다 더 짜면 짰지 싱겁지는 않을 터이다.
염부들은 하늘에 기대어 바닷물에 기대어 살고, 우리는 그 염부들의 땀에 기대어 소금에 기대어 산다.([짠물 인천의 몇 안 남은 소금밭, 시도염전]에서)

· pp.130~131: 이원호 사장은 40년 넘게 이발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일화도 많다. 1990년대 초에는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전라북도에 초도순시 나왔는데, 그때 모범 시민 열네 명에 뽑혀 나간 것이다.
“일반인 열네 명하고 도청에 모인 사람이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125명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그중 49명하고만 악수를 하더라고요. 당시 경호 책임자가 하던 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악수할 때 대통령 손을 꽉 잡지 마라, 정해진 사람이 아니고는 입도 열지 마라, 탁자 위로는 손을 올리지 마라, 그런 것이었는데 그 위세가 대단했지요.”([평화로운 가위질 소리, 뒷골목 이발소 신광이발관]에서)

· pp.150~151: 어느 새 날이 어둑해졌다. 할아버지는 일어나 물건 상자의 먼지를 터는 것으로 퇴근 준비를 했다. 일제강점기 유치원 다니던 이야기, 한국전쟁 전부터 남북 간에 크게 벌어졌던 황해도 일대에서의 전투, 어린 나이의 피란 생활, 항구 내에 있던 미군 부대, 인천 과일 시장의 내력, 인천에서의 대우그룹 등 최종림 할아버지의 인생에는 곡절 많은 인천 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었다.([건어물 사십오 년, 영신상회]에서)

· pp.153~154: 차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공간을 다방이라고 정의한다면, 인천시 남구 주안의 우봉다방은 그것이 지나온 이력만으로도 정말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넘쳐 나는 곳이다. 인천에서 가장 오랜 세월 ‘다방’이란 두 글자를 품어 온 곳이기도 하고, 1960~1970년대 인천을 주름잡던 예술인들의 숨결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문화 공간이기도 하고, 법원과 같은 주요 관공서의 이전(移轉)의 역사까지도 끼고 있는 독특한 가게이다. 이렇듯 우봉다방에 얽힌 풍성한 이야기는 인천 도시 변천사의 한 페이지를 훌륭히 장식하고도 남는다.([인천의 향기 그윽한 우봉다방]에서)

· p.176: 이수일 대표는 불과 4년 전인 2010년 12월 아주 특별한 경험도 했다. 당시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제도의 대니 필립(H. E. Danny Philip) 총리의 양복을 직접 만들어 주었다. 서울 롯데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출장을 갔다. 대니 필립 총리의 허리둘레가 58인치를 넘었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국의 총리 옷까지 해 주었다는 이수일 대표의 솜씨를 직접 입어보고 싶었다. 아래위로 맞추기에는 좀 비싼 감이 있어 바지 두 벌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32만 원. 촘촘한 바느질이라든지 편안한 착용감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기성복과 달랐다.([인천 양복계의 간판, 이수일양복점]에서)

· p.180: 2014년 9월, 얼음집이 바쁠 것 같은 여름철을 피하고 추석 연휴까지 지나서 왔다고 했더니, 박 사장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눈치다. 생선과 밀접한 얼음집은 여름이 금어기여서 오히려 바쁘지 않고 9~10월이 성수기라는 것이다. 이때는 140킬로그램짜리 얼음 덩어리 100개를 하루에 소화할 만큼 바쁘다. 직원 세 명이 쉴 새가 없다. 한가한 때를 골라서 온다고 한 게 오히려 가장 바쁠 때 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가 중간중간 수도 없이 끊겼다. 전화통은 불이 났고, 그때마다 얼음 깨는 소리는 어찌나 큰지 얼굴을 마주 대고 있어도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얼음집 인터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처음 알았다.([생선 냄새 스민 소래포구 일억원얼음집]에서)

· p.208: 가게 문을 열고 누군가 물었다. “자전거 바람 좀 넣을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카센터로 가세요. 그거는 자동차 바람 넣는 걸로 해야 합니다.” 다시 하던 이야기를 잇던 할아버지는 불쑥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아까 그 사람, 바람 넣어 줄 걸 그랬나.” 할아버지는 바람을 일으키는 컴프레서 스위치를 켜고 하는 게 귀찮기도 해서 거절한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자전거는 인터넷으로 중국산을 사면서 바람 넣는 것 같은 일은 자전거포에 맡기려는 게 영 마뜩잖다고 했다. 사람을 돌려보낸 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초등학교 앞에 살면 저렇게 마음이 여려질까?([대한민국 사이클의 산 역사, 이홍복 할아버지의 자전거포]에서)

· pp.219~221: 배순태 회장은 인천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저택에서 살았다. (…) 일제강점기 인천의 대표적 정미소였던 가토(加藤)정미소 별장이었다고 한다. (…) 배순태 회장은 그 율목동 별장 터에 가 보자는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사한 뒤 처음이라고 했다. 다세대주택단지로 변해 있었다. 단지 끝 담벼락은 아직 그대로라고 했다.
인천항, 아니 대한민국 항만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 배순태 회장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화수부두에 갔다가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내가 여기 6ㆍ25 끝나고 와서 지금까지 사는데, 저 조선소는 그때도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DH조선의 깊은 내력을. 그 전설이 언제까지나 율목동의 저 담벼락처럼 버티고 서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한국 해양의 물결 넘실대는 곳, 디에이치조선]에서)

· p.236: 지난가을에는 삼성서점이 새로운 주인을 맞아 완전히 면모를 일신했다. 문을 닫기만 하던 헌책방 골목에 새로운 식구가 생긴 것이다. 또한 어린 학생들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최근 몇 년 사이에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고목나무에도 새순이 돋아나듯이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오래도록 활력이 넘쳤으면 좋겠다.([배다리 헌책방거리의 맏형, 집현전]에서)

· p.238: 오래된 가게에는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살아 있었다. 허름할수록, 오래된 것일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모두가 도서관이었고, 모두가 박물관이고 문화재였다.([에필로그]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다양한 관점에서 인천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문화의 길] 총서 아홉 번째 책. 지역 사정에 밝은 경인일보 기자 정진오가 ‘오래된 가게’라는 창을 통해 인천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본다.

· 기억에서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역사로
가게에는 사람이 오가고 물건이 드나든다. 그래서 이야기가 많다. 오래된 가게에서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기억의 지층을 이룬다. 저자는 그 기억의 지층을 한 켜 한 켜 들추어 원래의 이야기를 복원하고, 그것을 지역의 역사라는 더 큰 이야기 안에 자리매김하려고 애쓴다.
저자가 주목하는 가게들은 그리 특별한 데가 없다. 사진관, 철공소, 과자점, 양조장, 이발관, 건어물점, 다방, 양복점, 얼음집, 자전거포, 헌책방. 어느 동네에나 으레 한둘쯤 있을 법한 가게들이다. 새우잡이 배, 선구점(船具店), 염전, 조선소 정도가 색다른데, 이는 항구도시 인천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가게뿐 아니라 그 주인들도 그리 특별한 데가 없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이다. 어린 나이에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했고, 삶의 의미를 돌아볼 여유 없이 온 힘을 다해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그들에게 오래된 가게란 대개는 ‘가업’이 아니었고 생애를 통해 이루어야 할 목표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오랜 고군분투의 결과물일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이 보통 사람들의 보통 가게가 품은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그려 내는 그림은 인천이라는 도시의 특성과 지나온 역사를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들의 이야기에서는 바다, 일제, 전쟁, 실향, 미군, 화교, 공장 같은 공통점이 도드라진다. 모두 인천이 겪은 ‘근대’와 관련된 특징들이다. 그러나 이 공통의 배경 안에서 각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모두 독특한 맛이 난다. 같은 세월도 업종과 주인의 개성에 따라 살아 낸 방식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매 이 책은 한 폭의 모자이크다. 인천에서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 저마다 색깔과 모양을 달리하는 그 조각 그림들이 모여 인천의 삶이라는 큰 그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기억의 소멸에 맞서는 일의 소중함
그렇게 모자이크를 독해해 가노라면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모자이크의 작은 조각들, 오래된 가게가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들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1978년 1월, 저자가 다니는 경인일보(당시 경기신문)에서는 신년 기획기사로 ‘고포(古?) 시리즈’를 연재한 바 있다. 그때 열한 곳의 고포가 소개되었는데, 30년 뒤인 2008년까지 살아남은 가게는 세 곳뿐이었다. 제2의 ‘고포 시리즈’라 할 만한 이 책에 소개된 열다섯 곳 가운데 다시 30년 뒤에도 살아남을 가게는 얼마나 될까?
전망은 밝지 않다. 이 책에는 지난 이야기는 넘치지만, 앞날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오랜 세월 가게를 지켜 온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는 있지만, 뒤를 이어야 할 아들 세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개된 가게 열다섯 곳 가운데 대를 이어 운영하는 데는 네 곳뿐이다. 그 말인즉 현재의 가게 주인들 대에서 가게의 명맥이 끊기기 쉽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리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테지만, 문제는 우리 생활사와 산업사의 소중한 조각들이 시나브로 소실되어 간다는 데 있다.
사회 변화에 따라 소멸해 가는 것들이 그 운명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사회의 한 시절에 관한 그들의 기억마저 소멸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시대에 관한 작은, 하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억들을 되살려 기록으로 남기려는 이 책의 노력은 그래서 더욱 소중해 보인다.



*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문화의 길’ 총서

인천문화재단과 한겨레출판이 손잡고 펴내는 새로운 역사/문화 총서. 인천은 ‘근대의 관문’이라는 도시 형성의 역사적 기원으로 인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안게 되었고, 이후의 성장 과정에서 다른 지역/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독특한 지역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문화의 길’은 오늘의 지역, 지역성, 지역문화를 이룬 그러한 역사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그려 가는 새로운 문화지도이다. 역사와 네트워크에 주목한다 함은 지역사와 한국사의 맞물림, 특수성과 보편성의 연결 지점들을 탐색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조명하는 기획을 통해 지역문화의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점검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생활사의 근거지로서 지역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인천’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한국 근현대의 초상화가 바로 ‘문화의 길’ 총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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