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역사이야기 (독서)/10.오키나와

오키나와를 읽다 (2017) - 전후 오키나와 문학과 사상

동방박사님 2023. 4. 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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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키나와 담론의 전형화, 정형화의 메커니즘을 전후 오키나와 문학을 통해 점검한 책

이 책에서 검토한 전후 오키나와 문학 작품 및 담론들은 질서정연한 오키나와 담론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실정적 오키나와에 임전하고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부에서는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에서 벌어졌던 오키나와 표상과 서사의 항쟁들이 어떠한 가능성을 낳았고 또 어떠한 한계를 노정시켰는지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언어, 신체(젠더), 사상(천황제)을 매개로 하여 전후 오키나와가 직면했던 주요 국면과 쟁점들을 점검하려 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오키나와에 산재하는 서로 다른 복수의 인자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1부 시선과 담론
‘오키나와’를 말하는 정치학
- 히로쓰 가즈오『떠도는 류큐인』이 제기하는 타자 표상의 문제
1. 항의와 해명 사이의 ‘떠도는 류큐인’
2. ‘구제’와 ‘결여’의 오키나와
3. 오키나와 문제의 외재화, 혹은 탈정치화
4. 다시 소환되는 ‘떠도는 류큐인’
5. ‘멸망해 가는 류큐 여인’의 항변

시마오 도시오와 남도
- 타자 서사와 야포네시아적 상상력
1. 시마오 도시오의 ‘야포네시아Japonesia’
2. 남도에 대한 정념과 ‘징후’적 발견
3. 오키나와 반복귀론과 탈국가론 사이
4. ‘낯간지러움’과 타자 서사
5. 타자성 사유와 야포네시아

‘오키나와 문학’이라는 물음
- 사키야마 다미『바람과 물의 이야기』의 방법
1. ‘공모’라는 문법
2. 본토의 승인-아쿠타가와상과 전후 오키나와 문학
3. 전도된 시선
4.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법
5. ‘불가능’이라는 방법

2부 사상과 신체
일본어 문학의 자장과 전후 오키나와의 문학 언어
1. 오키나와의 일본어 문학
2. 문학 언어로서의 오키나와 방언
3. 사키야마 다미의 ‘섬 말’이라는 방법
4. 언어의 정치/정치의 언어

죽음에 임박한 몸들
- 마타요시 에이키의 초기작 읽기
1.『돼지의 보복』 이전의 마타요시 에이키
2. A Sign Bar의 장소성
3. 죽음으로 향하는 자, 그들만의 ‘공감’
4. 상관하는 ‘성性’
5. 침묵의 목소리, 저항의 몸

금기에 대한 반기, 전후 오키나와와 천황의 조우
- 메도루마 슌의『평화거리로 불리는 길을 걸으며』를 중심으로
1. ‘천황’이라는 이름의 금기
2. 꿈속에서조차 불가능한 이야기
3. 전후 오키나와와 천황의 조우
4. 메도루마 슌의 응전-전쟁을 사는 몸, 우타
5. 지역의 시차時差와 시차視差
6. 환역에 자폐하지 않는 힘

3부 지역과 세계
역사적 트라우마와 기억 투쟁
- 사키야마 다미 『달은, 아니다』
1. 일본군 위안부, 그 재현과 기억
2. ‘말하는’ 사람과 ‘쓰는’ 사람
3. ‘읽기’라는 행위
4. ‘이방인’, 혹은 ‘유령’의 자리
5. ‘, 아니다’

두 개의 미국
- 오키나와 아메리칸 빌리지를 둘러싼 표상 정치
1. 국도 58호, 문화적 양극성의 경계
2. 상상된 미국
3. 기표와 기의의 분리
4. 또 다른 아메리칸 빌리지-오시로 다쓰히로『칵테일·파티』
5. 공간 재현과 재현 공간, 그 사이
 
저자 소개
저자 : 조정민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 일본 규슈대학에서 일본 근현대문학 및 문화연구를 전공하였다. 패전 후의 전후문학이 연합국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하였는가에 대해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점령 서사-미국에 의한 일본점령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2009)를 출간하였다. 최근에는 일본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적 상황과 맥락을 염두에 둔 지역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동아...
 

출판사 리뷰

예외적 장소, 오키나와

지도상의 오키나와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결하면서 태평양과도 맞닿아 있다. 중국 대륙을 향해 부챗살처럼 펼쳐진 이러한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미국은 지금까지도 오키나와를 미군의 전진 기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류큐 처분’ 이후 오키나와가 경험한 절망적이고 불편한 시간들, 예컨대 오키나와 전투와 미군정의 시기, 그리고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미군기지와 관련된 사건 사고 등은 관광입현(觀光立縣)이라는 구호와 함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에 가려 후경화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행한 과거의 전시가 또 다른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한다.

일본 본토보다 대만, 중국과 더 가까운 오키나와의 지리적 의외성은 도쿄로 대변되는 일본을 상대화하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 일본의 전후 문학자 시마오 도시오[島尾敏雄]는 일본을 뜻하는 라틴어 ‘Japonia’에 군도를 가리키는 라틴어의 어미 ‘nesia’를 붙여 ‘Japonesia’ 즉 ‘일본 군도’라는 조어를 만들었는데, ‘야포네시아’라는 말을 굳이 고안한 것은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남태평양에 펼쳐진 군도로 존재하는 일본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본토 중심 혹은 도쿄 중심의 단일성의 정치를 처음부터 부정하기 위해 강구된 방법으로, 일본을 남태평양의 여러 군도와 조우시킴으로써 일본의 중심성을 분산시키고자 한 시도였다. 이때 류큐, 즉 오키나와는 야포네시아의 뿌리로서 일본의 틀을 뒤흔드는 사상의 입각점이 되기도 했다.

일본 열도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키나와는 그 지리적 특수성과 예외성으로 인해 관광입현과 미군기지의 섬, 그리고 야포네시아의 뿌리가 되어 왔고 오키나와에 대한 이 같은 규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키나와의 예외적이고 희소한 경험은 국가(일본, 본토, 중앙)란 무엇인가, 내부 식민지 오키나와의 경험은 아시아와 어떻게 공유될 수 있는가, 미국 중심의 세계 지배 시스템 속에서 오키나와가 발신할 수 있는 메시지는 어떠한 것인가, 등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현실적 주제가 되어 오늘날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오키나와 담론의 전형화, 정형화를 심문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외적인 장소 오키나와가 가지는 경계적, 혼종적, 미분(未分)적 역동성을 찬탄하며 부재한 것을 억지로 현전(現前)시키려는 시도를 벌이기도 했고, 일본의 혁신을 위한 일종의 방법으로 오키나와를 종종 호명하기도 했다. 오키나와를 경유하는 것만으로 마치 균질화된 본토가 상대화된 양 떠들기도 했고, 오키나와로 말미암아 획일화된 본토에 균열이 일고 심지어 그것이 전복되었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 담론은 본토의 갱신을 위해 오키나와가 철저하게 도구화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중심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변의 탈주를 용인하고 그것을 다시 중심 내부로 회수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오키나와를 영원히 타자화시키고 만다.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은 오키나와를 타자화시키는 담론에 오키나와 스스로 투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발화 지점을 점검하고 예견된 정답을 되풀이하는 오키나와의 자기 서사는 중심이 만든 자화상을 내면화시켜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발적인 타자화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오키나와 담론의 전형화, 정형화의 메커니즘을 전후 오키나와문학을 통해 점검하고자 했다. 1부 『시선과 담론』에서는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에서 벌어졌던 오키나와 표상과 서사의 항쟁들이 어떠한 가능성을 낳았고 또 어떠한 한계를 노정시켰는지 살펴보았다. 본토가 염원했던 오키나와의 풍경, 혹은 오키나와 스스로가 희구했던 자기 서사의 예를 찾아보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규정한 오키나와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지금의 오키나와 담론과 너무나도 흡사해서 시간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집적된 그래서 익숙한 시선의 정치를 짚어보고 그로부터 새로운 오키나와 서사의 지평을 가늠해 볼 수는 없는지 고민해 보았다.

2부 『사상과 신체』에서는 언어, 신체(젠더), 사상(천황제)을 매개로 하여 전후 오키나와가 직면했던 주요 국면과 쟁점들을 점검하려 했다. 오키나와에 여러 모양으로 두루 퍼져있는 말과 몸, 정신은 일본이 지향했던 근대성의 사고와 체계, 이념들로부터 비어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은 다양한 권력 기제들과 만나면서 굴절되거나 포섭되었으며 때로는 영리한 교섭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오키나와가 가진 경험의 지(知)가 근대, 혹은 탈근대 담론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는지 성찰해 보았다.

3부 『지역과 세계』에서는 오키나와에 산재하는 서로 다른 복수의 인자들이 교차하는 지점들에 대해 주목했다.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에 오키나와로 건너와 생을 마감했던 한 조선인 위안부의 목소리를 듣고 또 미국이라는 타자에 항거하면서도 그것을 철저하게 욕망하는 오키나와의 양가성을 읽어보고자 했다. 끄트머리, 말단에서 이루어진 타자와의 조우, 접합은 강렬하고도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그것은 오키나와가 가진 논리와 현실의 엄연한 차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다시 오키나와를 읽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담론의 전형화, 정형화를 넘어선 오키나와 담론이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키나와를, 혹은 오키나와가 듣고 말하고 쓰는 행위 내에는 필연적으로 표상의 폭력적인 지배와 고착화가 수반된다. 오키나와를 둘러싼 간명하고도 즉각적인 서사가 오키나와 주변에 머물러 있던 불분명하고 불투명한 잉여 부분을 일거에 소거한 뒤에 탄생한 것이라면, 다시 우리는 매끄럽지 못하고 군데군데 갈라진 표층에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표상하지 않았던 것, 표상되지 못했던 것, 그리고 표상될 수 없었던 것, 즉 대상과 표상 사이의 끊임없이 불일치의 경험을 전시하고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난 잉여를 부단히 말하고자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오키나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에서 검토한 전후 오키나와 문학 작품 및 담론들은 질서정연한 오키나와 담론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실정적 오키나와에 임전하고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