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중국.동아시아 이해 (독서)/8.몽골제국사

일 칸들의 역사 (2018)

동방박사님 2023. 11. 2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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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권위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명예교수의 역작
러시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집사』의 페르시아어 원본을 번역

몽골제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해서는 제국이 통치한 영역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카안의 울루스가 지배했던 동아시아와 몽골리아는 물론, 서방 삼왕가의 영역이 있던 중앙아시아, 킵차크 초원, 서아시아의 역사와 사회상을 고루 파악해야 최초이자 최대의 세계제국 몽골에 다가갈 수 있다.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완역된 『집사』 한국어판 김호동 역주(譯註)본은 과거 낯선 지역으로 우리를 이끄는 흥미로운 안내서이자 당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현재 우리의 인식과 문화의 지평을 풍부하게 넓혀주는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다.

목차

이 책을 내면서 5
『집사』의 구성표 12

훌레구 칸기 13
아바카 칸기 145
아흐마드 칸기 235
아르군 칸기 273
게이하투 칸기 319

부록
지도 342
참고문헌 344
찾아보기 350
훌레구 일족의 주요 인물들과 칸위 계승도
 

저자 소개

저 : 라시드 앗 딘 (Rashid al-Din)
 
이란 중부의 도시 하마단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익힌 제약과 의술 지식을 바탕으로 몽골 군주 일 칸의 궁정에 출사하여 문관으로서는 최고직인 재상(vaz?r)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일 칸국의 군주를 시해했다는 정적들의 모략으로 처형당했다. 역사학을 비롯해 신학, 식물학, 약학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저작들을 남겼으며, 재상 시절 가잔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집사』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최초의 세계사’로 칭해지고...
 
역 : 김호동 (金浩東)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 『황하에서 천산까지』 ,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몽골제국과 고려』,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한 역사학자가 쓴 성경 이야기: 구약편』 등이 있고, 역서로는 『역사서설』, 『유목 사회의 구조』,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출판사 리뷰

세계제국 몽골이 집대성한 역사학의 고전 『집사』(전 5권), 마침내 완간

라시드 앗 딘이 쓴 세계 최초의 세계사 『집사』의 한국어 번역이 완성되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명예교수는 2002년 『부족지』를 출간한 이래 『칭기스 칸기』(2003), 『칸의 후예들』(2005), 『일 칸들의 역사』(2018)를 거쳐 21년 만에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를 출간하며 마침내 『집사』의 한국어 번역 작업을 마무리했다.

‘연대기의 집성(J?mi? al-taw?r?kh)’이라는 원제목이 시사하듯 『집사』는 몽골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던 여러 군주들의 연대기를 종합하여 서술한 것을 넘어서 중국, 인도, 아랍, 투르크, 유럽, 유대 등 주변 세계 모든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하려 했다. 거대한 세계제국 몽골의 등장은 오늘날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처럼 당대인들에게도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긴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제국의 흥기와 팽창 과정을 중국, 이란, 러시아, 한국, 인도, 이집트 지역의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각기 자기의 언어와 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다양한 언어와 형식으로 기술된 수많은 기록들 가운데에서도 『집사』는 그 정확성과 상세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몽골제국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사’이다. 따라서 다양한 언어와 관점에서 기록된 자료를 섭렵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총합적 연구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중국 측 기록은 중화주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중심에 놓고 몽골제국의 ‘세계성’을 축소하여 그것을 중국 전통 왕조의 하나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 권으로 번역된 라시드 앗 딘의 『집사』 한국어판은 몽골제국사 연구자는 물론 많은 독자들에게 역사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집사』의 구성

제1부 몽골사(일명 『축복받은 가잔의 역사』)
제1권 부족지
오구즈족
몽골화된 투르크족
투르크족
몽골족
제2권 칭기스 칸기
열조기
칭키스 칸기
제3권 칸의 후예들
우구데이 카안
주치 칸
차가타이 칸
툴루이 칸
구육 칸
뭉케 카안
쿠빌라이 카안
티무르 카안
제4권 일 칸들의 역사
훌레구 칸기
아바카 칸기
아흐마드 칸기
아르군 칸기
게이하투 칸기
제5권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
가잔 칸기

제2부 세계 각 민족들의 역사
제1권 울제이투 칸기
제2권 제1편 아담 이후 사도와 칼리프들의 역사 및 지구상 각 종족들의 역사
제2편 본서 완성 이후 전개될 역사
제3부 세계 각 지역의 경역·도로·하천

*현존하는 부분은 제1부 전체와 제2부의 제2권 제1편뿐이다.

13~14세기 최대 규모, 최초의 세계사

『집사』는 일 칸국의 재상 라시드 앗 딘이 가잔 칸의 명을 받들어 집필한 책이다. 그는 재상의 직무를 수행하던 중 칸의 칙령과 후원을 받아 이 책을 집필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라진 ‘원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집사』에는 제국의 확장과 운영에 관하여 다른 어떤 자료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정보가 풍부하게 남아 있다. 라시드 앗 딘은 방대한 정보를 취합하여 몽골제국과 주변 여러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했다. 이렇게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서술은 『집사』 이전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기에 학자들은 이 책을 가리켜 “최초의 세계사”라 부른다. 『집사』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계절출판사에서 출간한 다섯 권은 모두 제1부의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라시드 앗 딘은 가잔 칸의 명으로 제1부를 완성한 뒤 새로 즉위한 울제이투 칸의 명령에 따라 제2부와 제3부를 집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제2부 제2권 제1편의 사본만 전해질 뿐, 나머지 부분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적인 몽골제국사 연구의 시금석

제1권 『부족지』, 제2권 『칭기스 칸기』, 제3권 『칸의 후예들』이 각각 몽골제국의 준비기, 태동기, 세계제국의 최종적 완성기를 다루며, 제4권 『일 칸들의 역사』와 제5권 『이슬람의 제왕-가잔 칸과 그의 시대』는 일 칸국의 군주들이 서아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20세기에 구미 학자들의 주도로 몽골 지배기의 서아시아 역사 연구는 커다란 진척을 이루었다. 반면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의 학자들이 이 분야에 기울인 관심은 극히 미미했다. 근자에 들어서야 비로소 소수의 전문가가 당시의 아랍과 페르시아 사료에 천착하여 연구의 질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 몽골제국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국이 통치한 영역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한국어로 모두 번역된 『집사』가 그 연구의 질적·양적 팽창을 자극할 것이다.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 수준의 완역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은 『집사』를 “불멸의 고전”으로 칭하면서도 페르시아어 원본의 난해함과 분량의 방대함 때문에 선뜻 자국의 언어로 번역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1858년에 러시아에서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이후 한 세기가 지나 소련 학자들이 『부족지』를 보완하여 발표했고, 이어서 20세기 말 김호동 교수가 제1권 『부족지』의 역주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에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색스턴(W. M. Thackston) 교수가 영역본을 출간했다. 지금까지도 러시아어와 영어로만 번역되었을 뿐 몽골사 연구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도 아직 『집사』를 번역하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러시아 번역본을 중국어로 중역하여 출간했을 뿐이다.

14세기 초 페르시아어로 집필된 『집사』의 정확하고 완벽한 번역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좋은 사본(寫本)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투르크-몽골 어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몽골제국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중앙아시아사 연구자인 김호동 교수의 대장정에 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김호동 교수는 주석 작업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여러 사본들을 대조하여 만든 페르시아어 교감본 3종을 번역의 저본으로 삼았으며, 몽골제국 당시에 관한 여러 사서를 참조하고 『집사』와 몽골제국에 대한 전 세계의 최신 연구 성과까지 주석에 반영했다. 또한 투르크-몽골어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페르시아어 원문의 어휘와 문장을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주석에 밝혀서 원문의 난해함과 모호함을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120여 종의 사본을 비교 분석하여 원본을 복원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사계절, 2000)으로 고전 완역의 지평을 연 김호동 교수는 이번 책에서 더욱 철두철미한 준비와 자세로 역주에 임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한국어로 완역된 『집사』는 과거 낯선 지역으로의 흥미로운 안내서이자 당시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사료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우리의 인식과 문화의 지평을 풍부하게 넓혀주는 고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주요 내용

훌레구 칸기


칭기스 칸의 손자이자 톨루이의 아들인 훌레구 칸의 일대기이다. 훌레구가 서방 원정을 나서서 훌레구 울루스의 기초를 형성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이때 서아시아의 칼리프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바그다드 성을 둘러싼 공방전과 함락 과정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바그다드 주변에는 돌이 없었기 때문에 잘룰라와 자발 함린에서 [돌을] 가져왔다. 야자나무를 잘라서 돌 대신 쏘아 던지기도 했다. … 군주가 있던 그 방향에서부터 아자미 망루를 마주하여 몽골군이 서로 경쟁하듯 성벽 위로 올라갔고, 성벽 위에서 사람들을 몰아내었다. 수키 술탄 [성문] 방향에는 [주치 울루스의 장군들인] 발라가와 투타르가 있었는데 아직 성벽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훌레구 칸은 그들을 질책하였다. 그들의 누케르들도 올라갔다. 밤에 동쪽 방향의 성벽 위 모두를 장악하였고, 부교를 맬 때 군주는 바그다드의 위와 아래에 부교를 매고, 배들을 준비하고, 만자니크를 배치하고, 수비병들을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부카 티무르는 1투만의 병사와 함께 마다인과 바스라로 향하는 도로상에 주둔하며, 만약 누군가 배를 타고 도망치면 그것을 제지할 태세로 있었다. 바그다드 전투가 격렬해지고 상황이 주민들에게 어렵게 되자, 다와트다르는 배를 타고 아래쪽으로 도망치려고 하였다. 알 우카브 마을을 지났을 때 부카 티무르의 군대가 만자니크의 돌덩이와 화살과 나프타가 든 유리병들을 던져서 배 3척을 빼앗고 사람들을 죽였다. 다와트다르는 패배하여 돌아갔다. _91~92쪽, 바그다드 공방전의 한 장면.

아바카 칸기

훌레구 칸의 아들 아바카 칸의 일대기이다. 특히 차가다이 울루스의 지배자 바락과 치열한 승부 끝에 승리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바락이 패배를 당하고 강을 건넜을 때 그는 당황하고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여러 일족들을 책망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질책하고 징계할 방책에 대해서 고심했다. 그러다가 그는 몸이 마비되는 병에 걸려서 말에 오르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를 두려워하던 일족과 아미르들은 모두 각자 구실을 대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기 집으로 향하였다. 그런 무리들 가운데 차가다이의 아들인 부리의 아들 아흐마드 오굴이 반기를 들고 자기 군대와 함께 [비시]발릭 방면으로 가버렸다. 바락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나쁜 일을 했단 말인가. 그들은 한동안 나의 행운의 그늘 아래서 열락을 누리고 많은 재화를 모았다. 그리고 일족과 아미르들이 모두 상의하여 우리는 강을 건넌 것이다. 항상 ‘이렇게 혹은 저렇게 힘을 다 바치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전투의 날에 자신의 말을 어기고 도망쳐버렸다. 나를 적군 가운데 말(馬)도 없이 남겨두었고, 이제 내가 병에 걸리니 나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만약 내가 병에서 완쾌되면 그들이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_193쪽, 아바카 칸에게 패하여 퇴각하는 바락.

아흐마드 칸기

훌레구 칸의 아들 아흐마드 테구데르 칸의 일대기이다. 아바카 칸의 아들 아르군과의 권력투쟁 과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왕자들과 아미르들은 왕위에 관해서 상의를 하고 논쟁을 벌였다. 부카는 아르군에게 기울었지만 아룩은 주시켑을, 테게네는 훌라추를 지지했다. 테게네가 말했다. “훌라추는 훌레구 칸의 아들이다. 아들이 있으니 손자들에게 [왕위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자 아룩과 쿠룸시가 말하기를 “대유르트는 주시켑이 보유하고 있으며, 나이로 볼 때에도 그가 형이니 그가 되어야 마땅하다.”라고 했다. 이에 부카는 이렇게 말했다. “온 세상의 군주이자 칭기스 칸 일족 전체의 형이신 카안께서는 이란땅의 여러 지방의 왕위를 자기 형제인 훌레구 칸의 다음에 그의 큰아들이자 특별히 총명하고 완벽한 아바카 칸에게 위임하셨다. 그 뒤로는 상속의 관례에 따라 그의 진정한 후계자인 아르군에게로 가야 마땅하다. 만약 말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는 왕관과 보좌를 그의 자식들에게 주었을 것이며 이 모든 분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주님이 이 분란의 끝이 어디로 갈지 아실 것이다.”

테게네가 거칠고 날카롭게 [말하기] 시작하자 부카는 칼을 빼들고 “내 손이 이 칼에 머물고 있는 한 아르군 이외에 다른 사람을 임금으로 앉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미르들이 텡기즈 쿠레겐에게 “아바카 칸의 유언은 어떠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와 식투르 아카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죽은 다음에는 뭉케 티무르를 임금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르군을 임금으로 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테게네는] 그에게 “너는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느냐? 스스로 지어낸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_267쪽, 왕위 계승에 관한 논쟁.

아르군 칸기

아바카 칸의 아들 아르군 칸의 일대기이다. 다른 왕실 세력과 공신 세력을 숙청하면서 훌레구 울루스 정권의 안정을 다져나가는 과정을 다룬다.

688년 주마다 알 아히르월 초(1289년 6월 말경) 아르군 칸은 수구를룩의 하영지에서 사아드 앗 다울라를 재상으로 임명하였고, 말릭 잘랄 앗 딘 [심나니]의 형제 샤라프 앗 딘 심나니는 바그다드의 미수 세금을 이유로 감금시켰다. 아침에 [말릭 잘랄 앗 딘은] 그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아미르 볼라드 아카와 마주쳤다. 그는 말릭에게 안부를 물었고 그(샤라프 앗 딘 심나니)가 해임된 정황과 그 이유에 대해서 캐물었다. 말릭은 “소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임금께서 한 유태인을 저보다 더 중용하시고 그를 후원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가 즉각 군주의 귀에 들어갔고 [군주는] 볼라드 아카에게 그것을 캐물어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주었다. 군주는 “그를 왜 살려두었는지, 그 잘못은 바로 내게 있다.”라고 말하고, 당번을 서던 테케첵에게 명령하여 가서 말릭을 야사에 처하도록 하였다. 688년 라잡월 18일(1289. 8. 6) 시야흐 쿠흐의 사라이 무자파리야에서 생긴 일이었다. _301~302쪽, 아르군 칸의 공신 숙청.

게이하투 칸기

아바카 칸의 아들 게이하투 칸의 일대기이다. ‘차우’의 발행으로 인한 혼란, 훌레구 칸의 손자 바이두의 반란 등을 주로 다룬다.

샤반월 27일 금요일(7. 23) 아크 부카와 타가차르와 사드르 앗 딘과 탐마치 이낙 등이 차우의 실시를 위하여 타브리즈 방면으로 갔다. 라마단월 19일(8. 13) 그곳에 도착하여 칙령을 공포하고 많은 양의 차우를 준비하였다. 693년 샤발월 19일 토요일(1294. 9. 12) 타브리즈 시내에서 차우를 내놓고 통용시켰다.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받지 않는 사람은 야사에 처할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것(차우)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을 받기만 했지 다른 사람에게 주기는 어려웠다. 타브리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시장에서는 옷감과 식료품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사람들은 과일을 먹기 위해서 과수원들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도시가 완전히 텅 비게 되었고, 깡패들과 부랑배들은 골목에서 누구라도 붙잡으면 발가벗겨 놓았다. 대상(隊商)도 거기서 끊어지게 되었다. 깡패들은 밤에 과수원으로 가는 골목들 끝에 매복하고 있다가, 만약 어떤 불쌍한 사람이 나름대로 술수를 써서 집에 가서 먹으려고 나귀에 곡식을 싣고 오거나 광주리에 과일을 담아 오는 것을 보면, 그것을 강제로 빼앗곤 하였다. _333~334쪽, 차우 발행으로 인한 혼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