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한국역사의 이해 (독서)/9.한국문화

서울에서 만나는 한중연 (2023)

동방박사님 2024. 1. 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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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서울의 시공간을 탐방하는 한중 문화유산 답사기
“그대와 하룻밤 말하는 것이 10년 동안 글 읽는 것보다 낫소.”


명나라 학자이자 서화가로서 조선을 방문했던 사신 예겸은 돌아갈 때까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과 매일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았는데, 특히 정인지와의 각별함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예겸은 안평대군의 글씨 등 조선의 문화를 명나라에 알리는 역할도 했으며, 훗날 한명회의 별서에 ‘압구정’이라는 이름을 지은 인물도 바로 그다. 이처럼 서울 곳곳에는 오랜 시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언젠가 우리가 지나갔던 익숙한 장소일 수도 있고, 예술작품일 수도 있으며, 이야기일수도 있다.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의 인연, 즉 ‘한중연’(韓中緣)이라는 테마로 서울의 시공간을 탐방한 역사기행이자 문화기행이다. 미술사학 연구자인 김민규 박사와, ‘중국 엄마의 딸로 태어나, 한국 딸의 엄마’가 되었다는 취환 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이 함께 썼으며, 중국인 독자들도 이 책을 읽고 서울을 탐방할 수 있도록 한국어와 중국어로 나란히 구성했다.

목차

1. 압구정의 이름을 지은 예겸과 조선 문인들의 시문화답
2.중국 사신의 숙소 황화방과, 교류의 기록 『황화집』
3. 중국 사신 주지번의 문화적 역할: 〈명륜당〉 편액, 〈영은문〉 편액
4.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의 험난한 여행길: 〈조천도〉, 〈항해연행도〉, 〈연행도〉
5. 사신 행차를 그린 청과 조선 화가들의 합작품: 《봉사도》
6.사행길을 따라온 백송
7. 추사 김정희와 유희해의 우정: 〈백석신군비〉와 〈명선〉
8. 글씨를 사랑하는 이들의 인연이 겹겹이 쌓이다: 당 태종 글씨 집자비
9. 추사와 청 문인들의 인장을 수집한 헌종: 창덕궁 낙선재와 보소당인존
10. 안진경체로 쓴 조선 충신들의 비석
11.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의 글씨: 〈명륜당〉 편액과 〈백세청풍〉
12. 한양의 도시 계획과 『주례』
13. 광화문에 그려진 하도낙서
14. 국립중앙박물관의 한(漢) 낙랑군 유물
15. 중국과 고구려의 불상 교류: 〈뚝섬 출토 금동여래좌상〉
16. 명과 조선 장인의 합작품: 동관왕묘의 관우상
17. 동관왕묘에 있는 중국 인물들의 글씨
18. 손오공과 〈원각사지십층석탑〉
19. 임진왜란에 참전한 형개와 양호를 기리다: 선무사와 〈양호거사비〉
20. 천재 조각가 최천약과 동인

저자 소개

저 : 김민규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박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 강사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객원연구원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 『융건릉』, 『조선 왕릉 사전』(공저)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공저), 『조선왕릉 석물조각사』(공저) 「조선시대 능묘비 연구」, 「조선 왕릉 장명등 연구」 「조선 18세기 조...
 
저 : 취환
 
‘중국 엄마의 딸, 한국 딸의 엄마’ 이화여자대학교 정치학 석사 대통령상 세종문화상 수상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사)한중문화우호협회 회장 중국해외교류협회 해외이사 한중문화우호협회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로, 지난 20여 년간 차, 서예, 술, 불교를 주제로 한 교류 행사, ‘한중연 문화대회’, ‘한중연 문화축제’, ‘한중연음악제’, <한중연사> 시리즈를 출판, ‘...

책 속으로

언젠가 맺어질 사람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딸의 엄마로 중국 엄마의 딸’로 한국에서 살아 온 지 어언 30년이 되어 가고 있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나는 늘 유라시아 대륙의 끝자락에 있는 한국이라는 이 나라와, 대륙에서 태어난 나를 운명처럼 이렇게 강하게 맺어 주고 있는 ‘인연의 실’을 느끼고 있다.
--- p.4

예겸은 안평대군의 글씨를 가지고 황제에게 바쳤는데, 황제는 “매우 좋다. 꼭 이것이 조자앙(조맹부)의 서체이다.”라고 칭찬하고, 이후 사신들에게 “그대들은 조선에 도착하거든 중국에 없는 물건을 구해 오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후 오는 사신들은 안평대군의 글씨를 얻고 싶어 하기도 했다.
--- p.30

현재의 압구정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고,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만 그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높은 언덕 위에 큰 기와집으로 지어진 압구정이 있으며, 주변에는 금빛 모래톱과 한가로이 오가는 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멀리 종송(宗松)이 우뚝 솟은 남산이 짙은 녹색으로 그려져 있으며, 주변의 산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 p.38

주지번은 허균과도 친교가 있었는데 그의 누이 난설헌 허씨(1563~1589년)의 시집(詩集)을 중국에서 간행하기도 했으며, 조선에서 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 벽제관에서 「난설헌시집서」(蘭雪軒詩集序)를 짓기도 했다.
--- p.58

추사와 유희해의 교류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명선〉(茗禪)이다. 115센티미터 길이의 큰 종이에 쓴 이 두 글자는 ‘차를 마시며 선정(禪定)에 들다’라는 뜻이다. 추사가 50세 되는 1835년경에 쓴 글씨로 초의(草衣) 의순(意恂)에게 써서 보낸 작품이다.
--- p.96

고려 태조 왕건은 진공대사 충담의 탑비의 비문을 직접 짓고 당 태종의 글씨를 집자해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940년)를 건립하게 했다. 이 〈진공대사탑비〉는 고려 태조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 태종의 글씨를 모아 새겼다는 점에서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물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주장 등이 있다.
--- p.108

낙선재 내부에도 여러 개의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추사의 스승인 담계 옹방강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편액과, 추사가 제주에 유배 중에 써서 보낸 〈길금정석재〉(吉金貞石齋) 편액이 마주 보며 걸려 있었다. 〈길금정석재〉 편액은 제주도에서 만들어 보냈는데 풍랑을 만나 일본까지 떠내려간 것을 다시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p.116

조선에서는 비석 건립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역대 명필의 글씨를 모아서 새기는 집자비가 18~19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 한호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중국 서예가 중에는 안진경의 집자비가 가장 많이 건립되었다. … 특히 정조는 송시열 묘비(1779년), 사육신 묘비(1782년), 이순신 신도비(1794년)를 안진경 글자를 모아 건립하게 했다. 또한 이순신 신도비는 전수(篆首)를 ‘상충정무지비’(尙忠旌武之碑)라고 했으며, 하교하기를, “충신의 비문은 마땅히 충신의 글자로 써야 하니, 안진경의 가묘비를 집자하여 새기도록 하라.”고 했다. 즉 안진경의 글씨는 그의 충절과 동일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 p.126~130

만약 북경에서 종묘와 사직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경의 종묘, 즉 명청의 태묘(太廟)와 사직단은 자금성 내부에 있다. 천안문으로 들어가면 단문(端門)이 나오는데 이 단문의 동쪽에 태묘, 서쪽에 사직단이 있다. 사직단은 현재 중산공원으로 불리어 혼동할 수도 있다. 조선과 명청은 동일한 『주례』를 따라 궁궐과 종묘, 사직단을 건립했지만 조선은 궁궐 밖 동서에, 명청은 궁궐 내부 동서에 배치한 것은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 p.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