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한국근대사 연구 (독서)/2.개항기조선

격동하는 개화기 조선 기행 (2024)

동방박사님 2024. 2. 5.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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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대의 공간과 인물을 찾아 떠나는 근대역사로의 거리 여행’

150여 년 전 구한말, 이 땅에 존재하던 권력 엘리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으며, 어떤 결과를 이루고 떠나갔는가? 멸시받던 이웃 나라 일본이 열강과 겨뤄 세계제국으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이 부족해서 그들의 손아귀에 빠져버린 것일까? 조선의 근대역사는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는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강제 병합으로 조선이 패망하는 1910년에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는 1863년 전후의 역사를 포함하여 1910년까지 서울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인천 제물포까지 찾아보고 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지만, 그 결과물은 지역과 공간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이 거대도시의 미로 속에서, 잊히고 퇴락해 가는 근대의 공간과 인물을 찾아 근대역사로의 ‘거리 여행’을 시작한다.

목차

프롤로그

01. 암흑의 근대

자경전 조대비, 담대한 포석
경복궁 중건, 대원군의 야심
개화의 새벽, 청계천의 선각자

02. 개혁의 선구자

권력 엘리트, 북촌(北村)의 영걸
박규수 사랑방, 근대의 산실
봉원사의 봄, 개화승 이동인
불타는 공사관, 외세의 그림자

03. 내우외환

묄렌도르프, 열강의 술책
미국 공사관, 여장부 마담 로즈
선교사 알렌, 코리안 드림
동상이몽 개화, 민영익과 김옥균
안국동, 혁명의 전운
삼일천하 갑신정변, 험난한 근대

04. 약소국의 비애

위안스카이, 안하무인 조선 총독
중국의 겁박, 서양의 사냥감
주미 공사 박정양, 속국의 굴레
거대한 약탈 집단, 무너지는 조선

05. 제국의 야욕

? 윤웅렬 별장, 시련의 군사 엘리트
윤치호 일기, 근대의 자유인
아소정-건청궁, 을미년 가을
민비, 카리스마와 굴레
비운의 건청궁, 민비 재조명
단발(斷髮)의 수렁, 민중의 분노

06. 구한말, 남과 여

정동의 여인, 손탁의 꿈
손탁호텔, 사라진 제국이여!
아관파천, 집념의 엄 상궁
망국의 불나방, 요화 배정자
커피에 빠지다, 대한제국!
노다지, 제국 외교 209
야망과 좌절, 독립문-서재필 216

07. 개항의 파고

제국의 책략, 개항지 인천
자유공원, 한미관계의 태동
개항 거리, 외국 조계지
1885년, 개신교의 상륙
낙후된 조선, 대불호텔의 추억
개혁의 불길, 경인 철도 슬픈 운명

08. 신세계 환타지

연해주행 탈출, 환희와 통곡
하와이 이민, 지상낙원-고난의 길

09. 청와대 단상

북악의 새벽, 추억 속으로!
궁정동, 그때 그 사람!
금단의 북악산, 역사의 길
인왕산 도성길, 홍난파와 테일러
서대문 박마리아, 권력의 종말
 

저자 소개 

저 : 이택순
 
1952년 서울 마포에서 테어났다. 어린 시절 한강과 남산을 보며 크고, 용산고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를 거쳐 해군장교로 군복무를 했으며, 1983년 경찰에 입문하여 경남, 경기 경찰청장과 대통령 치안비서관을 역임했다. 58대 경찰총수가 되어 2년 임기를 마치고, 경희대, 명지대, 동국대에서 초빙 교수, 석좌 교수로 활동했다. 2016년 서울에서 터키까지 자동차로 답사 후『실크로드 도...

출판사 리뷰

거리에서 찾아다니는 이택순의 근대역사 기행

우리 역사에서 근대사 분야는 관심이 많은 분야인지라 수많은 역사 전공자뿐만 아니라 많은 인문사회학자, 저널리스트들이 그들 나름대로 정리하고 연구해놓은 성과물이 많이 있지만 필자가 시도한 ‘거리에서 근대역사 찾아다니기’는 다른 사람이 이미 시도했든 안 했든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서울은 필자가 태어난 곳이고 필자의 꿈이 익어간 곳이어서, 거리를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추억 속에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리 거리와 골목 골목이 반가운 향수였다. 이는 독자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권리라 생각한다.

필자가 처음 만만 근대역사 거리는 눈 속에 처음 찾은 정동 거리와 덕수궁이었다. 외국 공사관과 개화기 기독교, 여성 교육 요람의 흔적이 대체로 잘 보전되어 있어 그 감회는 새로웠다. 미국, 러시아를 필두로 하여 외교관, 선교사들의 근대 역사가 가까운 거리에 집중되어 있어 서너 차례만 다녀오면 쉽게 익숙해지는 곳이었다.

두 번째로 찾아다닌 곳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 가회동 삼청동 안국동 거리였다. 이곳은 조선의 권세가 양반들의 보금자리로 엘리트들의 거리였다. 가히 근대사의 보고였다. 사전 기획과 설계가 있어도 최소 5회 이상은 다녀야 지리감이 눈에 들어오는 상당히 넓고 복잡한 곳이었다. 현법재판소 내 정원에서 만난 박규수, 홍영식의 집터, 정독도서관 구 경기고

교정에서 본 김옥균, 김홍집, 서재필의 집터는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명당이었다. 그러나 명당에서 태어난 그들의 운명은 근대사의 회오리 속에서 역적으로 몰려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조선의 근대 역사는 명당이 가문의 성쇠를 좌우하게 하지 않았다. 명문 학교들이 즐비했던 이 지역은 궁궐이었거나, 양반의 저택이었다. 친일 인사들에게 매각되어 상속되며 현대적 빌딩이나, 학교법인으로 변해 친일재산 환수 문제가 깊게 그늘지어 있었다.

세 번째로는 대원군의 저택 운현궁 터와 인사동 견지동 낙원동 관훈동으로 이어지는 종로 1~2가 청계천이었다. 이곳은 운현궁과 조계사 앞 우정국 청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업지역으로 변해 유적이 멸실되고, 주춧돌만 남아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곳도 있어 매우 난감한 곳이었다. 근대의 선구자 유홍기, 오경석의 거주지가 종로와 청계천에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면밀한 사전 기획으로도 부족해 현지에서 수시로 묻고 찾아다녔다. 다음으로는 경복궁의 서쪽, 서촌의 효자동 청운동 부암동 부근이었다. 청와대 무궁화동산 내의 장동 김문(신 안동 김씨)의 유구한 집터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현장임을 확인한 것이 수확이었다. 인왕산 도성과 자하문 밖 세검정의 윤웅렬 가를 찾아가 시대의 석학 윤치호를 만나며 윤치호 가문을 통해 조선 말기 양반가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서대문 현저동의 일본공사관 부지와 명동 중국대사관을 찾아보며 주변 강대국들의 조선 침략 시도를 확인한다. 한양도성 사대문과 성균관이 있던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신촌 봉원사, 돈암동 흥천사, 보문사, 화계사, 독립문공원, 공덕동 아소정, 마포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를 찾았다. 공덕동 아소정을 출발해 경복궁 건청궁으로 진출하는 새벽은 외세 일본에 영합한 대원군의 권력욕이 진동하는 침통함으로 발길이 몹시 무거웠다. 궁궐을 버리고 탈출하는 고종의 심정으로 경복궁 강녕전을 나와 광화문 내수동을 거쳐 서대문 러시아공사관까지 아관파천의 길을 걸어보았다. 부패한 왕족과 양반들의 행태를 확인차 남대문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방문하게 된다. 당시 단위로 화폐를 환산하며 거대한 부패와 낭비 규모를 확인하면서 몹시 허탈했다. 서양인이 언급한 거대한 약탈국가란 말을 실감했다.

외국 문물이 유입되는 경로는 예나 지금이나 항구와 공항 그리고 육로로 연결된 세관이었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관문인 인천은 근대화의 첨단 항구였다. 인천 제물포항과 차이나타운, 개항 거리는 현재에도 살아 움직이는 근대의 유적이 남아있었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던 육로와 뱃길에 마침내 경인선 철길이 뚫리며, 근대의 기적이 외세에 의해 울려 퍼졌다. 월미도 개항박물관에서 개척의 선구자들이 연해주와 하와이로 떠나는 모습은 장엄한 행진곡처럼 가슴을 울렸다. 근대의 유적의 보존이 가장 잘된 곳은 궁궐이었다. 보존되었거나, 복원된 경복궁 창덕궁 그리고 덕수궁 등 고궁은 가히 보물이었다. 왕들의 공간이면서 시대적 갈등 해결의 결전장이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다. 전각 하나하나는 역사가 축적된 공간이다. 그 의미를 사전에 공부하고 정리해야 궁궐들의 실상이 눈에 보인다.

시대는 약간 다르지만 인왕산 도성길에서 만난 일제강점기 유적에 자연스레 발길이 가게 되었다. 음악가 홍난파의 아담한 집과 미국 기업인이며 AP통신 기자로 3.1운동을 외국에 타전한 테일러의 딜쿠샤 저택, 4.19 혁명도서관의 박마리아 이야기를 추가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농민이 주도한 혁명으로 현장이 전라 충청 지역이어서 다루지 못했으나, 근대화의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음은 우리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18세기 말에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천주교의 전파와 박해 과정도 근대사의 일부로 다루기에는 시기가 다르고, 내용이 방대하여 다루지 못했다

근대역사의 거리는 생각하며 걷는 자의 것이다. 우리에게는 단단한 두 다리가 건재한다. 두 다리가 건재한 우리는 근대역사의 거리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근대역사의 현장으로 가서 걷고, 보고, 느끼고, 기록하고, 상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