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한국근대사 연구 (독서)/1.한국근대사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2019)

동방박사님 2024. 2. 2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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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일 학자들이 함께 3·1운동과 그 전후를 논한 한일 최초의 기념비적 대작
무엇이 우리의 첫 번째 근대 국민운동을 가능케 했는가.
100년 전 그때 국가 형성의 데모크라시 정신으로 현재 우리의 시공간이 탄생되다


한일 최초 양국의 학자 10인이 5년에 걸친 3·1운동 공동 연구의 성과물을 출간한다. 한국 학자들이 학생층과 손병희, 안중근, 조소앙 등 식민지배 피해자의 활동을 다룬다면, 일본인 학자들은 당시 일본정부 재판 기록, 정책, 일본 지식인 등 가해자의 대응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이 책은 또한 3·1독립만세운동이 싹틀 수 있었던 배경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3·1운동이 배태된 근본적인 원인을 역사의 ‘연속성’ 측면에서 재조명한 것이다. 관련 보도와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때 3·1운동 연구사에서 획기를 이룰 만한 쾌거이자, 100주년 기념다운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목차

책이 나오기까지 _4
이태진

제1부 총론

국민 탄생의 역사 -3?1독립만세운동의 배경 · 이태진 _16
일본의 헌법체제 수립과 식민지 청산에 대하여 · 사사가와 노리카쓰 _72
3?1독립만세운동의 세계사적 시각 -세계사 인식·세계사 서술과의 관련- · 아라이 신이치 _99

제2부 3·1독립선언과 만세시위운동

3?1만세운동의 경성(서울) 학생시위 실황 -「경성지방법원 예심종결서」의 분석- · 이태진 _120
3?1운동 만세시위 관립전문학생들의 내면세계 · 김태웅 _159
3?1운동 만세시위 한국인 보통학교학생의 참가 양상과 민족의식의 성장 · 김태웅 _185
3?1운동 정신에 기반한 한국, 자유민권운동 격화를 힘으로 억누른 일본
-국가형성 관련 ‘참주僭主’와 ‘폭군暴君’의 과제- · 사사가와 노리카쓰 _214
3?1독립운동 관계 판결에 의거하여 -내란죄를 둘러싼 판결의 점검- · 사사가와 노리카쓰 _253

제3부 3·1만세운동의 사상과 문학

손병희의 사상과 3?1독립만세운동 · 변영호 _302
조소앙의 ‘민국’ 인식에 대한 연원 탐색 · 김승일 _331
3?1독립운동과 일본문학의 관련 양상 · 세리카와 데쓰요 _355
일제강점기 안중근에 대한 기억의 전승, 유통 · 김대호 _414

제4부 3·1만세운동 전후의 식민지배체제

안중근과 일본, 일본인 · 김봉진 _448
일제시기 사직의 폐지와 사직제의 국가신도적 변용 · 김대호 _506
3?1운동과 식민지근대화론 · 도리우미 유타카 _551

3·1독립만세운동 연구 자료 및 논저 목록 1919~2018년
오정섭, 김선영

필자 소개 _590

저자 소개

저 : 아라이 신이치 (荒井信一)
 
이바라키茨城대학 명예교수(작고). 『歷史和解は可能か: 東アジアでの對話を求めて』(岩波書店, 2006. 한국어판: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동아시아 역사 문제의 해법을 찾아서』, 미래M&B, 2006), 『空爆の歷史: 終わらない大量虐殺』(岩波書店, 2008. 한국어판: 『폭격의 역사: 끝나지 않는 대량 학살』, 어문학사, 2015), 『コロニアリズムと文化財: 近代日本と朝鮮から考える』(岩波書店, 2012. 한국어판: ...

저 : 김태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공저), 『어윤중과 그의 시대』, 『신식 소학교의 탄생과 학생의 삶』, 『한국사의 이해』(공저),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국사교육의 편제와 한국근대사 탐구』, 『우리 역사 어떻게 읽...

저 : 변영호 (邊英浩)

쓰루분카都留文科대학 비교문화학과 교수. 동아시아 비교문화학. 『朝鮮儒敎の特質と現代韓國?李退溪?李栗谷から朴正熙まで?』(圖書出版クレイン, 2010), 「韓國强制倂合100年と在日韓國人」(『國際共同硏究 韓國强制倂合一??年 歷史と課題』, 明石書店, 2013), 『東アジアの共通善-和?通?仁の現代的再創造をめざして』(岡山大學出版會, 2017), 「天道敎の近代化運動―孫秉熙を中心に」(『靈性と平和』 第三號, 2018)

출판사 리뷰

3·1운동의 폭발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지금까지 3·1운동 연구에서는 운동의 성격을 대개 ‘거족적’ 민족 운동으로 파악한다. 이는 『3·1운동 50주년기념논집』(1969)이나 3·1운동 70주년 기념 『3·1민족해방운동연구』(1989)의 지배적 시각이며, 그 이후 논저에서도 비중의 차이는 있으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공동 책임편집자인 이태진 교수는 그러한 관점에서 탈피할 때라고 말한다. 대한제국 성립 및 침탈과 ‘연속적’으로 맞물려 3·1운동이 발발한 것이므로, 그 운동의 성격은 대한제국기를 다시 평가함으로써 재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교수가 정조 시대의 ‘민국’ 이념이 고종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국민’ 의식으로 변모하였는지를 논했다면, 김승일 원장은 조소앙이 그러한 ‘민국’ 개념을 바탕으로 서양의 ‘공화’ 개념과 손문의 ‘민국’ 개념을 취사선택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호를 제정하였음을 추정하고 있다. 손병희를 재조명한 변영호 쓰루분카대 교수는 3·1운동 저변에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을 보는 동학과 천도교의 한국 토착 근대사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신민이 아닌 국민으로서 이루어낸 의거와 만세시위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기만, 범법으로 점철된 군사강점의 형식으로 성립한 한국병합(이태진, 『일본의 한국병합 강제 연구』, 지식산업사, 2016)은 국제법상으로도 원천무효임(김영호·이태진 외 공편, 『한일 역사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풀 것인가?』, 지식산업사, 2013)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일제는 태황제 고종을 ‘독살’시키면서 주권을 유린했다. 따라서 3·1운동은 “주권 회복을 요구하는 국민운동”에 다름 아니었다. 안중근에 대한 기억을 연구한 김대호 편사연구관은 안중근이 등장하는 「독립군가(용진가勇進歌」는 3·1운동 1주년 기념 격문과 1930년대 말 기록에도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컸음을 밝히고 있다. 안중근이 남긴 글씨에는 신민이 아닌 대한인大韓人으로서 자각을 엿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민’으로서 스스로 의식한 주체에는 학생층도 포함된다. 경성(서울) 만세시위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태진 교수는 『동경조일신문』 보도와 『경성지방법원 예심종결결정서』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주도한 2차 시위를 복원한다. 김태웅 교수는 관립전문학교학생들이 일본의 우대 정책과 민족운동의 당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차별과 불평등을 겪으면서 민족정체성을 확인해 나가는 내면세계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어린 보통학교학생들도 과감하게 시위에 뛰어들었던 여러 실례를 들고 있다.

가해자의 인식: 일본 정부와 지식인의 대응

그때의 메아리가 얼마나 절절하였는지는 당시 북한 성천成川 땅에서 목격했던 일본 소녀의 마음에도 선명히 각인되었다. 세리카와 데쓰요 교수는 일본의 소수 지식인과 문학가들이 3·1운동의 참상에 대해서 어떻게 논평하고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했는지를 위와 같은 사례 연구로 서술한다. 이러한 양심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총독부는 단순 가담자까지 색출, 보안법을 적용하여 높은 형량을 내렸다. 공동 책임편집자인 사사가와 노리카쓰 교수의 두 논문에는 3·1운동 주동자 및 가담자들이 내란죄로 처벌되고 그 이후에도 무고한 조선인을 불경죄 명목으로 체포한 실상이 고발되고 있다. 이러한 위장·기만술책은 안중근의 거사 당시 이토의 수행원들이 의거를 폄하하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하고 언론이 허구적 기사를 냈음을 지적한 김봉진 교수의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독립의 열기를 진압하기 위한 다각적 방책에서도 일제의 그 기조는 이어진다. 故 아라이 신이치 교수는 1919년 사건 직후 총독부가 ‘문화정치’로 식민지배를 포장하고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내세워 중앙(일본)에 대한 종속을 강조한 역사교육을 시행했음을 포착한다. 3·1운동 발발 직후에야 일제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참고하여 조선에 투자를 시작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거짓 선전을 퍼뜨렸음을 논증한 도리우미 유타카 교수의 논문도 그 또 다른 예이다. 김대호 편사연구관은 일제가 사직단 제사를 폐지한 뒤 그 네트워크를 국가 신도와 일본 놀이문화인 마츠리를 이식하는 방편으로 이용한 실태를 보여준다.

3·1정신의 지속과 과제

운동 참여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대응을 다각도로 조명한 이 책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의 말미에는 1919년부터 2018년까지의 3·1운동 연구 자료 및 논저 목록까지 수록되어 있다. 명실상부하게 3·1운동 연구사에 한 획을 긋는 시도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 한 권에 나라를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이름 모를 이들의 그 모든 인고忍苦를 다 담을 수는 없다. 지방의 만세운동 연구가 더 진척될 필요가 있으며, 학생층 이외의 다양한 계층의 내면세계가 어떠했는지도 앞으로의 탐구 과제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인은 국가 형성의 데모크라시 정신이 투철하다는 사사가와 교수의 논단처럼 그 역사는 오늘에도 지속되고 있다. 3·1정신은 부당한 억압과 불평등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해 왔던 근현대 한국인들, 그리고 최근의 우리의 얼굴이기도 하며,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배에 저항했던 이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정신은 이 책과 같은 성과가 축적되면서 앞으로도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