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문교양 (독서)/2.에세이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2018)

동방박사님 2024. 4. 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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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00년을 앞서간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아름다운 투쟁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영페미니스트를 위한 새로운 나혜석 선집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사회적 실천’

한국 근대 페미니즘 작가 나혜석의 페미니즘 걸작선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열일곱 편의 소설, 논설, 수필, 대담을 가려 뽑고 현대어로 순화한 이 책은 나혜석의 삶을 나혜석 자신의 글로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보다 나은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근대 여성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장영은 성균관대학교 한국학연계전공 초빙교수가 시대상을 생생하게 전하는 해설을 덧붙여 이해를 도왔다.

나혜석의 논설은(논설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인터뷰 역시) 지금 영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보아도 전혀 낡지 않았다. 약 100여 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나혜석에게 글쓰기는 ‘은밀하고 사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여성들과 소통하며,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와 맞서 싸우려 했다.

그녀가 이혼 이후에 쓴 수기인 「이혼 고백장」에서 보듯이, 나혜석은 자기 생애를 스스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혜석은 페미니즘의 기수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또한 나혜석은 여성이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사회적 실천이라고 믿었다. 단편 소설 「어머니와 딸」에서 나혜석이 지닌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

목차

서문_장영은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의 탄생

1부 최초의 근대 여성 문학
경희
어머니와 딸

2부 연애와 결혼
독신 여성의 정조론
이상적 부인
부처(夫妻) 간의 문답
우애 결혼, 시험 결혼

3부 사랑과 이혼
이혼 고백장
신생활에 들면서

4부 모성과 육아
모(母) 된 감상기
백결생(百結生)에게 답함
내가 어린애 기른 경험

5부 정치와 삶
나혜석 신문 조서
나의 여교원 시대
회화와 조선 여자
내가 서울 여시장 된다면?
영미 부인 참정권 운동자 회견기
나를 잊지 않는 행복

주(註)
추천의 글_이민경 여성이 직접 기록한 역사

저자 소개

저 : 나혜석 (Na Hye-seok ,晶月 羅蕙錫)
 
정월 나혜석(晶月 羅蕙錫, 1896∼1948)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부 나기정과 모 최시의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난다. 부 나기정은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개화 관료였다. 나혜석의 초명은 아지(兒只)였고, 진명여학교 입학 시 명순(明順)으로 불렸으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때는 혜석으로 개명한다. 1913년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둘째 오빠 경석의 권...

편 : 장영은

문학 연구자. 여성들이 글을 쓰며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분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자서전, 회고록, 일기, 편지, 기행문, 연설문, 소설, 대담 등 다양한 양식의 자기 서사에 주목하고 있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었고,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여성, 정치를 하다』, 『변신하는 여자들』을 썼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를 함께 썼다. 성균관대학...

책 속으로

“어느 틈에 김치 담그는 것을 다 배우셨어요. 날마다 다니며 보아야 작은 아씨는 도무지 노시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책을 보시지 않으면 글씨를 쓰시고, 바느질을 아니 하시면 저렇게 김치를 담그시고…….”
“여편네가 여편네 할 일을 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신통할 것이 있소.”
“작은 아씨 같은 이나 그렇지 어느 여학생이 그렇게 마음을 먹는 이가 있나요.”
떡장사는 무릎을 치며 경희의 앞으로 바싹 앉는다. 경희는 빙긋이 웃는다.
“그건 떡장사가 잘못 안 것이지. 여학생은 사람 아니오? 여학생도 옷을 입어야 살고 음식을 먹어야 살 것 아니오?” --- p.38

“여자가 잘나면 못써.”
“남자는 잘나면 쓰구요.”
“남자도 너무 잘나면 못쓰지.”
“그럼 알맞게 잘나야겠군. 좀 어려운걸.”
이기봉은 입맛을 쩍쩍 다신다. 다시 바싹 대앉으며,
“주인, 대체 여자나 남자나 잘나면 못쓴다니 왜 그렇소? 말 좀 들어 봅시다.”
“내야 무식하니 무얼 알겠소마는 여자가 잘나면 남편에게 순종치 아니하고 남자가 잘나면 계집 고생시켜.” --- p.69

처: 글쎄 말이에요. 자유나 평등이나 이해의 의미를 충분히 깨달은 남자라든지 여자일 것 같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이해치 못할 사람과 부부가 되지 않을 것이요, 또 상당히 대우받을 만한 공부와 인격으로 능히 상대자를 감복시킬 만치 신용을 얻었을 것일 터이오. 그리하여 언제든지 제가 하고 싶은 때는 자기가 가진 권리대로 부릴 것 아니오.
부: 만일 그렇게 될 듯하던 부부가 중도에 불이해케 된다면?
처: 그것은 제도를 뜯어고치든지 마음을 뜯어고치든지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을 터이지요. --- p.124~125

기자: 시험 결혼의 특색은 무엇입니까?
나혜석: 이미 시험이니까,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편이나 절대적인 의무를 지지 않지요. 쉽게 말하면 이혼한다 셈치더라도 위자료니 정조 유린이니 하는 문제가 붙지 않겠지요. 합의를 전제로 한 결혼은 이혼할 권리를 처음부터 보류하여 좋은 것이니까요. --- p.141

아아, 남성은 평시 무사할 때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향락하면서 한 번 법률이라든가 체면이라는 형식적 속박을 받으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향락하던 자기 몸을 돌이켜 금일의 군자가 되어 점잔을 빼는 비겁자요, 횡포자가 아닌가. 우리 여성은 모두 일어나 남성을 저주하고자 하노라. --- p.173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에나 동경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이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의 정조를 유인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종종 방종한 여성이 있다면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咀嚼)시키는 일이 불소하외다. 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 --- p.200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黃鈺)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그 생활은 각국 대신으로 더불어 연회하던 극상 계급으로부터 남의 집 건넌방 구석에 굴러다니게 되고, 그 경제는 기차, 기선에 1등, 연극, 활동사진에 특등석이던 것이 전당국 출입을 하게 되고, 그 건강은 쾌활 씩씩하던 것이 거의 마비까지 이르렀고, 그 정신은 총명하고 천재라던 것이 천치 바보가 되고 말았다. 누구에게든지 호감을 주던 내가 인제는 사람이 무섭고 사람 만나기가 겁이 나고 사람이 싫다. 내가 남을 대할 때 그러하니 그들도 나를 대할 때 그럴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 능력으로 할 만한 일은 다 당해 보고 남은 것은 사람의 버린 것밖에 없다. 어찌하면 다시 내 천성인 순진하고 정직하고 순량하고 온유하고 부지런하고 총명하던 그 성품을 찾아볼까. --- p.218~219

나는 꼭 믿는다. 내 「모 된 감상기」가 일부의 모 중에 공명할 자가 있는 줄 믿는다. 만일 이것을 부인하는 모가 있다 하면 불원간 그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불가피할 필연적 동감이 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나는 꼭 있기를 바란다. 조금 있는 것보다 많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꼭 단단히 살아갈 길이 나설 줄 안다. 부디 있기를 바란다. --- p.271

아직 우리의 여러 가지 형편이 조선 여자로 하여금 그림에 대한 흥미를 줄 만한 기회와 편의를 가로막고 있으니까 그러하지, 만일 이 앞으로라도 일반 여자계에 그림에 대한 취미를 고취할 만한 운동이 일어나기만 하면 반드시 여류화가가 배출될 줄 로 믿습니다. --- p.311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장 무서워하는 불행이 언제든지 내습할지라도 염려 없이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아무러한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 고통 중에서 일신일변(一新一變) 할지언정 결코 패배를 당할 이치는 만무하다. 즉 외형의 여하한 행복을 받든지 또는 외형의 여하한 행복을 잃어버리든지 행복의 샘, 내 마음 하나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 p.322

하루 뒤, 1년 뒤, 지나는 순간마다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가 된 큰 과거는 얼마나 느낌 있는 과거인가. 또 그중에 마디마디를 멀리 있어 돌아다보니 얼마나 즐거웠던 때이었나.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 앞에 비추이는 현재의 환희로 살지 못함은 곧 가까운 과거를 현재로 만드는 까닭이었다. 그러므로 기실은 현재는 없어지고 만 것이다. 지나고 보니 이같이 안전한 대로를 밟아 온 것을, 그리하여 그 중도에는 내게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구비해 있고 그뿐 아니라 그때그때 과거에 있어서는 그다지 길이 좁았던고!
 

출판사 리뷰

페미라이터 나혜석의 글과 삶, 100년을 앞서가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20년간을 두고 어지간히 남의 입에 오르내렸다. 즉, 우등 1등 졸업 사건, M과 연애 사건, 그와 사별 후 발광 사건, 다시 K와 연애 사건, 결혼 사건,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활약 사건, 황옥(黃鈺) 사건, 구미 만유 사건, 이혼 사건, 이혼 고백서 발표 사건, 고소 사건, 이렇게 별별 것을 다 겪었다.
―「신생활에 들면서」에서 (218쪽)

나혜석이 밝힌 바와 같이 그녀는 당대 시대를 앞서간 여성 지식인이었으나 희대의 스캔들에 휩싸여 35세에 이혼한 후 고된 말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많은 글을 남겼으며, 논설과 문학을 넘나드는 문필 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했다.

당시 많은 이들을 자극한 사건은 외도와 이혼 사건이었다. 남편 김우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나혜석이 최린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 화근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우영은 나혜석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결국 1930년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나혜석의 기구하고도 억울한 이혼 과정은 그가 생전에 일부 번역하기도 한 희곡 『인형의 집』과 거울의 상처럼 닮아 있다. 헨리크 입센의 로라도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빌린 돈이 화근이 되어 모든 비난을 뒤집어쓰고 이혼당했다.

이혼 이후 나혜석은 대중잡지 《삼천리》에 당대 조선이 가진 정조 관념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신생활에 들면서」를 발표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 후 가족과 사회 모두로부터 분노와 혐오의 표적이 된 그녀는 식민지 조선에서 철저하게 패배한 듯하다. 1938년 8월 이후 더 이상 글을 발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유족과 관련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 원고를 “쌓은 높이가 적어도 50센티미터는” 되었지만, “원고더미가 다락에 쌓여만 있다가 6·25 전쟁이 나면서 난리 통에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가족의 냉대 속에 신산한 삶 그러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나혜석이 남긴 글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녀의 생애를 몰락 혹은 파국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나혜석은 “자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데” 패배란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고통도 그녀에게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우리의 가장 무서워하는 불행이 언제든지 내습할지라도 염려없이 받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아무러한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 고통 중에서 일신일변할지언정 결코 패배를 당할 이치는 만무하다.” 나혜석의 말은 옳다. 이제 그녀의 글을 다시 읽어 보려 한다. 나혜석은 여성이 말을 하고 여성이 글을 쓸 때 세상은 달라진다고 믿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
―장영은, 서문 중에서 (12~13쪽)

책의 구성: 신여성 나혜석이 남긴 논설, 소설, 인터뷰, 대담

이 책은 5부로 구성하였다. 1부에는 소설을, 나머지 부에는 논설, 수필, 인터뷰, 대담을 가려 뽑았다.

1부에는 나혜석의 가장 대표적 단편 소설인 「경희」와 나혜석의 문학관을 파악하기에 유용한 단편 「어머니와 딸」을 실었다. 특히 「경희」는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 문학으로, 여성 지식인으로서 봉건적 가부장제와 인습에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할지 고민하는 나혜석의 모습이 담겨 있다. 2부에는 나혜석이 여성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쓴 글을 가려 뽑았다.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즘 논설인 「이상적 부인」은 ‘현모양처는 그야말로 세속적 가치에 그칠 뿐 결코 이상적인 여성의 모델이 될 수 없으며, 온양유순이라는 개념 또한 여성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는 글이다. 나혜석이 김우영과 결혼 생활 중에 발표한 「부처(夫妻) 간의 문답」에는 남편 김우영과의 대화를 공개했다. 또한 인터뷰 ‘우애 결혼, 시험 결혼’에서는 이혼의 비극을 막기 위해 시험결혼이 필요하며, 시험결혼 기간 동안에는 산아제한이 필요하다는 전위적인 결혼을 소개하고 있다. 3부에는 나혜석이 이혼 이후에 발표한 조선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혼고백장」과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 이기주의를 고발하는 「신생활에 들면서」를 실었다. 4부에는 나혜석의 페미니즘 육아관을 엿볼 수 있는 기존의 모성 통념에 반하는 글을 모았다. 모성 신화를 부정하는 논설 「모 된 감상기」는 당시에는 물론 현재로서도 급진적인 페미니즘 논설 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5부에는 나혜석의 정치의식을 담은 글과 근대 신여성의 직업관에 대한 글을 모았다.

각 부의 말미에는 나혜석과 함께 이광수, 김기진, 김억 이렇게 네 명의 문인이 1930년대 당시 미혼 남녀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풍조를 비평하는 「만혼 타개 좌담회」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추천평
“우리가 비판 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
나혜석의 이 말은 나를 나대로 살게 하는 용기를 준다.
― 정희진(여성학자,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나 또한 그녀처럼 용감해질 수 있을까. 우리 또한 그녀처럼 위험천만하면서도 매혹적인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천재에 대한 뒤늦은 애도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시대에 더욱 환하게 빛나는 원조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여전히 싱그러운 출사표로 읽히기를 바란다.
― 정여울(작가,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저자)

나혜석은 일찍이 말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일찍이 말했음을 자신의 손으로 분명히 밝혀 두었다. 그를 알아내는 데 다른 이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여성의 역사는 도통 새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남긴 글로 그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 이민경(페미니스트,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