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2.강화.인천

강화 교산교회

동방박사님 2016. 9. 2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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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스 목사(당시 인천내리교회 담임)도 들어올 수 없었던 불신의 땅, 강화도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좀 의외의 인물인 이승환을 통해서이다.  강화 교산이 고향인 이승환은 제물포에서 술집을 하다가 내리교회에 나가게 되는데 내리교회는 전도의 일환으로 계모임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이승환이 가입을 한 것이다.  '주일 예배 뒤의 계모임'이라는 웃기는 전도법은 오래가지 못했다.  계원 중 한명이 돈을 갖고 도망을 갔기 때문이다.  당연히 계모임은 폐지되고 계원들 대부분이 교회를 떠나 버렸다.  이승환이 교회에 남게 된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강화도에 최초로 세우진 교회, 2003년 봉헌한 새 예배당은 비둘기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1년 후 김상임이 개종하고 예배에 참여하면서 교산교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심지어는 홍의 마을에 사는 김상임의 친구까지 예배에 참여하였다.  교산교회에 가면 김상임의 공덕비가 있다. 그리고 맞은 편 언덕에는 김상임 일가의 가족묘도 있다.  그러나 이승환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이승환이 남긴 거라고는 교산교회에서 400미터 떨어져 있는 그의 생가터(첫 예배장소) 밖에 없다. 혹시 나중에 성공회로 옮겨간 그의 아내 이백가처럼 교파를 바꾼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상임은 1902년 급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그 당시 전염병이 극성이었는데 환자들을 돌보다가 당한 변고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김상임네를 '예수 믿다가 망한 집'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상임의 손주 며느리 김리브가는 찬송 300곡을 외워 불렀다고 한다.  시아버버지의 죽음 이후 집안을 영적으로 이끌어간 김리브가, 그는 기도로 무너진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의 후손들 수십명이 감리교 목사와 장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