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5.경기권 관광

화성행궁

동방박사님 2017. 3. 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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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전배 (展拜)하기위하여 행행 (幸行) 때에 머물던 임시처소로서 평상시에는 부사가 집무하는 부아로도 활용하였다. 뿐만아니라 정조가 승하한뒤 순조1년 (1801년) 행궁 곁에 화령전을 건립하여 정조의 진영을 봉안하였는데 그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이 화성행궁을 찿아 이곳에 머물렀다. 따라서 이 행궁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수많은 행궁중 그 규모나 능행면에서 당연 으뜸이 될 만큼  건축물의 규모뿐 아니라, 성곽과 더불어 정치적 군사적 면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정조 때 최대의 역사였던 화성성역은 1차적으로 화산의 현륭원 호위와 함께 팔달산정상 바로 아래 성내 중심부에 건립된 행궁을 둘러 싸면서  이를 수호하는 것을  중요목적으로 설립된 것임을 알수 있다. 이것은 화성행궁이 성곽과 더불어 단순한 건축 조형물이 아니라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서 정치적 군사적인 큰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화성행궁은 처음부터 별도의 독립된 건물로 일시에 건축된 것이 아니라 행궁과 수원부 신읍치의 관아건물을 확장 증축 하는데 조성 되었다. 정조 14년간 "수원신읍연건공해간수성책"에 의하면 수원 신읍치에 건립된 건물은 크게 공해와 객사 및 향교로 구분 하였다. 먼저 공해에는 장남현을 비롯하여 득중정 은약헌, 내아, 비장청과 정문인 진남루 등이 포함되 있다. 객사는 원래 그안에 전패를 봉안하고 한달에 두차례식 왕에게 배례하며  때로는 손님을 모시는 곳으로 수원 신읍치의 객사에는 벽대청과 동서헌 등이 있었다.



향교는 성전을 중심으로 전사청과 동. 서무, 동 서재가 마련되어 있었다. 끝오 편의상 군영과 기타건물로 구분된 건물로는 강무당을 비롯하여   군기대청, 군향고대청, 초관청 등의 건물이 들어 있다. 당시 군영건물은 장용영이 설립되었던 초기였던 만큼. 정조 17년 신읍치에 장용외영이 설치되고, 정조 19년과 정조 22년 군영의 일대 개편에 따라 그 건물도 늘어난 지휘자와 병력수에 따라 그 수용을 위한 신증축을 거듭했을 것으로 주측된다. 화성행궁은 화성축조가 완공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576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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