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2.강화.인천

강화3.1운동기념비

동방박사님 2017. 10. 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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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3.1운동기념비

용흥궁 주차장 한 쪽 귀퉁이에는 3.1운동 기념비가 외롭게 서 있습니다. 1919년 3월18일 그 날은 강화 장날 이었습니다. 읍에 모인 15,000여 명의 강화 주민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진형 목사, 유봉진권사, 연상오권사등은 길상면에 사는 교인 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길상결사대를 조직했고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했습니다. 강화읍에서는 강화중앙교회의 김유의, 고익진, 김여돈 등이 호응하였습니다. 시위하던날 결사대장인 유봉진권사는 백마를 타고 나타 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을 치기 시작햇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서있는 김상용 충렬비가 있는 종각이 종을 친 장소 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시위는 한달 넘게 강화전역을 들 끓게 했습니다.

의미 : 강화도 만세운동 한 가운데 감리교인들이 있었다.목사전도부인, 권사 등 교회주역들이 적극 가담을 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 지도자 들이 일본 경찰에 연행되고 쫓겨 다니는 바람에 예배를 인도할 이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주모자였던 유봉진은 마리산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경찰이 그를 잡기 위해서 그의 부

모를 잡아가서 고문하려하자 유봉진은 자수를 했지요. 유봉진은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소를 했습니다. 

강화3.1운동 만세기념비

강화군민은  1919년 탐골공원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3.1독립 만세 운동에 동참하여  조국의 광복을 쟁취하고자 유봉진 선생의 주도하여 3월7일 강화읍 장날을 기해 강화군민을 비롯하여 인근 강화군민까지 합세한 24,000여명이 대한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처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나 불행이도 일제의 무력앞에 진앞되어 유봉진선생을 비롯하여 25명의 선생들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3.1독립만세운동의 그날을 되새기고 애국정신의 귀감을 삼고자 1994년 강화읍 관청리산 20번지 견자산에 이 기념비를 세웠다가 1996년 8월28일 당시 만세운동의 발상지인 강화읍 관청리 523번지 웃장터로 이전하여 재 건립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념비의 뜻을 알리고자 2011년8월9일 이곳 용흥궁 공원으로 이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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