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2.강화.인천

강화외성과 더리미순국터

동방박사님 2017. 10. 2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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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리미 순국터

강화교회에서 4km떨어진 곳에 순국터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3명의 기독교인 들이 일본군에게 학살 당했습니다. 학살지에는 "더리미 순국지"라고 새겨진 비석과 당시 강황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새겨져 있습니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던 날 강화도의 군인들과 주민들은 의병이 되었습니다. 일본군은 갑곶나루에서 강화의병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읍내에 들어와서는 주민 50여명을 무차별로 학살했고, 많은 사람들을 체포 했습니다. 일본군에 의해서 잡힌 사람들 중에 김동수, 김영구,  김남수는 강화중앙교회에 다니던 독실한 신자엿고, 강화지역 반일사상을 가진 민족지도자 들 이었습니다. 일본군은 가인이 아벨을 죽였듯이 교인 3명을 죽엿습니다. 들판이 아니라 더러미 해변에서 그리고 돌이 아닌 칼로 머리를 내리쳐 죽였습니다. 1년후데밍선교사는 이렇게 말햇습니다. 이곳(강화)은 피의 세례를 통과 했습니다.

의미, 에피소드 - 초기 감리교인들의 신앙과 순국정신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김동수 형제를 밀고 했던 일진회원들은 주민들의 보복이 두려워 피신을 했다가 나중에 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해 살지 못하고 다 죽엇습니다. 3형제 모두 유복자를 두엇다고 전해지는데 김동수의 무덤은 길상면 초지에 있다고 전해지며, 강화중앙교회는 매년 순구일을 기념하여 유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강화외성 (江華外城)

사적 제42호. 강화군강화읍, 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강회외성은 고려고종이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뒤 1233년에 강화동쪽 해안23km에 축조된 성이다.

조선시대에는 해안 방어를 위한 수축이 계속되어 고려부터 조선시대 까지의 축성기법의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는 유적이다 .특히 오두돈대 주변은 영조18년 (1742)에 벽돌로 쌓은 전축성이 남아 있어 수원화성과 함게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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