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남미여행 (2018) (여행)/1.남미 (브라질)

2-2 아피랑공원

동방박사님 2018. 5. 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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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역사

브라질 내륙의 탐험은 상파울루의 반데이란테 (노예사냥 탐험대)에 의해 17세기에 시작되었다.반데이란테는 각지에 원정하여 현재 도시의 기반이 되는 마을을 많이 세웠지만, 남부와 파롸과이까지 원정하여 예수회가 보호되고 잇던 과라니 사람을 노예로 잡아갔다. 이런 가운데 힘든 강제노동에 참다못한 흑인 노예 중에는 브라질 오지로 도망쳐 주거지를 형성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주거지들은  '모캄보"나 "킬롬보"라고 불렀고, 이 곳에서 아프리카 흑인들 뿐아니라 인디오 원주민들도 있었다. 이러한 킬림보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컷던 킬림보 도스 팔마레스는 오늘 날의 알라고아스 주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강가즘바"에 의해 다스려 졌으며, 이후 그의 후계자 "즘비"가 통치를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인들과 포루투칼인들이 여러차례 팔마레스를 공격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1695년 유명한 사오 파울로 출신의 도밍고스 조르제 벨호가 가까스로 킬림보 공략에 성공하여 즘비를 죽이고 이곳을 정복했다.


1680년 포루투칼 식민지 정부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무시하고 라프라트강 하구 좌안에 부에노아이레스의 건너편에 콜로니아 데 세크라멘토를 건설했기 때문에 이후 반다 오리엔탈 지역은 독립 이후까지 계속되는 브라질과 부에노스의 권력사이에 충돌의 장이 되었다. 또한 남부에서는 라플라타 지역의 스폐인의 영향을 받아 가우초라는 목동 집단이 생겨났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골드러시가 일어나, 브라질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하여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금강은 18세기동안에 무려 30만명의 포루투칼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엿고,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흑인노예가 유입되었다.이후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아 크리올 백인이나 물라토, 크레올흑인 (크레올로)에 의한 독립 운동이 진행 되지만, 식민지 시대에 브라질 대학이 설립되지 않은 등 지적환경의 부족은 브라질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일부 지식인의 "음모"에 머물럿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진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는 브라질과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 독립의 정체성 차이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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