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해외성지순례 (1997~2018) (여행지)/5.튀르키 (초대교회)

59.버가 유적지

동방박사님 2018. 7. 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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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 유적지- 마가요한이 돌아간 버가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행 13;13)


버가 라는 명칭은 헬라 (희랍)시대 이전에 생긴 것으로 선사시대부터 사용되어 와쓴데 이 도시의 창건자 글은  희랍 신화에 나오는 봅소스와 칼가스라고 전한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시 왕복2회에 걸쳐 이땅을 통과 하였다. (행13;13, 14;24~25) 이 성은 토착민 요소가 강하며, 비옥한 토지는 아니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이 동행하던 마가 요한은 너무 힘든 나머지 이곳에서 그들을 떠나 에루살렘으로 귀환하고 말았다. 이 일로 2차 전도 여행때는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행13:13~14)


버가의 건설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성읍의 이름은 헬라 시대의 이전의 것으로, 선사시대로 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선사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헬라의 이주자들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후  이 성읍을 장악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때 밤빌리아는 미케네 피난민들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페르시아(바사) 시대의 버가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알렉산더 대왕은 BC 334년  이곳에서 길잡이들을 고용 했으며, 두번이나 이곳을 지나갔다. 헬라시대의 이곳은 셀레우코스의 수비대가 주둔해 있었는데, 이때 만리우스 볼소가 BC188년에 버가에 진군했다. 버가의 동전은 이 시기에 발행되어 3세기 까지 (BC200~AD276년)사용 되었으며 성벽역시 3세기경의 것으로 헬라 때 버가는 가장 크게 번겅하였다.


로마 때의 뛰어난 유적으로는 건물과 기념비 등이다. 버가 (폐르가)의 아데미는 그들의 주요 에배 대상으로

제의와 형태는 에베소와 아데미가 비슷하고, 때로는 그리스와 아데미처럼 수렵의여신으로 표현 되었다.

버가는 생각한 것보다 그 규모가 매우크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 가운데는 성채와 성벽으로 둘러 싸인 낮은 성읍과 외진 곳에 세워진 기념비 등이다. 성채는 이 성읍을 내려다  볼수 있는 49m 정도의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입구는 남쪽에 있다. 반면 직사각형 모양으로  된 성벽은  남쪽에 성벽이 있으며  두개의 둥근탑이 타원원형으로 생긴 광자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 측면에 잇다. 도시 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개의 문은  지금 남아 있는 것만으로 보아도 그 규모가 엄청난 것이다. 이 문을 따라 성벽 안으로 들어가 직선 길을 따라가면  로마시대로 추정되는 체육관 (감나지움)과 목욕탕등 몇 개의 공공건물이 있다. 그리고 남문과 서문 밖에는 공동묘지가 줄디어 있으며, 극장과 경기장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낮은 성읍 밖에 있는데 지금도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이 외에도 바실리카 교회당과 신전 아고라 (시장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