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5.서울역사박물관

동작대교

동방박사님 2019. 3. 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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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을 앞둔 동작대교

개통을 앞둔 동작대교 전경이다. 동작대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량과 지하철 4호선의 이동을 고려한 병용교로 설계되었다. 전철교는 국내 최초의 랭거아치 혀태를 갖추고 있으며 아래쪽에는 강변북로가 지나가고 있다. 1983.11.30


동작진에서 동작대교로

한강 남안에 있는 동작나루는 과천으로 통하는 길에 위치해 있었다. 이 마루 인근의 한강을 동작강이라고도 불렀다. 도성 남대문에서 주교 청파역, 석우, 동작진을 건너 남태령을 지나면 과천이다, 과천을 지나는 길은 수언, 평택, 천안,공주, 전주, 진주, 사천, 고성, 통영으로 연결된다. 이 길에서 갈라져 나온 길은 제주 방향으로 향한다. 공주, 삼레역을 지나 태인, 정읍, 해남을 거쳐 제주로 연결된다. 이렇듯 교통의 요충지였던 동작진의 위치에 놓여진 다리가 동작대교이다. 


서강포구에서 서강대교로

마포에서 양화진에 이르는 사이의 한강을 서강(西江)이라 하였다.서강은 용산과 더불어 황해, 전라, 충청도의 조세곡과 경기 하류지역에서 물자를 수송하는 배가 모이는 세곡 운송의 중심지였다. 또한 인천으로 통하는 인천간로가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나루터로 창천, 광흥창을 지나 서강포구를 통해 영등포, 인천으로 이어진다. 현재 그 위치에 서강대교가 건설되고 있는데 강북의 신촌지역과 강남의 여의도를 연결하고 수원, 인천방향으로 이어지는 경인고속도로와도 연결된다.


1984. 동작대교 銅雀大橋

용산구, 서빙고동, 이촌동과 동작구 동작동을 잇는 한강의 11번째 다리이다. 동작대교는도로교와 지하철 4호선 전철교의 복합교량이다. 한강대교와 반포대교의 과밀 교통량 분산효과를 기대하고 1978년 10월에 착공하여 1984년 11월에 개통되었다.


흑석동 한강변

흑석동 한강변 나루에 정박해있는 어선을 찍은 사진이다. 흑석동 나루터는 "동재기나루터'라고 불렀는데 1970년까지 존재했다. "동재기"는 흑석동에서 국립현충원으로 넘어가는 강변일대에 구릿빛 돌이 많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그림이다. (1969 한치규 촬영)


동작대교 조감도


초기 건설 사진

동작대교 착공 당시 전경사진이다. 이촌동에서 반포동방향으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위쪽으로 한강 남쪽에 건설된 대단지 아파트였던 반포 아파트가 보이며 우측 상단에 반포천을 확인 할 수 있다.

(1979.7.1 한치규 촬영)



동작대교 교각 완공

동작대교 교각이 건설되는 과정을 담은 사진이다. 동작대교는 최대 경간 80m로 넓게 건설되어 주위 환경과도 잘 조화 되도록 하였는데, 이는 당시로서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사진 좌측상단에 이촌동과 이촌 한강맨션 아파트를 볼수 있다. (1981.9.13 한치규촬영)


1996년 서강대교

영등포구 의도동과 마포구 산정동을 잇는 다리로 한강 밤섬을 가로 질러 가설되었다. 기존 마포대교 및 원효대교의 상습적인 교통정체를 해소하고 여의도에서 신촌 및 서울 도심 방향으로 진출입을 쉽게 하기 위해 가설되었다. 1980년 6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몇차례  중단된 뒤 재개되었고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되다가 1999년 최종 완공 되었다


서강대교 공사 조감도

서강대교 기공식에서 촬영한 조감도이다. 다리 이름은 조선시대 이 부근의 한강을 '서강'이라고 부른데서 연유했다. 기공 당시에는 사장교로 설계되었으나 밤섬 환경문제로 닐슨 아치교로 변경되었다. 1980.6.


서강대교와 국회의사당

서강대교 공사 전 현장을 담은 사진이다. 멀리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이 보이며 당시 아직 개발 되지 않은 여의도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80.6


재개된 서강대교 교각건설

재개된 서강대교 교각 공사 현장을 찍은 사진이다.서강대교는 1980년 6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몇 차례 중단된 뒤 재개되었고 1996년부터 단계적으로 개통되다가 1999년 최종 완공되었다. 1993.4.15


밤섬

서강 대교가 관통하는 지점에 있는 섬이다. 밤섬 이라는 이름은 섬 모양이 밤처럼 생겨서 붙은 것이다. 1967년 까지 62세대가 살면서 고기잡이와 조선업 등에 종사하였으나 여의도를 개발할 때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하였다. 여의도 개발 당시 한강의 흐름을 좋게 하고 여의도제방을 쌓는데 필요한 잡석 채취를 위해 1978년 2월에 섬을 폭파. 해체하였다. 그 결과 밤섬의 대부분은 없어지고 "윗 밤섬"과 아랫 밤섬"으로 나누어졌다. 이후 한강 퇴적물에 의하여 나무와 풍이 우거지고 새들이 모이면서 도심 속의 철새도래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