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1.서울시 관광

강서구 궁산땅굴

동방박사님 2019. 9. 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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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땅굴 은...

2008년 가양동 235번지 궁산(해발 70m) 기슭 지하3m 지점에서 발견된 길이 68m,높이2.7m 폭2.23m 규모 땅굴이며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에 군사시설 목적으로 굴착된 것이다. 한강변에 맞닿아 있는 궁산 일대는 일제시대 군사 비행장이었던 김포공항과 3.1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리는 이곳을 '봉인된 시간과 공간의 터널'로 새로이 단장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교육현장으로 삼고자 한다.


궁산은?

궁산 정상에 자리한 양천 고성(古城)은 한을강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이던 삼국시대부터 육로와 수로를 확보하기위한 중요 군사거점이었다. 백제는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오는 침입을 경계하고 북방을 방어하기위한 군사요충지로 삼았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은 이곳 양천산성에 진을 치고 전쟁의 판새를 가늠 했으며, 행주산성으로 군대를 이동시킨 뒤, 행주대첩 이라는 빛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곳 궁산의 양천산성은 오랜세월동안 행주산성, 오두산성돠 더불어 한강 하구를 침입하는 적을 관측하고 방어하는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일제강점기 35년

1910년 8월 국권 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1945년 8월15일 광복에 으르는 35년 동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우리는 국권을 강탈해 간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설치한 뒤 행정,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쥐고 우리민족을 탄압했다.이 시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의 숫자가 780만 명에 이르는데, 이는 조선총독부 총계연보에서 밝힌 1942년 총인국가 2,630만 명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여러분야에서 이루어진 강제동원은 일제 강점기 35년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태평양 전쟁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아시아 전체를 식민지화하려는 계획 아래 중일전쟁을 일으키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차이나 반도로 침략하는 칼끝을 겨누었다. 이에 반발한 연합군에 대한 대응책으로 1941년 12월7일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전선을 태평양으로 확대시켰고,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시아 지역을 점령해 나갔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치열한 전투 끝에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찬이 투여되고, 피폭 4일만에 23만 4천여명에 이르는 피해자를 남기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었다.


김포비행장

일제 강점기였던 지난 1937년부터 총독부는 지금의 궁산옆에 있던 선유봉을 폭파해 거기서 나온돌로 김포비행장을 딱았고, 이를 가미카제 특공대의 훈련장으로도 사용하였다. 이곳은 광복이후인 1949년 미국과 한국이 협정을 맺으면서 미군 비행장으로 사용된다.

군사 비행장으로 쓰였던 김포공항은 1958년이 돼서야 마침내 정식국제공항으로 지정된다. 그리고 2년 뒤인 1960년 현 국내선 청사자리에 종합청사가 세워진 이후 60년간 대한민국 대표 관문의 자리를 지켜왔다.


궁산 땅굴 조성배경

일제가 소위 아시아공영권(共榮圈)이라는 미명아래 중국대륙을 침략의 구실로 1913년 만주사변을 알으키면서, 항공 산업발달로 육군항공대의 기능강화.

만주사변은 괴뢰국인 만주국을 탄생시킨 일제는 주욱본토 식민지화하기 위해 1937년 7월 마침내 중일전쟁 발발. 만주안동까지 철오로 군수품 수송 1908년 안봉선(安奉線)을 건설 일본본토에서 만주와 중국남경까지 직항로의 군용비행기의 연료보급필요.

1936년 지금의 김포공항(공항공)은 일본 육군 군사비행장을 건설 수립.

1937년부터 작업에 착수하면서 인근 야산과 궁산 한강변자락을 굴착하여 철로를 이용한 김포공항 활주로공사에 사용하여 사적372호인 양천고성지 북쪽의 성터가 훼손됨. 일제는 우리 고유문화와 역사말살 시키려 혈안. 땅굴조성이후 군사비행장 외곽관측 하는 군사비휘부로 사용,

1945년 광복이후 폐쇄. 2008년 서울시의원(정연회)의 시 예산편성으로 입구를 발굴하여 현재에 이룸.


궁산 땅굴 역사 전시관 조성연혁

2008년 4월 : 일제 강점기 말에 굴착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땅굴 발견

2010년 2월 : 복원 계획에 따른 기공식

           8월 : 내부 일부 구간 대형 낙석 발생

           9월 : 정밀 안전 진단 실시 및 사업계뢱 변경 추진

                  (안전사고 우려에 따른 공사중지)

          11월 :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진ㅇ비 방지장치 마련

2018년 5월 : 출입구에서 땅굴  내부를 조감할수 있는 전시관 조성


궁산 땅굴 역사전시관

궁산 땅굴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굴착된 곳으로, 무기나 탄약등, 군수물자를 저장 하거나 김포비행장을 감시하고, 공습 때에는 부대 본부로 사용하기 위한 곳 이었다고 전해진다.이곳을 건설하기위해 인근지역 주민들은 보국대로 강제 동원하였다, 일본의 퍄전으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굴착공사 또한 중지 됐지만, 이후 이곳은 여러가지 요도로 사용되어 왔다

소재지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235번지 주변 (가양동 235-1 (토지)<->마곡동 8번지 (산2번지 지하통로)

규모 높이 2.7m 폭 2.2m   68m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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