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이데올로기 연구 (책소개)/2.러시아혁명사

레닌

동방박사님 2021. 12. 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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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레닌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답하는 치밀하고 압도적인 전기

로버트 서비스는 혁명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서 레닌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 인간으로서 레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굳게 잠겨 있던 러시아 중앙당 문서고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삼아 레닌의 삶을 꼼꼼히 살피며 레닌이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세계적인 차원으로 폭발시킨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기폭제도 탐색한다. 레닌의 어린 시절과 그가 받은 교육이 그의 정치적 삶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끼쳤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밝혀내며, 그를 지지한 가족들과 민족적, 문화적 배경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서비스는 레닌을 무결점의 사상가, 정치가, 인도주의자로 채색해 온 소련의 공식 해석을 반박한다. 트로츠키가 제시한 레닌상, 즉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전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의견도 부정한다. 레닌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소련은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사회의 꿈을 이루었을까?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서비스는 러시아 혁명과 소련 역사 연구의 대가이다. 그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세 주역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를 연이어 발표했다. 세 권의 전기 중 첫 번째 책인『레닌』은 서비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소련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레닌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자료로 삼아 완성한 이 레닌 전기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 신격화와 악마화를 걷어낸 인간 레닌


1부 부르주아 반란자

1장 뿌리-유대인과 루터파

2장 명석한 두뇌 1870년~1885년

3장 반역자 집안 1886년~1887년

4장 퇴학당한 법학도 1887년~1888년

5장 변호사 혁명가 1889년~1893년

6장 혁명의 중심으로 1893년~1895년

7장 시베리아 유형 1895년~1900년


2부 볼셰비키 이론가

8장 망명자-《무엇을 할 것인가?》1900년~1902년

9장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1902년~1904년

10장 ‘피의 일요일’과 러시아 귀환 1905년~1907년

11장 파리 망명 1908년~1911년

12장 전투적 논쟁가 1912년~1914년

13장 패전을 위한 투쟁 1914년~1915년

14장 고독한 투사 1915년~1916년

3부 ‘10월 혁명’ 지도자

15장 2월 혁명과 4월 테제 1917년 2월~4월

16장 임시정부와의 투쟁 1917년 5월~7월

17장 변장과 도피 1917년 7월~10월

18장 권력 장악 1917년 10월~12월

19장 포위된 혁명 1917년~1918년 겨울

20장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 1918년 1월~5월

21장 내전 속으로 1918년 5월~8월


4부 혁명 수호자

22장 전쟁 지도자 1918년~1919년

23장 전시 공산주의 논쟁 1919년 4월~1920년 4월

24장 실패한 ‘혁명 전쟁’ 1920년

25장 신경제정책 1921년 1월~6월

26장 강박증과 죽음의 공포 1921년 7월~1922년 7월

27장 스탈린이라는 문제 1922년 9월~12월

28장 레닌의 유언 1923년~1924년


에필로그 - 레닌 숭배와 스탈린주의


주석
참고문헌
레닌 연보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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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로버트 서비스 (Robert Service)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 러시아 근현대사의 권위자로서 특히 혁명사 분야에서 업적을 인정받았다. 서구 학계와 평단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야심찬 연구 성과를 끊임없이 발표해 왔다. 《스탈린 : 공포의 정치학, 권력의 심리학》을 비롯하여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생애를 분석한 평전 3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의 저작은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분석을 앞세우는 연구 태도, 방대한 자료 조사...

역 : 김남섭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미국 인디애나대학 역사학과에서 러시아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서울대, 인하대, 가톨릭대 등에서 서양사를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울산업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러시아의 민족정책과 역사학』(공저),『세계의 과거사 청산』(공저),『꿈은 소멸하지 않는다』(공저) 등이 있고,『러시아의 민중문화: 20세기 러시아의 연예와 사회』,『20세기 러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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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무오류의 지도자’인가, ‘냉혹한 독재자’인가?
신격화와 악마화의 틀을 걷어낸 인간 레닌을 만난다


레닌은 교양 있는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었다. 헌신적인 장학관으로서 세습 귀족 지위에 오른 아버지와 자식들의 교육에 열성적인 어머니가 이룬 가정은 계몽주의 가족의 모범이었다. 라틴어, 그리스어 같은 고전 교육이 중심이었던 김나지야에서 레닌은 과정 내내 모든 과목에서 언제나 만점을 받는 탁월한 학생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다니던 형이 차르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교수형을 당한 후 이 명민한 학생은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레닌은 비범한 인물이었다. 레닌은 독보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였으며, 전투적인 당 조직가였다. 광적인 독서가이자 작가였던 레닌은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써서 독자들을 설득하고, 적들에 대한 분노를 선동하고, 혁명의 전망을 눈앞에 그렸다. 오직 혁명을 위해 살아온 그는 정치적 소수파에서 시작해 10월 혁명의 지도자가 되었고, 내전을 승리로 이끌어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지켜냈다. 레닌이 없었더라면 러시아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닌은 복잡한 인물이었다. 레닌은 절제가 몸에 밴 사람이었지만 인간 폭탄이기도 했다. 그가 분노를 토해내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레닌이 연단에 서면 청중은 꼼짝 못했다. 당 대회는 거의 레닌의 승리로 끝났다. 레닌에게는 무자비하면서도 사람을 고무시키는 지도자의 재능이 있었다. 계몽주의와 진보, 과학을 믿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혐오했다. 정치적 전위와 지도력의 필요성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독재와 공포 정치를 정당화했다.

레닌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답하는 치밀하고 압도적인 전기

로버트 서비스는 혁명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서 레닌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한 인간으로서 레닌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굳게 잠겨 있던 러시아 중앙당 문서고에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삼아 레닌의 삶을 꼼꼼히 살피며 레닌이라는 다이너마이트를 세계적인 차원으로 폭발시킨 사회적·문화적·정치적 기폭제도 탐색한다. 레닌의 어린 시절과 그가 받은 교육이 그의 정치적 삶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끼쳤는지 새로운 시각으로 밝혀내며, 그를 지지한 가족들과 민족적, 문화적 배경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서비스는 레닌을 무결점의 사상가, 정치가, 인도주의자로 채색해 온 소련의 공식 해석을 반박한다. 트로츠키가 제시한 레닌상, 즉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전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의견도 부정한다. 레닌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소련은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사회의 꿈을 이루었을까?

「b」최초의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
‘10월 혁명’의 주인공 레닌의 가장 엄정한 전기「/b」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인 로버트 서비스는 러시아 혁명과 소련 역사 연구의 대가이다. 그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세 주역인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의 전기를 연이어 발표했다. 세 권의 전기 중 첫 번째 책인『레닌』은 서비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소련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어 있던 레닌에 관한 모든 기록들을 자료로 삼아 완성한 이 레닌 전기는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부르주아 반란자는 레닌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다룬다. 1870년 정교회 신자인 장학관 아버지와 루터파 신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레닌)가 태어났다. 레닌의 부모는 둘 다 비러시아계 혈통이었다. 아버지 쪽은 러시아계로 볼 만한 근거가 없으며 어머니 쪽에는 확실히 유대인의 피가 흘렀다. 근대 계몽 사회를 꿈꾸었던 교양 부르주아 부모는 자식들의 교육에 전력을 다했고, 아이들도 모두 열정과 야심을 품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김나지야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던 레닌이 혁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황제 암살 음모에 연루된 형이 처형된 이후였다. 반체제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퇴학당한 후 가까스로 변호사가 되었으나 레닌의 삶의 방향은 러시아 구체제의 몰락에 맞춰져 있었다. 초기에 인민주의에 보이던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크스주의로 옮겨 갔다. 확고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레닌은 혁명의 중심인 상트페테르크부르크에서 율리 마르토프와 함께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하지만 곧바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뒤에 레닌과 마르토프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두 주역으로서 각각 볼셰비키파와 멘셰비키파를 이끈다.

제2부 볼셰비키 이론가에서는 17년간의 유럽 망명 시기를 다룬다. 3년간의 유형 생활을 마친 레닌은 1900년 취리히로 떠난다. 논쟁작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발표하면서 ‘레닌’이라는 가명을 혁명가 세계에 각인하고, 러시아 사회주의의 선구자 플레하노프와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레닌은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 분파의 지도자가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취리히, 런던, 파리 등지를 오가며 망명 생활을 하면서 뛰어난 조직가이자 이론가로서 혁명 조직을 만들고 동료 사회주의자들과 혁명의 길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에서 자국 정부를 지지하고 나선 독일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사회주의자들과 반전을 주장하는 사회주의자들 간에 분열이 일어난다. 레닌은 러시아의 패전을 주장하고, ‘유럽 내전’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고독한 시절을 보낸다.

제3부 ‘10월 혁명’ 지도자는 1917년 2월 혁명부터 10월 혁명 과정에서 보인 레닌의 결정적인 역할을 자세히 살핀다. 2월 혁명이 발발해 로마노프 왕정이 붕괴하고 임시정부가 들어선 러시아에 돌아온 레닌은 임시정부 타도와 유럽 사회주의 혁명을 내세운 「4월 테제」를 발표한다. 이 낯선 주장은 처음에는 당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레닌의 확고한 의지는 결국 볼셰비키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임시정부와 벌이는 투쟁 과정에서 레닌은 타협 없는 길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장 봉기를 통한 권력 장악이었다. 1917년 10월 25일 볼셰비키는 무능력한 임시정부를 무력으로 공격해 권력을 장악한다. 새 정부인 ‘인민위원회의’ 의장이 된 레닌은 혁명 이후 투표로 성립한 제헌의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독일과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을 맺어 위기 속에 전쟁을 끝내지만 나라는 내전 속으로 빠져든다.

제4부 혁명 수호자에서는 혁명 이후 혼란 속에서 국가 체제를 갖추어 가며, 나라 안팎에서 밀어닥친 신생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내전을 승리로 이끈 레닌은 혁명을 유럽으로 확장하기 위해 ‘혁명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지만 폴란드 군대에 패하고 만다. 혁명 확산 여부와 사회주의 국가의 방향을 두고 당내에서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트로츠키와 전시 공산주의 논쟁을 벌인 레닌은 이후 노동자반대파와 민주집중파를 비롯한 여러 분파들을 통제한다. 위기는 계속되어 혁명에서 중요한 지지 세력이었던 수병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봉기(크론시타트 봉기)를 일으키고, 레닌은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이후 어려워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신경제정책을 도입한다. 그 무렵부터 레닌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요양과 복귀를 반복하면서 마지막까지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기를 고집하던 레닌은 후계자 문제에서 자신이 서기장으로 삼았던 스탈린을 위험하다고 판단해 비밀 유언을 작성하였으나 이미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1924년 1월 21일 레닌은 54년의 생을 마쳤다.

인간 레닌을 만나지 않고서는
러시아 혁명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레닌은 특출한 인물이었다. 그는 볼셰비키라는 공산주의 분파를 창설해서 당으로 키웠으며, 그 당은 1917년 10월 혁명을 일으켰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선포되었고, 이 국가는 온갖 곤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소비에트 국가는 세계의 극좌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횃불이었고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다른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암초였다. 레닌이 해석한 마르크스주의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경전이 되었다. 소련의 공산주의 모델(일당 국가, 이데올로기 독점, 전투적 무신론, 공포 정치)은 전 세계로 전파되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공산주의는 1989년 동유럽에서, 1991년 말에는 소련에서 해체되었다. 레닌보다 공산주의 체제의 발전과 수립에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닌은 역사를 만들었다. 1917년 「4월 테제」에서 레닌은 당의 권력 장악 전략을 기초했다. 10월에 레닌은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1918년 3월에 레닌은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을 맺음으로써 독일의 러시아 침공을 피했다. 1921년에 레닌은 신경제정책을 도입해서 인민 반란으로 소비에트 국가가 궤멸하는 것을 막았다. 레닌이 이러한 전략적 변화를 이끌지 않았더라면 소련은 결코 건국되지도 못했고 자리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 프롤로그에서

역사적 인물로서 레닌은 오랜 세월 동안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간 해방을 꿈꾼 순결한 혁명가였는가,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이었는가? 피에 굶주린 독재자였는가, 인도주의자였는가? 그가 혁명으로 이루려 한 것은 공포로 유지되는 전체주의 사회였는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는가? 로버트 서비스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레닌이라는 인간의 삶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추적해서 혁명가 레닌과 인간 레닌을 함께 이야기한다.

“레닌은 일부 극단적인 숭배자나 혐오자들이 주장하듯이 전지전능한 신도, 무자비한 악마도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억압에 분노하여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려 했던, ……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서비스의 이 역작이 레닌을 ‘인간화’함으로써 러시아 혁명을 좀 더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역자 후기’에서

레닌에 관한 기록들은 은폐되어 있었다. 소련이 해체되기까지 70여 년간 레닌의 공식 이미지와 어긋나는 문서와 비망록들은 중앙당 문서고에 봉인되었다. 그리하여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공산주의 진영에서 레닌은 전지(全知)의 혁명 성인이 되었다. 이론가, 선전가, 당 조직가로서 레닌은 ‘무오류의 타고난 천재’로 그려졌다. 혁명가, 동지, 남편으로서 레닌의 인간성은 찬양되었고, 당 지도자, 정부 수장, 정치인으로서 레닌의 천재성은 환호받아야 했다. 1991년 문서고가 개방되던 날 로버트 서비스는 비밀 문서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레닌 가족의 서신과 회고도 살펴볼 수 있었다. 신화의 베일에 싸여 있던 인간 레닌의 삶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레닌주의 이데올로기는 10월 혁명의 기원과 결과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며, 그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에 레닌이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서비스는 레닌이 당과 국가에서 권위주의를 최소화하려 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볼셰비키당이 대단히 민주적이었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레닌이 죽기 직전에 독재, 계급 투쟁, 공포 정치와 절연하고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다는 주장도 부정한다.
레닌의 제도적 유산은 막대했다. 인민위원회의를 만들고 제헌의회를 해산했다. 체카를 창설했으며, 독재와 공포 정치를 정당화했다. “독재는 거창한 단어이다. 그리고 거창한 단어를 쉽게 바람 속으로 내던져서는 안 된다. 독재는 철의 권위이고, 그 권위는 착취자와 훌리건 모두를 억압하는 데 신속하고 무자비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으로 대담하다.”(레닌, 1918년 4월) 서비스는 레닌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레닌이 스탈린을 해임했더라면 훨씬 인간적인 사회주의가 만들어졌을 거라는 흔한 역사의 가정을 단호히 부정한다. 소비에트 국가의 틀을 세운 사람은 레닌이었으며, 스탈린은 레닌의 유산을 이어받아 실행한 후계자였음을 보여준다.

10월 혁명, 마르크스-레닌주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레닌에게 그 존재를 빚졌다. 레닌이 전시의 혁명 러시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건설한 것은 재생산될 수 있는 고안물이었다. 레닌은 자신의 건축 계획을 수출하고 싶어 했고,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회원 정당들이 모스크바에서 개발된 이데올로기와 조직 원리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레닌은 자신의 모형을 혁명적 공산주의 국가들에 적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에게 떨어졌다. 게다가 레닌주의 모형은 중국, 북베트남, 쿠바의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에게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종류의 나라가 공산화되고 있는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업 국가이며 국민들이 문자를 해득할 수 있었던 가톨릭 국가 체코슬로바키아도, 농업 국가이며 국민들이 문맹이었던 북베트남도 공산화되었다. 레닌주의가 도입된 방식은 침략부터 현지의 공산주의 정치 선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 결과는 동일했다. 레닌은 바로 이런 이유로 책임질 것이 많다. - ‘에필로그’에서


가장 차분한 방식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레닌 전기

서비스는 강박적이고 명민하고 완고한 한 인간의 비현실적 삶을 솜씨 있게 묘사해냈다. 레닌 전기들은 레닌을 성인 혹은 악마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비판적 역사관을 넘어 주제에 접근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만, 충실히도 서비스는 레닌을 어느 한쪽에 치우쳐 묘사하지 않는다. - Gary Younge, The Guardian

서비스의 이 훌륭한 전기는 레닌을 연구한 기존의 모든 전기를 대체한다. 역사학, 심리학, 인류학, 지식사회학과 정치 이론이 결합되어 있는 이 책은 근대 급진 혁명 지도자 연구의 좋은 본보기이다. 서비스는 레닌을 향한 공감과 반감이라는 감정과도 거리를 유지하며,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그의 삶과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공들여 추적한다. - Tsuyoshi Hasegawa,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서비스의 저작은 블라디미르 울리야노프(레닌)의 성격, 태도, 지성, 무자비함, 그리고 중요성에 관한 모든 의문에 답한다. 서비스가 언급한 것처럼, 역사를 이끈 우연들만 아니었다면 레닌은 무명의 망명자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에 관한 문제는 이 탁월한 전기 전체에서 솜씨 있게 논의된다. - Gilbert Taylor

레닌이 이끈 10월 혁명이 진정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지는 좀 더 근본적이고 논쟁적인 문제이다. 스탈린이 레닌의 진정한 후계자인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볼셰비즘 창시자에 관한 평가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지점에 영국 역사학자 로버트 서비스의 저작이 있다. 이 책은 그가 일생을 바친 주제로서, 레닌의 정치적 삶을 꼼꼼하게 조명한 연대기이다. - Martin Malia,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명쾌한 서술, 예리한 비평, 생생한 일화가 가득한 전기. 특히 많은 저술들이 실패한 부분인, 레닌이라는 인간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 S. A. Smith, Sunday Telegraph

공산주의 러시아 설립자에 대한 빈틈없는 전기이다. 서비스는 기존의 레닌의 이미지에 살을 붙이고 감정을 더한다. 레닌은 삶 자체가 정치였으나, 서비스는 레닌의 인간적 측면을 완전히 드러냈다.
- Herald Shukman, The Times

이 놀라운 책의 장점은 레닌의 개인사, 그의 모든 저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 그리고 혁명 시기 러시아의 광범위한 정치적, 사회적 환경의 광범위한 재구성까지, 이 모두를 조화시키는 작가의 능력이다. - Richard Overy, Literary Review

지금껏 쓰인 것 중 가장 신뢰할 만하며 가장 균형 잡힌 레닌 전기이다. 또한 가장 차분한 방식으로 가장 두렵게 만드는 저작이다. 공산주의가 남긴 무시무시한 유산의 근원을 깊이 추적하는 중요한 연구이다. - Kirku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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