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역사기행 (책소개)/2.역사문화산책

보국안민 발길로 서울을 걷다 : 서울 지역 동학 천도교 사적 이야기

동방박사님 2021. 12. 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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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울의 동학·천도교 관련 주요 사적과 비슷한 시기 인근의 사적들을 관련 인물·사건과 함께 정리하였다. 주제가 있는 역사, 체험하는 역사의 길잡이이다. 격동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맥을 같이한 동학·천도교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한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보국안민의 활동을 벌였다. 이 책에는 천도교중앙대교당을 비롯, 보성사, 취운정, 봉황각 등 서울의 천도교 사적들과 태화관, 승동교회 등 인근의 주요 사적들을 관련된 사건, 인물과 함께 담았다.

목차

제1부 보국안민, 서울에 안기다(천도교 주요 사적)
1. 천도교중앙대교당, 천도교중앙총부, 대신사백년기념관, 수운회관
2. 봉황각(鳳凰閣)
3. 상춘원(常春園) 터
4. 광화문
5. 해월신사(최시형)의 순도지
6. 다동 의암성사(손병희) 댁과 중앙총부 설치
7. 《만세보(萬歲報)》 발행, 보문관(普文館)
8. 중부 관인방 대사동 의암성사(손병희) 집
9. 면주동 천도교중앙총부, 춘암상사(박인호) 대도주 선수터
10. 기와집 천도교중앙총부
11. 천도교 한성교구와 각 전교실
12. 천도교중앙총부, 보성전문학교, 보성초등학교,천도교 한성교구(경성교구)
13. 북부 전동(?洞) 보성학교
14. 보성사
15. 동덕여학교(同德女學校)
16. 취운정(翠雲亭)
17. 의암성사(손병희)의 집터
18. 춘암상사(박인호) 댁
19. 태화관
20. 탑골공원 의암성사 동상
21. 감고당 인쇄소
22. 신간회경성지회
23. 보문사(普文社)
24. 조선농민사 인쇄부
25. 중성사 인쇄부
26. 서북학회, 보성전문학교
제2부 보국안민, 서울에 흐르다(북촌 지역)
1. 운현궁(雲峴宮)
2. 광혜원(제중원), 헌법재판소
3. 안동별궁(安洞別宮)
4. 감고당(感古堂) 터
5. 안동의원(安洞醫院)
6. 기호학교, 한성중학교, 동아일보사
7. 규장각(奎章閣) 터
8. 중앙학교
9. 한용운 집터, 석정보름우물터, 김성수 집터
10. 제생원, 관상감관천대, 계동궁 등
11. 금위영 터, 비변사 터
12. 통례원 터, 종부시 터
13. 박용성 거주터, 대각사(大覺寺)
14.지석영·조광조 집터
제3부 보국안민, 서울에 자라다(경운동 지역)
1.교동초등학교
2.민가다헌 민병옥(閔丙玉) 가옥
3.조선건국동맹, 가톨릭의과대학 터
4.한말 일본공사관 터
5.관립외국어학교, 경성여고보교, 종로경찰서
6. 정우회회관, 조선물산장려회, 고려발명협회, 조선공학회
7. 박영효 집터(경인미술관)
8. 조선물산장려회관 터
9. 사동궁(寺洞宮) 터(이강 공 집터)
10. 충훈부(忠勳府) 터
11. 조선극장 터
12. 승동교회
13. 시천교당, 서울청년회, 경성청년연합회, 사회주의자동맹
14. 우정총국, 전의감, 민영환 집, 도화서 터
15. 조선노동연맹, 조선노동총동맹회관 터
16. 조선일보사, 조선중앙일보사 터
17. 수송공원
18. 수진궁(壽進宮), 수진측량학교 터
19. 정도전 집터, 수송국민학교 터
20. 중부학당(中部學堂) 터
제4부 보국안민, 서울에 꽃피다(종로 지역)
1. 모전교(毛廛橋), 혜정교(惠政橋)
2. 신간회경성지회 회관
3. 경성지방법원, 복심법원, 종로경찰서
4. 대동인쇄주식회사, 성문사 터
5. 근우회본부 터
6. 일제 종로경찰서
7. 이문 터
8. 보신각(普信閣), 한성정부 선포 터
9.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
10. 신간회본부 터
11. 6·10독립만세운동 선창 터
12. 단성사 극장
13. 우미관(優美館) 터
제5부 기타 지역
1. 서대문형무소와 마포 경성형무소
2. 해월신사(최시형) 묘소
3. 의암성사(손병희) 묘소
4. 춘암상사(박인호) 묘소
5. 천도교회묘지공원
6. 망우리 묘지공원
7. 국립서울현충원
 

저자 소개

저 : 이동초
 
개벽라키비움 동학천도교사전연구회 회장. 전 천도교서편찬위원, 전 <신인간> 편집위원.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천도교 자료 발굴 및 정리에 착수하여 『천도교회종령존안』(2005, 편저), 『황산 이종린 식사집-연사수지』(2006, 편저), 『천도교 민족운동의 새로운 이해』(2010), 『보국안민의 발길로 서울을 걷다』(2017) 등의 단행본을 낸 데 이어 2015년 4월 5일에 동학천도교사전연구회의 『동학천도...
 

책 속으로

취운정은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閔泳翊) 당시에 출세를 위해 민씨 세도를 좇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곳으로 유명하다. 어느 봄날 민영익은 복숭아꽃 구경을 하느라고 눈이 팔려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면(反面)하였다. 장 모(張 某)는 이것을 풍자하여 ‘거년금일 차문중(去年今日 此門中) 반면도화 상영홍(反面桃花 相映紅) 반면불지 하처거(反面不知 下處去) 도화의구 소춘풍(桃花依舊 笑春風)’이라고 하였다. 이 글은 당나라 최호(崔護)의 시를 돌려 꾸민 것으로 ‘인면(人面)’을 ‘반면(反面)’으로 바꾸어 민영익을 ‘반면’함으로 조소하여 한때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가회동(嘉會洞) 화동(花洞) 계동(桂洞)이라 하면 부촌이라는 인상이 짙으나 가회동과 취운정은 민씨 세도의 터전이었고 우국지사들의 회의장이 되어 개혁운동을 계획하였던 곳이었다.
--- p. 162

태평양전쟁 중에는 대교당과 백년기념관이 모두 징발되었는데, 1944년 12월에는 기념관 경내 130평 5홉을 종로구에서 가청사를 건축하여 종로구 호적과로 사용하였고, 대교당은 경기도청에서 징발하여 조선인 김흥배(金興培, 野田)가 군피복 공장을 하겠다고 재봉틀과 기자재를 마당에 갖다 놓기까지 하였으나 광복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한국전쟁의 전란을 겪으면서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왔다.
--- p. 37

의암성사는 교회 간부들을 데리고 왕래하면서 상춘원에서 교회사를 논의하였다. 상춘원에 나갈 때는 금빛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쌍두마차를 타거나 또는 포드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의암성사가 상춘원을 가기 위해 가회동을 출발해서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면서 종로를 달리면 연도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의암성사가 탄 차는 일본 공진회(共進會)에 출품된 것을 이강(李堈) 공이 주선하여 구입한 포드 5인승이었는데 일본에서 타던 것을 가져온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으로서는 최초의 자가용이었다. 1918년 12월에는 의암성사가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과 이곳에서 수차례 회합을 갖고 파리강화회의 개최에 즈음한 국내외 정세와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 p. 82

본래 한성부 안국방 37번지(안국동 37)로 현재 덕성여자고등학교 자리이다. 조선 시대 제19대 숙종이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친정을 위하여 지어 준 집이다. 인현왕후의 부친인 민유중(閔維重)이 살았으며,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 이곳에서 거처하였다. 이후 대대로 민씨가 살았으며, 1866년(고종 3)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봉되었는데 왕비가 된 명성황후는 과거 인현왕후의 일을 회상하여 ‘감고당(感古堂)’이란 이름을 붙였다.
--- p. 209

1919년 상해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11월 안동에서 일경에 발각, 강제로 송환되어 사동궁에 은거하였다. 그 후 장남 이건(李鍵)에게 세습하게 되면서 사동궁은 ‘이건공저’라고 불리었다. 한성기원이 자리를 잡지 못할 때 사동궁의 한옥 15칸을 기원으로 제공, 조선기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47년에 민간에 불하되어 사동궁 건물의 일부가 1955년부터 ‘도원’이라는 요정으로 사용되었다. 2005년 종로구청이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철거하였다.
--- p. 250
 

출판사 리뷰

서울, 오래된 신식의 도시

경제 발전은 건국 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명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한 한국민들은 때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산업화와 경제 발전에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경제 논리에 밀려 윤리의 잣대가 무시되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전통과 과거는 청산해야 할 적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산업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특히 서울의 변화는 눈부시다. 서울은 1394년 천도 이래 600여 년을 도읍지로 자리해 온 곳이지만 오래된 것들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먼 과거를 들출 필요 없이 어린 시절의 기억만 돌아보더라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최신형의 도시이다.
다행인 것은 그동안 도외시되었던 과거 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흐름이 생겼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응답하라, 19○○」 시리즈로 대변되는 1980~1990년대를 추억하는 복고 드라마의 열풍이 있었고, 조선 시대 말을 타고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들을 피하기 위한 길에서 유래했다는 피맛골(避馬골)의 철거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정답은 없다.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가치 충돌 상황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고, 어떤 것은 적정선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적들 역시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 상춘원같이 옛 터에 표석만 남은 곳도 있고, 서북학회 회관처럼 원래의 자리에서 건물만 이전한 경우도 있다. 또 면주동 천도교중앙총부처럼 정확한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는 곳도 더러 있다.

동학 천도교,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보국안민의 족적을 남기다

정치의 문란과 외세의 압력으로 혼란했던 조선 후기, 시천주(侍天主) 가르침으로 민중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졌던 동학은 교조 수운 최제우가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죄로,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이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죄로 참형당하는 등 핍박과 고난의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다.
어느 역사에서나 새로운 것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로부터 배척당했고, 평등과 반봉건의 가치를 추구했던 동학 역시 그런 길을 걸었다.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교세를 확장하고 조직을 정비해 온 동학은 1905년 천도교라는 이름을 선포하며 변신을 꾀했고, 1906년 서울에 천도교중앙총부를 설립한다. 이때부터 천도교의 활동 대부분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민중들을 중심으로 세를 넓혀온 동학·천도교는 1900년대 들어 가장 거대하고 체계적인 종교 조직이 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3·1운동, 출판문화운동, 어린이운동, 교육사업 등을 주도하며 사회 각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천도교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울을 조명하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아쉬운 것은 일제강점기와 분단을 거치며 많은 부침을 겪은 천도교의 교세가 약해짐에 따라 경운동의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우이동의 봉황각 등 몇몇을 제외하면 원형이 보존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성신가정여학교(성신여자대학교의 전신)와 동양공과학원(한양대학교의 전신)의 교사로 사용되기도 했던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은 철거되어 사라졌고, 해월 최시형이 순교했던 자리를 가리키는 표석은 몇 년 사이에 다섯 차례 이상 위치가 옮겨지기도 했다. 보성학원(고려대학교의 전신)과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보성사 자리에는 조계사가 들어서 당시 있던 회화나무만 경내에 남았다.

책, 발로 뛰며 보국안민을 담다

“이 책을 만드는 몇 년 사이에도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어떤 곳은 사진을 서너 차례 이상 교체했을 정도로 서울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장소를 직접 발로 뛰며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다.
서울은 해방 이후로 한정하더라도 여러 차례 확장되고, 개발되고, 행정구역도 변경되었다. 최근에는 도로명주소체계가 도입되면서 ‘동(洞)’이라는 영역 개념이 유명무실해져 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하나의 번지였던 것이 여러 주소로 쪼개지거나 그 반대로 여러 곳이 하나의 주소가 되는 경우, 혹은 아예 주소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도 생겼다. 각종 문헌과 행정관청의 기록 등을 조사하고 최종적으로는 직접 찾아가 확인했다.

이 책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주제 아래 서울에 있는 천도교의 사적과 장소들을 그곳에 얽힌 역사와 사건, 인물과 함께 설명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확장해 동시대, 사건이나 인물과 접점이 있는 인근의 사적들을 소개했다.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경운동의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우이동의 봉황각 등 천도교의 주요사적을, 2부에서 5부까지는 북촌, 경운동, 종로, 기타 지역으로 구분하여 사적들을 26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 안내서와는 다르지만, 소개된 사적 중 대다수가 북촌과 종로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이곳을 여행하는 이들도 활용할 만하다.
역사는 문화재나 박물관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보국안민이라는 장대한 길도 손 뻗으면 닿는, 평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지나치던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