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전쟁교훈여행 (2010~) (여행)/3.한국다크투어 15

국립서울현충원 (2016년)

국립서울현충원 이곳 국립서울현충원은 1955년 창설되어 144만제곱미터 (약 44만 평) 대지위에 17만 6천여 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영면하고 있는 민족의 성역(聖域)입니다.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는 현충문(顯忠門)과 현충탑(顯忠塔) 이 있으며, 현충탑의 위패봉안과 현충탑 동문의 부부위패판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하고도 유해를 찿지 못한 장병들을 비롯하여 10만 4천여 유공자들이 위패(位牌)로 봉안(奉安)되어 있고 현충탑 안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는 찿았으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6천여 무명용사들의 영현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묘역(墓域)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과 김대중 대통령, 김여삼 대통령을 비롯하여 임시정부 요인, 애국지사, 국가사회공헌자, 군인, 경찰관, 예비군 ..

제암리 학살사건

제암리 예배당에서 희생된 사람들 4월16일 언더우드와 테일러, 커티스 일행은 수원을 거처 사건현장인 수촌리로 가던중에 불타는 다른 마을 을 만났다. 바로 전날 (4월15일) 일본군의 방화와 학살이 이루어진 제암리 였다. 거시서 그들은 수촌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던 만행의 현장을 목격하며 살아 남은 주민들로 부터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이들을 통해 제암리 사건도 세상에 자세히 알려 졌다.사건의 내용은 이러 했다.4월11일 우정면과 장안면일대를 재차 습격한 일본군은 계속해서 남양과 오산, 발안,팔탄, 사강 등지를 돌며시위가담자들을 색출하였다. 그리고 4월15일 오후 보름 전에 있었던 발안 팔탄, 사강 등지를 돌며 시위가담자를 색출하였다. 그리고 4월15일 오후 보름전에 있었던 발안 장날시위 주모자..

국립서울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 이곳 국립서울현충원은 1995년도에 창설되어 144제곱미터 (약44만평) 대지 위에 17만 6천여 순국선열과 영면하고 있는 민족의 성역(聖域)입니다.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는 현충문(顯忠門) 과 현충탑(顯忠塔)이 있으며, 현충탑의 위패봉안관과 현충탑 동문의 부부위패판에는 6.25전쟁당시 전시하고도 유해를 찿지못한 장병들을 비롯하여 10만 4천여 유공자들이 위패 (位牌) 로 봉안(奉安)되어 잇고 현충탑 안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는 찿았으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6천 무명용사들의 연헌이 봉안되어있습니다. 묘역(墓域)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분,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과 김대중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하여 임시정무 요인 , 애국지사,국가사회공헌자, 군인, 경찰관, 예비군 등의 영현 5만4천여..

거제도 포로수용소

1950년 6월25일새벽4시,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하여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되었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그러나 100만여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전쟁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요하시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는데 그 중에는 300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최되었으나 전쟁포로 문제에 나항을 격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