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4.조선왕릉 38

남양주 사릉

남양주 사릉 南楊州 思陵 사적 제209호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 씨 (1440~1521)의 능이다. 정순왕후는 1457년 (세조 3년) 단종이 폐위되자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정업원** (현 서울 종로구 숭인동 소재)에서 생활하였다. 1698년 (숙종 24년)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대면서 정순왕후로 복위되었고, 단종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하여 능의 이름이 사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를 주변에는 해주정씨 묘역이 있다. 정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해주 정 씨 집안에서 지금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고, 제사도 지내 주었다. 이후 숙종대에 정순왕후가 복위되어 군부인의 무덤에서 사릉으로 높여지면서 사릉 능역 안에 있돈 해주 정 씨 집안의 묘를 능역 밖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 헌릉과 인릉

서울 헌릉과 인릉 서울 獻陵과 仁陵 (사적 제194호) 헌릉은 조선 제3대 태종 太宗 (1362~1422, 1400~1418 재위)과 원경왕후 민 씨 元敬王后 閔氏 (1365~1420)의 능이고, 인릉은 조선23대 순조 純祖 (17901834, 1800~1834 재위)와 순원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헌릉에 모셨고, 2년 뒤에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능이 조성되었다. 이후 1856년 (철종 7년) 경기도 파주에 있던 순조의 인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고, 이듬해 순원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합장릉** 의 형태로 능이 조성되었다. *쌍릉 : 한 언덕에 왕과 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형태. **합장릉 :왕과 왕후를 하나의 봉분 안에 조성한 형태. 헌릉 獻陵(태종과 원경황후) 헌릉은 조선 3대 태종..

인릉

서울 헌릉과 인릉 서울 獻陵과 仁陵 (사적 제194호) 헌릉은 조선 제3대 태종 太宗 (1362~1422, 1400~1418 재위)과 원경왕후 민 씨 元敬王后 閔氏 (1365~1420)의 능이고, 인릉은 조선23대 순조 純祖 (17901834, 1800~1834 재위)와 순원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헌릉에 모셨고, 2년 뒤에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능이 조성되었다. 이후 1856년 (철종 7년) 경기도 파주에 있던 순조의 인릉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고, 이듬해 순원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합장릉** 의 형태로 능이 조성되었다. *쌍릉 : 한 언덕에 왕과 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형태. **합장릉 :왕과 왕후를 하나의 봉분 안에 조성한 형태. 인릉 仁陵 (순조와 순원황후) 인릉은 조선 23대 ..

중랑구 선빈안씨 숙선옹주묘

선빈안씨 (善嬪安氏) 숙선옹주 (淑善翁主)묘 태종 (太宗)의 후궁. 검교 판한성부사 (判漢城府事) 안의 (安義)의 딸, 1421년 (세종3년)에 숙선옹주 (淑善翁主)로 책봉, 소생으로는 익녕군 이치 (益寧君 李袳> 태종의8남)와 소숙옹주 (昭淑翁主), 경신옹주(敬愼翁主)가 있음. 현위치 : 서울시 중랑구 공릉로 2라길 48. 산 37-3

연산군묘 - 도봉구

연산군묘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 (1476~1506. 1494~1506재위) 과 거창군부인 신씨 (1476~1537)의 묘역이다. 연산군은 성종과 페비윤씨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붓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 지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번의 사화로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반정으로 폐위 (1506년-중종1년) 되고 이복동생중종이 왕위에 올랐다. 이후 연산군으로 강등되고 강화도로 유배되어 그 해 31세로 세상을 떠났다. 1512년 (중종7년) 부인 신씨가 묘를 강화도에서 이곳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여, 중종은 1513년(중종8년) 왕자의에에 따라 묘를 옮기고 양주군의 관원이 제사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왕릉보다는 간소하나 왕자의 묘제에 따라 곡장, 혼유석, 장명등, 문석인, 재..

정의공주묘역 - 도봉구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 / 시대: 15세기후반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3번지 1호 이 묘역은 양효공(良孝公) 안맹담 (安孟聃: 1415~1462)과 그의 부인 정의공주 (貞懿公主?~1477)를 합장한 곳이다. 이 묘역의 봉분은 쌍분이고, 신도비 묘표2기. 상석2기, 문인석 2쌍, 3단 게체석 등의 석물이 남아 있다. 양효공의 본관은 죽산(竹山)으로 함길도 안망지(安望之)의 아들이다. 1428년 (세종100에 14세의 나이로 세종의 둘째딸 정의 공주와 결혼하였는데 부부의 금슬이 매우 좋았다고 전한다. 세종은 그에게 한강 가운데 있는 저자도와 낙천정을 하사하였다. 그는 초서를 잘써서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고 음악과 의학에도 통달하였다. 묘역의 ..

조선왕조 계보도

조선왕릉 갯수는 총 120기에 이르는데 능이 42기, 원이 14기, 묘가 64기 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왕과 왕비의 능은 남한에 40기, 북한에 2기가 있는데요. 북한에 있는 두 개의 능은 '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묘인 제릉'과 '정종과 정인왕후의 묘인 후릉'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에는 40기의 능이 있는데 2009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있는 상태입니다. 남북이 빨리 종전선언과 평화동지가 되어 남은 2기까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길 기원해 봅니다. 능, 원, 묘의 차이점은? 능은 왕과 왕후의 무덤이고, 원은 세자와 세자비, 후궁의 무덤, 묘는 그 외 왕족의 무덤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왕실 무덤의 형태도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한 분만 모시고 있는 것은 단릉 두 분을 따로 모셔서 이웃하게 배치한 ..

선릉정릉

선릉.정릉 宣陵 .貞陵(사적 제199호) 선릉은 조선 제9대왕인 성종 成宗 1497~1494 재위 1469~1494ㅘ 그의비 정현왕후 1462~1530의 능이다. 정릉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이며 조선제11대 왕인 중종中宗 1488, 재위1506~1544의 능이다. 성종은 세종과 세조의 업적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통치제도의 기준이된 을 편찬하는 등여러가지 업적을 남겼다. 정현왕후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가 물러난 후 왕후 자리에 올랐다.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후 향약鄕約을 권장하여 유교적인 체제를 마련하였다. 선릉 宣陵 선릉은 조선 9대임금 성종 (1457~1494) 재위 (1469~1494) 계비 정현왕후 윤씨 (1462~1530)를 모신 동원이강릉이다. 서쪽언덕에 성종의 능침이, 동쪽언덕에..

도심 속 역사의숲

서울 선릉과 정릉 宣陵. 貞陵 (사적 제199호) 이곳에는 조선의 제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를 모신 선릉, 그리고 제11대 임금 중종을 모신 정릉이 있다. 선릉은 1494년에 성종이 승하하면서 조성하였는데 정현 왕후가 돌아가시자 그 옆에 동원이강릉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정릉은 원래 고양시 서삼릉 구역에 정경왕후와 함께 조성하였으나 1562년에 이곳에 옮겨왔다. 선릉과 정릉의 원찰로 봉은사가 있으며, 봉은사는 선릉과 동북쪽 약1km에 있다/선릉과 정릉은 1970년대 개발 압력에도 현재의 지역이 잘 보존되어 대표적인 도심속 왕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재실 재실은 제레앞에서 제관들이 미리 도착하여 몸과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다.평소에는 참봉 (종9품)등 관리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능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