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천주교성지 (2016~) (여행)/2.인천.수원 (서울관구) 17

이천 단원성지

이천 단원성지 김대건 신부의 사목활동지이며, 정은 바오로와 정베드로 순교자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곳이다. 위치 :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이섭대천로 155번길38-13 (단천리357) 이천시 호법면 단천리에 위치한 단내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당시 광주 유수부인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 (1804~1866, 바오로)과 그의 재증손인 정베드로 (?~1866)고향이자 유해가 묻혀 있는곳이다. 광장 한편에 성가정상과 이천지역에서 태어나거나체포되어 순교한 5위 성인 순교비가 자리하고 있고, 그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말끔하게 단장된 순교자 정은 바오로와 정 베드로의 묘소가 나온다. 어농리 사적지와 불과 몇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단천리는 유서 깊은 교유촌이기도 하다. 이천 동산밑 (호법면 동산리)이 고향인 이문우 (요한..

용인 은이성지

용인 은이성지 은이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살던 "숨은 이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웃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자라난 골배마실 교우촌이 있으며, 문수봉 넘어 남서쪽에는 한덕골 교우촌과 미리내교유촌이 자리잡고 있었다. 은이교우촌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1846년 48세로 포도청에 곤장을 맞고 교수형으로 순교한 충청도 출신의 한이형(1799~1846 : 라우렌시오) 성인기록에 보면 21세때(1819년) 혼인한 뒤 곧바로 은이마을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그는 은이 교우촌의 회장을 지냈다. 은이와 골매마실은 두 차례에 걸쳐 박해를 받게 되었다. 1839년의 기해박해로 김제준이 골배마살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순교하였으며, 1846년의 병오박해 때는 공소회..

양평 양근성지2

양평 양근성지2 양근지방은 한국천주교회 창설의 요람이며 선교의 중심지이자 신앙 선조의 순교터이다. 양근지방은 한국천주교회 창설초기 권철신(암브로시오),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영향으로 많은 천주교신자가 배출되었다. 충청도 내포의 이존창(루도비코곤자가), 전라도 전주 초남의 유항검(아우구스티노)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또한 양근에서 살던 윤유일(바오로)은 권철신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연구하면서 한국천주교의 첫 밀사로 1795년 주문모(야고보)신부를 맞아 들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수원성지 복수원성당

수원성지 복수원성당 수원성지 복수원성당 2000년 대희년에 수원교구장 최덕기(성바오로) 주교님에 의해 토포청자리에 위치한 복수원성당(구 수원성당)을 중심으로 수원화성 전체가 순교성지로 선포 되었고, 하나님의 종 순교자 원프란치스코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과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을 기리는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한산성 순교성지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지리상 중요한 요충지였다. 조선중기인 1577년 (선조10)에 광주부가 설치되어 지방관부유(종2품)이 상주하다가 1623년 (인조1)에 유수부로 승격되면서 경관인 유수 (정 2품이 파견되었다) 이처럼 유수의 처소가 이전되면서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박해때마다 여러 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 으로 끌려와 순교함으로써 잊을수 없는 "순교터"가 되었다.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 (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 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다. 신유박해 (1801년)때에는 이 곳에서 기해박해 (1839년)병인박해 (1866년) 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불행이도 그행적과 성명을 알수 있는 순교자 들의 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