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대한민국 현대사 (책소개)/3.민주화운동

1980 대중봉기의 민주주의

동방박사님 2022. 5. 1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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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대중운동으로서의 광주항쟁이라는 문제 설정

올해로 41주년을 맞이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분석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는 5·18을 대중 봉기로 새롭게 개념화하고 있다. 대중 봉기는 어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상상할 수 없던 행위를 발명하며 잡다한 목소리와 언어를 쏟아 내고 비범한 자발성을 표출하는 시공간을 창출한다. 이 봉기 과정에서 대중들은 다수의 참여를 통해, ‘주어진 세상’이라고 알려진 상징 질서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구성한다.

이 같은 대중운동이라는 문제틀은 광주항쟁은 물론 기존의 주요 사회운동을 이론화하는 해석틀과의 대결을 전제로 한다. 곧, 한편으로 광주항쟁에 대한 국가 중심적 해석(국가 혁명론) 및 주체 중심적(사회 중심적) 해석과 대결함은 물론, 1980년 광주를 민중항쟁이나 무장 투쟁론적 시각에서 특권화하려는 시각과 절대적, 균질적 시민 공동체라는 비정치적 신화로 바라보는 기존의 분석들과도 대결한다. 이 같은 대결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시각들이 대체로 광주항쟁과 그 주체들을 숭고한 대상으로 승화시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영웅들의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민중, 계급 중심의 분석틀과 무장 투쟁론을 특권화하는 1980년대 이후의 시각은 5·18 무장투쟁을 해석하고 재현하면서 대항 폭력을 과도하게 특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이를 통해 ‘적과의 전쟁’을 중심에 두는 정치적 논법과 운동 문화를 형성시켰다. 반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폭력, 비무장 시민의 인류애, 사랑을 기반으로 형성된 절대 공동체를 특권화하는 시각은 5.18 항쟁의 정치적 성격과 의미를 배제하는 비정치적 신화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영웅 신화들은 오히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5·18을 탈정치화하고 5·18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기는 데 기여한다.

 

목차

개정판 서문 5·18로부터의 자유 6
초판 서문 흔해 빠진 평범한 사람들의 반역 12

1부 재현과 해석
1장 5·18 광주 항쟁과 저항 주체 22
2장 절대공동체, 반정치의 신화 48

2부 이데올로기, 주체성, 반폭력
3장 5·18 광주 항쟁의 이데올로기 78
4장 5·18 광주 항쟁에서 시민군의 주체성 120
5장 대중 봉기의 패러독스: 1980년 광주 항쟁과 1989년 톈안먼 항쟁 156
6장 5·18 광주 항쟁 전후 사회운동의 이데올로기 변화 194
7장 5·18 무장 투쟁과 1980년대 사회운동: 대항 폭력의 과잉과 반폭력의 소실 228

3부 대중 봉기의 이론
8장 폭력과 저항 260
9장 대중 봉기의 이데올로기와 민주화 294
보론 대중 봉기와 소문의 정치학 334

참고문헌 344
찾아보기 360
초출 일람 367
 

저자 소개 

저 : 김정한 (Kim, Jung han,金廷翰)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 연구: 5·18광주항쟁과 6·4천안문 운동의 비교』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실천문학 편집위원, 문화 과학 편집위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민간조사관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현대 정치철학연구회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현대 정치철학을 통해 ...
 

책 속으로

그들은 1980년대 국가 중심적 재현 틀에서 제시한 바 있듯이 무장봉기로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투사’ 내지 ‘전사’라는 저항 주체의 모델을 통해서도, 최근 주체 중심적 재현에서 제기하는 초인이나 비인칭적 특이성이라는 저항 주체의 모델을 통해서도 여전히 적절하게 포착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철두철미한 주체가 아니고, 늘 능동적인 주체도 아니며, 영웅적인 주체는 더더욱 아니다.
---pp.42,43

주체 중심적 재현은 국가주의 비판을 선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항쟁의 현실적인 평범한 주체들을 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1980년대 국가 중심적 재현 틀에서 제시한 바 있듯이 무장봉기로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투사’ 내지 ‘전사’라는 저항 주체의 모델을 통해서도, 최근 주체 중심적 재현에서 제기하는 초인이나 비인칭적 특이성이라는 저항 주체의 모델을 통해서도 여전히 적절하게 포착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중심에 두는 5·18에 대한 주체 중심적 재현은 그 문제의식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평범한 주체들이 국가권력에 종속적인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에 저항하는 주체라는 관점에서 보다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pp.46,47

최정운은 이런 시민군의 등장으로 인해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던 절대공동체에서 ‘총을 잡은 사람들’과 ‘총을 잡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균열이 일어났으며, 지도부와 일반 시민을 구분하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절대적 자유의 공간은 사라져 버렸다고 해석한다. 이전까지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서 하나임을 느끼고 감격스러웠다면, 이제 절대공동체에는 분열과 적대의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pp.57,58

최정운은 5·18을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인간’을 중심에 두는 그의 해석도 인간주의라는 하나의 이념에 기초한 것이다. 맨몸의 인간들의 순수한 사랑의 공동체는 그도 인정하듯이 초역사적 신화이다.
---p.74

대중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사회관계 사이의 간극과 괴리를 문제 삼고 지배 이데올로기를 있는 그대로 현실화시키려 할 때, 대중들의 실제 의도와는 무관하게 대중 봉기는 체제 전체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거나 심지어 붕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p.89

무엇보다 대중 봉기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중 봉기는 대중들이 대항 이데올로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등장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대중 봉기는 주어진 대본 없이 자신의 역할도 모른 채 허겁지겁 역사의 무대 위로 뛰어든 배우일 것이다. 이 경우 대중 봉기만의 고유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찾아내려는 모든 시도는 과녁을 빗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항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면, 대중 봉기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대중 봉기의 시공간에서 대중들은 무엇으로 반역하는가?
---pp.90,91

대중 봉기의 이데올로기는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대중 봉기가 사회운동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사회운동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다양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면서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 봉기는 여러 사회운동이 제시하는 대항 이데올로기를 수용해 투쟁을 전개하기보다는 이미 대중들에게 내면화돼 있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글자 그대로 활용하거나 일정하게 변형함으로써 투쟁을 전개한다.
---p.116

5·18 광주 항쟁에서 항쟁 주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이 빨갱이나 공산주의 세력으로 규정되는 데 반대해 질서정연한 민주 시민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아리랑〉과 〈애국가〉를 합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국민 그 이상의 국민’ 혹은 ‘국민보다 더한 국민’이 되고자 했다.
---p.117

대중 봉기는 이런 자신의 고유한 동학으로 인해 언제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대중 봉기의 진정한 비극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 봉기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운동 주체들이 겪은 체험과 분출된 열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구성된 대중 봉기의 환상을 재가공해 보편화시키지 않는 한, 지배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지 못하며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크게 약화된다. 오히려 대중 봉기의 환상은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갈등하는 새로운 대항 이데올로기의 주요 자원으로 작동한다.
---pp.117,118

국가의 민주화 담론에 포섭된 5·18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축소되었으며, 이는 독재 정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정치적 민주화가 확립된 상황에서는 5·18의 저항적 보편성이 갖는 현재적 의의를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p.224

민주-반민주 구도를 전제하는 민주화 담론을 통해 5·18의 정치적 저항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5·18에 담겨 있는 상징적 보편성을 오히려 제약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p.224

시민군의 무장투쟁을 한국적 혁명의 모델로 삼는 시대와 그 무장투쟁에 관한 이야기가 희생자 담론에서만 정당화되는 시대 사이에는 1980년대 사회운동의 실추가 놓여 있다. 1980년대 사회운동은 5·18 무장투쟁을 해석하고 재현하면서 대항 폭력counter-violence을 과도하게 특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이를 통해 ‘적과의 전쟁’을 중심에 두는 정치적 논법과 운동 문화를 형성시켰다.
---pp.230,231

5·18 광주 항쟁의 비참한 진압, 특히 최후 항전의 비극에서 1980년대 사회운동이 도출해 낸 교훈은 운동 주체로서의 민중(그 핵심으로서의 계급), 민중을 결집하고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 이를 뒷받침하는 급진적 이론과 전략 등으로 수렴되었다.
---p.234

요컨대 5·18 광주의 비극과 무장투쟁이 비폭력을 타협적이거나 굴욕적인 것으로 간단히 폄하하고 대항 폭력을 특권화하는 이론, 전략, 이데올로기의 원료로 기능했던 것이다.
---p.237

자살적 대항 폭력이나 테러리즘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대항 폭력의 특권화는 1980년대 운동 문화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엇보다 5·18 시민군을 활동가와 저항 주체의 전범으로 삼아서 대항 폭력을 동원하려는 전략이 확산되었고, 이는 군부독재와의 대결을 ‘내전’으로 의미화하는 상징 투쟁으로 연결되었다.
---p.240

그러나 5·18 무장투쟁에서 1980년대의 자살적 대항 폭력, 테러리즘, 대항 폭력을 특권화하는 운동 문화로 나아가는 과정이 필연적인 경로는 아니다. 무엇보다 시민군의 무장을 과연 대항 폭력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검토해야 한다.
---pp.243,245

위의 증언들처럼 공수부대의 만행에 분노하고, 때로는 원한의 감정으로 복수심을 갖기도 했지만, 오히려 군인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빵과 우유를 나눠 주거나 포로로 잡혀 온 병사들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고 풀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p.250

시민군은 군대식 명령이 아니라 잔혹한 계엄군을 몰아내려는 욕망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토론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p.252

5.18 광주 항쟁에서 나타난 시민군의 무장투쟁을 정치 혁명 모델과 결합해 재해석한 1980년대 사회운동은 대항폭력을 과도하게 특권화했으며 이 과정에서 반폭력의 문제 설정은 소실되었다. 오늘날 5.18의 무장투쟁을 재성찰할 때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그 정당성에 대한 반복적인 변호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무장투쟁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항쟁 지도부와 시민군이 필사적으로 견지하려고 했던 반폭력의 정치이다.
---pp.257,258

이와 같이 시민군은 평화와 안전이라는 “대의”를 견지했고, 이것은 시민군이 극단적 폭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중심축이었다. 소박한 방어적 목표를 갖고 움직였던 시민군이, 1980년대에 일부 민중 권력론이나 프롤레타리아혁명론에서 제기했듯이 스스로 국가권력을 자임하거나 장악하려고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pp.252,253
 

출판사 리뷰

대중운동·사회운동 연구자 김정한의 「대중과 폭력: 1991년 5월에 대한 기억」과 「1980 대중봉기의 민주주의」가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그간 김정한 박사는 대중운동과 폭력/반폭력이라는 문제 설정을 통해, 한국의 주요 대중운동과 정치철학 담론을 분석해 왔다.

# 반폭력의 계기로서 광주 시민들의 무장 항쟁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1991년 5월 투쟁에 대한 분석에서 다루었던 폭력, 비폭력, 반폭력의 틀을 발전시켜, 무장투쟁의 상황에서도 항쟁 지도부와 시민군이 필사적으로 견지하려 했던 반폭력의 정치에 주목하며, 시민군의 무장 투쟁을 ‘반폭력’, 시민다움의 정치라는 문제 설정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해석이 ‘국가 폭력 대 대항 폭력’이라는 이항 대립의 관점에서 ‘대항 폭력’을 특권화하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재평가하며, 시민군의 무장 저항을 무정부적 폭동이나 대항 폭력이 아니라 ‘반폭력’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하는 것이다. 곧 광주의 시민군들이 바랐던 것은, 무장 항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평화적인 사태 해결이었으며, 결국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틀 속에서 시민들의 자발적 무장 해제는 물론이고, 도청의 최후의 밤에 자발적으로 남았던 이들이 죽음을 통해 택한 숭고한 패배의 의미 역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시각은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반폭력’이라는 문제 설정을 통해 새로운 정치철학의 지평과 진보 정치 운동의 참조점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론적 가설과 사유 실험들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살려 내고, 5?18의 정치적 현재성과 사회운동적 함의를 고민하도록 돕고 있다.

“이 저서는 1980년 남도의 봉기를 불러와 그것이 오늘날 왜 다시 우리가 연구와 토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5.18광주민중항쟁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집권을 거치며 이미 국가 기념일이 되었고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되어 보상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5.18광주민중항쟁을 ‘정전화’하고 말았습니다. 이 저서는 이렇게 죽어 버린,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봉기’를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쉼 쉬고 있는 ‘대중의 열망으로서 봉기’로 ‘현재화’하고 있습니다.” -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