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대한민국 현대사 (책소개)/2.정부수립이후

이슈로 본 한국현대사

동방박사님 2022. 9. 2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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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개론서나 딱딱한 평론집이 아니다. 우리가 겪고 지나온 굴곡의 역사, 격동의 역사 속에서 베일에 가려진 사실들을 사건별로 집어내 소개한 글이다. 다소 주제가 일관성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개별 주제는 모두 한국현대사의 주요한 이슈이기에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이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는 곧 오늘의 역사이므로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점검하여 내일의 좌표를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다소 무거운 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쉽고 그리고 철저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자들은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이는 저자가 현재 언론계에서 현대사 전문기자이기에 갖는 장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기존에 공개된 자료 외에 새로운 자료 발굴과 수많은 관련 당사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역사의 숨은그림을 찾아내려고' 애썼으며, '단순히 책상머리에 앉아 쓴 글이 아닌 발로 뛰어다닌' 글이라 밝힌것에서 무엇보다 사실(facts)에 충실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을 볼 수 있다.

목차

머리말

1. 한반도 분단의 책임, 누구에게 있나
2. 미국은 왜 백범을 싫어했나
3. 권력은 정보로부터, 이승남의 사설정보대
4. 김구 암살, 배후는 누구인가
5. 몰락하는 제2공화국
6. 정부 극비문서에서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들
7. 박정희의 마지막 집념, 핵만이 살 길이다
8. 권력과 재벌, 박정희와 삼성
9. 서울밀사 평양밀사, 남북을 오간 사람들
10. '88서울울림픽 비사 - 김종민 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비서실장 인터뷰

저자 소개

저자 : 이동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건국대·서울교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1994년 현대사 전문기자로 중앙일보에 입사, 각종 현대사 기획물을 신문에 연재했으며, 현재는 중앙일보 현대사 전문위원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신탁통치 연구』『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소설『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아닌 실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있었다. 작가 김진명씨가 국제적인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을 소재로 쓴 이 소설은 1993년 8월에 출간되어 채 일 년도 안돼 300만 부가 팔렸으며 영화로까지 제작돼 박정희 시대의 원폭개발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에 핵개발을 지휘ㆍ감독한 청와대 경제2수석실의 김광모 비서관은 이휘소 박사 관련설을 전면부인했다. 핵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 역시, “이휘소 박사의 전공은 핵개발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순수이론물리학”이라며 “그를 핵개발과 연관시키는 것은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소설과 유사한 사건들이 당시 핵개발팀 주변에서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핵개발팀은 어떻게든 미국이라는 감시자에게 핵개발 사실을 숨겨야 했고, 미국은 핵개발의 단서를 잡아내려고 정보망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1974년 11월 9일, 한국의 핵과학자 세 명이 극비리에 프랑스 파리 교외의 오를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하늘은 몹시 푸르러 마치 이들을 반기는듯했다. 그러나 이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예전에도 수차례 프랑스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 방문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핵개발의 밀명을 띤 방문이니만큼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왠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들은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개선문 옆 쿠버보아가에 숙소로 향했다. 이들은 택시 안에서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택시기사가 “한국에서 온 과학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순간 이들은 바짝 긴장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핵 관련 얘기는 물론 꼭 필요하지 않은 대화는 일체 주고받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 30년사』에는 “1974년 11월 9일부터 12월 10일까지 주재양 외 2명, 핵연료 가공 및 재처리사업 추진차 프랑스 방문”이라고만 기록돼 있다. 프랑스를 방문한 그들의 구체적인 목적은 물론이고 나머지 두 명의 이름조차 언급이 없다. 취재 결과 주재양 씨 외에 원자력연구소 화공개발실장ㆍ한국핵연료개발공단 건설본부장을 지낸 윤석호 박사와 원자력연구소 핵연료연구실장ㆍ한국핵연료개발공단 핵연료연구부장으로 일한 박원구 박사가 바로 그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윤 박사는 “23년 만에 처음 공개한다”며 그 동안 가슴에 묻어뒀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윤 박사 일행이 핵연료 성형가공 시험시설 도입에 관한 가계약을 서커사와 체결한 직후부터 이들 주변에서는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윤 박사의 증언이다. “다음 날 아침 재처리기술과 시설 도입에 관한 가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상고방 회사에 갔더니 한 직원이 '어젯밤 서커사에 화재가 발생했다'며 '절대 밤에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주의 를 줍디다. 당시 우리는 그 말을 크게 유념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상고방사는 이들에게 안내인 겸 경호원을 붙였다. 그러나 가계약을 체결한 날 저녁 윤 박사 일행의 기술협상 창구였던 상고방사의 궤세라는 인물이 차 안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별견됐다. 사인은 심장마비. 그의 부인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며칠 동안 회사측에 납득할 만한 해명을 요구하며 거칠게 항의했다. 윤 박사는 “일련의 사건들이 서커사 및 상고방사와 가계약을 체결한 날 발생했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이상했다”며 “귀국 비행기에 올라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회고했다.

더 이상 파리에 있을 분위기가 아니라는 판단 아래 떠날 채비를 하는데 출발을 재촉하는 사건이 또 터졌다. 숙소 옆 건물의 항공회사 대형 유리가 대낮에 굉음을 내며 폭발한 것이다. 그 일대에 수많은 경찰이 배치되는 등 분위기가 갑작스레 삼엄해졌다고 한다. 물론 윤 박사 일행이 느낀 불안감은 미국에 대한 피해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 게다가 파리는 테러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윤 박사 일행이 이 사건들을 '미국이 보내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만큼 핵개발을 둘러싼 미국의 방해는 집요했고 완강했다.

미국은 1974년 5월 인도가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자 세계 각국의 미 대사관과 정보 채널을 총동원해 각국의 핵개발 여부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또 원자력 수출국들과 함께 '런던클럽'을 결성해, 핵기술 후진국에 대한 핵물질과 장비의 수출은 물론이고 재처리ㆍ농축ㆍ중수제조 등 소위 민감한 기술의 국가간 이전을 엄격히 제한하는 핵확산금지조치를 강화해 나갔다. 이와 함께 당시 본격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하던 브라질ㆍ아르헨티나ㆍ파키스탄 등과 이들 국가에 핵기술을 제공하려던 프랑스ㆍ서독 등에 압력을 넣어 핵기술 이전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 pp.140~144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군정이 이 무렵 김구에 대해서는 완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반면, 이승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군정의 랭던 정치고문이 1946년 5월 24일 번즈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언급돼 있다.

우리는 대체로 김구를 무시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실수로 말미암아 정치무대에서 거의 떨어져 나갔다. 반대로 이승만은 통일에 대한 여러 형태의 의견들을 규합하는 데 협조적이었고, 자신의 추종자들이 과격한 반(反)연합국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또 그는 소련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해 왔으며, 수많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시켜 왔다. 하지 장군은 이승만이 장차 임시정부에서 매우 필요하거나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민주적 인사들 가운데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몇 안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그의 협조를 마냥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흔히 해방정부의 세 영수라 불리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가운데 유독 김구만이 정국 운용에서 미국측에 의해 철저히 배제됐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세 사람이 모두 망명세력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이 김구만을 배재한 것은 그가 반외세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공공연히 반미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김구의 대미(對美)관을 확인한 이후부터 그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김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최종 방침이 정해진 것은 1946년 6월이었다. 이 방침은 6월 6일자 「한국에 관한 국무부 정책교서」에 수록됐는데, 이것은 육군부와 해군부의 동의까지 얻은 것이므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서술된 김구 관련 부분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최근 한국의 정치적 논쟁에서 태풍의 눈이 돼 왔던 특정 인사들이 일시적으로 정치무대에서 은퇴한다면, 미국과 소련 당국 간의 협정뿐 아니라 남한 내 여러 정파들간의 협정도 촉진될 것이다. 미ㆍ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된 것은 표현의 자유 원칙에 대한 미국의 고집과, 공공연히 반소(反蘇)적인 특정 한국인 지도자들을 한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소련의 결정사이에 일어난 의견 충돌의 결과라고 해석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 지도자들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한국에 돌아온 원로들로, 망명 한국인 단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의 정치적 여론을 완전히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한국의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나 남한에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사람들이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정치무대 출현은 소련과 협정을 맺는 데 어려움을 야기시킬 뿐 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들의 정치 참여는 한국에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전반적으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해를 준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 정책교서에는 김구를 정치무대에서 은퇴시켜야 할 이유들이 자세하게 언급돼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첫째 김구가 남한의 여러 정파들의 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 둘째 소련과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최대 장애물이라는 점, 셋째 한국의 민주주의 건설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점, 그리고 넷째로는, 한국에서 미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거추장스러울 뿐 아니라 해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점 등이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이유들을 내세워 김구를 정국 운용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후 미군정은 본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김규식과 여운형이 중심이 돼 추진하는 좌우합작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설립한 것도 이들의 정치적 입지를 제도적인 차원에서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미군정은 김구가 만에 하나 정치적 소외에 대한 반발로 좌우합작운동을 방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김구를 설득해 김규식을 지원하도록 유도하는 작업도 함께 전개했다.

그러나 김구의 입장에서는 미군정의 설득을 무작정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김구 자신도 미군정이 자신을 정치무대에서 은퇴시키려 한다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구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정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일대 반격에 나섰다. 임정 추대운동이 바로 그것이었다.
--- pp.49~51
 

출판사 리뷰

『이슈(issue)로 본 한국현대사』는 어떻게 구성되었나?
백범 김구 암살의 배경은...
해방정국에서 최고의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백범 김구를 미국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미 국무부 비밀문건을 중심으로 한 이 글에서는 미국측이 신탁통치 논쟁이 벌어지기 이전에는 김구를 남한의 여러 정파를 통합하는 구심체로 역기고 그를 지원하였지만, 신탁통치 논쟁의 과정에서 그가 친탁 세력과는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심지어 반미(反美)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를 정국운용에서 배제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미국이 약소국의 민족주의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루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김구의 암살 배후를 다룬 글에서는 암살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또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관련설에 대해서도 가장 최근에 공개된 미국측 비밀문건을 토대로 그 여부를 세심하게 검토하고 있다.

박정희의 핵 개발과 삼성의 숨은 이야기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주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 개발이다. 이 책에서는 이 주제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면서 한 줄의 기사나 풍문으로만 떠돌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핵 개발'의 실체를 관련 비밀문건들과 당시 핵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 및 책임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처음으로 전모를 밝힌다. 한편 박정희 정부와 삼성과의 관계도 분석해 권력과 재벌의 밀고 당기기가 한국적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 전개되고, 그것이 기업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특히 1960~70년대 삼성의 다각화가 박정희 정부와의 관계가 원만할 때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한비(韓肥)사건 이후 박정희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을 때는 삼성이 단 한 건의 신규사업도 벌일 수 없었다는 사실은 한국적 기업풍토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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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와 북한 당국과의 물밑 접촉을 다룬 '서울 밀사, 평양 밀사'는 2000년 6월 남북의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마주하기까지 넘어야 했던 산이 얼마나 많았는지 현장감 있게 전개하고 있다. 특히 목숨을 건 밀사들의 잠행과 이들의 샅바싸움은 불신과 반목으로 얼룩진 분단의 벽을 뛰어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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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과 한민족의 저력을 온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88서울올림픽 비사도 주목을 끌 만한 내용으로 가들 차 있다. 올림픽 추진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어려움과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을 참가시키기 위한 노력들, 개·폐회식에 얽힌 에피소드, 서울올림픽에 대한 서구인들의 냉소적인 시각, 87~88년 정권교체기와 맞물려 발생한 여러 가지 난제(難題)들, 자원봉사자들의 문제점, 올림픽 직후의 뒤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등을 당시 조직위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김종민 씨의 생생한 육성으로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