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1.한국근대사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동방박사님 2022. 12.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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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파헤치는 한국 근대사

우리에게 일본이 행한 식민지 통치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자본주의 맹아론에서 내재적 발전론으로 이어지는 민족주의 사학은 한결같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부정적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 이해가 추구되고 있다. 즉, 일본의 식민지 통치는 결과적으로 조선에게 발전을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 책은 일본제국이 조선을 지배할 때 핵심적으로 이용한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식민지 지배의 실체를 파악한 책이다.

언론인 출신의 저자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책의 내용을 배치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조선 총독부에 얽힌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배치하여 일본이 조선 총독부를 통하여 조선의 지배를 영구히 하고자 한 전략을 서술한다. 저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겪었던 우리의 경험이 망각되고 과거의 치욕을 기억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목차

머리말

지진제
신토(神道) 제례 / 내지(內地)와 변방 / 헐려 나간 홍례문 외

‘통감부’에서 ‘총독부’로
비좁았던 총독부 청사 / 모치지 토목국장 / 타이완 총독부에 뒤졌으나 외

물산공진회
공진회를 꾸며내다 / 화려했던 공진회 / 근정전에서 열린 개장식 외

식민지 청년, 라란데
꺾여 버린 라란데의 꿈 / 도쿄제국대학 건축과 동문들 / 노골적인 청사 설계 외

한강 인도교 낙성식
하세가와 총독 / 시미즈쿠미의 골조공사 / 신토불이 건축재들 외

경복궁, 큰 복을 받으리니
경복궁 배치의 비밀 / 정도전과 무학대사 / 세키노의 ‘조선의 건축’ 외

타이완 총독부
무릎 꿇고 살기보다 / 니혼 제당주식회사 / 대동아 공영권 외

운요마루(雲揚丸) 사건
대원군과 을미사변 / 러시아의 굴욕 / 시일야방성대곡 외

날조된 합병문서
천황의 조서 / 대한제국에서 조선으로 / 총독 임명은 친임으로 외

창덕궁 화재
또다시 헐려 나간 경복궁 / 예산 문제에 부딪친 총독부 공사 외

정초식이 열렸으니
공격에 대비한 흉벽 / 이와오카 호사쿠 교수 / 수세식 화장실 외

상량 올리다
스웨덴 여행객 블라스코 / 경성부 청사 신축계획 / 경성 도시계획 연구회 외

아, 광화문
설의식(薛義植)의 고별사 / 나는 이제 가나이다 외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허영섭
 
언론인. 현재 〈이데일리〉 논설실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서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쳐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이력도 있다.
 
 

책 속으로

청사 신축부지가 최종 결정됨에 따라 총독부 회계국은 프로이센 출신 건축가인 라란데를 총독부 고문으로 위촉해 청사의 설계를 맡도록 했다. 이때가 1913년. 게오르게 데 라란데(George de Lalande)는 그때 일본에서 활동 중이었다.
뒷날 조선호텔로 불리게 되는 ‘철도호텔’의 설계를 맡은 당사자였는데, 그때는 이미 철도호텔 공사가 시작되어 있을 때였다. 도쿄에 머물고 있던 그는 총독부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곧바로 설계에 들어가게 된다.
--- pp. 54-55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초현실주의 작품인 ‘날개’의 작가로 더 알려지게 되는 시인 김해경(金海卿). 그 역시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나온 건축가로서 한때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도 이 조선건축회에 가입하게 되지만, 그것은 앞서의 인물들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 p. 364
총독부 청사를 짓는 데 소요된 평당 건축비는 대략 620엔 정도. 비슷한 시기에 준공된 도쿄의 마루노우치(丸の內) 빌딩이나 유센(郵船) 빌딩, 유라꾸칸(有樂館) 등의 건물들과 견줄 때 평당 건축비가 훨씬 헐하게 치인 셈이었다. 이 땅, 이 백성들을 착취한 결과였음은 물론이다.
이 가운데 미국식 고층건물 양식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마루노우치 빌딩(1923년)의 평당 건축비는 800엔, 유라꾸칸은 830엔, 그리고 유센 빌딩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간 1,185엔 등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에 앞서 1922년 미국인 건축가 로이드 라이트(F.L.Wright)에 의해 완공된 데이꼬쿠 호텔도 상당한 건축비가 들어갔다.
--- pp. 418-419
 

출판사 리뷰

1910년,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고는 우리 강토와 백성에게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토지와 물산을 수탈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했으며, 더 나아가 강제징용 및 징병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깊숙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저들 병사들의 노리갯감으로 끌고 갔던 정신대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그전부터 호시탐탐 이 땅을 넘보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경복궁 터에 대한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른 새벽녘에 경복궁 담을 넘어들어가 이 나라 국모(國母)를 살해하고도 ‘장난이 지나쳤다’는 한마디로 사태를 무마시키려고 하였다.

더군다나 지금에 이르러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보상금조로 1인당 99엔씩 지급하겠다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한일 간의 역사 인식에 대한 논쟁은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우익 교과서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일제의 패전으로 식민통치가 종식된 이후 지금까지 양국 관계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는 듯하다가도 결국 파열음을 내며 서로 튕겨져나가는 양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대부분은 과거사 문제로 인한 마찰 때문이었다.

어느 한쪽이라도 역사적 사실을 호도한 채 본능적인 자기변론, 또는 감정적 언어의 반복 나열에 그치는 실정에서는 이 논쟁이 효과적으로 진전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과거사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한일 관계가 ‘가깝지만 먼 나라’로서 파행을 겪어야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거기에 ‘망언 파동’까지 겹쳐져 양국 관계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물론 억압했기 때문에 무조건 잘못됐고, 억압을 당했기 때문에 정의실현 차원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단순논리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는 있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엄연한 역사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물론 또다시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세계적인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역사는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쓰라린 기억일 수밖에 없는 한일 강제합병 100년을 맞아, 이 책을 통해 조선총독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 양국의 과거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