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간과 건강 (책소개)/5.의학신체질병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동방박사님 2023. 1.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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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왜 『동의보감』인가?

한국 과학사, 중국 과학사, 어느 관점에서도 『동의보감』은 매우 드문 예외에 속한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문명과 한국 문명의 관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문물이 조선에 유입되어 큰 효과를 일으킨 것이 대부분이었고,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동의보감』은 의학의 가장 높은 수준에서, 또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이 드문 ‘반대’의 사례에 해당된다. 그래서 여러 궁금증이 생겨난다.

조선과 중국, 더 나아가 일본까지 펼쳐졌던 역사적 현상으로서 『동의보감』 유행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런 현상이 일어난 요인은 무엇인가?
『동의보감』의 저술 과정과 발간 배경은 어떠했는가?
『동의보감』의 의학적 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성취를 담은 것인가?
이런 의서를 편찬해낸 조선 의학계와 사상계의 잠재력은 무엇이었는가?
대표 저자인 허준은 어떤 인물이었으며, 다른 공동 저자의 지적, 의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또 세계 의학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이 책은 세계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동의보감』의 성격과 가치를 밝히기 위해 집필되었다. 『동의보감』이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혔던 비밀은 다음 세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아시아 의학 전반을 재료로 했다는 점, 몸의 양생을 병 치료보다 우선해서 보는 고대 중국 의학의 전통 정신을 일관되게 종합했다는 점, 여기에 조선이 발전시켜온 여러 의학 전통을 녹여냈다는 점. 이를 철저히 궁구하고자 한 것이 이 책이다.

목차

저자 소개 및 기획편집위원회
일러두기
발간사_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를 펴내며
서문

프롤로그_ 왜 『동의보감』인가
1. 『동의보감』의 국내외적 명성
2. 거대 프로젝트의 대상으로서 『동의보감』 연구
3. 이 책의 문제 의식
4. 이 책의 주요 질문과 그에 대한 가설
5. 『동의보감』에 관한 일반 서지 사항

1부 탄생 배경과 과정

1장 조선 개국 이후 의학적, 지적 역량의 성장

1. 『동의보감』 출현 이전 의학 수준의 도약
1) 조선 이전의 의학 학술 상황
2) 『향약집성방』의 편찬과 의학 추구 방향의 대전환
3) 『의방유취』와 중국 의학의 대대적인 정리
4) 종합 의서 『의림촬요』의 편찬
5) 허준의 『찬도방론맥결집성』의 교정
2. 의학 교육의 강화를 통한 학문 기반의 구축
3. 간편 의서의 간행과 보급
4. 중국 의서의 수입과 발간
5. 문물제도의 정비와 의학 지식의 총합

2장 조선 개국 이후 사대부 양생 문화의 확산

1. 조선전기 양생 서적의 발간
2. 양생에 관한 조정에서의 논의
3. 조선 성리학자와 단학파의 양생 사상
1) 성리학자의 양생관
2) 단학파의 양생 사상

3장 어의 허준의 등장과 활약

1. 당대인이 기록한 허준의 생애
2. 허준의 혈연, 학연 네트워크
3. 출사 이전 의원 허준의 행적
4. 허준의 내의원 입사와 그 의미
5. 어의 허준과 국왕 선조의 동반자적 관계

4장 『동의보감』 출현을 둘러싼 사회적 상황

1. 기존 견해에 대한 검토
2. 『동의보감』 서문이 밝힌 편찬 동기
3. 임진왜란으로 망실된 의서의 회복이라는 과제
4. 『동의보감』이 착수된 병신년의 시대적 상황

5장 『동의보감』의 편찬과 출간

1. 『동의보감』 편찬의 공동 참여자들
2. 『동의보감』 편찬의 단독 재개
3. 『동의보감』 집필의 완료와 발간


2부 『동의보감』: 동아시아 의학의 전범

6장 금, 원 이후 의학의 혼란 극복이라는 과제

1. 의학의 혼란 상황과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들
2. 의학의 도통에 대한 역대 의학자의 견해
3. 허준이 본 의학의 도통

7장 의학 일통의 신형장부의학 기획

1. 「신형장부도」에 표현된 신체관
2. 양생과 의학을 일통한 내, 외, 잡, 말의 체제
3.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 5편 체제의 내용

8장 동아시아 의학 전범의 확립

1. 대범주_ 105개 문 체제의 특색
2. 소분류_ 세밀한 2,807개 세목 설정
3. 처방_ 4,747개 처방의 선택
4. 일목요연한 책의 형식
5. 중요한 의학 내용의 시각화

9장 동아시아 의학의 종합의 종합

1. 『동의보감』의 두 인용 방식
2. 인용 서적으로 본 『동의보감』의 특징
1) 명대 출현 의서의 절대 다수 인용
2) 『의방유취』를 통한 수많은 고방의 인용
3) 의학 경전의 중시
4) 여러 의학 전문 분야의 인용
5) 『본초』의 최다수 인용
6) 많은 양생 서적의 인용
7) 적게 인용되었지만 중요한 조선 의서 인용
3. 편찬자 허준의 목소리와 글쓰기 방식
■ 부표: 『동의보감』 인용 출처

3부 출현 이후

10장 『동의보감』과 조선 동의 전통의 전개

1. ‘동의’ 전통의 개막
2. 전통이 된 『동의보감』
3. 조선후기 동의 전통의 확립
4. 이제마의 『동의보감』 평가

11장 중국과 일본에서의 『동의보감』

1. 일본의 『동의보감』
1) 도쿠가와 요시무네와 『동의보감』
2) 『동의보감』의 일본 간행
3) 일본 의학계의 『동의보감』 인식과 활용
2. 중국에서의 높은 평가

결론

에필로그_ 『동의보감』, 동아시아 의학, 세계 의학
1. 고대 서양과 중국의 의학 경전 비교
1) 『히포크라테스 전집』과 『황제내경』
2) 『상한론』과 갈레노스의 저작
3) 『신농본초경』과 『약물론』
2. 아비첸나의 『의학정전』과 허준의 『동의보감』
1) 『동의보감』 출현의 학술사적 배경
2) 『의학정전』 출현의 학술사적 배경
3) 『동의보감』과 『의학정전』의 비교

주석
표 및 도판 일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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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in English
 

저자 소개

저 : 신동원
 
서울대학교 농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한국 과학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니덤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소 객원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한국 과학사’를 가르친다. 계간지 『과학사상』과 『역사비평』에서 각각 편집주간과 편집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고, 현재 문화재전문위원,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카이스트 학...
 

책 속으로

그럼에도 책 알맹이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상급 숭배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는지 의심을 품어야 한다. 『동의보감』이 어떤 점 때문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또 그런 의서를 탄생시킨 조선의 지적, 학문적, 사회적 역량이 무엇인지를 밝힌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룩한 학계의 결과로는 한국 사람끼리는 서로 자랑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되지만 민족적인 자긍심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설득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 p.8

세계기록유산이나 중국에서 누린 인기에 관계없이, 이 책은 출간 이후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의서로 자리 잡아서 한국 역사의 중요한 한 요소가 되었다. 국내에서 조선후기에 『동의보감』이 대여섯 차례 공식적으로 인쇄, 발간되었음이 확인되며, 후대 조선 의학계에서 『동의보감』이 끼친 영향력은 이 책을 존숭하여 계승한 후학들의 의서를 통해 더욱 짙게 나타난다. 이덕무(李德懋)가 조선에서 가장 좋은 세 가지 책으로 이이(李珥)의 『성학집요(聖學輯要)』,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과 함께 『동의보감』을 꼽은 사실은 이의 상징적인 사례다. --- p.16

『동의보감(東醫寶監)』같이 높은 평가를 받는 저작이 어떻게 해서 17세기 초 조선에서 출현 가능했을까? 여태까지 『동의보감』에 관한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없었다. 이 질문은 답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동의보감』은 의학의 전면적 재편을 시도한 책으로서 좁은 의미의 임상적 식견만으로는 파악이 곤란하며 우주관, 자연관, 신체관 등 의학 전체를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출현하던 시대의 충만한 사상적, 지적 흐름에 따라 출현하기 이전까지의 의학적 성취를 압축하고 있다. --- p.35

유교 지식의 총정리에 이어서 심화가 뜻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유교에 관한 내용에서도 조선이 중국 문물의 수입과 그것을 실천하는 수용자에 그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 시대에 불교나 문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국가 통치에 필요한 유교 전장(典章)에 대한 이해에서나, 성리학 가르침에 따른 실천에서나, 더욱 구체적으로 우주와 자연, 심성에 대한 연구에서나, 기존 성현이 미발(未發)한 부분을 궁구하여 밝히는 작업에서나 이런 일이 벌어졌다. 조선의 학자들은 이런 모든 분야에 뛰어들었으며 자신들이 그런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강하게 느꼈다.
학문의 꽃인 성리학 분야에서 그럴진대, 그보다 하위인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어땠을까?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의학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살핀 바와 같이 의학 전체 내용을 평가할 수 있는 시야와 파악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축적했다. 조선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향약 위주 의학 전통의 계승, 선진적인 중국 의학 전체에 대한 정리, 철저한 교육 체제의 확립을 통한 체계적인 의학 학습, 태산, 구급, 두창, 벽온, 외과, 구황 등 대민 의학 지식의 광범한 보급, 수입 중국 의서와 국내 편찬 의서의 대대적인 출판 사업, 문, 사, 철 전반에 걸친 수준의 제고와 이에 동반한 동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 제고 등이 15세기~16세기에 걸쳐 일어났다. 역사면 역사, 지리면 지리, 문학이면 문학 등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일구어온 자부심이 ‘동국(東國)’, ‘동문(東文)’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었으며, 의학 분야에서는 ‘동의(東醫)’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이윽고 1610년 허준은 『동의보감』의 「집례」에서 중국의 의학을 북의와 남의로 규정하면서 조선의 동의가 그에 필적하는 솥의 세 발 중 하나인 것처럼 자리를 매겨, 그럼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의 의학이 중국의 그것과 견줄 수 있는 수준임을 선언하게 된다. --- pp.87-88

물론 허준이 그러한 사상적 배경하에서 『동의보감』을 편찬한 것은 사실이고, 『동의보감』이라는 대작이 절대적으로 허준 개인의 역량에 힘입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동의보감』 편찬이 허준 개인의 의지로 시작되고 진행된 사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조의 명을 받아 ‘어의’ 허준에 의해 수행된 국가적 편찬 사업이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국가에 의한 의서 편찬은 단순한 문화적 사업이 아니라 의료 정책의 일부였다. 의학은 성격상 육체의 건강과 불노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의학적 내용이 어떤 이념적 틀 안에서 마련되고 실천되는가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동의보감』의 내용에 아무리 많은 도교적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이념에 의해, 어떤 제도적인 틀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고려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의보감』의 편찬이 조선이라는 유교 국가의 통치 이념을 구현하는 정책의 하나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은 『동의보감』의 편찬 배경을 논의할 때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주자학의 심화와 몸에 대한 수양의 중시라는 사상적 토양이 도교적 양생까지를 포용하기에 이르렀고, 왕과 사대부의 양생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동의보감』이라는 새 의서 편찬 정책에까지 관철되었던 것이다. --- pp.110-111

허준이 종1품에 오른 것은 그로서는 대단한 경사였다. 반면에 서얼 출신의 의관이 1품에 오른 것에 대한 문관의 질시와 견제가 더욱 심해졌다. 종1품직 제수 이후에 『실록』에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사관(史官)의 악평이 보이기 시작한다. “허준은 성은을 믿고 교만을 부리므로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금상첨화로 1606년 1월, 오랫동안 차도가 없던 선조의 병세가 호전되자, 선조는 수의였던 허준에게 관직의 최고 단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렸다. 이런 조치는 의원의 신분으로서는 조선 왕조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간원에서는 그것이 신분 질서를 그르치는 잘못된 조치라고 맹렬히 들고 나왔다. 사헌부도 비슷한 요지의 글을 올렸다. 이런 간언에 대해 선조는 “허준이 높은 품계에 올랐어도 크게 해로울 것이 없으니 개정할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탄핵이 계속되자 선조는 정1품 ‘보국(輔國)’ 품계만 주고 보통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자동으로 따라 붙는 친공신(親功臣)의 표시인 부원군 봉호는 내리지 않는 것으로 절충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결국 ‘보국’마저 철회했다. 선조가 손을 든 것이다. 비록 좌절되기는 했지만, 허준은 의관으로서는 최초로 생전에 보국숭록대부의 문턱에까지 도달했다. 당시 작위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정, 종 1품이 이전의 10명 정도에서 거의 50명 정도가 되었던 점을 감안한다 해도, 의관으로서 그가 이룩한 성취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 pp.150-151

『동의보감』의 출현 동기는 임진왜란이라는 사회적 배경, 조선의 문화적 배경, 의학 혼란 정리라는 동아시아 학술적 배경 세 가지 중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식으로 파악될 수 있다. 『동의보감』 서문에서는 양생 우선의 원칙과 향약 장려와 더불어 의학의 혼란을 정리할 제대로 된 의서를 만들라는 데 초점을 맞춰 기술했다. 전쟁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와 달리 『선조실록』의 기록은 당시 전쟁의 가혹한 피해를 생생하게 적고 있으며, 책 출판 같은 한가로운 사업이 도저히 펼쳐지기 힘든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동아시아 의학 학술사적으로 볼 때에는 의학 이론과 처방이 난무해 어떤 식으로든지 절충, 종합 아니면 새로운 대안 제시 등이 요청되었다. 이 세 가지를 모순되지 않게 『동의보감』 출현 배경으로 기술할 수 있다. 금원시대 이후 명대에 이르는 동아시아 의학사의 다양한 의학 유파의 등장에 따라 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는 임상상(臨床上)의 혼란이 벌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대 여러 의학자가 뛰어들었고, 허준의 경우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양생을 우선하는 신형장부의학 체계를 고안하는 방식의 해결책은 허준 고유의 것이었으며, 이런 체계의 구성은 조선 사대부층의 양생 문화가 국왕 명령의 형태로 내려진 주문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성격의 책이 1596년에 시작하게 된 것은 사상자와 병고로 신음하는 자가 속출하는 심각한 전쟁 피해의 복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 pp.175-176

『동의보감』 「역대의방」의 면면을 보면 허준은 최소한 다음 네 가지 목표를 두고 있었음이 짐작이 간다. 첫째, 역대의 의학을 총정리하겠다는 생각이다. 「역대의방」에서 기존 의학의 전통을 시대 순으로 제시한 것과 같은 감각으로 허준은 자신의 책 『동의보감』을 엮었을 것이다. 둘째, 의학의 대상으로 신체에 대한 이해, 병의 진단, 예후 파악, 증상의 감별, 치료 원칙의 확립, 각종 잡병에 대한 파악, 부인과 소아과, 약물의 활용, 침구법 등을 넓게 포괄한다는 의식 또한 강하게 느껴진다. 셋째, 혼란의 가장 큰 요인인 이른바 금, 원시대 유파의 의론과 처방 그리고 옛 의론과 처방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 각 유파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절충하고, 취사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함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넷째, 이렇게 의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앞서 나온 명대 의학자들의 작업이 도움이 되는 동시에 혼란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었으므로,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질서가 요청되었는데, 『내경』으로부터 당대까지 이어진 의학의 도통을 파악하는 것이 그 일이었다. 「역대의방」이 그 결과물이다. 「역대의방」의 면면을 보면 허준은 최소한 다음 네 가지 목표를 두고 있었음이 짐작이 간다. 첫째, 역대의 의학을 총정리하겠다는 생각이다. 「역대의방」에서 기존 의학의 전통을 시대 순으로 제시한 것과 같은 감각으로 허준은 자신의 책 『동의보감』을 엮었을 것이다. 둘째, 의학의 대상으로 신체에 대한 이해, 병의 진단, 예후 파악, 증상의 감별, 치료 원칙의 확립, 각종 잡병에 대한 파악, 부인과 소아과, 약물의 활용, 침구법 등을 넓게 포괄한다는 의식 또한 강하게 느껴진다. 셋째, 혼란의 가장 큰 요인인 이른바 금?원시대 유파의 의론과 처방 그리고 옛 의론과 처방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 각 유파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절충하고, 취사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함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넷째, 이렇게 의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앞서 나온 명대 의학자들의 작업이 도움이 되는 동시에 혼란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었으므로,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질서가 요청되었는데, 『내경』으로부터 당대까지 이어진 의학의 도통을 파악하는 것이 그 일이었다. 「역대의방」이 그 결과물이다.
--- pp.219-220
 

출판사 리뷰

“한국의 과학과 문명”을 통합적으로 정리해내다!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인 조지프 니담(Joseph Needham)이 1954년 제1권을 발간한 이래로 지금까지 총 6권 17책이 나온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은 서양 과학문명의 절대적 우위를 정설처럼 받아들이던 당시까지의 시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 책에서 그는 서양 과학이 분석적·기계론적·결정론적인 데 비해 중국의 전통과학은 종합적·유기체적·비결정론적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을 하여 동양의 과학문명이 서양보다 뒤떨어졌다는 편견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과학문명은 어떠한가? 한국이 중국의 과학문명을 일방 수용하는 하위 문명국가 정도로 인식되어온 것이 그동안의 시각이었다. 물론 소중화(小中華)를 자부해온 과거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 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과학문명에 대한 열위를 지나치게 인정해버리는 것이고, 이에 대한 반발로 한쪽에서는 몇 가지 뛰어난 부분을 들어 한국 과학문명의 위대성을 과대 주장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양쪽의 편재성을 극복하고 한국 과학문명의 특징과 발전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연구, 통합해내기 위한 총서 발간 작업이 시작되었다. 연구 주체 기관은 KAIST대에서 전북대학교로 자리를 바꾼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총서 명은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다. 2020년까지 국문 30권, 영문 7권(영문본 출판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이 몇 차에 걸쳐 발간될 예정이다. 「한국의 과학과 문명」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현대의 반도체기술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과학기술과 문명의 역사 그리고 이를 끌어낸 동력 등을 분석해낸다.

한국 과학문명사의 가장 큰 특징은 융합적이고 종합적이라는 점이다. 서양의 르네상스에 비견되는 세종 시기의 과학이나, 간행 당시 동아시아 삼국에서 베스트셀러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동의보감』 등은 모두 융합적인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당대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합칠 수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했던 선조들의 역량은 현재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근대화의 후발 주자로 식민지 경험까지 했으면서도, 오늘날 몇몇 분야에서 세계 일류 수준의 과학기술을 자랑하게 된 데는 선조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과학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과학과 문명」 총서의 제1탄으로 신동원 교수(전북대 과학학과)의 『동의보감과 동아시아 의학사』, 오상학 교수(제주대 지리교육과)의 『한국 전통지리학사』, 고동환 교수(카이스트대 인문사회과학부)의 『한국 전근대 교통사』가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