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불교의 이해 (책소개)/5.불교교리철학

사유를 쏟아, (2021) - 붓다 그림으로 보고 소설처럼 읽는 불교철학

동방박사님 2023. 9. 2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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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화엄철학으로 해석한 사찰 벽화 순례기”
- 불교 도상학을 넘어 화엄적 해석학의 바다로


이 책은 흥국사, 범어사, 보광사, 선운사, 통도사 등에 있는 사찰 벽화를 화엄철학으로 살펴본 ‘그림으로 보고 소설처럼 읽는’ 24가지 불교철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의 사찰 벽화는 불교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동시에 그 이외의 것들까지 포용하는 거대한 문화적 용광로이다. 도교와 유교, 그리고 『서유기』와 『삼국지』 등의 고전이 사찰 벽화 속에서 날줄과 씨줄처럼 교차해 독특한 한국문화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사찰 벽화가 지닌 잡스러움의 미학을 가장 온전하고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불교의 화엄철학이다. 화엄철학은 들판에 핀 꽃들을 가리지 않고 끌어모아 하나의 거대한 연화장세계로 펼쳐내는 불교교학의 정점으로 흔히 잡(雜)화엄이란 말로 불린다. 화엄은 잡스럽다는 말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유일한 불교사상인 것이다.

화엄철학은 고독한 개별 존재자 사이의 근원적 연관성과 연대의 불가피성을 꿰뚫는 통찰[多卽一]인 동시에 전체적 질서 속에서 함몰되어가는 존재자의 개성과 자유를 회복시키는 실천[一卽多]을 담고 있는 원융(圓融)의 철학이다. 따라서 화엄의 인식론은 근대적 학문체계 속에서 분리되어버린 불교 수행과 불교철학, 그리고 불교미술을 하나로 통합해서 읽어낼 수 있는 도구이자, 호교론과 종교적 폐쇄성을 벗어나 존재 각각의 개성과 자유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천적 기반으로서 역할도 한다.

목차

자서(自敍)

첫째 장.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일어나니

선재동자는 생각하지 마(여수 흥국사 선재동자순례도)
그렇게 어른이 된다(해남 대흥사 송학도)
오! 한강(보성 대원사 나한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양산 신흥사 관음삼존도)

둘째 장. 연못에 노닐던 물고기 한 마리

꽃은 텅 빈 공간에서 핀다(부산 범어사 천인도)
참 신통한 당신(대구 용연사 불구니건도)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구례 천은사 바수반두조사도)
서유기가 필요한 시간(양산 통도사 서유기도)

셋째 장. 문득 진리의 달빛을 쐬고

믿음의 그릇(파주 보광사 연화화생도)
야반삼경에 손가락을 만져보라(청주 월리사 한산습득도)
남은 것은 이름뿐(경주 기림사 여래공양도)
진리는 어떻게 증명되는가(양산 통도사 견보탑품도)

넷째 장. 남쪽의 거친 계곡을 건너

이태백이 노든 달아!(상주 남장사 이백기경상천도)
말 없는 말은 어떻게 듣는가(영덕 장육사 문수·보현보살도)
사람의 무늬, 아는 것의 즐거움(논산 쌍계사 서왕모도)
우리는 모두 기독교인이다(공주 마곡사 하마선인도)

다섯째 장.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오르니

옛날 소설을 읽으러 도서관에 갔다(고창 선운사 기우귀가도)
타인의 발견(청도 운문사 관음·달마도)
그런 달마는 없다(양산 통도사 달마전법도)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순천 선암사 가루라·긴나라도)

여섯째 장 마침내 용이 되어 구슬을 얻다

네 운명에 침을 뱉어라(안성 청룡사 반야용선도)
스승은 없다(수원 용주사 이교취리도)
파랑새가 있다(강진 무위사 백의관음도)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해남 미황사 천불도)
 

저자 소개 

저 : 강호진
 
부산에서 태어나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다. 고고미술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여러 직장을 거치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불교와의 인연은 중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 백련암에 올라가 삼 천배를 하고 성철 스님에게 일각(一角)이란 불명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오직 일체중생을 위해서 살라’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껏 별달리 ...

책 속으로

화엄경』의 가르침은 통장에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몰라서 평생 한 푼도 꺼내 쓰지 못하는 중생의 가난한 삶을 바꾸라고 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바꾸는가? 자신이 부처임을 확고히 믿는 순간 오래전부터 부처였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고한 믿음은 단순히 믿음의 강도나 세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완성을 말한다.
--- 본문 중에서

화엄에서 일즉다 다즉일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존재가 실체로서의 존재가 아닌 텅 비어 있음[空]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팔상·독성·나한전의 벽화가 화엄의 원융철학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데에는 건축물의 독특한 구조도 빠트릴 수 없다. 팔상전, 나한전, 독성전이 개별적 공간으로 분할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건축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 또한 화엄의 철학인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불가에서는 조고각하(照顧脚下)란 말을 자주 쓴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 자신의 발밑부터 살펴보라는 말이다. 이는 잘못된 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타인의 행위를 스승으로 삼아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져보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천은사에 갈 때마다 벽화를 올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예수가 말한 ‘저들’을 ‘내’가 아닌 ‘저들’이라고 부를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 본문 중에서

현재 『서유기』 관련 벽화가 남아 있는 사찰은 통도사, 불국사, 하동 쌍계사, 대구 용연사로 그림의 수준과 규모로 볼 때 통도사 용화전의 벽화가 가장 우뚝하다. 통도사 용화전 동·서 벽면에는 7점의 『서유기』 벽화가 남아 있는데, 각 벽화마다 그 내용을 알려주는 화제(?題)가 달려 있다. 오랫동안 비밀에 싸여있던 벽화가 『서유기』의 내용을 그린 것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 본문 중에서

보광사의 연화화생도가 무엇보다 인상적인 이유는 벽화 아래쪽에 덩그러니 놓인 빈 연화대 때문이다. 세월이 빚어낸 우연이겠지만 인물만 지워진 텅 빈 연화대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텅 빈 연화대에서 무엇을 보느냐는 근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근기는 보이는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할 것이고, 중근기라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상근기라면 바로 그 자리가 부처로서 내 자리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당신은 어떤 근기인가?
--- 본문 중에서

언어무용론과 언어도구론이라는 이분법적 운동장에서 벗어나 불교를 새롭게 읽으려는 이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우선 『능가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이 왜 달과 손가락을 ‘함께’ 묶어서 비유해왔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이는 달이 손가락 너머에 홀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늘 손가락과 ‘함께’ 있음을 깨닫는 일과 다르지 않다. 손가락이 없으면 달도 없고, 달이 없으면 손가락도 없다.
--- 본문 중에서

오늘도 통도사를 찾은 사람들은 금강계단 주변을 서성이며 붓다가 전하는 진리를 엿보려 애쓸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모른다. 그 진리가 진리일 수 있게 하는 것은 믿음이나 열망이 아니라 컴컴한 영산전 내부에서 조용히 바래가는 한 점의 벽화라는 사실을.
--- 본문 중에서

문수는 지혜이고 보현은 실천을 상징한다는 단편적 지식 따위로 삶은 바뀌지 않는다. 문수와 보현이 둘이 아님을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지혜와 자비라는 뜬구름 같은 말들이 내 삶에 사무치는 가르침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본문 중에서

‘네가 날 죽이려 드니 나도 죽이겠다’라는 세간의 합리는 불교의 가르침도 아니고, 세상을 이끌 혜안도 아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철리야말로 석가모니가 깨우친 연기법의 핵심이다. 우리는 모두 불자이자, 유자(儒子)이고, 더불어 기독교인이어야 한다. 배타성의 좁은 우물에 갇혀 돈 꾸러미에 놀아나는 두꺼비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인류와 더불어 살아가는 보살이 될 것인지 마곡사 하마선인도는 묻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런 달마는 없다. 모든 경전을 폐하는 선법을 전하고, 독약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런 달마는 없다. 그림을 걸어놓으면 복을 주고, 재앙을 소멸케 하는 그런 달마는 없다.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모른다[不識]”라고 답하는 달마만 있을 뿐이다. 그것이 선종의 초조로서 달마가 지니는 유일한 의미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불법의 큰 뜻을 물으러 온 승려들에게 “차나 한잔 마시게”라고 말한 조주선사처럼, 스승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을 때 제자는 비로소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역설을 이교취리도는 신발 한 짝을 통해 담담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해남 미황사의 다양한 부처를 보면서 천불의 가피(加被)가 중생들에게 넘쳐나는 세상, 다시 말해 많은 부처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일까 자문하게 된다. 경전에서 붓다를 큰 의사에 비유하는 것은 중생이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픈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불교 도상학을 넘어 일상에 맞닿은 사유와 비판

이 책은 화엄의 사상을 기반으로 사찰 벽화를 단순히 도상학적으로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과 현실에 대한 해석학으로 나아가려 애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와 깨달음의 단절, 앎과 실천의 분리, 종교적 배타성, 종교계 내의 남성우월주의, 타자에 대한 수용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나아가 불교계나 학계에서 그동안 통용되었던 권위적 해석들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독자들에게 드넓은 이해의 지평으로 나아가길 권유한다.

『사유를 쏟아, 붓다』란 제목은 현재 정치와 종교적 견해로 증오와 분열로 가득 찬 사회구성원들이 다시 중도(中道)적 세계, 즉 붓다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존재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연기적 사유를 가장 먼저 체득한 이가 붓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