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기독교 신학연구 (책소개)/8.목회신학연구

유기적 성경공부 - 1세기 기록된 순서대로 서신서를 읽다 (2019)

동방박사님 2023. 12. 2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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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지난 1800년 동안 미루었던 혁명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에 혁신적인 변화를 갈망해 왔는가?
그 갈망에 도화선이 되어줄 책이 여기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지금까지 성경을 배우던 방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들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새롭게 펼쳐놓을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
“바울의 서신들은 완전히 뒤엉켜 있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은 뒤엉킨 그 서신들을 원래 기록된 순서대로 재배열하고 있다.
그 순간 아름다운 1세기의 이야기가 성경에서 걸어 나온다.

느닷없이 우리 눈에 1세기의 전경이 들어오고 그렇게 열린 시각은 1세기의 그것과 오늘 우리의 기독교를 자연스럽게 대조해준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독교라고 믿고 행했던 모든 관습들에 대담한 도전을 던진다. 그렇다. 이 책은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책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에 신약성경을 연대순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내놓는 이 책은 그의 평생에 걸친 탐구의 결과이다. 기대하라. 신약성경의 각 서신들이 제 자리를 찾았을 때
당신은 각 서신들 뒤에 숨겨진 배경까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1 사도행전 각 장에서 일어났던 일
목차 2 첫 1세기 교회시대인 30-70년 사이에 매해 일어났던 일들
목차 3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서신을 기록했던 장소와 시간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

저 : 진 에드워드 비스 주니어 (Gene Edward Veith Jr.)
 
출간된 지 30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수많은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는 『세 왕 이야기』 그리고 미국의 서점 매니저들이 향후 100년 후에도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서가에 꽂혀 있을 책으로 꼽은 『신의 열애』의 저자이다. 그러나 진 에드워드는 영성 깊은 기독교 작가이기 이전에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즉 유기적인 교회에 헌신해온 가정교회 운동의 선구자이며 지도자이다. 저자는 18세에 대학을...

출판사 리뷰

단순한 한 권의 책을 뛰어넘어

이 책은 우리 기독교가 나아가는 길에 기념비적이고 획기적인 성과이며 역사적인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수세기 만에 처음으로 우리는 신약성경을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전례 없는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전혀 알 수 없었던 신약성경을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그동안 묶여있던 성경을 풀어내는 동시에, 지난 1800년 동안 우리의 눈을 가려왔던 수건을 벗겨 낼 것이다. 만약 이 책이 300년대에 나왔더라면 각 세기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을 따르려는 그들만의 모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1세기의 모델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역사가 진행되어 왔을 것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1세기 기독교가 과연 어땠는지에 대한 선명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신약성경의 혼란스런 배열이 지난 1800년 동안 우리에게 가져온 폐해는 이제 여기서 끝나야한다. 이 책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우리 신앙의 원형이 무엇인지 명확한 관점을 내놓는다.
이 책은 성경을 다시 배우는 획기적인방법을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 믿음의 삶을 개혁할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서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서재에는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순서대로 신약 27권이 배열되어 있다. 두 번째 서재엔? 오직 이 책 한 권뿐이다.
이 책이 당신의 손에 쥐어지기까지 저자는 초기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보내야 했고, 신약성경을 처음 기록된 순서대로배열하는 일에 40년의 시간을 소비하였다.
새로운 성경공부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한다.

신성불가침 영역
신학교 두 번째 해에 나는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 전엔 성지(聖地)에서 지냈는데 거기 살면서 나는 바울의 발자취를 추적했고, 그의 편지들이 기록되었던 시대와 장소들이 지금 내가 보는 신약성경의 순서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왜 우리는 바울이 기록했던 대로 그의 편지를 읽지 않는 걸까? 기록된 순서대로 읽어야 그 의미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내게 떠오른 말이 있었다. 나의 성경교사 중의 한 분이 하신 말씀이었다. “바울의 서신들은 모두 신약성경 한쪽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찾아 읽기에 편합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성경학자들이 문서의 연대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란 나의 반응은 이랬다. “바울은 51년에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습니다. 디모데전서를 쓴 것은 67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서신들은 한 덩어리로 뭉쳐있습니다. 이 무시된 채 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 우리가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의 공부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도 이 공부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의 목차로 돌아가 보자.
바울이 13편의 서신을 각각 작성했던 시간적 순서는 지금 당신의 신약성경 속에 배열된 순서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어떻게 이런 혼란이 찾아왔을까?
이 괴상한 신약성경의 배열은 A. D. 200년쯤, 낱개로 존재하던 신약성경 문서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냈던 제본업자의 손에서 일어났다. 다시 말하면 신약성경은 이 많은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다. 바울서신 또한 분량이 많은 편지에서 분량이 적은 편지 순으로 그 순서가 정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1800년 동안 그 문서들의 순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주어진 대로 읽어왔던 것이다.
나는 성지를 떠나 로마로 갔다.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자료들을 처음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땅에서다.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나는 그에 대한 자료를 탐구하고 글을 쓰는데 거대한 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1세기의 역사에 대해 신학교 교육이 내게 준 것은 거의 없었다. 이 주제에 대해 기독교 서적들이 다룬 내용들은 심각할 정도로 오류가 많았다. 그런데 바울서신들의 배열은 여전히 수정되지 않은 채 읽혀지고 있다!) 을 설명한다며 1세기의 역사를 다루려는 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1세기의 기독교 역사는 연대순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동시에 로마제국, 이스라엘,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 이 세 측면이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1700년 전에 죽은 한 제본업자가 우리에게 물려준 대로의 순서가 아닌, 그 문서가 원래 기록된 연대순으로 배열된 성경을 유기적으로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문서들이 주는 시간적 간격들로 인해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가 그동안 의존했던 성경학자들은 로마제국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첫 세기 그리스도인들과 연관 짓는 방식을 무시해왔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같이 놓아야만 우리는 당시의 전체적인 상황과 그 가운데 전개된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로마에 머무는 동안, 나는 1세기 로마의 전통적인 역사와 함께 당시로선 처음으로 시도되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연구는 오늘날 교회고고학이란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철저한 개신교도, 더구나 침례교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예수회 학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특히 교회고고학에 대해 치기어린 질문을 던지던 19살의 풋내기를 그들은 오랫동안 잘 참아주었다.
대부분의 성경고고학은 구약성경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교회고고학은 30년부터 100년 사이의 증거들에 초점을 둔다. 현재까지도 이 영역은 초기단계의 연구에 머물러 있는데, 오늘날의 신학교육은 여전히 이 영역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개신교도들이 접근하지 않는 장소들과 자료들을 접촉할 기회를 얻었다.
B.C. 4세기-A.D. 70년 사이, 특별히 사도행전과 바울서신들을 둘러싸고 실제 펼쳐졌던 일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내안에 불타올랐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이후 40년 넘게 달려온 열정의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는 오순절 날에 시작되어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그 해까지 존재했던 교회들을 방문하고자 한다. 거기에 로마황제들, 제사장들, 군인들,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이 그곳에서 정녕 무슨 일을 했는지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해에 일어났던 일들과 당시 교회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이리저리 뒤섞여버린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을 통해서는 이런 재발견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병행되는 사건들을 통합적으로 볼 때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러한 재발견은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이해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허물어지면서 당신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의도하는 바이다.
당신이 알게 될 또 한 가지의 사실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적인 신앙행위라고 믿고 행하는 많은 일들이 당시 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너무나 거대하면서도 너무도 다른, 그렇지만 지극히 성경적인 이 새로운 재발견이 우리 모두에게 도전을 던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