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가톨릭-천주교 (독서)/9.천주교문화산책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2016)

동방박사님 2024. 1. 27.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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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럽의 아름다운 수도원을 배경으로 풀어놓는 작가 공지영의 내밀한 자기 고백!

18년 만에 교회와 신앙 그리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온 작가는 주소 몇 개와 전화번호 몇 개만 들고 한 달간의 수도원 여행에 나선다. 지친 영혼을 쉬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그녀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고 마침내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여행을 통해 자신과 인간, 신에 대해 성찰한 바를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

목차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개정증보판을 내며
들어가는 글

내 영혼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으로
아르장탕 가는 길
노트르담 봉쇄수녀원
18년 만의 영성체

모순의 극한에 조화가 있다
생 피에르 드 솔렘 수도원
이 파리

여기 서 있는 그대, 화해하십시오
리옹
테제, 꿈 하나만 믿고 이룬 공동체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나다
길 위의 성모 피정의 집
프리부르
메그로주 수녀원 그리고 오트리브 수도원

비발디의 도시
베네치아

보다 큰 자유, 보다 큰 진리
뮌헨, 백장미 두 송이
프라우엔 킴제 수녀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나
함부르크
스콜라스티카 수녀원

사랑은 스스로 찾아온다
이상한 영명 축일
마리엔하이데 수도원
마리엔보른 수녀원

저자 소개

저 : 공지영 (孔枝泳)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89년 첫 장편『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는『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

책 속으로

그 전화를 받던 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더운 여름이 가고 서늘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던 초가을이었다. 나는 그 무렵, 방학을 한 아이들과의 씨름에 지쳐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온 내 생은 사소한 일상에도 멀미를 일으키고 있었고 진심을 말하자면 나는 ‘몰라, 나는 모르겠다고’ 하며 쉬고 싶었다. 수첩에 쓰인 글귀대로라면 내 영혼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어디 깊은 산속 암자에라도 가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똑, 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만 사흘쯤 세다가 돌아오고 싶었다. 고요하고 심심하고 그래서 거울처럼 조용해진 마음에, 다시 내 마음을 한번 비추고 싶었다.--- p.27

“우리는 가둠으로써 제일 큰 것을 얻은 거예요. 세상의 작은 것들을 버리고 제일 큰 것을 얻었으니 더 바랄 게 없지요. 처음 프랑스에 와서 이 수도원 저 수도원을 다녀보다가 이곳에 오게 됐어요. 제가 소개를 받아 이곳에 도착하기 전날 한 수녀님이 돌아가셨는가 봐요. 장례미사를 드리는 데 참석했다가 돌아가신 그분의 얼굴을 뵙게 되었죠. 관 속에 들어가 계신 그 늙은 수녀님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바로 원장 수녀님께 면회를 신청했어요. 그러고는 말씀드렸죠. ‘제발 여기서 죽게 해 주세요.’ 그때 원장 수녀님이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그래요 좋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 죽는 건 안 돼요.’”--- p.73

아름다운 풍광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다시 꼭 찾아가고 싶은 곳, 프리부르. 그러고 보니 이제껏 세 번의 유럽 여행이 헛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한 번도 ‘사람들’을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것은 사람 없는 풍경과 역무원들과 장사꾼들뿐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p.188

누구든, 그 사람의 종교나 국적 그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은 누구나’ 여기에 와서 묵을 수 있다고 아까 부원장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의미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의미를 잃어버릴 이유가 없을 테니까.
--- p.254

출판사 리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개정증보판 출간

2001년 첫 출간 이후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 온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이 분도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수도원 중심으로 본문을 새롭게 편집했으며, 각 수도원의 명칭을 정확하게 바로잡고 원어를 병기했다. 가톨릭 용어도 가톨릭 용례에 맞게 바로잡았다.

작가 공지영의 내밀한 자기 고백! ?

내 영혼은 어디론가 가고 싶어 했다.
이 기행이 내게, 혼돈과 공허
그리고 삶과 사람들에 대한 허무감에 싸여 있던 내게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2000년 11월, 삼십대 후반의 작가 공지영은 유럽 수도원 기행을 제안받는다. 18년 만에 교회와 신앙 그리고 하느님에게 돌아간 무렵,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로서의 생활에 지쳐 가던 무렵이었다. “유럽의 수도원에 가서 한 한 달만 쉬었다 왔으면 좋겠다”고 친구에게 넋두리를 한 다음 날 낯선 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렇게 주소 몇 개와 전화번호 몇 개만 들고 한 달간의 긴 여정에 나선다. 이 여정은 18년 동안 방황하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신을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수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자신과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성찰을 담담하고도 세심한 필체로 풀어내고 있다.

중학교 때 스스로 성당에 찾아가 열심히 신앙을 키우던 저자는 대학 시절 종교가, 신이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절망감에 교회를 떠난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구원이 찾아온다. 교회를 떠난 지 18년 만이었다. 구원은 고통과 함께 왔다. “구원은 이렇게 벼랑에 몰린 연후에야 … 강도와도 같이, 납치범과도 같이, 고문자와도 같이 왔다.” 그 고통의 나락에서 들려온 신의 목소리는 그녀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버렸다.
하느님을 다시 만나고 우연처럼, 운명처럼 수도원 기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에서 저자는 그동안 외면했던 신앙이, 어릴 적 성당에서의 체험이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는다. 수도원의 고요와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묻고 또 물었던 삶의 의미, 고통과 기다림의 의미가 밖으로 터져 나온다. 이 여행은 그렇게 의미를 찾는 여행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나다

저자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스스로를 철창에 가둔 이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수도 생활을 하는 이들, 아무 조건 없이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들, 오랫동안 알아 왔지만 여행 중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들, 갑작스럽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 삶의 무게와 현실의 막막함에 힘들어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수도원 기행의 첫 목적지인 프랑스 아르장탕 노트르담 봉쇄 수녀원에서 스스로를 철장 안에 가두고도 ‘좋아 죽겠는 표정’이신 수녀님들을 만난다. 솔렘 수도원에서는 아름다운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으며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비정하게 철창 안에 묶어 두는 수도자의 고독을 생각해 본다. 리옹에서 냉담하는 신자인 자신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셨던 이혜정 수녀님과 7년 만에 재회한다. 수녀님과 리옹 대성당과 가르멜 수녀원, 마콩 수녀원을 둘러보고, 개신교와 천주교를 아우르는 초교파 공동체인 테제공동체에서 하루를 묵는다. 휘장과 수천 개의 초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당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기도하는 젊은이들을 만난다.
스위스 프리부르 ‘길 위의 성모 피정의 집’에서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프리부르에서 만난 알리 아주머니의 소개로 찾아간 시토회 메그로주 수녀원에서 파안대소하는 하는 예수상을 보고 단순하고 소박한 신앙을 되새긴다. 가난한 수도원을 기대하며 찾아간 오트리브 수도원은 실망감을 안겨 준다.
반나치 시위를 벌였던 숄 남매의 자취를 좇아 독일 뮌헨대학교에 들러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아름다운 호수 킴제 섬에 있는 프라우엔 킴제 수도원을 주버 여사와 함께 방문하고, 그의 동생과 열띤 토론을 벌인다. 독일 북부 함부르크로 이동하여 한인 교포 사회에서 빌려 쓰고 있는 독특한 함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공산주의를 피해 서독으로 온 수녀님들이 귀족의 별장 마구간을 성당으로 개조해 쓰고 있는 독특한 딘클라게 스콜라스티카 수녀원을 방문한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선교회 마리엔하이데 수도원과 한국인 비안네 수녀님이 계신 팔로티회 마리엔보른 수녀원을 찾는다.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

한 달의 유럽 수도원 기행을 담은 이 책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세상과 동떨어져 외로이 수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삶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제각기 제 궤도를 최선을 다해 돌고 있을 때 세상은 혹여 살 만한 곳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수도원이라는 신비롭고 고요한 공간에서 저자는 다양한 삶의 모습, 의미를 찾는 사람들을 만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여 이렇게 소망한다. “지친 사람들, 삶의 의미를 찾다가 실의에 빠진 사람들, 따뜻함과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한때 삶을 미워했던 내 자신의 이야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혹여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목차

『수도원 기행 2』를 펴내며
들어가는 글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 _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그는 그냥 여기가 좋다고 했어요. 조용히 있는 게 좋다고. _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
그분이 내게 허락하신 일 _ 상트 오틸리엔 대수도원
조용하고 친절하며 따뜻했고 그리고 단순했다. _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
마리아야, 괜찮다. 다 괜찮아. _ 쾰른 카디날 슐테 하우스
다만 당신과 함께 걷게 해 주십시오. _ 파리 기적의 메달 성당
내 머리칼 하나 건드릴 힘이 네게는 없다. _ 몬테카시노 수도원
왜 이 동굴, 왜 이 광야였을까? _ 수비아코 수도원
사막으로 가서 나와 함께 있자. _ 카말돌리회 산 안토니오 수녀원
그 사막, 그 침묵의 절정 _ 카말돌리 수도원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_ 아빌라

책 속으로

뉴욕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St. Paul Abbey의 첫인상은 아주 소박했다. 유럽의 호화롭고 웅장하며 고풍스러운 수도원들만 보다가 미국의 수도원은 처음이라 더 그랬다. 수도원은 그러니까 유럽의 수도원에 비해 아주 미국적이었다. 넓었고 낮았고 한적했고 실용적이었으며 목가적이었다. 나는 여기 처음 들어섰을 마리너스 수사님의 눈으로 그 모든 풍경을 느껴 보려고 애썼다.(69쪽)

그륀 신부님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말하고 계셨고 아무런 제스처도 언어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나의 모든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계셨다.(145쪽)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목숨을, 그러니까 산짐승과 자연 재해, 산적 등의 모든 위험을 각오하고 이 동굴로 들어서던 그의 모습을. 환영 속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몸부림치며 가시덤불에 뒹굴던 모습을. 로마노 수사가 내려 주는 아주 적은 양의 빵만으로 살며 종일 하느님을 생각하던 그를. 그는 대체 이 동굴에서 무엇을 찾았던 것일까? 하느님이라면 이미 저잣거리에, 이미 그가 다녀온 로마에 가득가득 계시지 않았던가 말이다. 왜 이 동굴이었을까? 왜 이 사막, 이 광야였을까?(233쪽)

방 안에서 44년 동안 산 수녀님은 대체 어떤 분일까?
게다가 평생 그 ‘갇힘’을 하느님께 희생으로 봉헌하면서 그 수녀님이 바란 것은 단 두 가지, 하나가 바티칸을 비롯한 교회의 정화와 쇄신이고 또 하나가 놀랍게도 한국의 평화였다니 말이다.(243쪽)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진리는 내게 늘 그렇게 왔다. 이해하기 전에 가슴을 치며.

_ 작가 공지영의 영적 고백록


2011년, 공지영은 소설 하나를 구상하고 있었다. 소설에는 흥남철수작전 때 만사천 명의 목숨을 살린 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그 배의 선장 레너드 라루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수도원이었고 작가는 취재차 한국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방문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과 미국, 유럽의 수도원을 오가며 그녀는 점점 수도원의 고요에 빠져들었다. 수도원들의 침묵과 침잠은 작가의 곤고한 삶에 혁명의 회오리를 불러일으켰고, 내적 변화의 조짐은 수도 정신의 단비를 흠뻑 맞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저자의 유럽 수도원 방문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이 책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발아시킨 씨앗은 한국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뿌려졌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18년 만에 교회와 신앙 그리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전작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에서 밝힌 바 있는 저자는 그 후 13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고 또 신앙적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그녀의 영적 성장 일기이자 신앙 고백록이며 하느님과의 은밀한 대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도원 ‘기행’은 수도원 자체의 공간적 의미에 더하여, 저자의 내적 여정을 기록한 영혼의 순례기로 읽혀야 마땅하다. 그녀의 신앙 체험은 분명 13년 전보다 깊어졌고 넓어졌다. 그러나 이 체험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겪는 아픔과 고통, 그 치유 과정이기도 하다. 그 치유 방법이 하느님을 향해 소리쳤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아픔을 통찰하는 능력으로, 사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하느님 체험과 종교적 성찰을 손에 잡힐 듯 명징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위트 있게 풀어낸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먼저 이 글은 내가 이제까지 써 왔던 모든 글과 다름을 밝혀 둔다.
지금 내가 시작하려고 하는 이 글은 아마도 가장 사적이고 가장 주관적이며 어쩌면 믿음을 갖지 않은 이들에게, 혹은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이성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황당한 판타지 같은 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내가 발표했던 작품에 대한 기대만을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하신 분은 이 서문만 읽고 그냥 이 책을 내려놓기를 권한다. 이 책은 당신을 아주 당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곳에 내가 써 내려가게 될 체험들을 할 당시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이로써 공지영은, 자신이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공지영’과는 다른 ‘공지영’임을 당당하게 혹은 ‘당돌하게’ 선언한다. 젊은 나이에 이미 괄목할 만한 문학적 성취와 사회적 영향력을 획득한 베스트셀러 작가는 이 책에 없다. 핍진한 삶의 고통 앞에 무력하게 널브러져 신음하다가, 마침내 불러야 할 ‘궁극의 이름’ 하나 발견하고는 그 발목을 부여잡고 옷깃을 매운 눈물로 적시는 작고 가녀린 한 여인이 있을 뿐이다. 제자리, 제집이 아닌 곳을 부유하다가 온갖 비바람 된서리에 얼어붙은 몸으로 기어이 자신이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 ‘아버지 집’의 더운 아랫목에서 깊은 잠 청하는 이, 그 겸손과 회개의 단꿈은 얼마나 아늑한가! 이것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가 보여 주는 새 얼굴의 공지영이다.

저자가 이 년여에 걸쳐 방문한 수도원과 성당은 모두 열한 곳이다. 한국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마리너스 수사가 된 레너드 라루 선장의 흔적을 찾아간 미국 뉴튼의 세인트 폴 수도원, 한국과 인연이 깊은 베네딕도회의 독일 상트 오틸리엔 대수도원, 안젤름 그륀 신부님이 계신 곳으로 유명한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을 방문한다. 저자가 특별히 존경했던 안젤름 그륀 신부님과의 인터뷰도 담았다. 쾰른의 카디날 슐테 하우스에서는 그녀에게 고통과 환희를 안겨 주었던 신앙 체험을 전한다. 파리에서는 오랜 여행 중인 딸과 만나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 베네딕도 성인이 은수 생활을 했던 이탈리아 수비아코, 베네딕도회의 첫 수도원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돌아보며 베네딕도 성인의 자취를 따라간다. 로마 카말돌리회 산 안토니오 수녀원에서 전하는, 44년 동안 봉인된 삶을 산 나자레나 수녀님의 이야기는 특히 놀랍고도 뭉클하다. 독방도 아닌 독채에서 고독과 침묵의 삶을 사는 카말돌리 수도원의 수사님의 모습도 전한다. 마지막으로 아빌라의 데레사 축일에 맞춰 방문한 아빌라에서 떠들썩한 축제 속에 느낀 여러 감정들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머무는 곳마다 우연히 만나는 인연들,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들, 정신을 기절시키는 사적 고백들이 수도원이라는 특별한 공간과 어우러져 읽는 가슴마다 묘한 울림을 자아낸다. 각 수도원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수치를 기대한다면 인터넷을 검색하는 편이 더 빠를 것이나, 수도원의 기도와 노동이 주는 의미, 씨줄날줄로 얽힌 사연, 저자를 변화시킨 각별한 인연들에 더 큰 뜻을 둔다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가 제격이다. 저자의 마음이 그러했듯이, 독자들도 이 책을 내비게이션 삼아 자신만의 영적 여행을 떠나봄이 어떠할까? 저자의 ‘수도원’은 결국 그녀 마음속에 있었고, 우리도 저마다 마음속에 ‘수도원’ 하나씩 부둥켜안고 있으므로.

추천평

2011년 12월 26일 공지영 작가가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1950년 흥남철수작전 때 만사천 명의 피난민을 구조한 마리너스 수사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소설로 구상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근 이 년 동안 꾸준히 수도원을 방문하며 많은 취재를 하였고 마침내 수도원을 소재로 한 『높고 푸른 사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는 그 어려운 작업의 과정 중에 이미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2001년 사제 서품을 앞둔 시기에 수도원 식당의 읽을거리로 선정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한동안 침묵 중에 식사를 하며 들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13년의 부침을 겪은 후에 더 깊어진 작가의 신앙 체험과 여러 사건을 통해 더 명료해진 ‘하느님 공부’가 진솔한 신앙의 언어로 이 가을에 저에게 또다시 전해졌습니다. 현실의 어려움과 신앙의 막막함에 힘들어하는 분들, 무의미와 싸우며 참된 하느님의 모습을 찾고 있는 많은 분들이 새로운 희망의 끈을, 더 높은 곳으로 연결된 의미의 사다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