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11.중앙아시아

아미르 티무르 (2024) - 닫힌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키다

동방박사님 2024. 3. 2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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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앙아시아를 통일한 아미르 티무르

아미르 티무르 Amir Temur(1336-1405)는 14세기 중앙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사람이다. 만약 아미르 티무르가 없었다면 다민족의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있는 현재의 중앙아시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의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이전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사람들이 이민족이라면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중앙아시아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중앙아시아를 통일시켰다. 그의 통일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들을 자극하였고 그렇게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와는 다른 문화의 중앙아시아를 건설할 수 있었다.

목차

개정판을 내면서 | 유럽 근세사 비밀의 열쇠 아미르 티무르·8
프롤로그│원정만 떠나는 군대·17

제1장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전략

1. 한 사람의 무슬림에게 명운을 건 유럽·25
2. 여왕이 사랑했던 무슬림 정복자·29

제2장 ‘샤히브키란’의 탄생

1. 800년마다 한 번씩 빛나는 별 ‘샤히브키란Sahibkiran’·39
지구를 지배한 자와 인류를 지배한 자·39
‘샤히브키란’이라 불린 아이·45
2.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다·50
조카를 죽이려 했던 삼촌·50
속세를 등진 아버지와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53
3. 중앙아시아 몽골동포 내전·58
재在차카타이칸국 몽골동포: 자트Jat와 카라우나스Qaraunas·58
카라우나스의 차세대 리더가 되다·60
백성의 뜻은 신의 뜻보다 강하다·67
4. 중앙아시아 통일전쟁·71
동물이 살 수 있는 사막이면 사람도 살 수 있다·71
절름발이가 된 아미르 티무르·74
진흙탕 전투·77
백성이 만들어 준 선물·82
유라시아의 심장을 차지하다·87
아미르 티무르의 저주·92

제3장 인류 최후의 정복자

1. 버림받은 자들의 저주로 만들어진 국가·107
떠나는 지배자들·107
버림받은 동포들·111
동포, 그들은 또 다른 적이다·114
2. 이슬람의 칼로 이슬람의 머리를 베다·117
버려진 무슬림이 만든 이슬람·117
이슬람의 칼로 이슬람의 머리를 베다·124
3. 몽골의 후손, 칭기즈칸을 버리다·127
성城을 쌓는 유목민·127
아미르 티무르 법전: ‘울로제니아Ulozenia’·130
4. 대륙의 심장을 살려라·135
원정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135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양성된 군대·140
5. 인류 최후의 정복자: 위대한 실크로드 원정 170일 연승·144
14세기에 나타난 나폴레옹 포병·144
인간이 만든 최고의 무기는 사람이다·151
찢어버리고 싶은 국가들: 모골리스탄과 호레즘·158
길을 옮기다: 러시아 원정·162
인더스강을 넘다: 인도 원정·170
종교의 칼로 종교의 머리를 베다: 페르시아와 중동으로의 성전聖戰·178
유럽을 아시아에 붙이다: 오스만제국 원정·188
마지막 남은 꿈을 찾아서 명明을 향하다·200
6. 세계사가 지워버린 위대한 인물·206
이상한 역사의 평가와 잣대·206
사라진 역사의 다리·209

제4장 위대한 대륙의 설계

1. 아미르 티무르의 리더십·219
양탄자 리더십: 힘의 가공·219
퓨전 리더십: 힘의 활용·222
체스 리더십: 힘의 승리·226
2. 아미르 티무르가 만든 국가·230
글은 몰라도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주민들: 국제화된 주민·230
이름에 직업을 붙이는 사람들: 모든 주민이 전문가·232
중세 최대의 메트로폴리탄: 오아시스 크레센트(초승달)·235
3. 14세기 지구의 랜드마크landmark, 사마르칸트·239
사막에 핀 정원의 도시·239
사마르칸트를 가지고 싶지 않은 통치자는 지구상에 없다·244
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다·248
4. 아미르 티무르가 만든 세계·252
콤팩트Compact 월드: 지구를 가볍게 만들다·252
퓨전Fusion 월드: 인류의 유산을 하나로 만들다·260

에필로그│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269
아미르 티무르 연표·273
14세기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278
아미르 티무르의 가계도·280
인명 색인·281
참고문헌·284

저자 소개

저 : 성동기
부산에서 태어나서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우즈베키스탄 국립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우즈베키스탄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연구교수, 부산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어과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초빙연구원, Pre-University in IUT(Inha University in Tashkent) 교장, IUT(Inha...

책 속으로

‘샤히브키란’이라 불린 아이
1336년은 중국본토를 지배하던 몽골제국의 중심인 원이 쿠빌라이의 명령에 따라 한반도까지 세력을 뻗어 고려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 봄에 유라시아의 점성술사들은 중앙아시아의 이름 없는 초원 위에서 세 번째로 샤히브키란이 빛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곧 인류 전체를 지배할 자가 탄생할 것임을 알았다.

유라시아의 점성술사들은 인류를 지배하는 자의 탄생은 800년마다 빛나는 별의 출현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샤히브키란’이다. 그들은 이 별이 최초로 빛났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고 두 번째 빛났을 때 예언자 무함마드가 탄생하였다고 주장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알렉산더 대왕은 헬레니즘이라는 정신문명을 가지고 인류의 반을 지배하였으며, 무함마드는 이슬람으로 인류의 반을 지배하였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이들은 물리적 영토까지 확장시켰다. 그러나 이슬람은 알렉산더 대왕을 유럽은 무함마드를 거부하였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두 번째 도시인 사마르칸트 부근의 케쉬Kesh(현재는 샤흐리사브스Shakhrisabz)라는 작은 마을에서 아미르 티무르는 1336년 4월 9일 탄생하였다. 그의 어머니인 ‘테키네 호툰’은 자신이 꾸었던 태몽을 나중에 아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한번은 꿈속에서 아랍인처럼 생긴 아주 잘 생긴 청년이 내게 칼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검에서 번쩍하면서 빛이 나오더니 온 세상을 비추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현자에게 달려가서 해몽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꿈이 운명을 이야기해준다고 했다. 신이 내게 아들을 보낼 것이고 그 아들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모든 무슬림들이 존경할 것이고 힘든 세상을 밝혀줄 것이라고 했다. 꿈은 곧 현실로 이루어졌다. 신은 내게 너를 내려주셨다.”
--- p.45~47

아미르 티무르와 후세인이 이끄는 군대는 용맹하게 공격하여 4개의 요새를 함락했다. 이 소식을 접한 나머지 3개의 요새는 항복을 해 왔다. 그러나 말릭 마흐무드는 예상보다 쉽게 요새를 평정한 아미르 티무르와 후세인의 능력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으며 두 사람이 세이스탄을 통째로 집어 삼킬 것이라는 부하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마침내 아미르 티무르와 후세인을 공격하기로 결심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였다. 아미르 티무르와 후세인에게 이러한 공격은 무서운 존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안정적인 방어가 힘들어지면서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는 오른쪽 팔꿈치와 다리에 화살을 맞았다. 그러나 아미르 티무르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합군은 말릭 마흐무드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세이스탄전투에서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기회를 잡았지만 소중한 팔과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 p.74~75

이슬람의 칼로 이슬람의 머리를 베다
이러한 현상을 현대에 접목시키면 아미르 티무르는 집권여당과 제1야당 사이에서 제3당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국가운영의 통치 패러다임을 새롭게 하여 국민들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하였다. 몽골제국과 수니와 시아 이슬람이라는 양대 세력에 맞서 이들을 타도하고자 하는 버려진 자들을 통합시켜 대권에 도전한 모습이다.

아미르 티무르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걸었던 공약은 이슬람의 병폐를 뿌리 뽑는 것이었다. 아미르 티무르 연구의 대가인 앗시드S. A. M. Adshead는 무슬림으로서 아미르 티무르는 원리주의자가 아닌 세속주의자이고 근대주의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기본체제인 정교일치를 고수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종교지도자이자 정치지도자였다. 따라서 모든 이슬람 국가는 정교일치를 기본으로 지도자를 선출하였다. 그러나 아미르 티무르는 자신을 종교지도자로서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다음과 같은 정책을 고수하였다.
첫째, 이슬람의 관리는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둘째, 이슬람이 정치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시켰으며 실제로 전통적인 정치·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해 오던 ‘울레마’를 정부기관에서 배제시켰다.
셋째, 자신의 이름을 가진 신학교를 건립하지 못하게 하였다. 자신은 분명하게 이슬람세계에서의 정치지도자이지 종교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신학교 명칭에 이슬람학자들이나 지도자의 이름이 적합하다고 무슬림들을 설득하였다. 위대한 정복자이자 통치자라면 자신의 이름을 딴 신학교를 상징적으로 가지고 싶어 했을 것인데 아미르 티무르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자신도 일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평등한 무슬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넷째, 그는 수피즘을 신봉하는 지지자들을 규합하기 위해 각 교단의 지도자들을 기리기 위한 영묘 재건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영묘를 중심으로 기존의 울레마와 대립된 종교 활동을 하는 수피즘 신봉자들에게 이것은 반가운 내용이었다.
--- p.125~126

출판사 리뷰

위기에 빠진 유럽의 구세주 아미르 티무르

아미르 티무르가 없었다면 어쩌면 현재의 유럽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위세당당했던 오스만투르크가 막 유럽을 치려는 그때 아미르 티무르는 오스만투르크와 일전을 준비하고 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티무르는 거기서 서쪽으로의 원정을 멈추어 선다. 백전 백승의 티무르가 멈추지않고 유럽으로 달렸다면 또다른 세계 지도가 그려졌을 것이다.

티무르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재건한다. 아미르 티무르에 의한 실크로드의 재건은 유럽을 다시금 아시아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유럽의 르네상스의 발화점이 되었다. 유럽은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하지만 다시 그 세력을 키운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소통이 막히고 유럽인들의 동양과의 교류 욕망은 신대륙 개척의 역사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었다.

몽골계 바를라스의 후손인 아미르 티무르

아미르 티무르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종교에 심취하여서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야생마처럼 혼자 자랐지만 중앙아시아 초원의 점성술사들이 800년마다 한 번씩 빛나는 ‘행운의 별’이라고 일컫는 ‘샤흐브키란Sahibkiran’의 기운을 받아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용맹하여 청년기에 이미 중앙아시아 몽골동포들의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중앙아시아 몽골동포의 내전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며 급기야 세이스탄 전투에서 화살을 맞아 오른쪽 팔다리에 부상을 입고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야만 했다. 그의 서양식 이름인 태멀레인Tamerlane은 절름발이 티무르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나아가 칭기즈칸 이후 대륙의 마지막 정복자가 되었다.

그는 120여 민족이 공존하는 중앙아시아의 다민족·다문화 사회를 소통과 화합으로 이끌면서 수니와 시아에 염증을 느껴 발생한 이슬람 수피즘을 장려하여서 국가적인 종교로 성장시켰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1,000일이 넘는 유라시아 원정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는 실크로드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륙을 설계하였다.

그는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를 14세기 당대에 최고의 도시로 만들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유라시아의 경제, 무역, 문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1402년 중세 최대의 전투인 ‘앙카라 전투’에서 유럽을 넘보던 오스만제국을 초토화시켜 유럽의 구세주가 되었으며, 이후 유럽 사회는 그의 대륙을 향한 전략과 설계를 배워서 근세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닫힌 중세의 중앙아시아를 열고 세계를 소통시켜 근세의 발판을 만든 아미르 티무르는 1404년 중국의 명明을 정벌하러 떠났다가 오트라르에서 병으로 위대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나이 69세였다.

이후 그는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누군가에 의해서 사라졌지만 그의 대륙을 향한 위대한 전략과 설계는 지금도 살아남아 진화하고 있다.

14세기 최고의 권력자 아미르 티무르의 일생을 다룬 책

이 책은 14세기에 태어난 위대한 황제 아미르 티무르에 대한 책이다. 가장 넓은 면적의 제국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되어서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그를 덮여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꺼내서 펼쳐본다.

실제로 14세기 가장 큰 면적의 땅을 지배했던 그를 배제하고 근세의 출발과 발전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면, 아미르 티무르 사후에 진행되었던 정화(鄭和)의 대항해, 근세 유럽의 출발선인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 유럽 국가들의 해양로 개척, 인도의 무굴 제국 등이 모두 그와 깊은 연관이 있다. 서구학계는 근세 유럽의 르네상스와 이후 근대로의 발전은 자체적인 역량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라고 대부분 주장한다. 그러나 문헌을 살펴보면 유럽의 중세는 오늘로써 끝나고 내일부터 바로 유럽의 근세가 시작되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즉 어떤 기반을 중심으로 서서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르네상스가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장기간에 걸쳐 중세 기독교의 암흑기를 경험한 유럽사회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근세라는 거대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저자는 그 중심에 바로 아미르 티무르가 있음을 강조한다.

독자들도 아미르 티무르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을 읽게 되면 저자의 주장을 용기있는 학자의 용기있는 주장임을, 그리고 그 주장이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