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계사 입문 (독서)/1.세계사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 (2024) - 나치 독일, 소비에트 러시아 그리고 산업화를 향한 경쟁

동방박사님 2024. 4. 29. 06:13
728x90

책소개

대공황에서 전후 시기까지 포드주의의 새로운 세계사
나치 독일과 소련이 일으킨 ‘거대한 전환’의 물결

20세기의 첫 십 년 동안 전 세계의 관찰자들은 미국의 급격한 부상과 자동차 산업이 밀접하게 관련됨을 포착했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의 엔지니어들이 미국을 본받고, 도전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 가장 열정적이었던 이들은 자동차 대량생산기술, 즉 ‘포드주의’를 연구하고 모방하고 때로는 훔쳐내고자 한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전문가들이었다.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원제 Forging Global Fordism)은 경제 위기와 이데올로기적 혼돈 속에서 독일과 소련이 포드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을 낱낱이 추적한다.

1930년대는 세계 각국이 자유시장의 확대와 세계화라는 발전궤도에서 잠시 이탈한 예외적인 시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에 글로벌 대량생산체제의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의 반대편에 서 있던 나치 독일과 소련이 그에 앞장섰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러한 반전의 역사의 배후에는 미국 중서부에서 탄생해 전 세계를 매료시킨 ‘포드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테판 링크(미 다트머스대 교수)는 포드주의의 기원을 미국 중서부 포퓰리즘에서 찾아내고, 헨리 포드의 반자유주의적 전망이 어떻게 나치와 소련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포드주의는 20세기에 새로운 시대정신이 수혈되어야 한다고 믿은 포스트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유주의’를 대체할 가장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포드주의 기술 이전은 전시 체제를 확립하고, 미국의 패권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기도 했다. 이 책은 윌리엄 베르너, 페르디난드 포르셰, 스테판 다이베츠와 같은 디트로이트 방문객들이 포드주의를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그것을 총력전에 동원하도록 조력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은 미국의 부상과 대공황을 계기로 촉발된 포드주의를 향한 산업화 경쟁이 명백하게 반자유주의적인 궤적을 따라 진행되었음을 논증함으로써 20세기 글로벌 대량생산체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세계의 산물이라는 관념에 도전한다. 이렇게 포드주의와 전간기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칼 폴라니가 말한 ‘거대한 전환’의 역사를 새로 쓰는 데 성공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는 글: 디트로이트, 20세기 자본주의의 수도
포드주의란 무엇이었을까
미국에 대한 반란
적대적 개발과 기술 이전 그리고 경제적 독립 추구
맥락: 전략적 산업 정책과 개발 체제
근대화 너머의 20세기 역사

1장 포퓰리즘에서 찾는 대량생산의 뿌리

기계공과 금융업자
대량생산의 복합적 요소들
동부와 중서부
포드사 대 제너럴모터스사
결론

2장 포드, 근대사회의 바이블

『나의 삶과 일』
백인 사회주의: 포드를 읽는 바이마르 우파
막간: 그람시의 미국주의와 포드주의를 대하는 소비에트의 맥락
사회주의 합리화: 소비에트의 포드 읽기
결론

3장 소비에트의 자동차 거인

소비에트 산업화와 기술 이전: 신경제정책에서 제1차 5개년 계획까지
니콜라이 오신스키와 소비에트연방 자동차 보급의 기원
포드 협정: 맥락들
디트로이트의 다이베츠 위원회
인력 교류
기술 이전과 외환
자동차 거인의 작업장
결론

4장 나치의 포드주의

나치의 정치경제 안에서 미국의 다국적 기업
미국 기업들의 도전과 인민의 차
폭스바겐의 기수
미국 기업들이 협조하게 만들기
포드, 지엠 그리고 나치의 산업 고도화
포르셰의 미국인들
결론

5장 공장들의 전쟁

윌리엄 베르너: 괴링의 미국인
나치 전쟁 기계에 포드주의 강제하기
흐름 생산과 노동 강압
포드주의와 나치의 군비 기적
가즈와 소비에트 생산의 기적
결론

마치는 글: 미국 헤게모니 아래 개조된 포드주의

저자 소개

저 : 스테판 링크 (Stefan J. Link)
2012년 하버드대에서 “Transnational Fordism. Ford Motor Company, Nazi Germany, and the Soviet Union in the Interwar Years”로 박사학위를 받고, 피렌체 유럽대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다트머스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 정치·경제사와 자본주의 사상사에 정통하다. 2020년 『Forging Global Fordism』(한국어판: 글로벌 ...
 
역 : 오선실
 
고려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진학해 『한국 현대 전력망 체계의 형성과 확산』라는 연구로 201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근대 초기 한국에 도입된 전기기술이 한국의 역사적 변동과 함께 성장하고 토착화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고, 에너지 문제 전반에까지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근대시기 한국에 도입된 과학기술의 특징과 그 역할, 변형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

책 속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전간기를 다시 읽으면, 마침내 우리는 20세기를 전반적으로 재고할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 최근 20세기는 “개발의 시대”로 불리거니와, 그것을 문명화의 사명이든 전문성의 자애로운 수여로 표현하든 간에, 개발을 세계로 수출하려는 서구의 노력이 특징적으로 나타난 시대였다. 이러한 노력은 서양의 제국주의 계획이라는 긴 역사 안에 쉽게 배치될 수 있으며, 포드주의의 확산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서술되곤 한다. 그에 반해 전간기 개발 경쟁 내에 [배치된] 국가가 후원한 포드주의의 역사는 개발의 세기에 대한 사뭇 다른 전경을 보여준다. 개발의 세기에 나타난 산업 고도화는 미국이라는 제국의 명령이 아니라 오히려 이에 맞서는 반란에서 기인한 것으로, 자발적 성격을 띤다. 개발의 열망은 중심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반半주변부에서 출현했다. 또한 그들의 프로젝트는 온정주의적으로 부과된 근대화에 대응한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 질서의 조건을 두고 다툰 국가들의 정책에서 도출되었다.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는 1930년대의 적극적 국가를 과거 해밀턴, 리스트, 메이지 유신의 중상주의와 전후 일본, 한국, 오늘날의 중국 같은 개발국가와 연결 짓는 산업 정치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지형도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채 역사학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 p.42

“모두가 포드주의의 중대한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정확한 평가는 반란군들의 다양한 경제적 이데올로기에서 포드주의가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우파들에게 포드주의는 경제 부흥의 비결이자 정신적 타락의 해독제를 제공했다. 미국의 부상에 따른 실존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국가의 핵심 구성요소들을 모방하고자 했던 히틀러는 영토와 포드주의에서 그 모범답안을 보았다. 그람시는 근대 산업 생산이 노동자들의 더 수준 높은 문화와 자기 통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다. 비록 유기적 엘리트들의 “헤게모니” 문제가 다루기 힘든 상태로 남아 있더라도 말이다. 한편, 소비에트 논평가들에게 포드주의는 자본주의적 합리화와 사회주의 종파 사이의 차이를 분석하기 위한 수많은 수수께끼를 던져 주었다. 급진적 스탈린주의 근대화론자들에게 포드주의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감수성에 가장 큰 상처를 준 러시아의 극심한 경제적 후진성과 노동자들을 사로잡은 문화적 조잡함을 치유할 방법을 약속했다. 이렇듯 다양한 개발의 지평이 1930년대 나치와 소비에트가 주도한 대서양 횡단 기술 이전에 영향을 주었다.”
--- p.166~167

“1929년 소비에트 지도부는 서양 기업들의 러시아 직접 투자 유치를 중단하고 서구의 기술을 대규모로 수입하는 공격적인 전략에 집중했다. 이러한 전환은 산업화를 둘러싼 정치투쟁에서 스탈린과 최대강령주의 분파들이 승리를 쟁취하는 동시에 이뤄졌다. 서양 기술 수입은 1929년에서 1931년 사이에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폭발적인 증가세는 소비에트 경제 정책의 과격성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기술 수입 비용을 지불하려는 외화 조달에 경제 자원들은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동원되었다. 1931년 외환위기는 기술지원에 토대한 원대한 꿈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포드자동차회사와의 끈끈한 연대를 포함해 그들이 중요 목표로 삼은 서양 기업과의 연결은 1930년대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포드자동차회사와의 계약은 제1차 5개년 계획 기간에 수많은 서양 기업과 체결한 기술지원 계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포드 협정은 상징적인 의미만 풍부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의 포퓰리즘에 뿌리를 둔 생산자주의에서 나온 포드사의 기술 공개 원칙 덕분에 소렌슨과 그의 임직원들은 소비에트 엔지니어들에게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접근 권한을 부여했다. 그들은 소비에트 측에 광범위한 복제와 관찰 기회를 제공했으며, 기계 수급·인적 교류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다이베츠가 디트로이트에서 러시아 중서부로 보내온 방대한 문서들은 가즈의 토대가 되었다.”
--- p.231

“미국 중서부의 포드주의에 대한 나치의 전유는 바로 이러한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전유는 세 가지 주요 경로를 따라 이뤄졌다. 첫째, 나치 정권은 독일에 투자한 다국적 기업인 포드사와 GM사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여기에는 미국 기업의 현지 지사를 독일의 정치·경제 안에 묶어두고, 그들의 독점 기술을 공개하고 생산 규약을 이전하도록 유도하는 압력이 포함되었다. 또한 미국인 경영진과 독일 정부의 관료, 나치당 간부들 사이에서 개인적 외교 활동도 놀라울 정도로 활발히 벌어졌다. 두 번째 경로는 국가가 후원하는 폭스바겐 공장으로, 이는 루즈 공장을 복제해 만들어졌다. 이 장에서는 이상 두 가지 경로를 자세히 살펴본다. 마지막 세 번째 경로는 1937년 가을, 윌리엄 베르너의 디트로이트 임무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표적 산업 정찰 활동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5장에서 그 영향력을 살펴보고, 베르너가 자동차회사 경영진에서 독일 전쟁경제의 최고위층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추적해 본다.”
--- p.251

“그렇다면 소비에트의 군비 복합체가 그들의 적 독일을 능가한 까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소비에트의 통제 경제는 대량생산이 융성할 조건을 강제하는 데 독일보다 유능했다. 소비에트연방은 독일보다 더 일관된 방식으로 질과 양을, 군수용 다양성과 생산에 적합한 균질성을, 기술향상보다는 순수 생산량을 선택했다...결국 소비에트의 이점은 “계획”경제의 특성이 아닌 “통제”경제라는 측면에서 나왔다. 즉 자원을 효율적으로 할당하는 정권의 능력이 아닌 자원을 무자비하게 동원하는 능력이었다. 소비에트 국가는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자원을 지휘할 수 있었으며, 조직적인 반대를 거의 만날 가능성 없이 지역과 관할권을 가로질러 그것들을 뒤섞을 수 있었다.”
--- p.356

“포드주의가 어디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세계적 산업 질서를 둘러싼 치열한 갈등의 결과에 따랐다. 전간기 포스트 자유주의자들은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에 대한 포퓰리스트 이데올로기에서 정치적·경제적 부활에 대한 강력한 약속을 추출했다. 1930년대 내내 그들은 미국을 모방하고, 미국의 기술을 사용해 자국의 군사-산업의 확장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에 도전하고자 했다. 나치의 반란군은 비록 그 유산으로 서독 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지만, 그 반대자들의 손에 의해 붕괴되었다. 소비에트연방에서 포드주의 반란군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 전쟁에서 승리할 만큼 강력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산업의 우위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냉전 시기 미국이 서유럽에서 온건한 재건 정책을 펼치는 사이에 소비에트연방은 기축통화가 된 달러의 메커니즘 바깥에 놓이게 되었고, 각각의 포드주의는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이러한 역사에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이 있다면 성장은 언제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 구조가 가진 근본적인 힘의 불균형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성장을 단지 하나의 국가 안에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결코 그것에 접근할 수 없다. 팽팽하고 양가적인 전 세계의 연결망은 경쟁의 논리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후기 개발 국가들은 기술과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이 모방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역사는 지정학적 관계라는 변화무쌍한 정치 구조 속에서 실제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되어온 기술, 자본, 상품, 정보에 관한 주장들을 “흐름”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이러한 교훈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20세기 포드주의를 전 세계로 퍼뜨린 개발 경쟁 형태는 계속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결코 끝나는 일 없이 경쟁적인 세계 경제 질서를 형성해 나갈 것이다.”
--- p.379

출판사 리뷰

미국 중서부의 포퓰리즘에서 글로벌 포드주의의 기원을 찾다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포드주의 기술 이전이 글로벌 대량생산체제로 이어지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대공황으로 얼룩진 1930년대 10년 동안 포드주의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전쟁과 대공황으로 세계가 고립된 블록으로 쪼개진 듯한 시기에 풍부한 교류가 일어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포드주의가 경제적 독립을 추구한 나치 독일과 소련까지 매혹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포드주의의 기원을 미국 중서부의 포퓰리즘이라는 독특한 이데올로기에서 찾는 스테판 링크는 20세기 자본주의의 수도라 명명한 디트로이트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자동차 대량생산의 역사는 산업과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가 아니라 오하이오, 인디애나, 일리노이, 미시간, 위스콘신 같은 중서부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오대호 유역과 그 인근 지역은 19세기 중반 이후 “농산업 혁명”이 일어난 지역으로, 농업과 산업이 상호보완적이고 공생하는 관계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지형은 농부들에게 생산자-포퓰리즘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정서의 기반이었다. 제조업자와 기계공도 이 생산자주의를 공유했다. 그들은 동부의 금융 지배에 격렬히 반발했으며, 진보의 원천은 생산적 노동에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중서부의 정치경제 안에서 행동했던 헨리 포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이 지역에 만연했던 포퓰리즘적 정서를 기반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자동차는 고급마차처럼 수공 생산 방식대로 만들어 소수의 부자에게 비싸게 팔아 그만큼의 수익을 남기면 되는 사치품이었다. 반면 포드와 기계공, 엔지니어들은 기술은 공공재이고 기업은 생산자의 이익에 복무해야 하며, 자동차는 모든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도덕 경제’의 믿음에 따라 ‘자동차 대중화’ 즉 ‘자동차 대량생산’에 나섰다. 최종 조립라인 길이가 ‘1킬로미터’에 달했으며, 재료로 사용되는 광석이 배로 도착한 지 정확히 28시간 만에 자동차가 굴러나오는 대량생산체제가 구축되었다. 포드자동차회사는 ‘T형 모델’이라는 단 한 종을 싸게 팔고, 특허권 없이 기술을 공유하며, 노동자들에게 당시로서는 유례 없는 ‘1일 5달러’, 8시간 노동제를 보장하고, 수익을 주주에게 배분하는 대신 공장에 재투자하는 이른바 ‘포드주의’를 탄생시켰다. 단일목적 기계 제작, 순차 배치의 실현, 조립라인 설치 등의 기술적 문제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금 운용 문제였다. 이익을 생산자와 공유해야 한다고 믿은 포드와 주주의 이익 실현을 우선시한 동부의 금융 엘리트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은 포드의 경영 철학을 분석함으로써 조립라인으로 설명되는 포드주의의 근저에 포퓰리즘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 이렇듯 미국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발전 국면으로 인식되어온 포드주의가 근대화 과정 혹은 자본 축적의 결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미국 중서부 기계공, 농부들의 생산자-포퓰리즘에 기반한 적극적인 기술 선택의 결과였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글로벌 포드주의, 전간기를 보는 새로운 시각

링크는 우선 그람시를 비롯한 유럽의 좌파와 우파 양 진영의 포스트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포드주의를 1920-30년대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헤쳐나가는 나침반으로 삼았는지를 살펴보며 포드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링크는 이를 논증하기 위해 포드의 자서전 『나의 삶과 일』이 전 세계적으로 일으킨 반향에 주목했다. 이 책은 특히 나치 독일과 소련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미국의 부상을 경계했을 뿐만 아니라 반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던 양국이 포드주의의 교과서에 열광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나치 독일과 소련은 『나의 삶과 일』을 통해 미국이 패권국으로 떠오른 비결을 두려운 시선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둘째, 사업은 사익이 아니라 집단의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포드의 신념이 양국의 반자유주의적 영감을 자극했다. 포드주의로부터 미국과 자유주의에 대항할 실마리를 찾은 나치 독일과 소련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자국의 엔지니어들을 디트로이트로 파견한 것이다.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의 매력적인 특징 중 하나는 전간기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있다. 전쟁과 대공황으로 세계가 쪼개지고 국제적 고립이 강화되었다고 여겨지던 전간기에 이미 포드주의는 전 세계를 활발하게 이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전간기, 그중에서도 1930년대는 ‘단절’의 시기로 불린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확산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의 연결고리가 1929년 대공황을 계기로 끊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의 금본위제 이탈은 세계 경제가 ‘자립경제(autarky)’의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일본, 이탈리아, 독일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통해 일종의 경제권역을 건설한 뒤 견고한 무역 장벽을 쌓았으며, 서유럽 국가들은 자국 내 미국 기업을 압박했다. 소련 또한 전 세계적인 무역수지 악화로 더이상 곡물 수출에 의존할 수 없게 되자 경제적 독립을 달성할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레벤스라움, 임페로 이탈리아노, 대동아공영권, 소비에트 연방 등으로 각기 이름이 달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립경제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을 잇는 경제적 연결고리는 그리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링크는 이 국면에서 전 세계가 포드주의 기술 이전 총력전에 뛰어들면서 국가 간의 경제적 결속이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나치 독일과 소련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과 일본에도 해당된다. 이들은 자동차산업과 이를 뒷받침하는 대량생산 기술 덕에 미국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포드주의 기술을 모방하는 데 앞장섰다. 자유무역과 해외투자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기술 이전은 가속화될 수 있었다.

포드주의를 옮겨심기 위해 세계 각국이 벌인 경쟁은 총력전 양상을 띠었다. 전방에는 디트로이트로 향한 엔지니어들이, 후방에는 산업가·정치가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점하고 있는 우위에 도전한다는 공동의 목표하에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30년대의 기술 이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글로벌 대량생산체제가 완성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링크는 광범위한 문헌 조사로 이 과정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추적함으로써 역사의 역설을 밝혀낸다.

소비에트의 자동차 거인과 나치의 ‘인민의 차’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의 후반부는 1930년대에 소련과 나치 독일이 미국의 대량생산 기술을 배워 자체 포드주의를 만들어내려고 기울인 노력을 탐구한다. 그리고 두 체제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포드주의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본다.

전간기에 ‘경제적 독립’이라는 목표를 추구한 소련은 단절과 고립 대신 세계시장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이들에게 ‘경제적 독립’이란 곧 기계를 수입하는 후진적인 농업 국가에서 기계를 생산하는 산업 강대국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서방의 선진적인 기술을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여러 서방 기업의 문을 두드린 소련을 맞이한 데는 바로 포드자동차회사였다. 포퓰리즘적 신념으로 기술을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포드는 대서양을 건너온 소련의 엔지니어들에게 설계도, 생산기술, 엔지니어링 노하우와 같은 비법을 스스럼없이 전해주었다. 덕분에 소련은 니즈니 노브고로드에 ‘가즈’라는 이름의 포드식 자동차 공장을 건설할 수 있었다. 저자는 포드자동차회사와의 교류를 주도한 니콜라이 오신스키, 소비에트 기술단 대표로서 6년간 디트로이트에 머문 스테판 다이베츠, ‘가즈’를 진두지휘했던 세르게이 디아코노프, 이반 로스쿠토프 등 여러 경제 관료와 엔지니어의 활약상을 그림으로써 포드주의 기술 이전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 과정의 이면에 있는 어둠을 포착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동차 거인’이라 불렸던 가즈는 그 규모에 비례하는 희생과 억압으로 가능했다. 소련 지도부는 기계와 기술 수입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모았는데, 여기에는 굶주린 농민에게서 강탈한 곡물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소련 지도부는 대외적으로는 활발한 기술교류를, 대내적으로는 폭력적인 집단화 정책을 펼쳤으며, 교류의 폭과 억압의 강도가 커질수록 소련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소련이 강력한 국가 주도 산업화를 통해 ‘가즈’를 건설했다면, 독일은 포드주의 기술 이전을 통해 인민의 차 ‘폭스바겐’을 탄생시켰다. ‘인민의 차’ 프로젝트에 뛰어든 것이다. 이러한 인민의 차 기획은 오늘날까지 선도적인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폭스바겐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을 뿐만 아니라,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농업 국가에 가까웠던 소련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 독일은 소련처럼 디트로이트에서 기술 체계 전반과 기계 모두를 들여오는 대신 산업 정찰 활동과 미국인 전문가 고용에 주력했다. 동시에 나치 당국은 독일에 진출한 포드사와 GM사가 독점 기술을 공개하고 수익을 독일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도록 적절하게 회유와 압박을 하는 전략을 택했다.

포드주의로 무장한 독일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맞붙었다. 이른바 “공장들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승기를 잡은 것은 소련이었는데, 저자는 소련이 자원과 노동력을 더욱 강하게 통제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대량생산의 도입을 둘러싼 강제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포드주의의 기원을 밝히는 것으로 책의 포문을 연 저자는 포드주의의 영향력이 전쟁의 형태를 빌려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과정까지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인민의 차’ 폭스바겐과 ‘시민의 차’ 포니, 그리고 미래 산업의 향방

소련과 나치의 포드주의를 향한 노력은 결국 1930년대 후반 전쟁과 재무장 경제라는 맥락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서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소련에서 대량생산 체계는 ‘동원’으로 구축할 수가 있었고, 독일에서는 미국 기술인이라는 인장을 등에 업고 재무장 경제의 전권을 쥔 윌리엄 베르너와 같은 ‘독일계 미국인’ 엔지니어들에 힘입은 바가 컸다.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에서 밝힌 나치와 소비에트의 포드주의 수용사는 전간기의 일본과 이탈리아, 전후 한국과 브라질 그리고 20세기 후반의 중국 등 후발 산업화 전략을 조망하는 지도이자 비교사이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의 궤적은 1930년대 적대적 개발 경쟁의 산업화 전략을 연상케 한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은 향후 세계 체제 안에서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물론 미래산업의 도입과 도약에 관한 여러 문제 상황에 대해 풍부한 성찰을 제시한다. 링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독일의 인민의 차, 폭스바겐이 전후 서독 경제 기적의 중추가 되었다면 1970년대 ‘시민의 차’가 기획되었던 한국은 1980년대 ‘포니’ 출시가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추격 산업화에 대해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지속가능한 산업화를 위한 국가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모방을 벗어나 과감한 자체 혁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추적한 기술-산업 경쟁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며 오늘날 녹색에너지, 정보처리, 생명공학, 로봇공학 같은 분야들 또한 이러한 산업화 경쟁 속에 배치되어있음을 주지시킨다.

옮긴이의 말

스테판 링크는 전쟁으로 완숙한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게 된 두 국가가 전후 미국의 패권이 명확해진 상황에서 처하게 된 명암도 언급한다. 패전국이었던 서독이 미국의 원조 아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반면, 승전국인데도 미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소비에트연방은 여전히 기술력에서 미국에 대적하기엔 부족한 채 고립되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링크는 현재에도 유효한 국가 주도의 경쟁적 산업화가 전간기 세계 체제에 대한 위기 인식과 그 대안으로 지목된 포드주의로 촉발된 활발한 기술교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로써 1930년대 이미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추천평

1930년대 의회민주주의의 미국, 파시즘의 독일, 공산주의 소련은 불과 물과 기름처럼 상극이었으나, 이들을 묶어내는 끈이 있었으니 바로 포드주의였다. 포드주의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마술과도 같은 일을 해냈을까? 당장 펼쳐 들고 읽어야 할 책이다.
- 류한수 (『유럽 1914-1949』,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추격형 산업화를 이뤄낸 한국과 동아시아 세계도 포드주의에 빚을 졌다. 저성장과 기후위기인류세의 덫에 빠진 21세기의 우리는 포드주의를 어떻게 회고하고 현재적 맥락에서 전유해야 하는가? 그 실마리가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에 있다.
- 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글로벌 포드주의 총력전』은 포드주의에 대해 ‘다 아는 사실’ 너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포드주의의 탄생과 확산이 과연 세계사적 필연이었을까? 강대국의 지정학적 경쟁 전략이 얼마나 기술 이전의 역사를 좌우하였는가? 일독을 권한다.
- 이종식 (『리센코의 망령』,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