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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과 광진구의 역사

동방박사님 2018. 10. 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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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과 광진구의 역사

광진구 일대에 사람이 정착한 흔적이 확인되는 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이다. 홍련본보루를 비롯하여 아차산 자락의 구릉에는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의 유물들이 확인되고 있어 장기간 인간이 거주한 것이 확인되도 있다. 이후 백제 책계왕 원년 (286)에 백제가 아단성(아차산성)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면서 이 지역이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고대의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로서 386년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아단성(아차산성)을 일시적으로 함락시키기도 하는데,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 개로왕을 아차산성 아래에서 죽이고,아차산 일대에 보루군을 구축하여 아차산지역을 지배한다. 그리고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이 지역은 신라가 장악하게 되는데, 한강일대를 재탈환하기 위해 공격한 고구려의 온달이 아차산성에서 죽음을  맞이 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말 각 지방은 호족 세력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아차산 일대는 뚜렸한 호족세력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점령한 후 고려의 직할지가 되었다. 이후 고려 정종대까지 양주로 문종이후 충렬왕대까지는 남경, 충선왕이후 고려 말까지는 한양부로 편재되어 있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하였는데, 아차산 서편에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사복시의 목마장이 넓게 자리 잡고 있어 왕이 수시로 찿아와 직접 군사훈련을 참관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에 속하였으며, 1949년 뚝도출장소가 설치되면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1968년 뚝도출장소가 폐지되고 성동구 직할로 편입 하였다가 1995년 성동구에서 분리된 광진구가 신설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