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5.서울역사박물관

10.청계천 복원사업

동방박사님 2018. 10. 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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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사업

1990년대 후반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붕괴, IMF 금융위기는 한 세대에 걸친 개발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새롭게 도입된 지방자치제 속에서 성장과 개발대신 생태환경과 역사문화유산 보전이 민선시정의 중요한 가치로 등장했다.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는 노후화가 진행되어 전면적인 보수가 시급했다.큰 예산을 들여 개발시대의 유산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이를 철거하고 사라졌던 청계천을 되살리자는 주장이 2002년 민선3기 서울시장선거에서 주된 쟁점으로 부상했다. 우선 구조물을 보수해 활용하고 하천 복원은 장기적으로 검토하자는 신중론에 맞서 즉시 복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명박 후보가 당선 되면서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서울시의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2002년 7월 시장 취임과 함께 복원사업을 위한 추진조직이 구축되었다. 이후 2년3개월에 걸친 공사 끝에 총연장 5.8Km에 이르는 청계천의 복원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유지 보수냐 철거복원이냐

서울 근대화와 한국산업화의 표상으로 당당한 자태를 자랑했던 청계고가도로는 건설된 지 한 세대가 지나면서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낡은 구조물은 지속적으로 안전을 위협했고, 교각 아래쪽은 슬럼화되었다.

서울시는 매월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여 보수를 거듭했으나 그조차 한계에 이르러 전면 보수와 철거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다. 기왕 철거할 바에야 아예 땅속에 묻힌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주장도 나왔다.유지보수냐 철거복원이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교통편의를 앞세우는 쪽과 생태환경 및 역사복원을 강조하는 쪽으로 여론이 나뉘었다. 이 문제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큰 쟁점이 되었으며,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서울시는  철거복원에 착수했다.





복원사업의 준비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 걸었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2년 7월1일 취임하자마자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들을 서둘렀다. 복권사업 전담조직으로 청계천복원 추진본부를 발족시키는 한편, 이를 지원할 연구지원단을 구성하고 각계의 여론을 수렴하는 기구로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도 출범시켰다.추진본부는 청계천 복원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어 기본 및 실시설게를 진행했다. 사업시행에 따른 상인과 노점상 대책, 공사 중 교통혼잡 완화방안, 복원 뒤 주변지역의 도시개발관리계획도 수립했다. 자연하천과 역사유산의 목원, 도심발전의 촉진등 서울시가 표방한 사업 명분에고 불구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갈등을 빛고 상이한 가치와 견해가 대립하는 속에서 사업의 준비가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복원사업의 진행

2003년 7월1일 0시를 기해 청계고가도로 시작점인 광교 진입 램프가 차단됨으로써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전체구간을 3개의 공구로 나누었다. 제1공구는 태평로 입구에서 광장시장까지, 제2공구는 광장시장에서 난계로까지, 제3공구는 난계로에서 신답철교까지로 정해졌다. 제1공구는 역사지구, 제2공구중 오간수문 서편까지는 문화지구, 나머지 구간은 자연생태지구로 하여 구간별 특징을 살리도록 했다.고가구조물 및 복개구조물 철거, 하천복원, 유지용수관 건설, 하수도정비, 교량건설, 조경공사 등의 모든 공정이 각 구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청계천 복원공사는 이렇게해서 2년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완료되었다.





구조물 철거


대형 가람막 설치와 철거장비 배치에 이어 공구별로 3개조씩, 총 9개조가 철거 작업에 돌입했다. 철거는 램프, 고가상판, 교갓 복개 구조물 , 복개하부 교각, 고가 기초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소음, 먼지의 공해발생을 최소화하는 공법과 현장 교통처리 방식이 채택되었다. 잘린 구조물은 압쇄기 등을 사용하여 잘게 부순 뒤 반출했다 청계고가 (5km)와 삼이고가 (817m), 복개도로, 고가도로 교각 371개, 복개도로 지하교각 6,700개, 램프 10곳, 육교7개 등을 철거 했는데, 폐기물 총량은 907,000톤 덤프트럭 65,500대 분량이었다. 이중 철재류는 전량을 콘크리트와 아스콘량은 96%를 재활용했다.


역사유적 발굴과 복원


공사 착수 전 현황 파악을 위한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이어 유구잔존 가능성이 높거나 퇴적층이 발달한 구역에 대한 시굴조사가 시행되었다. 이를 토대로 수표교, 광릉교, 오간수문터와 석축에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청계천 문화재 보존전문가 자문위우너회'가 복원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고 문화재청의 심의를 거쳤다.광통교는 상류로 155m이전 복원했고, 수표교 이전과 오간수문 석축등의 복우너은 장기과제로 남겼다.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그자리에 남겨 보존하기로 했다.






"탈개발"되는 하천들


청계천 복원은 다른 하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청곛천 복원 이전인 1995년 영재천을 시작으로 홍제천, 불광천, 탄천,성북천(안암천) 등의 도시 하천들이 시민을 위한 친수공간으로 거듭났다. 일직선 물길이 구불구불한 원래 모습으로 바뀌었고 콘크리트 호안 護岸대신 자연소재의 풀을 덮은 식생호안이 조성되었다. 특히 쓰레기 침출수로 인해 죽어있던 난지천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게기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북천은 청계천처럼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하천을 되살린 경우이다.



고가도로들의 철거


한때 도시근대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고가도로는 건설하기 시작한지 반세기만에 도시경관을 해치고 보행교통에 지장을 주며 상권을 침체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삼일고가도로와 청게고가도로의 철거에 이어 서울시는 가른고가도로도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2002년 떡전 고가도로를 시작ㅇ으로 미아, 신설, 아현 등의 고가도로를 철거했다. 2015년 현재총 16개의 고가도로가 철거 되었다.




상인 이주대책 '풍불시장과 가든파이브"

청계천 복원공사의 직접 영향권에 있는 상인들의 이해를 구하고 대책를  마련하는 일은 무었보다 중요했다. 대책의 기본방향은 주변건물을 철거하거난 영업장소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속 영업을 원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영업 불편 최소화와 상권활성화 대책을, 이주를 희망하는 업종에 대해서는 이주지원 대책을 마련했다. 상인들과 협상하여 송파구 문정동에 규모 25,365평 의 이주단지 조성계획을 세웠고, 노점상을 위해서는 동대문운동장 풍물 벼륙시장을 개장했다.


청계천  복원사업 알리기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펼쳤다. 시민들이 청계천의 실상을 체험할수 있도록  '청계천 지하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홍보관을 건립했다. 슬록선공모, 청계천 그리기대회, 시민걷기대회 등의 행사도 개최했다. 국제세미나와 시민 공청회를 통해 청계천 복우너의 이론적 토대를 다지고, 사업내용을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이러한 내용은 영상매체, 출판무르 국제전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해외에서도 접할 수 있게 했다.





열린청계 푸른미래 기념 수납함


열린청계미래 기념품


2015년 10월이면 청계천이 '복원'된지 10년이 된다.안전이 우려되는 낡은 고가 구조물 아래 복개하천이던 청계천을 천변 휴식공간을 갖춘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바꾸는데에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 걸렸다. 청계천은 복원되자 마자 서울의 세러운 명소로 되었다.현재는 하루 6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청계천을 따라 걷거나 천변에서 휴식을 취한다. 외국인 관광객과 도시하천 전문가 들도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 이 새로운 명소에 대한 서울 시민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그러나 당초에 내세웠던 구호대로 자연생태환경과 역사문화 유산이 제대로 복원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가 많다. 지천의 자연수를 끌어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한강에서 퍼온 물로 유지되는 인공하천이 지닌 생태적인 근본한계, 그리고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청계천과 천변 역사유산의 목원실적으로 말미암아 청게천 복원사업은 "복원'이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진 또 하나의 개발 사업에 불과 했다는 비판여론이 잦아들지 않았다. 지금의 청계천은 시민이 바꿔 나갈 여지가 있는 미완의 복원 하천으로 그 미래는 아직 열려있다.


새명소가 된 청계천


청계천은 이제 고궁, 남산타워, 광화문, 명동 등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서울 시민은 몰론 서울을 찿는 타 지역 주민과 외국인들에게도 청계천은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천변에는 청계광장, 문화조경ㅅ설, 동대문쇼핑타운, 생태숲 산책로 등이 조성되었고, 지난 10년 사이 초대형 업무용빌딩들도 여럿 들어섰다. 사람들의 청계천 방문목적도 관광, 휴식, 산책, 연구 답사 등 다양하다. 청계천을 관리하는 서울 시설공단의 통계에 다르면 복원사업 준공이후 9년사이에 연인원 1억8천여만 명이 청게천을 다녀갔으며, 그중 외국인만 690여만 명에 이른다. 청계천은 새로운 관광자우너을 넘어 도심하천 재생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국내와 해외 여러 도시의 전문가와 공무원들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벤치마킹하기위해 서울시와 청계천 박물관을 찿고있다.


도심속의 자연


복원된 청계천은 인위적으로 유지되는 하천으로, 1년 내내 말근 물이 평균수심 40cm를 유지하여 흐른다.

유지용수로 정수과정을 거친 한강물과 지하수등 하루 12만 톤을 사용한다. 상류 구간을 물놀이가 가능한 수질이 유지되며, 하류는 자연생태구간으로 잘리 잡았다. 2013년도 조사에 다르면 청계천과 천변에는 식물365종, 어류 19종, 조류 13종, 포유류6종, 곤충류 83종,저서무척추동물 29종이 서식해 먹이사슬 피라미드를 형성하여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도심 교통환경 변화

청계천 복원에 대해 서울 시민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교통대란이었다. 그러나 2004년 7월의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과 대중교통수단 이용 증가천변 도로상의 작업공간 정비 등으로 우려와는 달리 서울 도심 주요 도로에서와 같은 차량 통랭고속도로를 유지했다. 반면 보행환경은 혁신적으로 개선되었다. 서울을 차량보다 사람이 우선인 도시로 바꾸겠다는 취지가 구현된 것이다. 다만 천변도로와 산책로 사이에 접근로가 부족한 점 등 개선할 여지는 남아있다.


다시열린 청계천

2005년 10월1일 청계천은 새로운 물길로 돌아왔다.2003년 7월1일 공사의 첫 삽을 뜬지 27개월 청계천복원추진 본부을 구성해 사업에 착수한지 39개월만의 일 이었다.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는 전국의 대표적인 하천에서 채수한 물을 서울 광장에 안치하는 전야제 행사와 전통의식 위주의 합수및 통수퍼포먼스로 진행되었다. 본 행사를 포함한 청게천 새물맟이 축제는 열린 청계 푸른 미래라는 슬로건아래 2005년 10월 1일 부터 10월 3일가지 청계광장, 서울광장 및 청계천 일대에서 펼쳐졌다. 축하음악회, 거리예술공연, 시민걷기대회, 마라톤대회 등 23개 행사에 약170만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