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7.국립고궁박물관

리희텐슈타인 왕가의 역사

동방박사님 2019. 2. 22.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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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희텐슈타인 왕가의 역사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오스트리아 빈 근방의 귀족 가문에서 시작되었다. 왕가의 시조인 후고는 12세기초 빈 남쪽에 성을 짓고 세력을 키웠으며, 점차 빈과 체코 모라비아 지역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1608년 카를1세 (1569~1627)는  합스부르크 황실로부터 대공지위를 받음으로서 왕가의 기반을 다졌다. 이어 요한 아담 안드레아스 1세 (1657~1712)가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국인 셀렌베르크 와 파두츠 지역을 구입하고, 1719년에 안톤 플로리안1세 (1656~1721)가 두 지역을 합쳐 황실의 연방국가로 인정 받으면서 공국으로서 리히텐슈타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합스부르크 황실을 위해 외교 군사, 군사, 금융 등의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문의 입지를 넓히고 독립국가의 토대를 만들어 나갔다. 1815년에 독립연방에 가입하였고, 요한2세 대공 (1840~1929) 통치기에 헌법을 제정하여 입한 군주국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1866년에 독일연방을 탈퇴하여 독립국임을 선언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체코슬라바키아 내의 영토와 재산을 몰수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프란츠 요제프 2세 (1906~1989년)와 한스-아담2세(1945~)의 노력으로 재정을 희복하고 금융업을 발전시켜 1인당 개인 소득이 최상위부국으로 성장 하였다.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시작 : 중세부터 카를 1세 대공까지

1120년경 후고라는 귀족을 시작으로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이 역사에 처음 등장 하였다. 후고는 빈 남쪽 마리아엔체르스도르프에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첫 성을 짓고 오스트리아 바벤베르크 왕조 (1095~1136년)에 협력하면서 가문의 영향력을 넓혔다.

후고의 손자 하인리히 1세는 보헤미아 통치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 했으며, 1249년 모헤미아 프르제미슬 왕가로 부터 현재 체코 영토인 니콜스부르크(미쿨로프)지역을 하사 받았다. 뒤이어 요한 1세가 1370년에 아이스그룹(레드니체) 일대를 구입했고, 1395년에 결혼을 통해 펠츠베르크 (발디체) 지역을 얻었다.

종교개혁시기에 하트르만 2세 (1544~1585년)가 개신교로 개종 하였으나  그의 세아들인 카를1세, 막시밀리안, 군다커는 카톨릭으로 복귀하여 합스부르크 황실에 협력했다. 카를1세와 그의 형제들은 합스부르크 황실의 권력자로 부상하던 마티아스 대공에게 충성하고 그의 즉위를 도왔으며, 환제가 된 마티아스는 카를 1세에게 화폐제조, 성 건축, 시장 승인, 표창 등의 특권을 주었다. 1608년 카를 1세는 마티아스로부터 대공의 지위를 받아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첫 대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