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6.대전.충남

충남아산 공세리성당

동방박사님 2019. 3. 2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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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공세리성당

1895년 6월 양촌성당 (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 되었으며 공세리 명칭은 조선시대의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 (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성당에 위치한 1만여평의 부지는 조선조 성종9년 세곡해운창이 설치되어 영조 38년까지 300여년간 운영되던 공세창고(貢稅倉庫; 세곡을 저장하던창고)였다 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 드비즈 (Devise 誠一倫)신부가 공세리로 부임 하면ㅅ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7년 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다음,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또 1905년에는 조성학당 (1927년 페쇄)을 세워 교육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기존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설게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긱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이 후 9대 주임 이인하(李寅夏) 신부는 1958년 초에 강당을 신축하엿고, 1971년 1월에는 13대주임 김동욱(金東旭)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우리에게 이명래 고약으로 알려진 고약이 맨 처음 만들어지고 보급된 곳이긱도 하다, (프랑스에서 배워온 방법으로 고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었으며, 그 비법을 당시 신부를 도와 드렸던 이명래에게 전수했다 함)


이곳 공세리 성당에는수령 350년이 넘믄 국가보호수가 4그루가 있으며, 2005년도에는 한국관광공사 선정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태극기 휘날리며>< 랑과야망><에덴의동쪽><모래시계>등 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 이기도하다. 또 공세리 성당은. 국가보호수를 비롯한 거목들이 많아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공세성당은 천주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다. 신유박해에서 병인박해  사이에 아산지역 출신 순교자는 모두32명ㅇ 이었으며 이들은 각각 서울, 수원, 공주 등으로 끌려가 고문, 옥사,참수형으로 순교했다 한다. 공세리 성당에 이들을 기리기 위한32위 순교자 현양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