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3.일본근대사

일본제국 자이니치

동방박사님 2021. 12. 1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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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직 끝나지 않은 식민지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 3년간 기획·제작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현지 취재 410일
내셔널리즘의 바닥에서 고통받아온 자이니치 현대사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식민지, 자이니치 70년(1945~2015년)을 다룬 자이니치 현대사다. 세계적으로 현지에 100년 가까이 살면서 국적을 유지하는 재외동포는 자이니치뿐이다. 이는 식민지 이후 일본 사회의 문제다. 일본 사회가 70년 넘게 자국 영토에서 살아온 자이니치를 정식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도 마치 ‘어제 나리타공항에 내린 외국인’처럼 대하는 차별과 냉대의 역사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이니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식민지에서 살고 있다. 저자는 내셔널리즘의 바닥에서 고통받아온 자이니치를 쓰기 위해 3년간 기획, 제작했다. 일본 현지에서 410일을 취재했다. 역사적인 성격을 고려해 녹음으로 남긴 인터뷰는 83시간 32분 46초, 촬영한 사진은 6240장이다.

목차

서울
일본의 한국인
_그리워 헤매던 긴긴 날의 꿈
_나는 일본 사람이 아니다

조선적
_멸망한 왕조의 생존자
_이중 지위의 무국적자

네이션
_헛된 고백은 울음이 되고
_너는 왜 다르냐는 물음

본명과 통명
_한 사람, 두 이름
_허락되지 않는 이름들

배타적 언어
_말의 감옥
_와타시와 자이니치데스
평양
자이니치 대이주
_국경의 긴 터널
_10만의 선택

경제적 살인
_가리워진 나의 길
_진짜 자본주의는 묻지 않는다

헤이트 스피치
_인종차별철폐조약
_당신의 적은 내가 아니다

조선학교
_조선학교, 민족학교, 우리학교
_김일성 초상화가 있는 그 학교

오키나와
_류큐의 여름
_섬, 외롭지 않은
도쿄
조선총련
_원수들의 앞잡이
_공화국의 두리에 총집결

재일민단
_김대중을 사형하라
_적대적 공생 관계

재외국민
_낯선 권리
_사랑하기에 버려야만

여행증명서
_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_스파이라는 상상

2급 시민
_일본 사람 아닌 일본 국민
_민주주의는 자기 지배다
 
 
출판사 리뷰
자이니치는 누구인가? 재일 조선인, 올드커머
자이니치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과 후손을 말한다.
“재일동포라는 말은 일본에선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사전으로 풀어봐도 ‘일본에 사는 같은 민족’이라는 뜻이어서, 어느 민족이 말하느냐에 따라 실체가 달라집니다. 의미가 불분명하고 대상을 타자화합니다. 따라서 재일동포가 스스로를 재일동포라 부르지도 못합니다. 자이니치를 한국식으로 ‘재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이니치는 대부분 한국어를 말하지 못하며 이는 아주 중요한 정체성입니다. 재일이란 표현은 당사자도 모르는 말로 상대방을 지칭하면서 우리말을 빼앗긴 역사를 생략하는 것입니다.
자이니치라는 단어에는 ‘일본에 있는’이라는 뜻밖에 없습니다. 생략된 단어를 살려서 ‘자이니치 조센진’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조선은 일본에서 쓰이는 지역·민족명입니다. 조선반도, 조선전쟁, 조선민족이라 부릅니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이민 간 사람들을 ‘뉴커머’라고 부르기는 합니다. 이 경우 해방 이전에 건너간 자이니치는 ‘올드커머’가 됩니다. 한편 해방 이후 북쪽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다시 등장하면서 의미가 복잡해졌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식민지 이후 등장한 조선을 식민지 이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북조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기원전 108년까지 있던 조선을 1392년 세워진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서는 조선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또 당사자들의 요구 등을 고려해 북조선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전후 일본은 식민지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주의할 점은, 외국인 등록상의 ‘조선’은 북조선 국적이 아니라 조선반도 출신임을 나타내는 기호라는 사실입니다.” 자이니치 2세인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의 책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일본의 외국인등록상 한국은 국적이지만, ‘조선’은 지역을 말한다. 왜 그럴까.
1952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 따라 자이니치의 일본 국적을 없앤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한국 국적을 인정하면서 한국적 자이니치에게만 영주 비자를 준다. ‘북조선’은 국가로 승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조선 국적’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써 조선적 자이니치는 무국적이 된다.
일본이 전후 서둘러 자이니치의 일본 국적을 빼앗은 것은 아주 부당한 일이다. 헌법의 보호에서 제외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조선인의 반도 이주가 끝나지 않았을 때여서 이들을 빨리 내보내려는 의도가 강합니다. 하지만 자이니치는 생활 기반이 일본에 있었고, 해방된 조국은 분단되어 전쟁을 벌입니다. 일본을 떠나지 못한 50여 만 조선인은 무국적에 따른 무권리의 삶을 시작합니다.”
일본은 조선인을 외국인으로 만든 다음, 제도적으로 자이니치를 차별한다. 국민이라는 이름을 단 국민의료보험과 국민연금에서 자이니치는 제외된다. “‘국민’은 일본에서 강력한 공동체입니다. 이 단어를 자주 쓰면서 의식에 주입한 것은 침략 전쟁 시절입니다. 전쟁에 참여하라고 독려하면서도 ‘국민’을 내세웠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비국민이라고 불러 낙인을 찍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국민에서 제외하는 것은 법률상 차별뿐 아니라,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모든 나라에서 국민이 아닌 사람들과 살고 있다. 이제 ‘국민’을 앞세우면 폭력이고 차별이지 않을까. 자이니치는 국적이 한국이어도 똑같이 일본법을 적용받고 세금까지 내고 있다. 하지만 외국적자라는 이유로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김경득, 일본 최초의 외국적 변호사
1977년 3월 자이니치 김경득은 한국인 신분으로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생으로 채용된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자이니치의 운명을 바꾼다.

민족주의에 대한 환상, 국적주의
우리가 믿어온 국민이라는 개념은 사실 운명 공동체에 가깝다. 자이니치가 국민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일하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동질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는 곳도 같고, 사용하는 말도 같고, 국적도 같고, 피부색도 같고, 받은 교육도 같은 사람들이 모인 외로운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지 않은가.
민족의 본질이라고 할 만한 절대적인 게 있을까. 한국인은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자이니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내셔널리즘의 토대인 동일한 언어, 국적에 대해 생각해본다.
“강상중은 도쿄대 최초의 한국인 교수로 한국 언론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존재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그는 한국어를 거의 못 합니다. 여러분이 그를 만나도 통역이 없다면 그의 책에 대해 물을 수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강상중 교수는 여전히 한국인입니까.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국인등록이 한국이라서입니까. 이름이 한국식이라서입니까. 조상이 조선에서 태어나서입니까. 질문을 바꿔서, 일본이름을 쓰던 시절의 강상중도 한국인입니까. 7세기 무렵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의 후손도 한국인입니까. 한국 언론이 강상중에 대해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아니라, 한국적 교수라고 했으면 명확했을 것입니다. 이제 강상중은 일본인입니까. 그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없습니다.”
또 자이니치 중에는 ‘북조선’ 지지자이면서 해외여행 등을 이유로 한국적으로 바꾸거나, 국적은 한국이지만 평균적인 일본인보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자이니치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국적이 사상을 반영하지도 않고, 개인의 사상이 국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이니치 대이주
1959년부터 일본에 살던 조선인 10만 명이 25년에 걸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주한다. 조선총련은 ‘귀국 사업’이라 부르며 자발적으로 귀국했다고 하며, 재일민단은 ‘북송 사업’이라고 부르며 북이 속여서 한국인을 데려갔다고 한다. 그동안 아무도 그 실체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한국은 왜 자이니치들을 받지 않았을까, 북은 왜 자이니치를 받았을까?

‘손정의’가 아니라 ‘손 마사요시’인 이유
한국 언론의 기사와 달리 “그의 이름은 손정의가 아니라 손 마사요시孫正義가 맞습니다. 포브스도 Masayoshi Son이라고 했고, 그의 트위터 아이디도 masason입니다.” 조선의 가족 성을 유지하면서도 개인 이름은 일본식 읽기로 한 것이다. 태어나고 살아갈 곳인 일본에 대한 애정이다. 한국 언론은 그의 이름을 마음대로 손정의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이름에 담긴 자이니치의 고단한 역사와 현실을 모두 삭제하고, 성공한 누군가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조국이 그가 성공하도록 도와준 적도 없으면서, 잘못된 인종적 자부심을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헤이트 스피치
2009년 12월 ‘자이니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즉 자이토쿠카이가 조선학교 앞에 나타나 근거 없는 소리로 학생들을 겁주고 공격했다. “민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토지를 수탈하고 있다. 조선학교가 50년째 불법 점거하고 있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없는 틈에 여자들을 강간하고 빼앗았다. 북조선의 스파이 양성 기관. 스파이의 아이들이다. 요코다 메구미를 비롯한 일본인을 납치한 조선총련. 범죄자에게 교육받는 아이들이다. 이놈들은 밀입국자의 자손. 김치 냄새 난다.” 그들의 헤이트 스피치를 통해 인종차별의 역사를 다뤘다.

조선적 자이니치는 한국에 입국하지 못한다
한국은 2008년부터 조선적의 입국을 막고 있다. 대법원은 조선적의 한국 입국을 다룬 사건 소송에서 조선적 자이니치는 북한 주민과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국민이 대상인 여권법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 대상인 남북한교류협력법으로 여권 발급을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과연 조선적은 한국인이 아닐까.

◎ 작가의 글
취재를 위해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유난히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오사카의 여름을 보내면서 자이니치들의 고단한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말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의 삶을 반드시 기록해야 한다고 거듭 다짐했습니다. 서울에서 보내는 이 기록이 그들의 아프고 외로웠던 지난날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추천의 글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1995년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세계 철학계에 던졌다. 호모 사케르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므로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사람”을 뜻하며, 종교 공동체 그리고 모든 정치 생활에서 배제되고 자기 부족의 의례에도 참여할 수 없으며 어떤 유효한 법률행위도 수행할 수 없다. 게다가 누구든지 그를 죽여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그의 실존 전체가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축소되며, 따라서 끊임없이 도망치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피난처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매순간 무조건적인 죽음의 위협하에 놓여 있는 한, 그는 바로 그 때문에 자신에게 추방령을 내린 권력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또 매 순간 이런 사실을 의식해야만 하며 추방령을 회피하고 따돌릴 수 있는 수단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근대 정치의 특징은 “원래 법질서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벌거벗은 생명의 공간이 서서히 정치 공간과 일치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더 이상 정치권력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의 사례로 유대인 수용소의 유대인들이나 심층 코마 상태에 빠진 신체 등을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을 호모 사케르의 한 사례로 드는 논의가 있다. 이중, 삼중의 배제에 의해서만 대한민국과 북한, 일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이니치의 삶이야말로 호모 사케르의 삶이 아닐까.
__김영란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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