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중국.동아시아 이해 (책소개)/1.중국역사문화

몽골제국

동방박사님 2021. 12. 1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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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사는 몽골제국에서 출발하였다

몽골제국 이해를 위한 가장 명료하고 포괄적인 입문서
그들은 잔인한 정복자였는가, 현명한 지배자였는가?


“무척 인상적인 책이다. 몽골제국에 대해 가장 명료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_아서 월드론(Arthur Waldron), 펜실베이니아대학 역사학과 교수)

이 책은 몽골제국의 역사에 대해 가장 명료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서술한 저작이다. 그동안 몽골제국사 연구를 선도해온 저자 모리스 로사비 교수는 유목민의 삶, 칭기스 칸과 제국의 등장, 제국의 팽창과 세계 지배, 동서 교류의 확장, 제국의 쇠퇴 등 중요하고 굵직한 테마를 통해 몽골제국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거대하고 연속적이었던 몽골제국은 광범한 영역에 걸쳐 전례 없는 수준의 폭력을 분출했다. 그러나 몽골족은 잔인한 정복자에서 현명한 지배자로 재빠르게 진화했고, 자신들이 복속시킨 지역의 경제를 육성했다. 한편으로는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정치·경제 제도들을 채택하고 토착 관료들을 등용함으로써 피정복민 다수를 설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예술과 문화를 열렬하게 후원하고 다양한 민족 집단에 속한 상인들, 과학자들, 예술가들, 선교사들 사이의 교류를 불러왔다. 저자는 “제국 영역의 모든 곳에서 몽골족은 무기, 전략, 전술, 군사 조직에 영향을 끼쳤다”면서, ‘팍스 몽골리카’는 유럽과 동아시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처음으로 형성했다고 강조한다. 세계사는 몽골제국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목차

로마자화와 발음에 대한 일러두기
저명한 몽골 칸들의 계보

제1장 초원지대의 삶
제2장 칭기스 칸이 나타나다
제3장 정복과 지배
제4장 몽골족과 세계 1
제5장 몽골족과 세계 2
제6장 몽골족과 예술 그리고 문화
제7장 쇠퇴, 몰락, 그리고 유산

감사의 말/ 독서안내/ 역자 후기

저자 소개 (

저 : 모리스 로사비 (Morris Rossabi)
 
미국의 저명한 동아시아·중앙아시아 전문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인 모리스 로사비는 뉴욕시립대학(CUNY) 역사학과 석좌교수다. 컬럼비아대학 겸임교수로, 중국사 및 내륙아시아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수성의 전략가 쿠빌라이 칸』(강창훈 역, 사회평론, 2015)과 과 『몽골제국(The Mongols: A Very Short Introduction)』을 비롯한 수많은 책과 논문을 집필했다. 다른 주요저작으로는 ...

 

책 속으로

낙타는 물이 나는 곳이나 호수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시면 며칠을 물 없이도 살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동물보다 초지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작은 관목이나 풀잎도 먹을 수 있었다. 몽골족은 낙타를 활용하여 교역 물품을 나르거나 새로운 초지로 이주할 때 짐들을 실어 옮길 수 있었고, 군대에 필요한 군량과 공성 무기를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 p.22

칭기스 칸이 항상 전쟁에 목말라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의 일련의 정복들이 미리 계획된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 p.51

칭기스 칸은 아마도 노령으로 (…)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처럼 그의 죽음과 장례는 신화나 전설로 감싸이게 되었다. 훗날의 한 기록은 칭기스 칸이 탕구트족과 싸우던 도중 화살에 맞은 부상의 여파 때문에 사망했다고 하고, 또다른 기록은 전해의 겨울 사냥에서 입었던 상처들 때문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더욱 기상천외한 기록은, 포로로 잡은 적장의 부인이 자신의 성기 속에 칼을 숨겨두었다가 성관계 중에 칭기스 칸을 찔러 죽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 p.60

칭기스 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몽골족을 통일한 것이었다. 그는 한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몽골리아, 시베리아 및 인접 지역에 걸쳐 방랑하던 유목민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 몽골족들은 좀더 소규모의 단위들에 익숙했고, 아마도 수십 호를 조직하는 것이 최적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칭기스 칸은 더욱 거대한 연맹을 만들기 위해 이들을 설득하거나 혹은 압박하는 데에 상당한 노력을 들였고, 이는 그들의 군사적·정치적 성공의 기반이 되었음이 입증되었다.
--- p.65

쿠빌라이의 정책들과 그의 명백한 중국 지향성은 몽골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우려를 자아냈다. 그러나 뭉케는 초기에 한동안 견해차를 보인 후로는 동생을 신뢰했고, 불교와 도교 승려들 사이의 분쟁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는 북중국에서 제국이 직면한 난제들 중 하나였다. 두 종교 사이에는 폭력사태가 빚어졌는데, 각 진영은 다른 쪽의 취약한 사원들을 공격했다. 교의에 따른 논쟁보다는 힘과 지위가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 p.117

쿠빌라이는 몽골족을 위한 종교로 티베트 불교가 최선임을 재빨리 깨달았다. 티베트 불교는 주술적이면서 내밀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강조했고, 가장 중요하게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인정했는데 그것이 쿠빌라이의 황제 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 p.174

제국의 공식 문자에 대한 쿠빌라이의 접근 방식은 다민족·다언어 환경을 가진 영역에서 그 자신을 만국의 군주로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거대한 문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쓸모 있는 문자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쿠빌라이는 자신의 영역을 통합하고자 이 공식 문자를 활용하려고 했고, 다양한 언어들을 표기하기 위해 공식 문자를 채택하려고 했다.
--- p.175∼176

토착 거주민들이 납세를 회피하거나 추가적인 부과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재정 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일본, 자바, 맘루크 이집트를 향한 일부 확장 지향의 원정들은 무모한 시도였고 비용도 많이 들었으며, 이로써 재정 악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 p.213
 

출판사 리뷰

유목민의 생활 중심은 동물들을 먹일 풀과 물의 확보에 있었다

몽골 유목민의 생활은 동물들이 풀과 물을 찾을 수 있게 하는 데에 중심이 두어졌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에 처한 이 지역에 필요한 생활 방식이었던 것이다. 육체적인 힘뿐 아니라 기술과 지식도 중요했다. 유목민은 갖가지 동물들이 저마다 필요로 하는 다양한 식물들을 알고 있어야 했고, 동물들의 특정한 몸짓에 담긴 의미를 감지하고 있어야 했다. 날씨와 그 영향을 예측해야 했고, 풀이 무성한 지역들을 알아둬야 했으며, 자기 지역의 자원이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생필품을 얻으려면 동물이나 축산품으로 최선의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도 당연히 알아둬야 했다. 몽골족은 유목민으로서 자주 이동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예배를 위한 건물을 짓지 않았고 웅장한 조상(彫像)을 만들지도 않았다. 대개는 언덕 혹은 산들을 숭배하거나 희생물을 바쳤는데, 그 장소에는 돌을 쌓아올린 오보(oboo)라고 불리는 것들이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었다. 유목민들은 산, 별, 나무, 불, 강과 같은 자연적인 형상을 향해 기도했는데, 그러한 형상들을 몽골족의 후원자이자 보호자인 최고신 텡게리(Tenggeri, 하늘 신)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존재라고 여겼다.

매장 관습에서도 드러난 몽골족의 말에 대한 경의

이 책에서는 몽골족의 말[馬]과 관련한 서술도 흥미롭다. 몽골족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가죽으로 된 덮개로 말들의 머리를 감쌌다. 말들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던 몽골족은 말들을 무척 아꼈다. 개개의 몽골 기병들은 대체로 4~5마리의 말을 보유하고 번갈아가며 탔기 때문에 말들이 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른 말들은 장비를 날랐는데, 그중 한두 마리에는 짐을 싣지 않았다. 전투를 앞두고 힘을 비축했던 것이다. 말들은 덩치는 작아도 강인했다. 몽골족은 거세마와 암말을 선호했다. 수컷보다 다루기 쉬운데다 젖을 생산한다는 이점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말들은 유목민이 장기간 이동하던 중 음식이 소진되었을 때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했다. 말의 혈관을 끊어서 그 피를 마시고 원기를 보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에 대한 몽골족의 경의는 매장 관습에 드러나 있었다. 유력한 몽골 귀족이 사망하면, 그의 말은 희생되어 함께 매장되었다. 가장 신뢰했던 말을 사후에도 필요로 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복이라는 평판을 듣는 원정의 배경

몽골족이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정복이라는 평판을 듣는 원정에 나서게 된 실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무엇보다 그들의 경제가 불안정했다는 점을 든다. 가뭄이나 추운 겨울, 동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병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생필품을 얻기 위해 교역을 하거나 약탈을 해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주 문명에서 나오는 화려한 물건들을 더 많이 보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사치품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교역을 거부당하면 그와 같은 생활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거나 선망하는 물건들을 획득하고자 공격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12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몽골족이 아주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공격들은 그들이 약탈하고자 노렸던 거주지를 황폐화시킬 수도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