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선시대사 이해 (책소개)/5.조선역사문화

조선 잡사 : 조선시대의 모든 직업

동방박사님 2021. 12. 2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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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호랑이 잡는 착호갑사, 매 대신 맞는 매품팔이, 소설 읽어 주는 전기수,
헤어 디자이너 가체장, 화장품 판매원 매분구, 과학 수사대 오작인……

천자문은 몰라도, 먹고사는 기술 하나는 있었다!
양반 아닌 보통 사람들로 보는 조선의 잡(job)史


‘조선 좀비물’로 인기를 끌었던 화제의 드라마 [킹덤]에서 주인공 세자 못지않은 무술 기량을 뽐냈던 ‘영신’. 그의 직업은 착호갑사(捉虎甲士)였다. 산속에서 목숨 걸고 호랑이를 잡는 특수 부대 출신이었으니, 쉴 새 없이 좀비를 처치하는 실력이 납득되는 설정이었다. 이처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의 직업을 총망라한 『조선잡사: ‘사농’ 말고 ‘공상’으로 보는 조선 시대 직업의 모든 것』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젊은 한국학 연구자들이 발굴한 67가지의 직업은 ‘이런 일도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조선 하면 떠올리는 선비나 농사꾼이 아니라 시장, 뒷골목, 술집, 때로는 국경에서 바닷속까지 오가며 치열하게 먹고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잡사』는 잡(job)의 역사이며, 잡(雜)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갖가지 직업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이 책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아재 개그’라 해도 할 말은 없다. 이만큼 이 책의 성격을 잘 알려 주는 제목을 찾지 못했다. 문명, 국가, 민족과 같은 거대 담론이 지배하는 역사 연구에서 직업의 역사는 여전히 잡스러운 역사인 탓이기도 하다. 조선 사람의 삶이 궁금한 일반 독자,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유용할 것이다. 직업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변화를 살핌으로써 미래의 직업을 전망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_들어가며

목차

『조선잡사』를 펴내며ㆍ4

1부 | 일하는 여성들
삯바느질, 가난한 여성의 생존 수단ㆍ13 | 수모, 신부 도우미이자 주례ㆍ17 | 염모, 소상공인 적합 업종ㆍ20 | 방직기, 변방 군관의 가사 도우미ㆍ24 | 매분구, 화장품 판매원ㆍ28 | 잠녀, 고단한 바다의 노동자ㆍ32 | 여성 경영인의 채소전ㆍ36

2부 | 극한 직업
회자수, 사형 집행자ㆍ43 | 천대받지만 자유로웠던 땅꾼ㆍ47 | 보장사, 인간 메신저ㆍ51 | 약초 캐는 능력은 효자의 덕목ㆍ55 | 착호갑사, 호랑이 잡는 특수 부대ㆍ59 | 백정, 소고기 공급자ㆍ64 | 내 등에 업히시오! 월천꾼ㆍ69 | 산 넘어 산, 심마니ㆍ74 | 산척, 탁월한 숲속의 사람ㆍ78 | 극락왕생하소서, 매골승ㆍ83 | 분뇨 처리업자 또는 예덕선생ㆍ88 | 금화군, 조선의 소방수ㆍ93 | 떼꾼, 떼돈 한번 벌어 보자ㆍ96

3부 | 예술의 세계
기객, 프로 바둑 기사ㆍ103 | 농후자, 길거리 원숭이 공연가ㆍ107 | 재담꾼, 스탠딩 코미디언ㆍ112 | 전기수, 소설 읽어 주는 남자ㆍ117 | 환술사, 불가능을 공연하다ㆍ122 | 가객, 나는 조선의 가수다ㆍ126 | 사당패, 웃음을 팝니다ㆍ130 | 관현맹, 소리를 보는 맹인ㆍ135 | 직업적 해금 연주가의 고뇌ㆍ139

4부 | 기술자들
화장, 조선의 플로리스트ㆍ145 | 가체장, 여심을 빼앗은 디자이너ㆍ150 | 마경장, 거울 가는 장인ㆍ155 | 조선의 최종 병기, 활 만드는 사람ㆍ160 | 사기장, 조선 백자의 어두운 그림자ㆍ165 | 필공, 천하제일의 붓 제작자ㆍ169 | 각수, 글씨 새기는 사람ㆍ174 | 지장, 종이 만드는 사람ㆍ178 | 시계 제작자, 무에서 시간을 만들다ㆍ182

5부 | 불법과 합법 사이
표낭도, 저잣거리의 소매치기ㆍ189 | 맞아야 산다, 매품팔이ㆍ194 | 거벽, 과거에 합격시켜 드립니다ㆍ198 | 연회 전문가, 조방꾼ㆍ203 | 식리인, 조선의 사채업자ㆍ208 | 안화상, 진품 같은 짝퉁 팝니다ㆍ215 | 편사, 욕망을 먹고사는 사기꾼ㆍ219 | 도주자, 위조 화폐 제작업자ㆍ223 | 대립군, 군대 대신 가는 아르바이트ㆍ227

6부 | 조선의 전문직
숙사, 고달픈 입주 가정 교사ㆍ233 | 돗자리 짜는 노인ㆍ237 | 산원, 수학자이자 회계사ㆍ242 | 역관, 인삼 팔러 청나라로 가 볼까ㆍ247 | 서수, 예쁜 글씨가 필요한가요ㆍ252 | 오작인, 조선의 과학 수사대ㆍ256 | 외지부, 백성의 변호사ㆍ260 | 겸인, 조선의 집사ㆍ264 | 판수, 미래를 보는 눈ㆍ268 | 매사냥꾼 응사ㆍ272

7부 | 사농공‘상’
염상, 서민들의 부업거리ㆍ8279 | 집주름, 부동산 중개업자ㆍ284 | 차부, 물류 유통의 중심ㆍ288 | 세마꾼, 종합 운수 사업가ㆍ292 | 세책점주, 유행을 이끈 출판 기획자ㆍ295 | 책쾌, 헌책 사고팝니다ㆍ299 | 전인과 글월비자, 조선의 우체부ㆍ303 | 짚신 재벌의 생애ㆍ308 | 떠돌이 상인들의 조직된 힘, 보부상ㆍ3314 | 도시를 움직이는 나무꾼ㆍ318

 

저자 소개

저 : 강문종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효의정충례행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전통시대 동성애 연구」, 「한문본 『태원지』 연구」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조선 후기 중앙군영과 한양의 문화』, 『귤림서원』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역주 태원지』, 『기각한필』 등이 있다.

저 : 김동건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홍양호가 연행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행록사전 편찬팀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음주 문화를 통한 「한림별곡(翰林別曲)」의 일고찰」, 「연행록(燕行錄)을 통해 본 선래군관(先來軍官) 제도의 운용 양상」, 「산강(山康) 변영만(卞榮晩)의 죽음 인식과 그 의미」 등이 있다.
저 :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저로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일일공부』, 번역서로 『현고기』, 『동국세시기』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말은 사람보다 빠르지만 비싸다. 유지 비용도 만만찮다. 달리는 말은 고도로 훈련받은 기수가 아니면 못 탄다. 원나라 역참 제도가 이식된 고려 시대에는 전국에 500개가 넘는 역참을 설치했지만 조선 시대에는 200개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명나라에서 매년 엄청난 수량의 말을 공물로 요구하여 말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결국 사람이 말 대신 뛰어야 했다. 사람은 말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지만, 오래 달릴 수는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산과 강이 많은 지형에서는 사람이 말보다 낫다. 『세종실록』에 잘 달리는 무사를 변방 고을에 번갈아 배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변방의 급보를 신속히 전하기 위해서였다. 병자호란 이후 말이 부족해지자 말 대신 잘 달리는 사람을 역참에 배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국가의 간선 통신망에 해당하는 역참이 이 지경이니 민간의 사정은 뻔하다. 윤부(尹釜)가 강원 감사로 부임하여 고을 사정을 잘 아는 늙은 승려에게 백성의 고초를 물었다. 승려가 제일 먼저 거론한 것은 보장사(報狀使)였다. 보장사는 고을과 고을을 오가며 공문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으레 가난한 아전을 보장사에 임명하는데 춥고 굶주려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폭설이 내리는 궂은 날씨를 만나도 하루만 지체하면 벌을 받는다. 보장사가 지체한 죄를 묻지 말라는 것이 승려의 첫 번째 부탁이었다.
--- 「보장사, 인간 메신저」 중에서

조선 조정은 호환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많은 정책을 시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착호갑사(捉虎甲士)와 착호인이었다. 착호갑사는 서울, 착호인은 지방에서 호환을 방비했다. 군인이 활과 창을 들고 외적과 싸웠다면 착호갑사는 호랑이와 싸웠다. 착호갑사는 말 그대로 호랑이 잡는 특수 부대였다.
착호갑사는 담력이 세고 무예가 출중한 군인으로 가려 뽑았다. 착호갑사가 되려면 180보 밖에서 목궁(木弓)을 한 발 이상 명중시켜야 했고 두 손에 각각 50근(30킬로그램)을 들고 100보 이상을 한 번에 가야 했다. 착호갑사는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활과 창으로 무장했다. 차이가 있다면 일반 부대는 휴대가 쉬운 각궁(角弓)을 썼으나 착호갑사는 크고 무거운 목궁이나 쇠뇌를 썼다는 점이다. 각궁은 휴대가 편했지만 목궁과 쇠뇌에 비해 살상력은 낮다. 반면 쇠뇌와 목궁은 무겁고 크지만 살상력이 뛰어나다. 특히 목궁은 대전(大箭)을 쏠 수 있어 호랑이 같은 덩치 큰 맹수를 상대하기 알맞다. 대전은 깃이 넓고 촉이 큰 화살이다. 대우전(大羽箭)이라고도 하는데, 길고 무거워 살상력은 높지만 사정거리가 짧다. 착호갑사는 호랑이를 추적해 근거리에서 쇠뇌나 목궁으로 저격했다. 상처를 입힌 다음에 가까이 다가가 창으로 급소를 찔렀다. 화살이 박힌 채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호랑이가 많았으므로 착호갑사는 담력은 물론이고 창술(槍術)이 뛰어나야 했다.
--- 「착호갑사, 호랑이 잡는 특수 부대」 중에서

조선 사람은 화려했다. 남자는 수정을 잇댄 갓끈과 옥으로 만든 관자, 귀걸이로 꾸몄다. 여자는 풍성한 가체(加?, 가발)와 현란한 비녀, 노리개로 치장했다. 길고 화려한 갓끈, 높고 풍성한 가체는 요샛말로 잇템, ‘꼭 갖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법률은 엄격했다. 귀걸이는 선조, 가체는 정조 때 금지했다. 위정자가 보기에 귀를 뚫는 일은 몸을 훼손하는 불효(不孝)였고 가체는 검소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치였다. 정조는 가체를 금지하기 위해 법령을 반포하며 한문 법조문은 물론 한글 법조문까지 작성했다. 그만큼 가체는 상하 귀천을 떠나 유행했다. 단속이 심해져도 여전히 가체를 애용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조정에서 파견한 사람이라며 가체에 벌금을 부과해 거둬 가는 사기꾼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체를 만드는 장인을 가체장이라고 불렀다. 인조모가 발명되기 전이니 가체를 만들려면 사람 머리카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가체에 쓰인 머리카락은 죄수나 승려의 것이었다. 상투를 튼 남성의 머리카락도 썼다. 조선 남성은 상투를 맵시 있게 틀려고 정수리 주변의 머리카락을 깎았다. 이를 ‘베코(혹은 백호) 친다’라고 했다. 남성은 베코를 쳐 맵시를 더했고, 그렇게 얻은 머리카락은 가체장 손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가체로 탈바꿈했다.
--- 「가체장, 여심을 빼앗은 디자이너」 중에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종착지가 결국은 모두 치킨집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조선 시대 선비의 종착지는 짚신 삼기 아니면 돗자리 짜기였다. 밑천도 기술도 필요 없다. 조금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농사짓는 백성은 물론 사찰의 승려도 감옥의 죄수도 모두 돗자리를 짜서 생계에 보탰다.
지금은 대나무 돗자리를 많이 쓰지만 조선 시대에 대나무는 화살대를 만드는 전략 물자였다. 이 때문에 대나무 돗자리 사용을 금지한 적도 있다. 서민들은 왕골이나 부들, 볏짚으로 짠 돗자리를 사용했다. 강화 교동의 화문석이 명품 특산물로 자리 잡은 것도 이곳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왕골 산지였기 때문이다.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는 볏짚이었다. 볏짚 돗자리 초석(草席)의 가격은 쌀 두 말 정도였다. 돗자리 두 장을 닭 다섯 마리와 교환한 기록도 있다. 이만하면 먹고살기 충분하다. 영남 예천의 선비 박경손(朴慶孫)은 산속에 은거하며 돗자리 짜고 짚신 삼아 먹고살고도 제법 돈이 남아, 가난한 형을 돕고 제사까지 도맡았다.
--- 「돗자리 짜는 노인」 중에서

심노숭이 1830년 완성한 『자저실기』에는 이익모(李翊模)가 1796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집주름들을 불러 남촌과 북촌에서 가장 좋은 집을 소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 있다. 이익모가 구입하고 싶어 하는 집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한 집주름이 그 집은 왕자의 궁이라고 말하자 구입을 포기한다. 얼마 후 그는 상동(尙洞, 지금의 북창동과 남창동이 걸쳐 있었던 지역)에 있는 청주 목사 홍선양(洪善養)의
고택을 구입했는데 그 가격이 무려 7000냥이었다. 한평생 집 욕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익모가 고민 끝에 사들인 홍선양의 고택은 당대 한양에서 가장 비싼 집 중에 하나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집주름의 수입, 즉 중개 수수료는 어느 정도였을까? 신택권은 「성시전도시」 중에서에서 “천 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라고 언급했다. 집주름의 중개 수수료가 거래가의 10퍼센트라는 말인데, 다소 많아 보이지만 정보 독점이 가능한 시대라는 점과 당시 고리대금의 연 이자가 보통 30퍼센트를 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집주름, 부동산 중개업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양반 말고, 선비 말고
조선 시대 보통 사람들이
먹고살았던 67가지 방법

너무 재미있는데…… 왜 눈물이 나지?
웃음과 감동으로 읽는 밥벌이의 역사


사극에서는 중요한 정보를 전할 때 말을 달리는 묘사가 많지만, 실제 조선에서 말은 무척 비싸고 귀한 몸이었다. 전쟁에 쓰이고 조공으로 바치느라 늘 부족한 말 대신 결국 ‘몸값이 싼’ 사람이 달렸다. 국가의 간선 통신망에서 민간까지 ‘인간 메신저’ 보장사(報狀使)가 활약한 배경이다. 잘 달리는 노비를 거느린 양반은 정보력으로 권세를 떨쳤다면, 보장사 일을 하는 백성은 밤낮없이 권력자들의 소식을 전하느라 다리가 부르텄다.

냇가에서 사람을 업어다 건네준 월천꾼, 기근·질병 등으로 길에서 죽은 시신을 묻어 준 매골승(埋骨僧), 군대를 대신 가 주는 아르바이트인 대립군(代立軍) 등등 조선의 ‘극한 직업’은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책 『조선잡사』는 조선 시대 직업의 정확한 실상을 문헌 근거와 함께 들여다보며, 그러한 일들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찬찬히 살핀다. 함께 수록한 컬러 도판은 생생한 이해를 돕는다.

조선 여성들이 집안일만 했으리라는 선입견을 바로잡는 1부 ‘일하는 여성들’로 시작하는 『조선잡사』는 ‘극한 직업’, ‘예술의 세계’, ‘기술자들’, ‘불법과 합법 사이’, ‘조선의 전문직’, ‘사농공‘상’’까지 총 7부로 엮었다. 이제 존재하지 않는 직업도 있고, 거의 똑같은 형태로 남아 있는 직업도 있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먹고사는 일을 둘러싼 보람 또는 애환이다. 어렵고 험난한 ‘업’을 이어가는 모든 직업인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