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국제평화 연구 (책소개)/1.국제관계

밀림의 귀환 : 자유주의 질서는 붕괴하는가

동방박사님 2022. 1. 1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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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가 밀림이 되면 야수의 시대가 온다
2022년 한국인이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책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정원과 같다. 누군가가 정원사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금새 잡초와 넝쿨로 뒤덮여 버린다. 『밀림의 귀환(The Jungle Grows Back)』의 저자인 로버트 케이건은 지난 70여 년 동안 미국이 세계의 정원사 역할을 자처했기에 세계는 평화를 유지하고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정원사의 역할에 지쳐가고 있으며, 막중한 도덕적, 물질적 책임을 내려놓고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행동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밀림의 귀환』은 미국이 정원사의 역할을 내려놓게 되면 세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러한 사태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미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 중 하나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로버트 케이건이 쓴 『밀림의 귀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역사에 대한 놀라운 혜안으로 가득 차있다. 로버트 케이건은 트럼프의 등장 훨씬 이전부터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쇠퇴하고 있다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들에 맞서왔다. 『돌아온 역사와 깨진 꿈』(2008)에서 냉전 종식 이후 “역사의 종말” 선언이 왜 섣부른 것이었는지 이야기했고 『미국이 만든 세계』(2012)에서는 미국 쇠퇴론을 반박하며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옹호했다. 이 책 『밀림의 귀환』에서는 세계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소극적 행보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미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결국 자유주의 질서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 민주주의 동맹을 복원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성공적일지, 2024년 대선에서 미국의 진로가 다시 바뀌지는 않을지 이 책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을 위해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이고 그 질서가 무너지면 가장 큰 피해자도 미국이 아니라 한국일 수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안정자의 역할을 내려놓으면 동아시아 역시 과거의 권력 구조로 돌아가게 된다. 유리했던 세력균형이 사라지고 한국은 가장 불리한 처지가 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와 함께 한국의 평화와 번영도 저물게 될지 모른다. 한국인들이 ‘밀림의 귀환’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론: 밀림이 돌아오고 있다

01 1930년대로의 회귀
02 새로운 세계질서의 탄생
03 자유주의 세계질서 안에서의 삶
04 자유주의 세계질서 바깥에서의 삶: 냉전과 그 종식
05 성공의 값비싼 대가
06 “신세계질서”
07 역사의 귀환
08 미국이라는 밀림
09 정원을 보호하기

NOTES

저자 소개

저 : 로버트 케이건 (Robert Kagan)
 
예일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메리칸대학교에서 미국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며,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국무부에서 일했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주관한 ‘세계적인 사상가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미국이 만든 세계The World America ...
 
역 : 홍지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국제학대학원, 하버드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KBS 앵커, 미국 매사추세츠주 정부의 정보통신부 차장, 리인터내셔널 무역투자연구원 이사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보이지 않는 붉은 손』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트루 리버럴리즘』 『다가오는 폭풍과 미국의 새로운 세기』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 『미국의 봉쇄전략』...
 

책 속으로

오늘날 정원에 넝쿨과 잡초가 다시 무성해져 밀림으로 회귀하려는 조짐이 온 사방에서 감지된다. 한때 자유민주정체와 자본주의라는 발전의 길에 세계 모든 나라와 국민이 합류하리라고 기대했지만, 지금도 독재체제가 번성하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오늘날 러시아 독재자와 유럽의 미래 독재자들은 비자유주의적 성향을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중국의 지도자는 마오쩌둥의 절대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국이 세계의 본보기라고 내세우고 있다. 한때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결국 국민이 정치적 자유화를 요구하게 된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독재체제(autocracy)는 억압적인 정부와 딱히 양립 불가능하지는 않은 국가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한때 지경학(geoeconomics)이 지정학(geopolitics)을 대체했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세계는 19세기 말과 20세기의 지정학과 아주 유사한 지정학으로 회귀하고 있다. 한때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겼던 영토쟁탈이 유럽에 귀환하고 있고 아시아에도 귀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해동포적이고 서로 연결된 시대에 민족국가는 한물간 과거라고 점점 믿게 되었지만, 민족주의와 부족주의가 다시 부상하면서 인터넷이라는 경이로운 신세계에서 그 입지를 공고하게 다지고 있다.
--- p.25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보다 인류가 처한 여건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받아들이거나 세상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역사상 미국 말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 나라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주저하지 않고 자국의 협소한 국익을“우선시”한다.

미국은 이런 면에서 매우 비정상적이었다. 비정상적인 자유주의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서 도덕적, 물질적으로 대단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그런 책임을 져야 할지에 대해, 그렇게 함으로써 여전히 실보다 득이 많을지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고립주의자”는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이다.
--- p.29

독일과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경로를 수정하면서, 궁극적으로 두 나라는 소련의 흥망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낳았다. 미국은 일본 헌법 9조 첫 단락에, 일본은“국가의 주권 행사의 수단인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국제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서의 위협이나 물리력 사용을 포기한다.”라고 못 박았다. 독일의 경우 서독은 미국과 연합군의 점령하에서, 그리고 동독은 소련의 점령하에서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인 주체로 활동할 권리를 포기했다.

이로써 일본과 독일이 과거의 행동 양식으로 돌아갈 선택지가 사실상 배제되었다. 미국이 자국의 힘을 이용해 두 나라에서 “비무장과 민주정체의 채택”을 강제하지 않았어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을지는 의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완전히 철수했다면 두 나라가 어떤 길을 택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 p.65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민주정체가 쇠락하고 있었다. 그 이전 5천 년 동안에는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듯이 말이다. 1989년 후 우리는 민주정체를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일환으로 여기게 되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주정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도처에서 유지되어온 까닭은 새로 비옥한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정체가 확산되고 지속된 까닭은 이를 정성들여 가꾸고 뒷받침했기 문이다.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규범을 통해, 국제적인 압력과 이러한 규범을 준수하게 만들 유인책을 통해,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같은 유주의적 기구 가입을 의무화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합류한 지역이라는 사실 덕분에, 세계 최강대국이 보를 보장해준 덕분에, 그리고 그 최강대국이 하필 민주국가라는 사실 덕분에 민주정체의 확산과 지속이 가능했다.
--- p.85

오늘날 밀림이 다시 울창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사방에서 감지된다. 역사가 돌아오고 있다. 나라들은 과거의 습관과 전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한 습관과 전통을 조성하는 막강한 힘들이 작용하고 있다. 불변의 지리적 위치, 공유하는 역사와 경험, 이성을 무색케 하는 영적, 이념적 신념이 그러한 힘이다. 나라와 국민은 본연의 유형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러시아는 1958년, 1918년, 혹은 1818년의 러시아와는 다르지만, 러시아인들이 지닌 지정학적 야망과 불안감, 유럽과 서구 진영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정치조차 변하지 않았다. 과거 수 세기 동안 역내 패권 국가였고 19세기 초를 시작으로“굴욕의 세기”를 겪은 중국의 과거가 오늘날 중국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란의 야망이 이슬람과 페르시아라는 과거 뿌리에서 비롯되었듯이 말이다. 우리는 늘 국가들이 밟는 궤적에서 급격한 변화를 찾고 기대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그렇게 극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 p.140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는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를 한다.“ 히틀러가 귀환하는 게 가능한지 여부는 더 이상 의문이 아니다. 그가 나타나면 우리가 그를 알아볼 수 있을지가 문제다.” 그러나 이는 농담이 아니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이가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부상할 때까지 우리는 우리들 사이에 숨어 있는 히틀러나 스탈린을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위험한 사람들은 어딘가에 늘 도사리고 있고 그들의 운명을 성취할 권력과 기회만 없을 뿐이다.
--- p.186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새로운“현실주의”의 조언을 거부하고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지원을 재개한다면, 여전히 이 질서를 수호하고 어쩌면 붕괴되는 시기를 어느 정도 상당 기간 늦출 역량이 미국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질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적대감과 이전 행정부들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뒷받침하는 국제적 구조는 내구력이 있다. 그 이유는 여전히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호의적인 힘의 배분과 지리적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자유주의적 가치가 공격을 받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세계의 민주적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p.197

출판사 리뷰

역사가 돌아오고 밀림이 돌아오고 있다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붕괴하는가


저자는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역사의 필연이 아니라 우연적 산물에 가깝다고 말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라는 패권국이 부상했고 그 패권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였기에 가능한 질서였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의 시대가 막을 내렸고 수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했다. 미국의 보호 아래 국가들은 이웃나라와의 전쟁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정학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작은 나라들도 세계의 자원과 시장에 비교적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다.

미국을 따라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로 전향했다. 무엇보다 가장 국가주의적인 전제 국가였던 독일과 일본이 자유주의 국가가 되었다. 저자는 소련이 스스로 제국의 해체를 선택했던 것도 서구의 봉쇄정책의 성공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자신을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냉전 종식과 함께 자유주의의 최종적 승리로서 ”역사의 종말’이 선언되었다.

“역사의 종말”이 선언되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당하고 지정학이 부활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당장이라도 우크라이나를 접수할 기세이고 우크라이나가 넘어가면 벨로루시가 넘어갈 것이고 유럽의 지정학은 요동치게 될 것이다. “독일 문제“가 다시 유럽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중국은 대만 침공을 예고한다. 대만을 장악하면 남중국해가 중국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정상 국가“를 꿈꾸는 일본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 뿌리깊은 군국주의 국가로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터키는 지금도 지역 맹주를 자처하고 있고 이란은 권토중래하게 된다. 규범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밀림 같은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반면 해외개입 축소에 대한 미국 국민의 요구는 지난 30년 동안 점점 강해지고 있다. 미국인은 자국이 무엇 때문에 세상만사에 그토록 깊이 관여하고, 중동과 같은 가망 없는 지역에 인명과 돈을 쏟아 부어야 하며, 무엇 때문에 독일, 일본, 남한 같은 부유한 동맹국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국제사회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나라”라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점점 호소력을 잃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미국 역시 자국 이익에 충실한 “정상 국가”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지정학적 갈등이 점점 치열해지지만 미국은 방관하는 1930년대의 양상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은 세계의 정원사 역할을 내려놓을 것인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교차하는 나라 미국


냉전이 끝난 지 30여 년이 지났고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20여 년의 대테러 전쟁도 막을 내렸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인들이 제기하는 의문은 1차대전 종전 후 20년 동안 미국인들이 제기한 의문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인들은 자신의 안보와 생활방식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위협은 가시적이나 불확실하고 막 치른 전쟁(냉전과 대테러 전쟁)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지치고 환멸을 느끼고 있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막강한 나라이지만 압도적으로 막강한 나라는 더 이상 아니다.

당시에는 1920년 대통령 후보였던 워런 하딩이 주장했듯이 “미국을 우선” 돌보고 세계 문제를 해결할 책임 다른 강대국들이 맡게 내버려두자는 주장이 그렇듯 하게 들렸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그들은 “정상으로의 회귀‘를 촉구했다. 그들은 눈 앞에 놓인 위험을 못 본체 하는 고립주의자라는 평판을 얻었지만 그들은 고립주의자도 아니었고 마땅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을 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2차대전 참전을 결정하고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구축한 것도 이들이었다.

오늘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고하고 있고 중국은 대만 침공을 호언한다. 두 예고된 지정학적 사건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며, 그 붕괴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다. 미국이 과연 물리적으로 개입할 것인지가 문제다. 미국은 20년 넘게 중동의 정세에 개입해왔지만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 했다. 두 사건에 미국이 개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히틀러가 처음 전쟁을 시작했을 때도 미국이 파시즘이라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기사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우려스러운 지정학적 추세보다는 비용이 많이 들고 궁극적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는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상황을 더 우려할 수 있다.

미국은 머지 않아 세계의 정원사 역할을 내려놓을 것인가? 미국은 단지 물질적 이해관계만으로 세계에 개입해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물질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숭고한 이념을 위해 무턱대고 개입하지도 않았다. 1914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인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지만 결국 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도덕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대서양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해 참전했다.

1930년대에 파시즘이 유럽을 휩쓸고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무관심했지만 유럽이 히틀러의 수중에 떨어지려 하자 결국 2차대전에 뛰어들었다. “민주주의가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윌슨 대통령의 1차대전 참전 명분은 여전히 미국 행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한편 파괴할 괴물을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을 피하라는 존 퀸시 아담스의 조언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이 한동안 손을 떼고 정원을 돌보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인들이 개입에 따른 비용과 희생을 감당할 만큼 이익이 분명하지 않다고 볼 때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행동을 주저하는 사이 독재국가들로 인해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워지고 폭력적이고 유혈이 낭자했던 역사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세계질서 이후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가
권위주의, 국가주의, 지정학이 지배하는 세계


"자유주의 질서는 정원과 같고 인공적이며, 자연의 힘에 의해 영원히 위협받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유주의 질서는 "내부와 외부로부터 그것을 훼손하고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라나는 잡초와 덩굴에 대한 지속적이고 끝없는 투쟁"을 통해서만 보존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 그 잡초와 덩굴은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과 같은 외국의 독재(권위주의) 세력과 질서,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가정, 부족, 민족의 안전을 열망하는 국내의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자라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독재 세력을 공산주의보다 민주주의 생존에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한다. 권위주의가 인간의 본성과 더 일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마저도 1945년 이후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지지해온 보편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주의와 부족주의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정상 국가‘를 갈망하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다.

저자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이 약해지면 2차대전 직후 만들어진 권력 구조의 변화가 끝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럽에서는 지정학의 복수가 시작되고 동아시아에서는 지정학이 강화될 것이다. 국가 자본주의로 무장하고 부상하는 중국의 도전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심지어 미국이 억눌러온 독일과 일본의 국가주의라는 망령이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서 활개치게 될 수도 있다. 독일과 일본에게는 그럴 동기도, 그럴 능력도 있다.

결국 자유주의 세계질서는 강력하고 개입주의적이면서 자유주의적인 미국을 필요로 한다. 이 조건들 중 하나라도 사라진다면 그 질서가 유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상대적 힘은 쇠퇴하고 있고, 개입주의는 미국 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로부터 공격받고 있으며, 자유주의마저도 미국사회 저변에 흐르는 백인국가주의와 반이민주의로부터 도전 받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과 같은 외부의 비자유주의적 세력들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 제기되는 비자유주의적 도전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저자는 아직 미국에게는 자유주의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이 있고 무엇보다 동맹들이 있으며, 문제는 미국인들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다.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라는 정원을 지키기 위해 “인류를 이끄는 기관차‘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위해서도 미국 자신을 위해서도 최선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동아시아의 안정자로서 행동하지 않게 될 때
한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로버트 케이건의 한국어판 서문


미국이 모든 나라에게 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게만큼은 선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이면 자유주의 국가이면서 한국의 동맹이라는 사실만큼 오늘날 한국의 입지를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다. 지정학적 동맹이면서 가치 동맹이다. 중국과 일본 모두와 대결해도 한국이 존립할 수 있는 최후의 안전판이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단지 선의에 기초해 있지 않고 일방적이지도 않다. 동아시아는 그 자체로 세력균형이 불가능한 구조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은 역내 안정자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하면 세력 균형을 완성하는 존재다. 이 질서를 깨려 하는 게 중국이고 이 질서가 깨지길 바라는 게 일본이다.

로버트 케이건은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장문의 서문을 보내왔다. 그는 동아시아는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지정학적 각축전이 벌어지는 현장이라고 말한다. 1945년 이전에는 일본이 지역 패권을 노렸고 끔찍한 유혈극을 일으켰다. 오늘날에는 중국이 지역 패권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난관에 봉착해 있다. 막강한 미국이 역내 패권 경쟁을 억지하고 지역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미국이 그러한 역할을 더 이상 맡지 않으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역내 강대국들은 통상적인 경쟁 관계로 복귀하게 되고, 그러한 세계에서 한국은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한다. 역내 강대국들에 순응할지, 아니면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해서 미국을 대신해 힘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그들을 억지하는 역할을 할지 말이다.

미국은 언젠가 동아시아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빠를지도 모른다. 미국 이후의 동아시아는 어떤 양상으로 다가올 것인가? 미국 없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세력균형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그 세계는 한국에게 밀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밀림이 너무 일찍 찾아오지 않도록 한국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밀림이 찾아왔을 때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밀림의 귀환』을 통해 한국의 지도자들과 한국인들이 찾아내야 할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