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사 이해 (책소개)/1.세계사

샹트페테르부르크

동방박사님 2022. 2. 2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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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 도시의 영혼에 대한 경이로운 전기,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


자연을 거부하며 늪지를 메워 건설된 도시.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의 러시아가 지향한 것을 화려하게 반영한 도시.
세상을 바꾼 혁명의 요람이 된 도시.
푸시킨, 고골,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의 위대한 예술을 만든 도시.

1703년 러시아의 전설적인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가 ‘상크트 피에테르 부르흐’라고 명명한 곳은 원래 궂은 날씨에 수질도 좋지 않고 지형적으로도 바닷물이 자주 범람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표트르는 러시아가 네덜란드같이 해양을 향해 나아가는 나라가 되길 바라고 이곳을 ‘유럽으로 나가는 항로’, ‘유럽으로 난 창’으로 삼아 1712년 공식 수도로 천명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 고난과 구원의 도시, 빛과 어둠의 도시(원제: Sunlight at Midnight: St. Petersburg and the Rise of Modern Russia)』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러시아 역사 전문가인 윌리엄 브루스 링컨(William Bruce Lincoln, 1938~2000)의 유작이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저작으로, 얼마 전 정도 3백 주년을 맞은 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다루었다. 표트르 2세가 잠시 모스크바로 천도한 몇 년을 제외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20세기 초 볼셰비키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다시 모스크바로 수도를 옮겨 갈 때까지 줄곧 수도로서, 유럽으로 난 창의 역할을 해오며 러시아의 고난과 구원, 빛과 어둠의 역사가 펼쳐지는 무대가 되었다.

시인 푸시킨은, 표트르 대제가 어떻게 네바강 늪지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는지 묘사하며 “그의 결정은 운명이었다”라고 썼다. 천도 당시 수많은 반대에 부딪힐 정도로, ‘성스러운 러시아의 수도이자 경건한 중세적 도시 모스크바는 15세기와 마찬가지로 17세기가 될 때까지 수도로서 부족한 면이 없었다.’ 적에게서 빼앗은 지역이자 왕국의 가장 끝인 북극권 근접 지역, 지형적 이유로 홍수와 화재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 지역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한다는 표트르의 계획은 ‘수백 년 동안 러시아의 운명을 형성해온 모든 편견, 믿음, 희망에 도전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목차

추천의 말 도시 연대기의 진정한 백미
감사의 말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간 작가를 대신하여
프롤로그

1부 서구로 난 창 (1703~1796)

건설자들
왕국의 주인들
겨울 궁전의 그늘

2부 제국의 거인 (1796~1855)

제국의 중추
넵스키 대로

3부 혁명의 요람 (1856~1941)

근대성의 도전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혁명 전야
동지들

4부 영웅 도시 (1941~1991)

900일
함께 보조를 맞추어
과거와 현재

부록 최근의 상트페테르부르크 (1991~2010)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W. 브루스 링컨 (William Bruce Lincoln )
브루스 링컨은 미국 시카고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북미의 대표적인 종교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세기 후반 세계 종교학계와 신화학계를 이끌었던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제자이지만, 스승의 거시적이고 낭만적인 학문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학문을 추구해왔다. 태생적으로 유대인이고, 사상적으로 맑스주의자이자 프로이트주의자인 그는 탄탄한 사회-문화 관련 이론을 토대로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면서 역사와 현재 속의 종교...

역 : 허승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슬라브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2008년 우크라이나 대사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나의 사랑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현대사』,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얄타: 8일간의 외교 전쟁』, 『크림반도 견문록 1, 2』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형성하는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시의 일상생활은 강을 끼고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표트르가 애초부터 의도했던 것이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민들을 러시아에 늘 부족한 뱃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다. 네바강과 지류들은 노동자, 귀족, 병사, 정치가, 외교관들 모두 조악하게 만든 돛배를 타고 이동하는 대로가 되었다. 이 배들은 강한 바람을 만나 부서지기도 하고, 차르가 노 사용을 금했기에 좌초하기도 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수도로 공식 결정되자 표트르 대제는 수백 명의 상인, 2천 명의 장인, 1천 명의 러시아 고위 귀족들에게 “가족 전체와 집 안에 함께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 p.43~44

적으로부터 뺏은 땅에 건설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새로운 세속적 권력의 물질적 표현과 새 제국이 거둔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자신이 원하는 러시아의 미래의 모습을 공유하는 외국인과 러시아인들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러 모았다. 그는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가진 이 사람들을 초기의 제국 궁정에 뒤섞어놓았다. 표트르는 유럽식 생활양식과 의례,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러시아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분명한 의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 서방을 모방하는 것을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표트르의 가신들에게 외국인이 되기를 강요했다. 이들은 보통 어린이들이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는 언어, 예의, 생활방식을 성인의 자리에서 새로 배워야 했다.
--- p.97

하지에 절정을 이루는 백야 때엔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떼를 지어 네바강둑과 공원, 정원에 모여들었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는 오전 10시 반에 해가 뜨고, 오후 4시 전에 해가 지는 긴긴 겨울을 보상해주는 마법과 같은 시간이었다. 백야 기간에는 삶이 다른 형태와 의미를 가졌다. 시인들은 백야 기간에 넵스키 대로에서 표트르 대제를 기린 청동기마상과 해군성과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의 금빛 첨탑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 황혼 속에서 어떻게 빛나는지를 시로 표현했다.
--- p.116~117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산업 도시로 변하는 과정에 들어서 야포, 장갑 전함, 폭발물, 기관차, 철로, 증기엔진을 생산했고 이런 것들이 러시아 제국을 근대로 이끌었다. 기계의 힘에 매혹된 세계에서 진보의 상징이 된 수백 개의 공장 굴뚝 위로 검고 발그레하고 누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모든 근대 세계와 근대화되고 있는 세계 전체를 통틀어 발전기는 인류의 핵심 영감이 되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장들의 수많은 굴뚝으로 이뤄진 환상環狀 고리 지대를 창출하여 푸시킨, 로시, 예카테리나 여제의 귀족적 도시를 더없이 꽉 틀어쥐어 짜냈다. 숨길 수 없는 높다란 굴뚝들이 실리셀부르크 도로를 따라 수없이 생겨났고, 한때 도시 외곽지역에만 있던 빈민가는 그 굴뚝들 주변으로, 썩은 나무 둥치에서 솟아나는 버섯처럼 곳곳에 생겨났다.
--- p.215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근대 산업 도시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니콜라이 1세 시대였다. 러시아가 고대 로마의 제국적이고 군사적 유산을 상속했다는 인식이 가장 강할 때였다. 이 시기에 러시아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제국을 로마의 영광의 자랑스러운 상속자로 간주했고, 현상 유지를 정책과 정치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모든 러시아인은 황제에게 복종해야 했고, 황제는 신에게만 복종했다. 새로 지은 이삭 대성당과 카잔 대성당, 수천 명의 관리들이 군주의 명령을 제국 구석구석까지 전달하는 제국 정부 건물을 가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현재와 미래의 이미지를 반영했고 정교회, 전제정, 민족성(nationality)의 교리에서 벗어 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었다. 1825년, 1830년, 1848년에 일어난 사회적·정치적 혁명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러시아의 황제와 신하들은 산업혁명도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러시아의 미래와 임무에 대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확신은, 서구에 엄청난 혼란과 곤란을 가져온 사회적·경제적 힘은 엄격한 정치적·종교적 원칙만이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p.216

1905년 신년이 되자 가폰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노동자들을 만나 1월 9일 일요일로 예정된 평화행진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그의 계획은 노동자들을 겨울 궁전으로 행진하도록 한 다음 차르에게 노동자들이 겪는 고난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청원서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힘겨운 운명을 침묵 속에 참아야 하는 노예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 만일 폐하께서 우리의 청원에 답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바로 당신의 궁전 앞에서 죽겠습니다. 우리는 달리 갈 데가 없습니다”라고 청원서는 끝을 맺었다. [...] “만일 차르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의 청원서를 접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자 모든 사람에게서 똑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반복해서 울리는 그 단조로움 속에는 두려움이 도사렸다. “그러면 우리에게 차르는 없습니다!”
--- p.264~265

이후 여덟 달 동안 2월 혁명이 페트로그라드를 손아귀에 넣었다. 민주적인 러시아의 지휘권은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한 날 공식적으로 임시정부 손에 넘어갔지만, 노동자·병사 대표 소비에트가 무기공장, 철로, 군대, 우체국, 전보를 통제했고, 소비에트만이 대중을 지휘할 수 있었고, 실질적 권력을 보유했다. 봄, 여름, 초가을 동안 몇 개의 임시정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새 임시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좌익으로 점점 더 기울었다. 그러나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시인 알렉산드르 블로크는 “피, 폭력, 수간”이 곧 “핑크빛 클로버”에 자리를 내주기를 희망했고, 자신의 친구들에게 “무거운 망치는 유리는 깨뜨리지만 강철은 단련시킨다”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충고했다. 빈민가에서 자라 작가가 되고 대중의 억눌린 잔혹성을 직접 경험한 엄청난 인기 소설가 막심 고리키는 상황을 더 잘 알았다. “삶의 와해, 거짓, 정치의 오물에 분노한 군중의 검은 본능이 타올라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를 분노, 혐오, 복수로 독살시킬 것이다”라고 그는, 페트로그라드의 여름이 끝나고 가을날의 해가 짧아지는 시점에 내다봤다.
--- p.319

레닌은 추종자들에게 “독일인들에게서 규율을 배우라고” 지시했고 트로츠키는 “노동, 질서, 인내와 자기희생”을 강조했지만 부질없었다. 곧 이들은 러시아인들에게 익숙한 종류의 절제를 실현하려면 위로부터의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끈질긴 노동과 혁명적 규율뿐이다”라고 트로츠키는 주장했다. 이것이 볼셰비키 혁명 조직을 다른 경쟁 집단과 확연하게 구별시켜주었다. 그리고 이것을 무자비한 테러와 결합하여 그들은 결국 페트로그라드와 러시아를 장악할 수 있었다. [...] 1917년 말 인민위원회가 “러시아 전역의 모든 반혁명 행위와 사보타주를 척결하기 위해” 만든 고도로 효율적이고 한없이 잔혹한, 체카라는 약자로 알려진 반혁명파업투쟁특별위원회는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볼셰비키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무차별하게 척결하는 기구가 되었다.
--- p.328

독일군이 진격해 오자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광학기계, 항공기, 탱크를 만드는 공장을 분해하고, 기계들을 상자에 담아 기차에 실어 시베리아의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 시작했다. [...] 사람들은 팔코네가 만든 청동기마상 주변에 모래주머니를 높고 두텁게 쌓아 올리고, 작은 동상들은 끌어 내려 여름 정원에 묻었다. 주요 건물 창문에는 널빤지를 대고 테이프를 가로질러 붙였다. 공공도서관에서는 9백만 권의 장서 중 7천 권의 초기 간행본,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그리스어 신약, 볼테르의 개인 장서,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기도서, 구텐베르크 성서와 기타 총 36만 권의 희귀도서가 상자에 담겨 후방으로 보내졌다, 2백 년의 레닌그라드 역사를 담은 역사적 고문서, 푸시킨의 편지, 도스토옙스키의 육필 원고, 고대 동방의 비기와 기타 수십만 종류의 문서도 상자에 담겨 후송되었다. 다음으로 가장 어마어마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150만 점의 값을 매길 수 없는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품을 포장해서 옮기는 일이었다.
--- p.366

살아남기 위해서 주민들은 립스틱을 녹여 빵을 튀기고, 얼굴 분을 밀가루 대용으로 사용하고,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가죽 벨트를 끓여 ‘고기’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주민들은 아마 씨 기름으로 팬케이크를 굽고, 감자 가루나 전분에 가루 치약을 섞어 ‘푸딩’을 만들었다. 한 여성은 어느 날 오후 일부러 설사약 70정을 먹었는데, 약에 함유된 사카린이 뭔가 좋은 것을 먹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많은 주민들이 인근 늪지에서 토탄을 집어 먹었는데, 이것이 먹을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들이 한 번 이상 암시장에서 식품을 사야 했고, 암시장은 봉쇄가 끝날 때까지 성업했다.
--- p.375

독일 공군의 폭탄이 상인 아케이드에 떨어진 9월 19일 밤, 쇼스타코비치는 가장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청했다. 친구들이 왔을 때 쇼스타코비치는 이제 막 끝낸 교향곡의 첫 세 악장을 그린 악보에 둘러싸여 있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친구들은 놀랐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부인과 아이들을 방공호로 보내고는 연주를 계속했다. 폭탄이 천둥을 울리고 사이렌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대공포가 쿵쿵거리는 와중에 그의 음악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소리의 수준을 지닌 강력하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클라이맥스”라고 한 평론가가 나중 에 표현한 것에 도달했다. 그의 친구들은 러시아의 문화에서, 그리고 전 세계 문화에서 진귀한 순간을 목격했음을 깨달았다.
--- p.385~386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든, 페트로그라드로 불리든, 레닌그라드로 불리든, 이 도시는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에게는 ‘피테르’로 남아 있었다. 이 도시의 창건자 이름에서 직접 따온 ‘표트르’가 아니라, 이국적인 것과 애정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나타내는 네덜란드식 버전의 친숙한 이름으로. 이곳은 여전히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알렉산드르 블로크, 쇼스타코비치, 아흐마토바, 브로드스키의 도시였다. 동시에 외롭고, 친밀하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압제적이고, 낭만적이고, 덧없고, 고립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도시였다. 이곳은 부와 가난의 도시이고, 죄와 벌의 도시이며, 저주와 구원의 도시였다.
--- p.454
 

출판사 리뷰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군주 또는 집단 정신

1차 대전 발발 직후 슬라브어와 더 가깝고 독일어와 더 먼 ‘페트로그라드’로 이름을 바꾸고, 1924년엔 바로 이 도시에서 일어난 혁명의 주역의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던 이 도시는, 소련 체제에 대한 도전이 거세지면서 1991년 주민투표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당시 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지지하던 이들은 이 복원이 ‘계몽·문화·개방성·자유·세계주의·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고,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은 세계로부터의 고립, 전제 정치의 계속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명칭 변경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혁명을 통해 얻어졌고, 레닌그라드 봉쇄라는 영웅적인 투쟁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미국인으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당시 ‘주민들이 악마의 이름보다는 성자의 이름이 붙은 도시에 사는 것이 낫다’고 촌평했다. 한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은 시대 예술을 이끌어갔고, 소련 정권으로부터 가혹한 탄압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정권이 남편과 아들의 생명까지 가져갔던 시인 아흐마토바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음에도, 9백 일의 참혹하고도 기념비적인 봉쇄 기간을 말할 때는 ‘레닌그라드’라는 이름만을 사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저자 링컨 특유의 탁월한 서술 기법과 통찰력 있는 문장은 이 대작을 한 도시의 전기傳記이자 도시 연대기의 백미로 만들었으며, 픽션 문학만큼 흥미진진하고 긴박감 가득한, 감동과 드라마가 살아 숨 쉬는 스토리텔링으로 엮었다.

또한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지향점으로 삼고 이곳을 수도로 만드는 데 사람들을 어떻게 강제하였는지, 유럽의 당시 건축가들이 이 신생 수도로 들어와 어떻게 자신의 포부를 펼칠 기회를 잡았는지, 건축에 중독되다시피 한 여제들이 이 도시에 어떤 화려함을 창조해냈는지, 그리고 유럽에서 들어온 계몽주의가 귀족들의 토론 주제이기를 넘어 현실을 바라보는 한 시각으로 퍼져가면서 러시아의 황제들이 이 사상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했는지, 또한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컬렉션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전쟁과 혁명 기간에 어떤 운명을 겪게 되었는지, 어떻게 차르들이 고대 로마와 자신의 국가를 동일시하려 했는지, 산업혁명의 물결과 고질적인 빈부 격차,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의식주 조건, 화재와 홍수라는 만성적 재난 한가운데서 이 도시의 시민들이 어떻게 삶을 헤쳐나갔는지, 노동자 파업 시위가 어떻게 대륙으로 퍼져갔으며 공산주의의 정신이 어떻게 태동했는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고 증오했는지, 또 헤아릴 수 없는 대작들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이 도시와 그들의 조국을 어째서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2차 대전 9백 일간의 ‘레닌그라드 봉쇄’에서 이 도시의 시민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또한 볼셰비키의 테러(공포정치) 속에서 어떻게 삶을 이어갔는지, 어떻게 영광을 되찾았는지…….

이 책은 이 모든 것들을 풍부한 자료와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서술한 도시 연대기의 진정한 백미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링컨의 사망으로 다루어지지 못한 1991년 이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해서는 역자인 허승철 교수가 그 이야기를 잇고 있어 현대의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까지 부족함이 없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에르미타주의 놀라운 보물을 보기 위해, 세상을 뒤흔들었던 혁명의 과거를 접하기 위해, 도스토옙스키가 살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이 도시를 찾는다. 마찬가지로, 3백여 년 전 서방으로 낸 창이 된 이래 이 도시는, 열다섯 개 시간대에 걸쳐 있으면서 지구 표면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강력한 근대 제국의 신경중추로서, 자신의 삶이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던 수많은 이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읽는 것은, 이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이 도시의 현재를 바로 보기 위한 조건이며, 러시아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할 뿐 아니라, 먼 곳에 있는 한 도시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도 이해하고 내다보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전기의 주제가 되기 위해서 한 도시는 영혼을 가져야 하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혼은 그 특징을 형성하는 대조만큼이나 복잡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 서로 충돌하고 대조되는 이미지들이 혼합된 도시다. 이것을 주의 깊게 가려내지 않으면 이 도시의 내적 본성은 증발해버릴 수 있다. 2백 년 가까이 러시아의 뛰어난 작가들 거의 모두가 가을 안개, 여름의 환상, 겨울의 서 리를 암스테르담, 베네치아, 파리, 로마의 유산과 결합하여 표트르의 도시의 영혼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저 유명한 도스토옙스키나 현대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를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형성하고 있는 초현실적이고, 낭만적이고, 상징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요소들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혼을 추출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영혼은 시적 요소와 자연적 현상들의 결합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표트르의 도시를 만든 것은 인간 영혼들의 집단 정신이며. 이것은 지난 3백 년 동안 이 도시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생을 살아냈으며, 이것을 위해 죽었다. 도시 외곽의 피스카렙스코예 공동묘지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집단 정신을 잘 드러내는 곳은 없다. 이곳에는 나치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봉쇄했을 때 사망한 50만 명쯤 되는 남성, 여성, 아이들의 시신이 묻힌 거대한 봉분 스무 개 정도가 평화롭게 놓여 있는데, 이들은 죽기를 거부했던 한 도시의 한때 단호하고 완강했던 주민들이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기는 무엇보다도 3백 년의 역사를 장식한 정치, 문화, 과학에서의 위업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서운 자연의 힘과 압제에 투쟁한 남녀의 이야기이다. 공장과 빈민가도 궁전이나 연병장 못지않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혁명가들은 차르와 함께 무대를 차지해야 한다. 그리고 건축가와 병사들, 정치가들은 시인, 작곡가와 자랑스러운 자리를 공유해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기는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 의미를 만들어준 수많은 사소한 인간적 사건들에 대한 언급 없이 이야기될 수 없다. 또한 힘겨운 노동으로 습지를 메우고, 늪지대를 마른 땅으로 만들고, 궁전과 성당을 짓고, 기계들을 돌리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이 도시를 방어한 평범한 사람들의 탄생과 사라짐도 적절한 자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_프롤로그 중에서
 

추천평

그동안 한국에 이 도시를 소개하는 다수의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이 책만큼 건축, 역사, 문화, 문학, 인물 등 한 도시의 전 분야에 대한 입체적 조감을 통해 깊이 있고 흥미롭게 서술한 책은 보지 못했다. 저자는 미국인임에도 러시아인 못지않은 애정과 지식으로 러시아 도시의 공간과 시간을 날줄과 씨줄로 유려하게 엮어, 3백 년 도시 역사를 마치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성장소설처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 이대식 박사의 ‘추천의 말’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는 자에게 이 책보다 더 나은 동반자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 [포린 어페어스]

링컨의 문학적 재능을 가감 없이 증언하는 책이다. 상류층과 일반 대중 사이의 터무니없는 삶의 간극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뉴욕 타임스]

박식하고 우아하게 쓰인 이 책은 링컨을 러시아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모든 장점을 갖고 있다.
- [초이스]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장소의 어마어마한 페이소스를 포착한 책. 이 도시가 어떻게 이 페이소스를 얻었는지 그 느낌 그대로 이해하게 해준다.
- [파이낸셜 타임스]

링컨의 열두 번째이자 마지막 책인 이 책은 그가 러시아 역사의 모든 시기를 되살아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타임스]

정취 넘치는 한 편의 교향곡과도 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전기. 링컨은 부드럽게 가르치면서도 깊은 감정을 끌어낼 줄 아는 타고난 작가이다.
- [러시안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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