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한일관계사 연구 (독서)/1.조선통신사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 해유록

동방박사님 2022. 4. 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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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신유한(1681~1752)은 18세기 전반을 풍미한 문장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선계를 떠올리기도 하고, 일본인의 소박하고 청결한 생활 습관과 정교한 기술에 감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임진왜란의 참상을 떠올리며 일본의 강성한 군사력을 경계하고, 일본인의 일상에 스며든 군사 문화를 지적하는 등 일본 사회가 지닌 모순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하였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일본을 알기 위해 필요한 다채로운 정보가 가득하다. 일본의 정치·역사·지리·제도·군사 등에 관한 세밀한 관찰과 세밀한 서술은 일본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풍부하고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목차

해가 뜨는 곳, 일본
신선이 사는 섬 아이노시마
지노시마의 어느 노부부의 초가집
일본의 목구멍 아카마가세키
후쿠젠지의 절경
아름다운 항구도시 우시마도
효오고의 바닷가에서
포로 마을 진주도
비와 호를 지나며
백옥 같은 후지 산

가깝고도 먼 나라
오오사카 기생을 노래한 시
남창을 노래한 시
에도에서 구경한 희극
일본의 음식 문화
밀감 향기로 지은 시
일본인의 기호품 차와 담배
반드시 무릎을 꿇고 앉는 이유
정교하고 청결한 집
아기자기한 생활용품

나니와 강의 황금 배
나니와 강의 황금 배
무지개다리 사이로
천하 으뜸의 도시 오오사카
오오사카에서 출간된 조선 서적들
교오토의 밤거리를 거닐며
폭포가 웅장한 호오타이지의 정원
바닷가에 우뚝 솟은 에도 성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상인

국서를 받들고
한갓 고을 태수에게 절을 하라니
국서를 받들고
관백의 회답서
한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절 다이부쓰지
통역관의 인삼 밀무역

무력을 숭상하는 나라
허수아비 천황
천혜의 군사도시 에도
『산해경』에 그려진 일본
서복이 일본으로 간 까닭
강산의 기운이 사람을 낳으니
일본의 관직 제도
무력을 숭상하는 나라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일본인

꿈같은 만남과 이별
측간 귀신이 사람을 미혹하는 듯한 글
영특한 아이에게 지어 준 자와 호
용맹하고 검소한 요시무네 장군
관변 학자 하야시 가문
일본의 유학자들
한문을 모르는 에도의 벼슬아치
꿈같은 만남과 이별
고결한 처사 도리야마 시켄
대나무를 사랑하는 승려
이별의 선물
아메노모리 호오슈우의 눈물

해설
신유한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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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신유한
신유한(申維翰)은 1681~1752.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 조선 후기의 문장가이자 시인. 1719년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일본을 다녀와서 쓴 『해유록』(海游錄)은 사행록 가운데 백미라 일컬어졌으며, 일본에 관심을 가진 조선 문인들에게 필독서가 되었다. 빼어난 문학적 재주를 지니고 있었으나 서얼이라는 신분적인 한계 때문에 미관말직을 전전하였다. 저서에 『청...
 
편역 : 이효원
부산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논문으로 「허목(許穆)과 오규우 소라이(荻生?徠)의 상고주의 문학사상 비교연구」, 「신유한의 ‘낭화여아곡’(浪華女兒曲)과 일본의 성(性) 풍속」이 있다.
 
 

출판사 리뷰

통신사행록의 걸작 『해유록』의 정수를 읽는다!

조선 통신사행의 견문과 경험을 그려낸 신유한(1681~1752)의 『해유록』은 문학성과 기록성을 고루 갖춘 사행록의 걸작이다. 이 방대한 글의 정수만을 모아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으로 엮었다. 1719년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행의 여정을 따라가며 글을 읽되, 때로는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주제별로 밀도 있게 엮어 『해유록』의 진면목을 담았다. 조선 문인 신유한은 18세기 일본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리고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중세 일본 교토의 밤거리를 홀로 거닐었던 신유한의 사유를 따라가보자.

단순한 ‘기록’이 아닌 ‘문학’으로서의 일본 견문록

역대 통신사행록을 모은 『해행총재』(海行摠載)의 제1권에 실려 있는 신유한의 『해유록』은 다른 사행록들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통신사행록이 견문을 날짜순으로 쓴 단순한 기록인 데 반해, 신유한의 이 책은 문학적 감수성이 두드러진다는 데 있다. 이러한 차이는 신유한의 이력에서 찾을 수 있다.
신유한은 조선 숙종 시절에 태어나 당대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던 시인이자 문인이었다. 통신사의 일행으로서 그가 맡았던 임무는 제술관(製述官)이다. 제술관은 시문(詩文)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조선의 학문과 문화의 첨단을 선보여야 하는 직책이었다. 그러므로 역대로 제술관의 직책은 당대의 문장가 중에서 선발했다.
신유한의 문장가로서의 역량을 반영이라도 한 듯이, ‘기록물’에 가까운 기존의 사행록에 비해 신유한의 『해유록』은 일본에서의 견문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낸 한 편의 ‘문학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후기 당대에도 집집마다 『해유록』을 두고 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일본에 관한 풍부한 인문지리적 정보를 담고 있으며 다루는 소재 또한 풍부해서, 박지원·이덕무·정약용·이규경 등이 일본을 알기 위해 이 책을 필독서로 참고하였고, 근대의 대표적인 국문학자인 김태준은 『해유록』을 『열하일기』와 쌍벽을 이루는 기록문학이라 손꼽기도 했다.
일본이라는 이국(異國)의 산천을 보며 느낀 감회뿐만 아니라 통신사행의 제술관으로서 수행한 업무, 그리고 일본 막부와의 사이에서 겪게 된 일에 이르기까지, 신유한의 글은 유려한 문체와 풍부한 정서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을 통해서 18세기 초 일본의 최첨단을 목격한 한 ‘조선 문인’의 개성과 통찰력을 한껏 음미할 수 있다.

적개심만으로는 일본을 파악할 수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지 겨우 10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1719년. 여전히 적국(敵國)인 일본 땅에 발 디딘 조선인의 심정은 편치 않다. 이는 일본을 그려 낸 조선 후기 사행록의 주된 정서이기도 했다. 중화(中華)에 소속되지 않은 미개한 땅, 조선을 유린한 불구대천 원수의 땅이라는 생각은 당시 모든 사행록을 지배하는 정서였다.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본 일본은 그저 친척 간에도 혼인을 하고 한자로 된 문학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문맹의 나라, 야만인의 나라였다.
그러나 신유한의 시야는 당시 조선인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단순한 적개심과 편견에 갇히지 않았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잡혀간 조선 진주 지역 사람들이 일본에서 진주도(晉州島)라는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을 기록하며 일본인의 잔악성에 치를 떨기도 하지만〔 포로 마을 진주도〕, 동시에 일본의 정치 조직과 군사 제도 등을 날카롭게 관찰하였으며, 일본 무사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나 천황과 쇼군으로 분리된 이원적 정치 체제를 분석하였다.
한편 화려한 상업 문화 속에 꽃핀 번화한 대도시 오오사카와 나고야, 또 개항된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의 낯선 모습은 선진 문화의 사절로 자부하는 조선인에게 놀라운 광경이었다. 신유한 역시 이 화려한 물질문화에 때로는 압도되고 기탄없이 놀라워하는 동시에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따져보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일본의 음식 문화, 차를 끓여 물처럼 마시는 풍속, 청결 및 위생 관리 방법 등 신유한의 관찰은 사소한 데까지 이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높은 관리가 명령을 받들어 길을 가더라도 스스로 반장(飯藏)이라는 조그만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할 뿐 각 지역의 역참에서 번거롭게 접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고 있다〔 아기자기한 생활용품〕. 신유한이 이것을 기록한 의도가 잘 느껴지지 않는가.
편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 속에서 신유한은 일본 사회와 조선 사회를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일본을 ‘왜국’, ‘오랑캐’라 낮춰 부르던 조선인의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도, 여정 속에서 만나는 각종 사물과 현상을 최대한 편견 없이 대하고자 하는 그의 탐구심은 여전히 일본과 마주하는 현대 한국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중세 일본인의 생생한 목소리와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다

신유한의 탁월함은 특히 인정(人情)과 세태를 서술하는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남들은 겨울밤 길다 하지만
나는 봄날이 길다 말하죠.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열 번 즐기고도 남으니까요.

사랑하니 훗날을 기약하자며
나더러 정조를 지키라 하네.
주인이 돈 받으러 올 텐데
그 돈을 어찌 마련하라고.
-「오오사카 기생을 노래한 시」

매일 대낮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유곽의 생생한 모습의 이면에, 포주에게 화대를 뜯기는 기생의 고달픈 삶까지도 기생의 목소리를 빌려 담아 낸 신유한의 풍속 시는 현대인의 시선으로도 파격적이다. 남창(男娼) 풍속이 조선에서는 금기시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일반화된 모습이었다. 신유한은 이러한 일본의 성 풍속에 대해서 무작정 배격하거나 입을 닫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한 흥밋거리나 노리갯감으로 그들을 대상화한 것도 아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며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시를 적었다.
여정 속에서 만나는 여러 일본인들의 모습도 풍부한 대화와 행동 묘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접한 수많은 일본인들을 보며 신유한은 조선의 유학 수준에는 한참 뒤떨어지는 일본인의 전반적 학문 수준을 한심해하다가도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에게는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몇 개월에 걸친 사행에서 서로 정이 든 일본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신유한의 다감함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웃음이 나고 때로는 콧날이 시큰해지는 정감 있는 대화 속에서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다양한 사람들과 조선 문인이 나눈 생생한 생각과 감정을 접할 수 있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정제된 언어로 『해유록』을 번역하다

이번에 출간된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은 돌베개 우리고전100선 시리즈의 15번째 책이다. ‘우리고전100선’은 품격과 아름다움과 깊이를 갖춘, 그러면서도 21세기 한국인이 부담감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 고전을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고지식한 고전의 이미지와 레퍼토리를 탈피해, 정확하게 번역하되 고등학생 이상이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대어 문장이 되도록 각별히 신경 썼고, 이해를 돕는 간단한 해설을 붙였다.
이 책은 특히 일본어 고유명사를 일본어로 읽고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고전 번역에서는 “낭화(浪華)강을 거슬러 올라가 대판(大阪) 시내로 들어가니 풍신수길(豊臣秀吉)을 위해 지은 절이 있었다”라고 표기하는 식으로 일본어 고유명사에 해당하는 한자를 한국어 식으로 읽어 오곤 했다. 그러나 『해유록』과 같이 외국을 기행하며 겪은 일을 적은 기행문학의 경우 그것이 현지의 어느 지명을 가리키는 것인지 바로 알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었다. 특히 고유의 방식으로 한자를 읽어 온 일본의 경우에는 그런 점이 두드러지며, 그중 다수가 현재에도 남아 있는 지명이거나 한국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이름인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에서는 원칙적으로 일본의 고유명사는 일본어의 독법으로 읽어, “나니와(浪華)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오오사카(大阪)로 들어가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위해 지은 절이 있었다”처럼 해당 이름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읽히는지 바로 알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더욱 자연스럽고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