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 607

강감찬 전시관

강감찬 장군상 1997년부터 낙성대 공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감장군상 입니다. 갑옷에 투구를 눌러쓰고, 매서운 눈매를 한 채 말에 올라 타 있어요. 왼손으로는 말을 다루고 오른손에는 검을 들어 흡사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장수將帥의 모습이지요? 최고의 명재상이자 명장인 강감찬 문무를 겸비한 강감찬 강감찬은983년 (성종2년) 36세 나이로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차례 승진하여 1009년 (현종즉위년) 예부시랑 (禮部侍郞)으로서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1010년 거란의 2차칩입 때에는 현종에게 거란과 끝가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남쪽으로 피신하도록 권하여 조정을 보존하였다. 1011년에는 충추사로 승진하여 사직단을 설치하고 의례를 정비하는 등 현종을 도와 왕권의 기틀을..

낙성대 : 강감찬장군 생가터

落星垈, Nakseongdae 서울특별시 관악구 낙성대로 77 (봉천동). 고려-거란 전쟁의 영웅으로 유명한 고려시대의 명신 인헌공 강감찬이 탄생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별이 떨어진 곳이라 하여 낙성대(落星垈)이다. 사실 낙성대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도 있었는데, 개경에 있었던 강감찬의 집을 가리켜 '낙성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개경 낙성대는 본 항목에서 설명하는 서울의 낙성대와는 반대로 강감찬이 사망할 때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내부는 강감찬의 사당인 안국사와 공원으로 되어있으며, 공원 가운데에 강감찬 동상이 있다. 예전과는 달리 재정비되어 꽤나 갈만한 곳으로 변했다. 낙성대로 올라가는 큰 길에는 강감찬의 일생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강감찬(姜邯贊)장군 강감찬(姜邯贊) 또는 姜邯瓚 (94..

건국대학교 캠퍼스 방문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建國大學校 , Konkuk University)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있는 서울캠퍼스(본교)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글로컬캠퍼스(분교)로 이루어진 사립대학이다. 1946년 조선정치학관을 설립하였고, 1949년 9월 재단법인 정치학원과 대학기관인 정치대학으로 승격하였다. 1959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현재 교명으로 개칭하였다. 약칭은 건대(建大)이다. 역사 1946년 5월 15일 오성학교 교사 395평(현 낙원동 건국빌딩)의 건물에 조선정치학관을 설립하였다. 1949년 9월에 재단법인 정치학원과 대학기관인 정치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55년에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모진동에 70만평의 캠퍼스를 마련, 1959년 2월 재단법인 건국대학원과 종합대학인 건국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80..

국민대학교 캠퍼스 방문

국민대학교 국민대학교(國民大學校, Kookmin University)는 대한민국의 사립 종합대학이다. 1946년 9월 1일 서울 창성동에 국민대학관으로 설립되었다. 독립 후 김구, 조소앙, 신익희 등 임시정부 각료들은 긴 시야에서 민족 지도자를 길러낼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하였고, 그것이 곧 국민대학교의 기치가 되었다. 국민대학교 설립의 주요인물 중 하나였던 신익희가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국민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 북악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10개 본부처 및 1개 산학협력단, 39개 부속 및 부설기관과 52개 부설연구소, 14개의 단과대학 및 2개의 독립학부(교직과정부, 인문기술융합학부), 47개의 학부(과), 1개의 일반대학원과 3개의 전문대학원, 10개의 특수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석파정 石坡亭

석파정 石坡亭 '물과 구름이 감싸 안은 집' 이라 명명된 석파정(石坡亭) 은 조선의 왕이 선택한, 왕의 공간이다.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비바람을 견뎌낸 노송과, 건축물을 넘어 예술적 가치를 지닌 존귀한 공예춤 같은 집. 조선의 마지막왕, 고종은 이곳을 행전이나 행궁 시 임시 거처로 사용하며, 신하들과 함께 국정을 논의 하였고, 집을 둘러싸고 있는 빼어난 산수와 계곡, 사계의 아름다움을 모두 품어내는 궁극의 절경 앞에 자신을 겸허하게 내려 놓았다. 별서와 정자 흥선대원군 별서는 안채와 사랑채, 별채와 같은 살림채로 이루어져 있고 석파정은 중국풍으로 지은 정자이다. 별서의 사랑채는 담으로 둘러쌓인 안채와 떨어져 담 밖에 따로 지었다. ㄱ 자로 꺽어 지은 사랑채의 앞에는 서울시 지정 보호수 60호인 오래된 소..

석파정 石坡亭 : 왕이 사랑한 정원

석파정 (石坡亭) : 도심속 비밀정원 본래 7채의 살림채와 육모정 등 다양한 건축물로 구성된 흥선대원군 별서는 오늘날 안채> 사랑채, 별채와 정자로 4개동만 남아 있습니다. 당대 별서들과는 다르게 안채 이외에 별채가 잇고 이것을 높은 자리에 위치한 구성, 별채로 진입하는 협문, 과거에 있었던 꽃담 등은 왕이 묵던 곳으로서 손색없게 하려는 의도로 읽혀집니다. 대원군 사후 50년간 후손들에게 소유되었다가 한국전쟁 뒤에는 콜롬바 고아원과 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서울 미술관 개관관 함께 2012년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석파정은 빼어난 산수를 배경으로 옛 조상들의 풍류 문화와 예술적 정취에 대한 이상을 전해주는 도심속 비밀 정원 입니다. 석파정(石坡亭)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흥선대원군 별서(興宣大院君 別墅)에 ..

고려대학교 캠퍼스 방문

고려대학교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정릉동에 위치한 사립 종합대학이다. 1905년 충숙공 이용익이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근대적 사립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32년 인촌 김성수가 학교를 인수하였고 해방 후 1946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며 교명을 고려대학교로 하였다. 약칭은 고대(高大)이며, 영문명 Korea University의 약칭은 KU이고, FM구호는 민족고대이다. 1. 야성, 저돌성, 중후함, 수수함 고려대학교의 교풍은 야성, 저돌성, 중후함, 수수함 등으로 대표되어 왔고, 현재도 통용된다. 대학의 상징동물인 호랑이, 캠퍼스에 서 있는 다수의 육중한 석조건물 등 고대를 대표하거나 '고대' 하면 떠오르는 상징들은 대부분 이러한 특징들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2. ..

해방촌 (숭실학교 옛터,경성호국신사터,108계단)

해방촌 숭실학교 터 이야기 평양에서 개교한 숭실학교는 1950~70년대 이곳 해방촌에 터를 잡았습니다. 숭실학교는 일제강범기 신사참배거부로 강제 폐교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숭실학교가 남하하여 자리를 잡은 이터는 일제강점기 경성호국신사가 잇던 곳입니다. 일제의 신사가 있던 아픔의 장소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가 터 잡아 교육의 산실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사연을 간직한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해방촌 숭실학교 터 이야기와 숭실학교가 배출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학교 터의 이력 경성호국신사: 1943~ 1945-> 숭실학교: 1954~1978 -> 정일학원: 1979~1998 -> 센테니얼크리스찬스쿨: 1989(개교)~2016 -> 미네르바스쿨 2018~ 경성호국 신사터 : 현재 해방모자원 밎..

해방촌 (한신옹기, 해방촌성당, 해방교회,보성여중고,해병대초대교회)

한신옹기 서울미래유산 2017 한신옹기는 녹사평로에서 해방촌 진입부에 위치한 도기상점으로 항아리, 도자기, 찻잔 등을 판매한다. 한신옹기는 1967년에 개업하여 해방촌 서민들의 삶의 " 추억을 담고, 전통을 저장해온" 마을의 대표상점으로서, 미군부대 경계벽을 따라 샇여 있는 옹기들은 마을과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한신옹기는 "서울시민의 기억과 감성이 담긴 가치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평가되어 '서울미래유산(2017)" 으로 선정되었다. 해방촌성당 천주교 해방촌교회 해방촌성당(1954)은 1950년대 초 신자의 주택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설립되어 서울대교구 소속의 성당으로 1983년에 본당을 신축하며 나눔의 공동체로 기능해 왔다. 측히 해방촌 성당은 마을 어르신을 위한 노인대학, 독거노인을 ..

성균관 대학교 명륜당

성균관 대학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2 및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서부로 2066 소재의 4년제 사립대학교. 1398년[8] 개성에서 한성부 숭교방으로 성균관이 이전되었고, 기존의 개성 성균관은 향교로 격하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이래 성균관에 경학과[9]가 설치되었으며 근대적 제도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술국치 이후 성균관은 경학원(經學院)으로 개칭되었으며 근대적 대학 교육의 기능도 중단되었다. 이후 유림들에 의한 성균관 교육기능의 회복 움직임의 영향으로 부설된 교육기관인 명륜전문학교 마저도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1943년 폐교되었다. 비로소 광복 후 군정법령]에 의해 명칭이 성균관으로 회복되었고, 명륜전문학교가 부활하였다. 이후 전국유림대회를 통해 유림 천여 명은 성균관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