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 607

강화도 갑곶돈대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5년) 5월에 완성되었고 망해돈대, 제승돈대,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77년에 엣터에 새로이 옛 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진품)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여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강화도 갑곶돈대 (비석군)

조선시대 선정을 배푼 유수.판관.경력.군수의 영세불망비 및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禁標), 삼충신(三忠臣)을 기리는 삼충사적비 등 총67기 비석이 모여 있다. 조상들의 자연보호정신을 엿볼수 있는 표석인 금표는 1733년 (영조9) 강화유수부 (고려궁지) 앞 등지에 세웠던 것으로 '가축을 놓아 기르는 자는 곤장100대, 재나 스레기를 버리는 자는 곤장 80대를 친다" 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해발 48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1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고 있으며 면적은 2.2 제곱 km이다. 남한산서의 본성은 인조 2년 (1624)에 통일신라시대 주장성의 성돌을 기초로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 옹성 3개, 문 4개, 암문 16개, 우물 80개, 샘 45개 등을 만들었다. 외성은 병자호란 이후 샇여진 것으로 본성과 시차를 두고 구축됨으로써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기별 성을 쌓는 기법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남한산성 내에는 200여 개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자연환경과 더불어 산성 내 구석구석이 역사와 설화가 깃들어 있다.

남양주 오남저수지

남양주시 오남리에 위치한 오남 호수공원은 2008년 오남저수지를 새롭게 공원화하여 지금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재탄생하였다. 오남 호수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경치가 아름답고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조용하게 명상을 즐기기에도 좋다. 아름다운 쉼터들이 있어 가벼운 산책로 사람들이 즐겨찿는다.

포천아트벨리

천주산 자락에 위치한 포천 아트밸리는 196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인 화강암 채석장이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양질의 화강암 (포천석)이 생산되지 않자 환경이 파괴된 채 흉물스러운 폐석장으로 남아 있다가 포천시에서 국내 최초로 친환경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당시 채석장은 화강암을 더 이상 캘 수 없어서 폐채석장으로 방치되어 있었고, 이에 대한 활용방안으로 2009년 10월 포천 아트밸리로 재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포천아트벨리 천주호(天柱湖)

196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화강암을 채석하며 파들어간 약 20m의 웅덩이에 빗물과 샘물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호수입니다. 호수에는 1급수에서만 서식 가능한 도롱뇽, 가재, 피라미 등이 시나브로 유입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 화강암은 약 1억9천에서 1억5천전에 가장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알려진 대보조선 운동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이시기에 대규모의 마그마가 수차례 관입하여 형성한 화강암류를 대보화강암이라 합니다. 아트밸리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지질구조는 절리발달에 의한 토르(탑바위 또는 선바위)가 있습니다.토르는 지하에서 압력을 받고 있던 암반이 지표에 노출될때, 그 압력이 사라지면서 수평, 수직 절리가 발달하게 됩니다. 이후 질리를 따라 물과 바람 등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고 푸석바위..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

봉선사(奉先寺)는 고려(高麗) 광종(光宗) 20년 (969)에 법인국사 탄문(坦文)이 운악산 (雲岳山) 기슭에 창건하고 운악사(雲岳寺)라 칭하였다고 한다. 운악사는 세종 때 7개의 종파 선종과 교종, 양종,으로 통합됨에 따라 혁파되었다가 예종 1년 (1469)에 정희왕후 윤 씨가 선왕인 세조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 개칭하였다. 봉선사는 명종 6년 (1551)에 교종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 진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고종 광무 6년(1902)에는 경기도 내 전사찰을 관장하기도 하였다. 1962년 전국의 사찰 중 제25교구 본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지금에 이른다. 이 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수차례 중수하였으나, 한국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