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선시대사 이해 (책소개)/5.조선역사문화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조선 400년 명문가 탄생의 비밀

동방박사님 2022. 5. 2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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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 선비의 호를 알면 조선의 역사가 보인다!”
조선 최고의 풍운아 정도전부터 수백 개의 호를 취한 명필 김정희까지, 조선사 500년 주인공들의 이름을 철저히 분석하고 집대성한 최초의 책!


이름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의지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징표다. 사람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면 그 사회의 정치적ㆍ경제적 상황을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역사를 만든 주인공들의 이름과 그 안에 담긴 뜻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호(號),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정약용, 이이, 김홍도, 이황, 정도전, 박지원, 김시습, 정조 등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간 천재들의 호(號)를 최초로 분석하고 집대성한 책이다. 그들은 세상에 초연해지고자 하는 바람과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다짐을 호(號)에 담아서 표현했다. 중간 중간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비들의 아름다운 시와 산문은 이 책의 백미(白眉)다. 선비들은 시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산문을 통해 왜 자신이 이러한 호를 쓰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또한 이 책은 조선 선비들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인물들의 호 또한 소개하고 있다. 현대 국어를 다듬은 한힌샘 주시경 선생부터 대한민국의 기반을 마련한 백범 김구, 가까이에는 대통력을 역임한 후광 김대중 대통령과 거산 김영삼 대통령까지 바야흐로 대한민국 인물들의 모든 호(號)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

 

목차

머리말 호(號)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제1장. 여유당 정약용
― 남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제2장. 율곡 이이
― 기호사림의 본향

제3장. 면앙정 송순과 송강 정철
― 가사 문학의 산실(産室), ‘면앙정’과 ‘성산’

제4장. 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오원 장승업
― 조선의 대표 화가, 3원(三園)

제5장. 남명 조식
― 대붕의 기상을 품은 산림처사

제6장. 삼봉 정도전
― 도담 삼봉인가? 삼각산 삼봉인가?

제7장. 퇴계 이황
― 평생 ‘물러날 퇴(退)’ 한 글자를 마음에 품고 살다!

제8장. 일두 정여창·사옹 김굉필·정암 조광조·회재 이언적
― 선비 정신의 사표(師表), 동방 사현

제9장. 매월당 김시습과 서계 박세당
― 수락산이 맺어준 200년의 인연

제10장. 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 조선의 관포지교, 오성과 한음

제11장. 화담 서경덕과 토정 이지함
― 송도삼절과 최초의 양반 상인

제12장. 교산 허균과 죽도 정여립
― 만민평등과 천하공물을 부르짖은 두 혁명가

제13장.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
― 땅끝 마을 해남에서 꽃피운 예술혼

제14장.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 조선의 주자 vs. 사문난적

제15장. 반계 유형원과 잠곡 김육
― 개혁을 설계한 땅, 부안 우반동과 가평 잠곡

제16장. 성호 이익과 순암 안정복
― 실학의 산실(産室), ‘성호학파’

제17장.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
― 북학파의 비조(鼻祖)

제18장. 홍재 정조 이산
― ‘임금은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는 군사(君師)라 자처한 제왕

제19장. 청장관 이덕무와 초정 박제가
― ‘기호(記號)’와 ‘소전(小傳)’, 글로 그린 자화상

제20장. 추사 김정희
― 추사(秋史)인가? 완당(阮堂)인가?

부록 1. 자설(字說) : 자(字)란 무엇인가?
부록 2. 작호론(作號論) : 호(號)는 어떻게 짓는가?
부록 3. 조선 시대 인물들의 자호(字號) 소사전
부록 4.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號) 소사전
 

 

 

저자 소개

저 : 한정주
 
1966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 석산고와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사마천의 ‘사필소세史筆昭世’(역사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 정신과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철학을 바탕으로 역사와 고전의 현대적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목표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인사동 한 모퉁이에서 역사와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 ‘뇌룡재’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헤드라인 뉴스〉에 인문과...

사진 : 권태균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샘이 깊은 물〉 〈월간중앙〉 등의 사진기자와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고 한국사와 관련된 역사 현장을 두루 답사했으며, 일본과 아시아권에서 사진을 요청해올 정도로 방대한 한국사 사진을 보유하고 있다. 생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문위원,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책 속으로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더욱이 호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자의식)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뜻과 의지 역시 읽을 수 있다.
--- p.5,「머리말」중에서

내 병은 내가 스스로 잘 안다. 결단력이 있으나 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른다.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동하며 의심할 줄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일인데도 마음이 움직이면 억제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에 걸려 찜찜한 구석이 있게 되면 그만두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의심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볼 줄 몰랐다. 서른이 넘어서 지난날의 잘못을 깊게 깨달았으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선(善)을 끊임없이 좋아하였으나 세상의 비방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 이것이 내 운명이란 말인가! 이모두가 타고난 내 본성 때문이니, 어찌 내가 감히 운명을 탓할 수 있겠는가! 나는 노자(老子)의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이라 했다. 이 두 마디는 참으로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싶다. - 『다산시문집』, 「여유당기」
--- pp.15-16,「여유당 정약용」중에서

동인의 탄핵을 받아 네 번째로 낙향한 지 4년이 지난 1589년, 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이른바 ‘정여립 역모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동인이 실각하자 정철은 우의정에 발탁되어 중앙 정계로 복귀한다. 그는 이때 ‘정여립 역모 사건’을 국문하는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그런데 정철은 마치 고향으로 쫓겨나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던 지난 세월을 복수라도 하듯이 동인 세력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중략)…그에 대한 업보였을까? 정철 또한 당쟁의 피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또다시 동인의 탄핵을 받아 강화도의 송정촌(松亭村)에서 말년을 보내다 죽음을 맞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정철은 성산 앞을 흐르는 아름다운 내(강), ‘송강’의 자연 풍경은 물론 그와 하나 되어 사는 선비들의 삶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문학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러나 정치가 정철은 ‘송강’의 아름다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잔혹한 ‘살인귀’의 이미지를 남기고 있을 뿐이다.
--- p.75,「면앙정 송순, 송강 정철」중에서

정도전의 삶과 죽음을 볼 때, 그는 유학(儒學)을 배우고 벼슬에 나선 이후 죽을 때까지 철저하고 완벽하게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유배형에 처해지고 개경 출입이 금지되어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유랑 생활을 했던 9년여의 암울한 세월 동안에도 정치적으로 재기할 날을 기다리며 준비를 했을망정 결코 정치에 대한 뜻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까닭 때문이라도, 모계(母系)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갖은 정치적 곤욕을 치렀던 정도전이 외가와 관련이 있는 단양의 ‘도담 삼봉’을 자호(自號)로 삼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 p.145,「삼봉 정도전」중에서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왕위에 오른 정조는 왕세손 시절 호에 새긴 ‘홍(弘)’ 자의 뜻처럼 넓은 도량으로 정적들을 상대했다는 점이다. 정조는 임금이 되자 가장 먼저 자신이 일찍이 노론 세력이 역적으로 몰아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고 왕실과 조정의 대신들을 몰살하다시피 한 연산군처럼 피의 복수를 가하지는 않았다. 물론 화완옹주,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 자신을 직접적으로 해치려고 모의한 역적들과 그 추종 세력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중형(重刑)을 가했다. 그러나 이들의 뿌리이자 최대 정적이었던 노론(老論)이라는 붕당에 대해서는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대우했다. 일찍이 왕세손 시절 ‘홍재’라는 자호에 담았던 뜻처럼 넓은 도량으로 정적인 노론의 신하들을 대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조가 폭군 연산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오히려 세종과 더불어 조선사를 빛낸 최고의 성군으로 자신의 치세(治世)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pp.504-505,「홍재 정조 이산」중에서
 

출판사 리뷰

조선의 선비들은 어떻게 이름을 지었을까?
평생의 다짐이 담긴 엄숙한 이름부터 외모와 성격을 표현한 재미난 이름까지!


오늘날 우리는 평생 하나의 이름만 사용한다. 처음 만나는 이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중요한 문서에 서명할 때, 친구들과 웃으며 서로를 놀릴 때에도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때로 필명이나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 역시 그 이름을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라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달랐다. 부모와 스승이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 처음 만나는 이에게 소개하는 이름이 달랐으며, 친한 친구들끼리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명(名)과 자(字)와 호(號)가 바로 그것이다.

이 셋 중에서 가장 독특한 이름이 바로 호(號)다. 명(名)과 자(字)는 부모나 스승이 지어주므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반면, 호는 자신이 마음대로 지어서 부를 수 있었다. 명과 자가 태생적으로 타고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호는 자신의 의지와 사상, 성격이 담긴 개성적인 삶의 지표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조선 선비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인물의 호를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호를 지었을까?

사실 호를 짓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자신이 불리고 싶은 호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조선 선비들의 호를 분석해보면 ‘율곡’ 이이나 ‘연암’ 박지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지명을 호로 삼거나, ‘퇴계’ 이황이나 ‘초정’ 박제가처럼 마음에 품은 의지를 호로 삼은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나 ‘단원’ 김홍도처럼 취향을 호로 삼은 경우도 있었으며, ‘표암’ 강세황처럼 자신의 생김새를 드러낸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유몽인은 ‘쓸데없는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스스로를 희화화해서 ‘어우당’이라고 짓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 선비들의 호에는 선비들의 의지와 그 시대의 유행, 개개인의 개성이 가득 담겨 있다.

조선을 지키고 조선을 뒤흔든 선비 정신의 모든 것
선비들의 이름 속에 숨겨진 운명과 야망, 조선 500년 역사의 비밀을 풀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 그는 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을까? 역사학자들은 정도전이 태어난 충북 단양의 비경 도담 삼봉에서 그의 호가 유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은이 한정주 역사평론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각종 문헌을 분석한 결과 정도전의 호가 삼각산 삼봉, 즉 오늘날의 북한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도전은 한양이 내려다보이는 삼각산(북한산)에서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역성혁명의 큰 꿈을 품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정도전의 야망이 ‘삼봉’이라는 그의 호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정도전과 달리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정적들을 피해 끝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던 선비도 있다. 바로 조선 최고의 실학자 ‘여유당’ 정약용이다. 그는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與〕,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여유당’이라 짓고 미래 세대를 위한 저술에 매달렸다. ‘다산’이라는 호 역시 차를 즐겨 마신 자신의 취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흥미로운 이름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임금이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 자처한 ‘홍재’ 정조 이산과 누구보다도 큰뜻을 품었던 산림처사 ‘남명’ 조식, 진정한 선비 정신을 발휘한 ‘사옹’ 김굉필과 ‘정앙’ 조광조, 만민이 평등하다고 주장했던 ‘고산’ 허균과 개혁을 꿈꾸었던 운동가 ‘죽도’ 정여립 등 조선을 지키고 조선을 뒤흔든 선비 36명의 호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3원, 즉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그리고 문학의 격을 한층 끌어올린 ‘송강’ 정철과 ‘면앙정’ 송순, 중국에서도 인정한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 등 문화 예술계에서 이름을 날린 선비들의 호도 철저하게 분석해놓았다. 그야말로 조선 선비의 이름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두 번 다시 세상에 등장하기 어려운 최초의 호(號) 백과사전인 셈이다.

조선 시대부터 오늘까지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 키워드, 호(號)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되살아난 조선 선비들의 생생한 목소리!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는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누구보다도 깊이 고민했던 선비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백성의 아픔을 십분 이해하고 몸부림쳤던 진정한 선비 정신이 있었기에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은 명문가로서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한정주 역사평론가는 그러한 선비들의 목소리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직접 옛 문서들을 하나하나 현대적으로 풀이하고 재해석했다. 선비들의 풍류가 가득한 아름다운 시(詩)부터 작호의 근거가 되는 산문까지. 그만큼 오랜 시간 꼼꼼하게 공을 들여 만든 이 책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걸작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조선 선비들의 호뿐만 아니라, 국어학자 한힌샘 주시경 선생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후광 김대중까지 근현대사 인물들의 호와 그 의미 또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읽는 데 이 책은 유용한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의 큰 흐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지식인들이 이 책을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고, 훗날 자신의 이름이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 고민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