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생각의 힘 (책소개)/3.한국정치비평

부족국가 대한민국

동방박사님 2022. 6. 2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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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대한민국은 부족국가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이방인에 대한 감정은 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폭력 없이 강렬한 소속감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강렬한 소속감은 개인의 양심을 주형(鑄型)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영국 정치학자 몬트세라트 귀베르나우도 “소속감은 소외와 고독감에 가장 강한 해독제를 제공한다. 현대의 일부 개인들은 소속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중독, 지도자에 대한 복종, 강박적 순응 등 새로운 형태의 의존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개인의 성정과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오죽했으면,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이데올로기보다 두 배 더 중요하고, 리더십보다 여섯 배 더 중요하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또 미국 사회복지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험담하기와 괴롭히기 등 고통스러운 따돌림이 생겨나는 이유는 증오나 사악함 때문이 아니다. 바로 ‘소속감의 욕구’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니 소속감의 마력(魔力)에 취해 정신이 외출한 사람들은 소속감이나 유대감의 욕구 때문에 누군가에게 부당한 고통을 주는 행위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주의는 경험적으로 어떤 장소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족주의는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정치적 이념이다. 나름의 노선과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부족이나 패거리의 이익이다. 부족주의는 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익 투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부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한 권력’이라고 착각한다. 개혁을 위해서는 내로남불과 유체이탈은 불가피하며 때로는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부족주의에는 이런 집단 정서를 뒷받침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강철 같은 신념과 행동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부족에 대한 유불리를 따져서 판단하는 부족주의의 전사가 되었다. 모든 기준은 오직 자기 부족의 이해관계다. 자기 부족에 유리하면 극찬하고, 불리하면 탄압한다.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이 진보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밥그릇 공동체’에 가까운 ‘가짜 진보’다.

강준만의 『부족국가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오만과 위선과 무능을 비판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이어 세 번째의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권의 사전에는 성찰이 없다. 성찰이 없는 진보는 진보일 수 없다. 모든 잘못된 것은 보수의 탓이라는 적반하장(賊反荷杖)과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일관한다. 문재인 정권은 기껏해야 ‘보수 응징’ 세력이지 진보가 아니다. 적폐 청산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대표 슬로건이 말해주듯이, 보수 응징 이외에 이렇다 할 진보의 비전이 없다. 문재인 정권은 자기들 잘나서 정권을 잡은 것처럼 ‘싸가지 없는 진보’의 길로만 나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보수의 악마화’를 노린 ‘증오 마케팅’으로 일관했다. 자신의 반대편은 무조건 악마화하는 이들은 수십 년 전 운동권 시절의 멘털리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기 집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다. 아무리 프로이트가 “집단은 그 자체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집단을 흥분시키려면 자극도 극단적이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문재인 정권이 지지자들만의 정권이 아니지 않은가? 문재인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고 한 말을 상기해보라. 그러면서 자기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정의의 선봉에 선 의인(義人)이라고 극찬을 해댄다. 문재인 정권의 치명적인 문제가 성찰의 부재에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목차

머리말 : 아침에 진실했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된다 _5

제1장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다
왜 보수 언론 좋아할 글만 쓰는가? _17
‘정신적 대통령’, 김어준의 비극 _24
부동산 문제마저 ‘우리 이니’가 옳은가? _33
박노자의 이중 기준 _38
진보 세력이 가루가 되도록 갈리는 이유 _45
검찰의 ‘의인화’와 ‘개인화’가 증오를 키운다 _52
‘평등’을 희생으로 한 ‘적폐 청산’ _61

제2장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우주 최강 미남 문재인’과 호남인 _69
문재인의 ‘가부장제 페미니즘’ _78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재인의 마음 _86
문재인 정권의 ‘컨트롤 타워’가 된 문빠 _92
문빠가 아산의 반찬가게 주인을 괴롭힌 이유 _102
‘팬덤 민주주의’를 넘어서 _107

제3장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리더십보다 중요하다
부족국가 대한민국 _115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 _123
부족주의엔 역지사지가 없다 _129
변창흠의 부족주의 _134
밥그릇을 나누어 먹지 않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139

제4장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윤석열이 ‘악마’이길 비는 사람들 ?149
‘윤석열 악마화’와 ‘김명수 천사화’ _160
검찰 개혁, 목욕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린다 _167
공무원의 영혼, 꼭 죽여야 하는가? ?174
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 _181
‘공익 신고 탄압당’으로 변신한 민주당 _190

제5장 독선과 아집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협치’를 하면 나라가 망하는가? _197
언제까지 ‘토착왜구’로 먹고살 생각인가? _202
금태섭의 ‘이중 구속’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 _208
‘정치 근육’의 저주 _215
정치를 최소화하면 안 되는가? _220

제6장 위선은 공정성을 잠식한다
위선은 진보의 특권이 아니다 _227
당위와 위선 사이에서 _232
빈곤 문제를 외면하는 가짜 진보 _237
‘사람이 먼저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폐기하라 _241
민생을 돌보는 데에 증오는 필요 없다 _248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_253

제7장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
더불어지역당 창당 선언문 _261
국가균형발전을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가? _266
‘공사 구분’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 _279
한국을 움직여온 ‘금의환향 이데올로기’ _284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_289
세습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교육 _293

제8장 우리도 틀릴 수 있다
해장국만 찾지 말고 술을 좀 줄이자 _301
나의 ‘참언론’은 누군가에겐 ‘기레기’다 _305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보자 _311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으면 안 되는가? _315
전문가는 결코 죽지 않는다 _319
경청과 소통이 먼저다 _323
 

 

저자 소개

저 : 강준만 (康俊晩)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책 속으로

김어준의 문제점을 아무리 지적해도 지지자들, 아니 신도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건 물론이고 오히려 김어준에 대한 열정만 더 강해진다. 그들에겐 그럴 만한 나름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너 감옥 갔다 왔어?”라는 말을 아시는가? 상대방이 “갔다 왔다”고 그러면 그다음 질문은 “얼마 살았어?”다. 운동권 출신들 중에선 감옥 다녀온 것이 훈장이며, 수감 기간이 길수록 훈장의 등급도 높아진다. 지금 나는 이걸 비웃는 게 아니다. 공정 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은 텍스트(말과 글) 자체보다는 텍스트 생산자의 과거를 따지는 걸 좋아한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너 감옥 갔다 왔어?” 멘털리티가 민주화 이후에 태어난 문빠들에게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게 “너 이명박근혜 땐 뭐 했어?”다. “이명박근혜를 불러들인 주범이 누구며, 어떤 책임을 졌어?”라고 묻는 법은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어준과 그 일행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정신적 대통령’, 김어준의 비극」중에서

왜 이런 유치한 내로남불을 저질러야 하는가? 야당이 반대하는 공수처법 통과를 위한 ‘입법 카드’로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다면, 그건 더욱 유치하거니와 부도덕하지 않은가? 아니면 정말 특별감찰관이 있으면 “비리를 저지르기 힘들고, 자칫 외부에 폭로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차마 그 말은 할 수 없어서 공수처법 핑계를 대면서 특별관찰관을 무력화한 건가? 문재인 정권은 힘으로 밀어붙여 2021년 1월 드디어 공수처를 탄생시켰지만, 여전히 특별감찰관을 외면한 걸 보면 달리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2021년 2월 중순에 터진 청와대 민정수석 신현수의 ‘사표 사건’ 시에도 특별감찰관 문제가 등장했다. 신현수가 문재인에게 “특별감찰관을 빨리 지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재인의 마음」중에서

부족주의는 습관이나 체질로 굳어지는가? 3월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변창흠의 부족주의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그는 “LH 직원들은 신도시 개발이 안 될 줄 알고 샀을 겁니다”라고 옹호성 발언을 함으로써 여당에서도 질책을 받았다. 그의 LH 사장 시절 직원들의 비위가 급증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왜 교수 출신이 비리에 그렇게 너그러운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교수 출신 고위 공직자가 지속적으로 지식인처럼 행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 이상론을 접고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변창흠의 부족주의」중에서

나는 반독재 투쟁 시 기승을 부린 이른바 ‘조직 보위론’의 망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편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걸 알리거나 비판하는 건 군사독재 정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절대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 이게 바로 조직 보위론이다. 이 조직 보위론은 독재 정권 시절 진보 진영 내부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비극적인 건 ‘조직 보위론 DNA’를 갖고 있는 운동가 출신의 정치인들이 독재 정권을 겪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이 DNA를 전파했다는 점이다. ‘조직 보위론’의 상처는 아직도 문재인 정권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
---「왜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지 못할까?」중에서

윤미향 사건 직전에 치러진 2020년 4·15 총선도 다를 게 없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라는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의 피켓 문구 사용을 불허한 반면 ‘100년 친일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 독려 문구는 사용을 허용해 편파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 민주당의 죄악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젊은 세대의 의식까지 ‘친일·반일’ 프레임이 자리 잡도록 집요한 선전·선동을 한 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빠들의 댓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 프레임이자 ‘토착왜구’와 같은 비난이라는 건 그들의 선전·선동이 효과를 보았다는 걸 말해주니,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가? 그래서 “유니클로 입는 검찰총장은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문빠들의 지극한 애국애족 정신에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할까?
---「언제까지 ‘토착왜구’로 먹고살 생각인가?」중에서

중대재해법 원안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당신들이 계속 미친 척하는 상황에서 이래도 답이 없고 저래도 답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경제, 정말 중요하다. 정치가 수렁에 처박혀도 나라가 그럭저럭 돌아가는 건 경제 덕분일 게다. 모든 경제인께 깊이 감사하다. 그러나 ‘사람 죽이는 경제’는 이제 안 된다.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보시라. 민생과 무관해도 정략적으로 이익이 될 일엔 눈이 충혈되지만, 민생 그 자체라 할 일일지라도 정략적 이익이 없으면 나 몰라라 하는 게 민주당의 기본자세임은 익히 잘 알고 있기에 놀랄 일도 없다. 최근 ‘국회의원 이해충돌방지법’을 놓고 미적대는 걸 보라. 자기들 밥그릇 건드릴 수 있는 건 한사코 마다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사기는 치지 말고 살아가자. 문재인 정권에 “사람이 먼저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공식 절차를 걸쳐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이 먼저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폐기하라」중에서

새만금이 선거용으로 출발했듯이, 가덕도 신공항도 선거용이라는 전철을 밟고 있다. 선거와 무관하게 평소 전반적인 국가균형발전을 추진할 수는 없는가? 문재인 정권엔 그럴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평소 지론이지만, 문재인 정권은 인구 집중의 폐해로 수도권 주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수도권 정권’이기 때문이다. 부산이 인천의 추격에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마저 내주어야 할 위기 상황에 내몰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덕도 신공항이 새만금 못지않게 문제가 많은 사기극일 수 있다고 의심할지라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부산 시민이 많을 게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비판적인 성결대학교 교수 우석훈은 차라리 부산 시민들이 스스로 다른 경제적 대안을 만들 수 있게끔 10조 원 정도의 예산을 쓸 수 있게 하는 ‘대타협 특별법’을 제안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가?」중에서

대화는 논쟁이나 토론이 아니다. 상대를 압도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말싸움을 벌일 필요도 없다. 왜 상대편이 내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어리석거나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문제에 대해 다 아는 척할 필요도 없고, 내가 옳다고 강변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는 자세를 잠시 유보하고, “우리도 틀릴 수 있고 너희도 맞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주기만 하면 된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모르겠는데요’라는 말만 계속 반복해도 대화는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고 했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로 대변되는 자기과시의 시대엔 시대착오적인 주문처럼 여겨질 게 틀림없다. 표현의 자유가 만개한 시대에 “내 생각도 말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할 사람도 많을 게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보자」중에서
 
 

출판사 리뷰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문재인 정권

한국에서 부족주의는 이념의 좌우를 초월하는 최상위 개념이다. 부족주의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이 노골적인 부족국가로 퇴행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미국 예일대학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는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시시대의 부족사회에서는 연고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부족이 연고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이나 갈등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필요했다. 세상이 발달하면서 부족사회나 부족국가는 사라졌지만, 그런 ‘부족 본능’은 살아남았다.
한국의 부족주의에 좌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해관계 충실도 수준이다. 보수가 비교적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다. 보수 부족주의의 전성시대는 박근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친박’의 정도를 따지며 온갖 유형의 부족이 난무했던 2015년이다. 결국 보수는 제 무덤을 팠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진보는 좀 다른 유형인 우리 편과 반대편의 경계를 선명하게 나누는 선악 이분법에 빠져들었다. 문재인 정권의 주체이자 핵심 세력은 민주화 운동가들이다. 이들은 국정 운영을 반독재 투쟁하듯이 하면서 ‘운동권 부족주의’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때는 바야흐로 진보 부족주의의 전성시대다. 다만 보수 부족주의의 전성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명분과 당위의 포장을 더 앞세우고 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부족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독재 투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군에 대한 충성이다. 민주화 투쟁 당시 집단에 대한 충성은 아름다운 미덕이었겠지만, 민주화된 세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민주화 투쟁은 거대한 적을 무너뜨려야 하는 투쟁이었기에 진보는 거대 담론과 총론에는 능하고 강하지만, 민생과 각론에는 무능하고 약하다. 더구나 이들은 민생을 소홀히 한 채 기득권과 정의를 동시에 독점하려고 하기까지 한다. 진보 부족주의의 스캔들은 아주 많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윤미향 사건과 박원순 사건이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부족국가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부족주의’는 친문 지지자들에게서 시작되어 이제는 그들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여당 정치인들도 덩달아 외치는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또 문재인의 인사는 부족주의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은 민주당 의원 황희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야당의 동의 없이 장관급 인사 임명을 강행한, 29번째 ‘야당 패싱’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문재인 정권이 ‘정치적 부족주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국정 운영을 부족주의 정서로 할 수 있는가? 이제 부족주의는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특징처럼 되어버린 내로남불과 동전의 양면 관계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런 부족주의에 진보와 개혁이라는 포장을 씌우는 데에 있다. 결국 한국의 정치는 부족주의의 노예로 전락했다.
문재인 정권의 부족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검찰의 악마화다. 문재인 정권은 목숨을 걸다시피 검찰 개혁을 외쳐댔다. 그 과정에서 무리한 ‘윤석열 죽이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위선과 기만을 저질렀다. 그런데 검찰 개혁을 뜨겁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검찰의 부족주의가 아니었던가? 검찰 내부의 비리는 부족주의로 덮어버리고, 일부 검사들이 검찰 안팎에 각자 자기 나름의 부족을 만들어 그 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짓을 해왔던 것이 검찰 개혁 당위성의 주요 근거였다. 그런데 검찰의 그런 부족주의 못지않은 부족주의에 찌든 문재인 정권이 검찰을 향해 그런 부족주의를 깨야 한다고 호통을 친다면, 이것이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부족주의는 역지사지 능력을 죽여버린다. 오직 자신의 부족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만을 따져서 사납게 반응할 뿐이다. 이들에게 나름의 이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들은 선(善)이요 정의(正義)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집단적 자기기만이다. 사실 부족주의라고 했지만, 진짜 부족주의도 아니다. 이익공동체 성격이 두드러져 상황이 바뀌면 분열과 배신이 대규모로 일어날 기회주의적 부족주의다. 지금 이 순간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일시적 부족주의다.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부족당’이다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다.” 이는 민주당 당헌 96조 2항으로, 문재인이 2015년 당 대표 시절 정치 개혁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2020년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해 그 개혁 조치를 뒤집어버렸다. ‘박원순·오거돈 성추행 사건’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질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철판 정당’인가? 아니면 정치의 본질은 뒤집기에 있다고 믿는 걸까?
민주당은 2019년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밀어붙여 법까지 개정해놓고 손해가 예상되자 약속을 어기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었다. 2020년 말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며 ‘야당에 거부권을 주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마저 가볍게 뒤집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야당은 그럴 때마다 비난을 퍼부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 ‘프리 패스권’의 가공할 폐해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사건에서도 철판의 힘은 유감없이 과시되었다. 가덕도 신공항은 박근혜 정권 때인 2016년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었지만, 민주당은 그 불씨를 되살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주장하며 2021년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문재인은 대선 후보 시절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권을 잡은 후 ‘예타 면제의 수호신’으로 바뀌었다.
2018년 말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신재민이 기획재정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의혹과 4조 원 적자 국채(國債) 발행 문제를 폭로했다. 2020년 9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휴가 미복귀’ 의혹을 당직 사병이 폭로했다. 2021년 1월 전 법무부 차관 김학의의 ‘불법 출금 및 은폐’ 의혹이 폭로되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는 공익신고자보호법 개정안 27건을 발의했을 정도로 공익 신고를 정의와 개혁의 주요 수단으로 여겼다. 그런데 민주당은 집권 후 ‘공익 신고 탄압당’으로 변신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보를 하면 의인이고 불리한 제보를 하면 도박꾼이나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더구나 문재인 정권은 공익 신고자 보호를 100대 국정 과제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권은 ‘진보 정권’이 아니라 ‘수도권 정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수도권당’으로 당명을 바꿔야 한다. 아니 ‘더불어부족당’으로 당명을 바꿔야 한다. 입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인구 집중의 강력한 유인인 교육정책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명백한 사기극이다. 문재인 정권은 2019년 5월 ‘3기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데 이어, 5개월 후인 10월 31일 ‘수도권 광역교통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 사기극은 수도권 인구 집중을 가속화하며, 수도권 신도시·교통 시설 건설은 끝없이 반복된다.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지방 소멸의 위기가 임박했건만, 5년짜리 수도권 정권은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균형발전을 팔아먹어도 되는가?
이것이 바로 민주당의 민낯이다. 아무래도 민주당은 ‘팔색조 정당’이 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어떠했는지 도무지 기억을 더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영악한 밀어붙이기에 내심 흡족해했을 것이 틀림없다. 선거에 이기는 것만이 정의라면 그들의 흡족함에 박수를 보내도 좋겠지만, 후대에 죄를 짓는 행위가 농후하기 때문에 결코 그럴 수 없다. 더구나 민주당 내에서 쓴소리를 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는 모진 박해를 받았고, 상당수는 스스로 정당이라는 집단 부족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자청했다. 그것이 바로 부족주의의 힘이다.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어떤 사람이든 혼자 있을 때 보면 상당히 현명하고 통찰력이 있지만, 집단 속에 들어가면 당장 바보가 되어버린다”고 했는데, 민주당 국회의원에 대해 이보다 현명하고 통찰력 있는 말이 있을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데카르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고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변명이 늘면서 사실을 왜곡하게 되고,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 백신 접종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공방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K방역 자화자찬 마인드에 중독된 탓인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고 빡빡 우겼다. 자신들을 둘러싼 적의 실체와 규모를 과장하면서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큰일 난다”며 ‘약자 코스프레’와 ‘완벽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들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크게, 계속 밀린다는 이상한 이론을 앞세워 무오류의 존재를 자처했다. 자신들을 무오류의 존재로 간주하거나 우기는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도무지 현실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없던 적도 만들어내고 아군마저 적군으로 돌리는 ‘뺄셈의 정치’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 더구나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아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일로 키운 게 한두 번인가?
문재인 정권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최저임금제, 주52시간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간강사법 등 일련의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아름답고 훌륭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정책 시행 시 일어날 수 있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나 부작용에 대한 대처 방안이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 충분히 드러났다. 이 또한 진보가 선호하는 추상적 당위의 함정이다. 이는 ‘결과적 위선’으로 지탄받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권은 억울하겠지만, 위선은 관리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말을 앞세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적어도 정책 영역에서는 현실을 당위적 수사에 종속시키지 말고, 실천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 윤리를 가져야 한다. 위선은 진보의 특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낮은 곳의 시대정신을 외면했다. 부동산 정책의 참사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큰 고통을 가했으며, 중대재해법처럼 스스로 내걸었던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을 허황되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권의 민생 실패는 구체와 디테일을 무시하는 진보의 오랜 습속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치밀함과 영악함을 정권 안보에만 탕진함으로써 지지율을 까먹고 말았다. 앞으로 진보 세력이 진짜 가루가 되도록 갈릴 수도 있는 터전을 스스로 만들어준 것이다. 또 적폐 청산을 내걸면서 민주화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지만, 평등 문제에서는 보수와 비슷하거나 더 못한 점도 있는 무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니 정치와 선거는 ‘밥그릇 쟁취’를 위한 사생결단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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